Nanni Moretti: Habemus Papam

한국에선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라는 제목으로 부산영화제에서 상영이 된 듯 하다. <아들의 방> 으로 깐느에서 황금종려상까지 받은 이탈리아의 작가 난니 모레티는 이 영화에서 이탈리아와 전 유럽,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상징하는 몇가지 키워드중 하나인 교황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시도를 감행한다. 모레티는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영역중 하나인 바티칸을 구성하는 주체인 추기경들의 모습을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다.

교황이 죽고, 새로운 교황이 선출된다. 새롭게 선출된 교황은 “신이 정한” 그 자리를 거부하고 급기야 바티칸을 탈출해 잠적해 버린다. 교황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바티칸으로 불려 온 정신분석학자는 선출 뒤 공표를 하지 못해 바티칸에 갇혀 버린 늙은 추기경들의 인간적인 욕망을 읽고 그들에게 운동을 권유한다. 탈출한 교황은 어린 시절 꿈꾸었으나 재능이 부족해 실현하지 못한 연극의 세계를 다시 엿보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누이가 연습했던 체호프의 작품을 읊는 정신병자를 만나고, 그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는 극단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한다. 그 와중에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결핍과 그것이 현재 자신의 나약함에 끼친 영향을 깨닫게 된다. 바티칸에 남아 있는 추기경들은 약이 없으면 잠들지 못하거나 퍼즐을 맞춰야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교황으로 선출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교황이 어서 그 역할을 떠맡길 바라는 초조함이 뒤섞여 있다.

영화는 엄청난 비극이다. 교황은 결국 바티칸으로 돌아오지만 전세계 사람들이 지켜 보는 교황 선포식에서 자신의 철학을 굽히지 않고 교황직을 포기해 버린다.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바티칸 성당과 성 베드로 광장의 광경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고정되어 있던 그 바티칸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모레띠는 대단히 명석하게도 바티칸이라는 공간, 그리고 서구 사회를 지배하는 가톨릭 사회의 핵심인 교황의 이미지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고착화되어왔고 그것이 어떻게 그 사회의 핵심 철학을 떠받들어 왔는지 간파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에서 그 집단적 기대를 산산히 무너뜨리며 작지 않은 균열을 만들어 낸다.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교황의 갈등을 드러내기 위한 기제로 정신분석학과 연극이라는 도구가 쓰인다는 점이다. 교황은 두번째로 만난 미혼모 정신분석학자에게 자신의 직업이 연극 배우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는 어린 시절 연극 배우를 꿈꾸었던 그가 엉겁결에 내뱉은 말이기도 하고, 온몸으로 거부하는 교황직을 “연기”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중의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진짜로 연극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간다. 반대로 교황이 사라진 바티칸에서는 교황의 방에서 교황의 그림자를 연기하며 다른 모든 추기경들을 속여야 하는 배우가 등장하고, 모레띠가 직접 연기하는 정신분석학자의 말을 따라 운동을 하는 추기경들의 모습이 꽤 오랫동안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운동을 하는 와중에 무척 즐거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티칸 대변인의 소집 요청에 일순간 운동을 접고 내부로 들어간다. 왜 중간에 그만 두냐는 정신분석학자의 푸념에 “더이상 그럴 시간이 없어요!” 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추기경들의 모습에서 그들 역시 일종의 연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교황은 대중을 위해 연기를 해야 하고, 추기경들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믿는 교황을 위해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바티칸이라는 세계와 가톨릭이라는 오래된 종교의 핵심에서 일하는 사제들은 어떻게 보면 매 순간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사적인 삶을 완전히 뒤로 감춘 채 매일 신자들을 만나 미사라는 정해진 형식 속에서 교회가 몇천년동안 지켜온 가치를 설파해야 한다. 사생활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대중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평생을 버텨야 한다. 신자가 수백명인 한 성당을 짊어지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십억명이 넘는 신자들이 존경해 마지 않고 그들을 앞장서서 이끌어야 하는 교황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없애 버려야지만 겨우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것일게다. 실제로 교황이 하는 일들은 상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교황의 자리에 단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의미는 엄청나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수행할 깜냥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 불경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는 곳이 바로 가톨릭 사회다. 모레띠는 가톨릭 교회의 심장이 있는 로마 한복판에서 감히 교황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를 감행하고, 이를 꽤 설득력있게 풀어낸다. 교황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을 뿐이고, 그는 결국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의 실존하는 인간이 십억명을 위해 연기하는 상징물보다 중요한 것이다. 최소한 그 당사자에게는 말이다. 그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순간 얼굴을 감싸 쥐며 절망에 빠지는 추기경들의 모습과 환호성을 일순간 멈추고 정적에 싸인 성 베드로 광장에 선 대중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문제가 그리 단순해 보이지만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교황은 갈등했고, 결국 그의 길을 갔다. 그렇다면 2천년 넘게 유지해온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레띠는 거기까지 논점을 확대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한 인간의 고통이 다른 인간의 고통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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