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s in america

지난 주말에는 2박 3일동안 뉴욕과 코네티컷에 다녀 왔다. 금요일 저녁에 떠나 일요일 밤에 돌아왔으니 퍽 짧은 3일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다 함께 만나자고 의기투합한지 몇달만에 뉴욕에서 반갑게 해후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을 기점으로 볼더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모두 이곳을 떠났다. 스캇과 크리스는 졸업을 해서 각각 코네티컷에 있는 학교와 마이애미에 있는 회사로 떠났고, 스티브는 유럽으로 긴 여행을 떠났으며, 캐런은 이들보다 1년 먼저 볼더를 떠나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가 매디컬 스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닐과 마샤 부부는 오클라호마에 있는 학교에 함께 취직했고 얼마전 아이를 낳았다.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오피스를 쓰고 술집에서 만나 함께 낄낄거리고 함께 농구를 하고.. 가끔은 함께 여행도 갔으며 거의 매일 만나 수다를 떨던 친구들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 버린 뒤 나는 한동안 상당히 큰 공허함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학기부터 학과 메인 오피스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주된 대화 상대들이 동년배 친구들에서 어머니뻘의 숙녀분들로 바뀐 탓도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다른 오피스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용히 일만 하다 퇴근하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왕매니저 할머니가 너무 말이 없다며 불평을 했을까. 오피스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데 나처럼 극도로 인트로버트한 성향의 사람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같은 오피스에 있는 할머니분들이 무척 친절하고 이해심이 넓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그들과의 대화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문자를 주고 받아 왔다. 서로가 그립기도 했고, 각자 새로운 환경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친근한 사람들과 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풋볼 판타지 리그를 하면서 스포츠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누군가의 페이보릿 팀이 패하기라도 한다면 낄낄거리며 놀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5년동안 우리가 나누어 왔던 감정의 폭은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그들과의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그러한 거리감이 그들과 나 사이의 감정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맨하튼의 한 펍에서 만나 반갑게 해후했고, 어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에서 한참동안 수다를 떨다가 밖으로 나와 코리아타운에서 배를 채웠다. 다들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아무도 없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야경을 구경하기도 했고, 코네티컷에 있는 스캇네 집으로 가는 기차를 잘못 타 행방불명이 될 뻔 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스캇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한 예수회 대학교를 둘러 보기도 했고 전형적인 미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을 돌아 다니며 산책을 하기도 했다. 음식을 함께 먹고, 스포츠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걱정거리들을 털어 놓고 들어주는 그러한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친구가 무엇인지, 우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48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함께 하면서 나는 그들이 나의 친구임을 느꼈다.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함께 해야만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던 지난 5년이 단단한 감정의 끈을 만들어 주었다. 일요일 오후에는 뉴욕의 한 스포츠펍에서 풋볼을 함께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는 동안 우리를 떠나보내는 스캇의 얼굴에 진한 섭섭함이 담겨 있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만, 다시 만나기까지 다시 서로를 그리워 하며 지낼 것이다. 인종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완전히 다른, 국적마저 다른 나와 친구가 되어준 그들에게 참 고맙다. 우리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의 장벽을 뚫고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많은 노력이 있어야 했고, 서로가 기억하지 못하는 숨은 배려 또한 끊임없이 베풀어져야만 가능한 관계였다. 내가 미국에 와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났는지, 혹은 어떤 수준에서 유지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냥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말해도 그리 틀린건 아닐 것 같다.

우리의 다음 만남은 어디일까? 스캇과는 필라델피아 잡마켓 컨퍼런스가 끝나면 뉴욕에서 만날 것이다. 크리스가 사는 마이애미로 다같이 놀러갈 수도 있다. 내년 여름 덴버에서 열리는 서부 경제학회 컨퍼런스에서 만나 덴버에서 한잔 할 수도 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전보다 더 만나기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든 끈이 쉽게 끊어질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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