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office mates

한국에서 정식으로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다. 대학원조차 경험해 보지 못하고 학부만 마친 채 허겁지겁 유학을 나왔는데, 그러다 보니 사회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일종의 아쉬움이나 후회로 드러날 때가 종종 있다. 경험해본 조직 생활이라곤 군대 시절 겪었던 행정반이 유일할텐데, 사회에 있는 친구들은 그정도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군대에서의 행정병 경험이 진짜 사회 생활과 병치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대학원에 입학한 뒤에도 계속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만 해왔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회사, 혹은 조직에 대한 개념이 굉장히 흐릿할 수 밖에 없다. 친구 혹은 여자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듣는 것들은 많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이야기이기에 가슴 속 깊이 느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런 내가 지난 8월부터 학과 메인 오피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대학원 5년차가 끝나면 공식적인 펀딩을 더이상 받을 수 없는데 6년차 대학원생이 유일하게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이 바로 메인 오피스의 web assistant 자리였고, 운좋게 내가 선발이 되어서 Kim 이라는 중년의 여성과 함께 일하고 있다. 하는 일은 단순하다. 킴은 주로 학과 홈페이지의 그래픽이나 어려운 코딩 작업을 위주로 하고 나는 웹페이지를 관리하는 단순한 일들을 주로 맡는다. 학기초에 실라부스를 업로드하는 일이라던가 교수님들의 논문 업데이트, 잡마켓에 나가는 대학원생들을 위한 페이지 관리같은, css 나 html 을 몰라도 대충 드림위버를 비비다 보면 해결되는 일들이 나에게 떨어진다. 티칭 포지션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관리하는 매니저는 학장 교수님이 아니라 학장님을 보필하는 왕비서 할머니가 되고, 함께 일하는 킴이 나와 주로 대화를 하면서 일을 주거나 관리한다. 메인 오피스에는 따로 자신의 방을 가지고 있는 왕비서 할머니와 킴을 제외하고 학과 꼬마 비서 할머니인 조이와 바로 옆 오피스에서 학과 스케쥴 관리를 전담하는 릴리등이 있다. 여기에 경제학과 학부생들의 학사 문제를 전담해서 상담해 주는 전문 어드바이저 두분까지 총 여섯명 정도가 경제학과에 소속된, 교수가 아닌 피고용인인 셈이다.

지난 5년동안 내 나이 또래의 대학원생들과 함께 오피스를 나누어 쓰던 내가 대부분이 여성인 메인 오피스에 적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놔도, 비딱하게 앉아서 벽에 매달아 놓은 미니 농구 골대에 공을 집어 넣으면서 수다를 떨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던 오피스에서 친구들과 스포츠 이야기, 음악 이야기, 영화 이야기, 혹은 시시껄렁한 남자들의 수다를 떨던 내가 할머니들 틈새에서 딸의 남자친구 이야기라던가 손자들의 사진 자랑같은 대화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외국인, 그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미국에서 산 순수 미국인들이니 내가 느끼는 문화적인 차이는 심리적으로 훨씬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말 없이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볼 때가 많아졌고, 급기야 왕비서 할머니가 나보고 너무 조용하다며 타박하기까지 했다. 그렇다, 가만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침묵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사원이 아닌 곳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아주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함께 나누며 키득거리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하루 일과처럼 보였다. 언뜻 엿듣다 보면 그들은 주말에 함께 만나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하고, 퇴근 후에도 전화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등 각별한 사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왕비서 할머니야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쳐도, 조이 할머니와 킴, 릴리는 모두 나보다 늦게 이 학과에 합류한 사람들이다. 짧으면 2년, 길어도 3년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친해 보였다.

더 인상깊게 느낀 것은, 그들 모두 40세를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자” 로서의 정체성을 깊게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말 자체가 우습게 들여야 정상이지만, 한국의 경우 30대 중반만 넘어가도 여성은 여성성을 상실한채 “아줌마” 라는 제 3의 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최근에는 멋을 부리는 중년 여성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는데, 이것은 멋을 부리고 안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60세가 넘은 조이 할머니는 여전히 소녀처럼 웃고 삐지고 심심해 한다. 내가 처음에 그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실수했던 부분이 이것이다. 나는 그들을 한명의 여성으로 대해야 했다. 내 엄마뻘인 그들을 아줌마로 대하면 안되었던 것이다. 나이는 관계에서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과 나는 항상 동등한 위치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써내려가야 했다. 우리가 흔히 아줌마들에 대해 오해하는 것, 예컨대 그들에겐 더이상 20대 여성들이 가지고 있던 감성이 없을 것이라는 그런 편견들이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무언가를 알고 싶어 했으며 깔깔거리며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물론 그들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있고 누구보다 아끼는 자식들이 있으며 사랑하는 남편이 있지만, 그들 자신의 독립적인 삶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겐 그들 각자의 인생이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었다.

여자친구에게 이런 나의 새로운 오피스 메이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중,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꺼냈다. 여자친구는 한심하다는 듯이 “당연하지. 집보다 거기가 훨씬 더 재미있는데 왜 일찍 들어가려고 하겠어” 라고 대답해 주었다. 생각해보니 그들에겐 직장이 무척 재미있고 활기넘치는 곳이었다. 재미없고 따분한 날에는 어디에서라도 유머러스한 것을 찾아 내려고 애썼고, 바쁜 날에는 바쁜 날 대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활기차게 보냈다.

나는 파트타임이어서 일주일에 20시간만 일한다. 금요일에 나의 시간을 갖기 위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일한다. 길면 하루에 여섯시간, 짧으면 네시간 정도. 그중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다. 나머지는 논문을 수정하거나 기타 잡다한 내 일들을 한다.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느새 그 오피스로 가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하는. 그들과 나누는 대화라고는 아직 어설픈 안부를 전하거나 썰렁한 유머를 한두마디 섞는 것 뿐이지만, 조금씩 나는 그들에게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남들보다 하루 더 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오피스에 가서 그들을 만나면 가식적인 웃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반가워서 웃게 된다. 진심으로 안부를 묻게 된다. 9월에는 킴의 남편이 아파서 킴이 며칠 결근을 했고, 최근에는 조이의 남편이 수술을 받게 되어서 며칠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이후 그들이 다시 출근했을때 진심으로 그들에게 안부를 묻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아직 많이 쑥스러워서 길게 대화하지는 못하지만, 천성이 introverted 로 태어난 내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에 따르면 나는 굉장히 그들을 좋아하고 있는 셈이다. 아주 천천히, 가끔 너무 느려서 상대방이 답답해 하고 오해도 하긴 하지만, 나는 그들과 분명히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60대 미국인 여성들과 그들중 한명의 딸의 남자친구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함께 흉을 보며 수다를 떠는 장면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나도 이렇게 될줄은 몰랐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