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 Orange: Cupid Deluxe

음악이나 미술 작품에 지역성이 묻어 나올 때 특별한 감흥을 느낀다. 그 지역성이 구체적이면 구체적일 수록 더 좋다. 그렇게 구체화된 지역성 안에서 정체성을 확립한 작품은 그만큼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일반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시적인 아름다움의 위력은 이러한 구체성 안에서 일반적은 담론을 이야기하는 능력에 기인하고 있다. 어떤 동네에 사는 한 꼬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청자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그러한 개인적인 경험의 공유와 확장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일반적인 이야기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지역성은 그러한 미시적인 구체화 과정을 도와주는 아주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런던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란 한 흑인 청년이 있다. 거친 환경에서 커오면서 너무 많이 맞아서 병원 응급실에서 정신을 차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자정을 넘어 새벽이 가까워 오는 시간 뉴욕과 브루클린 일대에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 청년도 그들중 하나였다. 그들은 거리에서 섹스를 팔거나 마약을 하거나 골판지를 덧대어 잠자리를 만든다. 그들중 현명한 일부는 지하철을 타고 종점과 종점 사이를 반복하며 조금 더 따뜻하고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들이 주로 탑승하는 A, C, E 라인을 합쳐서 “uncle ACE” 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노선을 애용하던 – 혹은 애용하던 친구들을 쭉 지켜봐 왔던 – 청년 Dev Hynes 가 Blood Orange 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두번째 앨범에 수록된 “uncle ACE” 가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 뿐만이 아니라 앨범 전체가 뉴욕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앨범 속지는 뉴욕의 거리를 적나라하게 담아 내고 있는데, 중국부터 유태인까지, 흑인부터 백인까지 전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문화가 한데 뒤섞여 독특한 그들만의 감수성을 만들어내는 뉴욕의 뒷골목을 무심한 듯 바라보는 뮤지션의 시선이 잘 드러나는 듯 하다. 트렌스젠더부터 거리의 부랑자같은 대표적인 소수자부터 업타운의 허름한 차이나타운에 사는 중국계 미국인 소년, 거리의 행위 예술가까지 모두 이 앨범의 주인공들이고, Hynes 의 친구들이다. Blood Orange 는 이들을 단지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뉴욕의 거리에서 느끼는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뉴욕의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구체적인 지명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누구나 그가 Dirty Projectors 나 Grizzly Bear 와 같은 뉴욕-브루클린 인디씬의 적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주 세련된 인디 팝 넘버들의 감미로운 멜로디라인이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 앨범에서 그 이상을 넘보고 있다. 뉴욕의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보편적인 인생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 앨범은 제이 지를 위시한 “I LOVE NY!” 을 상업화한 음악들의 대척점에 서 있다. 제이 지는 대놓고 엠파이어 스테잇 빌딩 위로 헬기를 띄운채 뉴욕을 사랑한다고 외치고 브루클린 네츠의 모자를 쓰고 무대에 오르지만, 블러드 오렌지는 그저 새벽녘 일을 마친 서브웨이 알바 친구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수고했어, 이번 주말엔 신나게 놀자,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마치 제이 지의 음악이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절찬리에 상영중인 대형 뮤지컬이라면 블러드 오렌지의 음악은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조촐하게 올려지는 헤드윅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인디” 가 현대 음악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앨범인 이유다. 그림자처럼, 거울처럼, 혹은 메아리처럼 상업화된 음악 산업이 놓치기 쉬운 지점을 찾아서 각인시켜 주고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인디 씬이 해야할 일들중 하나이고, 블러드 오렌지는 그 “인디” 의 정체성에 “팝” 이 가지는 미덕을 완벽하게 결합시켰다. 너무 너무 아름다운 팝 넘버들이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울려 퍼지는데 감성은 완전 인디스럽다. 이보다 더 완벽하게 내 취향에 부합하는 앨범을 올해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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