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ade Fire: Reflektor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앨범은 이들 커리어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음반이 아닐 수도 있다. 이들의 전설적인 데뷔 앨범은 충격적이었고 이어지는 2집은 이들의 세계관이 극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3집에서는 앨범 제목이 상징하듯 교외, 이웃들의 미시적인 모습에서 날카로운 삶의 단면을 추적해온 이들의 철학이 집대성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4집은 좀 생뚱맞다. 전작들과의 연결 고리가 상당히 미약해진 느낌이고, 음악적으로도 무릎을 탁 내리칠 정도로 귀에 쏙 들어오는 사운드는 아닌 것 같다. 야심차게 더블 앨범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뒤로 갈수록 약간씩 힘에 부치는 느낌까지 든다. 전작들에서 이들이 보여준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드러내는 양면적이고 다층적인 구조가 많이 단편화되었다는 인상도 받는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두고 “지금까지 나온 앨범들중 가장 별로” 라고 이야기하고 있을텐데,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다” 이다. 이들은 여전히 “일반적인” 다른 뮤지션들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서 놀고 있다. 라디오헤드나 뷰욕이 끊임없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을 가장 먼저 깨부수고 다음 레벨로 올라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아케이드 파이어는 지금까지 항상 조금 더 자신들 안으로 침잠해가는 쪽을 택했다. 깊이를 깊게 하고 넓이를 넓게 하면서 외연을 확대하기 보다는 조금 더 짙게, 조금 더 두껍게, 조금 더 풍성하게 음악을 채색해 나가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은 전혀 무거워지지 않았고, 여전히 새로웠으며,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4집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굉장하다. 전작들에 비해 처진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높은 레벨에서 만들어지는 음악들이다. 귀하게 들어야 한다.

이 앨범에 영향을 준 키워드는 크게 세가지라고 한다. 아이티 전통 음악인 라라, 1959년 만들어진 브라질 영화 <Black Orpheus>, 그리고 기독교 실존주의자였던 키에르케고르의 에세이 <Present Age>. 윈 버틀러와 레진 체샤뉴는 아이티를 방문하는 기간동안 이 전통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고, 아마도 앨범을 여는 노래 “Reflektor” 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리듬은 이 음악에서 받은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아이티의 악기들도 적극적을 받아 들여 새 앨범에서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Black Orpheus> 는 버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중 하나라는데, 이 음악의 신이 연주했다고 하는 악기의 이름이 리라인 것은 기분좋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버틀러는 이 새앨범의 테마가 “죽음과 고독 (혹은 고립)” 이라고 밝히고 있다. 오르페우스가 죽음까지 무릅써가며 구하고자 하는 사랑과 결국 비극적인 이별을 하고 혼자 돌아 나와야만 하는 플롯이 어떻게 <Present Age> 와 이어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철학 에세이에 나오는 한 구절이 힌트가 될 듯 하다.

The present age is one of understanding, of reflection, devoid of passion, an age which flies into enthusiasm for a moment only to decline back into indolence. … Action and passion is as absent in the present age as peril is absent from swimming in shallow waters.

—Kierkegaard, Søren, Two Ages: A Literary Review.

 

다만 즉 키에르케고르는 현재를 이해와 반성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열정이 없는 시대이며, 게으름과 나태함의 충만한 순간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얕은 물에서 위험을 느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에서는 아무런 열정적인 행위가 있을 수 없다고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버틀러는 키에르케고르의 이 에세이가 시대를 초월해 고독 혹은 고립에 대한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고, 오르페우스 신화를 바탕으로 앨범의 스토리라인을 구성하면서 밴드와 청자들이 살아가는 현재를 키에르케고르의 시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듯 보인다. 사실 이 밴드는 데뷔 앨범부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려 장례식 연작을 통해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당찬 신인밴드였던 것이다. 그들이 이젠 세계를 철학적인 영역으로까지 확대하려고 노력하는 듯 보인다. 물론, 조금 더 깊고 넓은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 레퍼런스를 언급했던 뮤지션들이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들 대부분이 피로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렸던 것도 기억하고 있는 바이지만, 아케이드 파이어는 특유의 생명력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던 듯 보인다. 그래서 그 무게감을 버겁게 느낀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는 거부반응도 이해가 되고, 이번 앨범이 단절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개인적으로도 이들이 다시 “교외 지역” 으로 돌아와서 가벼운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긴 한데, 이러한 시도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현 시대의 픽시스로서의 이미지를 굳혀가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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