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홍상수 영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하겠지만 나에게 그의 영화는 구조의 영화이고 배열의 영화이다. 그는 편집을 통해 영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만드는 사람이고 그 편집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집요한 배열의 규칙을 파악하는 즐거움이 그의 영화를 보는 가장 이유가 될 때가 많다. <북촌 방향> 을 지나 <다른 나라에서> 에서 이자벨 위페르와 잠시 시간을 함께 보낸 그는 이제 서촌에서 제인 버킨을 통해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의 문을 연다. 그는 친절하게도 그의 영화의 주제와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속 장소를 힌트로 제공할 때가 많은데, <극장전> 에서 돌아 나오는 회전문의 개념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은 서촌에서 시작해 남한산성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도서관에 있는 책들 사이에서 마무리되는 기묘한 구성의 영화다. 같은 장소를 미묘하게 비틀어 다시 보여주는 홍상수 특유의 구조화는 여전하지만 돌아나오는 개념이 아니라 “가지 않은 곳을 가보” 는 개념으로서의 남한 산성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이 영화는 드러나는 것과 감추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드러남과 감춤의 과정을 주인공인 해원의 꿈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는 기법을 통해 영화의 형식으로도 잘 드러내고 있다. 해원은 선생님과의 관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렵고, 선생님또한 그것이 두렵다. 둘 사이의 대화는 – 홍상수 영화임을 감안하고 본다고 해도 – 어색하게 이어질 때가 많고 분명히 단절적이다. 엄마가 떠나 가뜩이나 더 불안해진 해원이 불륜 관계인 선생님을 비롯해 세명의 “아저씨”를 만나는 과정 또한 구조의 반복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그녀가 꿈속에서 만나는 아저씨들은 그녀의 불편한 심리와 감추려는 노력 속에서 생겨나는 욕망을 발현시켜 주는 상징물들인지도 모르겠다. 미국 교수를 만나니 “한국이랑은 잘 안맞잖아” 라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일행이라던가 모르는 이에게 술을 선뜻 내어주는 낯선 이가 사실은 그녀와 그녀의 애인의 행동을 모조리 알고 있다던가 하는 설정은 그녀가 분명히 꿈속에 있다는 것을 보증해줌과 동시에 그녀가 꿈에서 깨면서 “꿈에 본 아저씨는 착한 아저씨같았다.” 라고 말하는 이유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즉 그녀는 “모두가 다 죽으면 된다”라고 말할 정도로 현재의 상황과 관계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녀가 욕망하는 것을 꿈속에서 발견하며 조금 더 또렷한 목소리로 깨어나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90여분동안 지루하게 나열될 뿐이던 영화의 산개한 구조들을 순식간에 하나로 묶어주며 명료한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마술과 같은 찰나의 몇초를 만들어낸다. 영화의 대부분은 꿈이었으며, 그녀는 여전히 잠들어 있지만 이와 동시에 말하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마도 며칠 뒤 쓰일 또다른 일기장에 등장하는 한 문장일 수도 있고 정말 그녀가 말한 대로 이미 죽은 상태의 그녀가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며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녀는 꽤나 긴 꿈을 꾸고 나서 도서관에 잠들어 있는 자신의 위치로 돌아 왔다. 꿈속에서 그녀는 남한 산성에서 가보지 않은 길을 갔으며, 헤어진 애인과 다시 만났고, 그 관계를 말하고 싶은 욕망과 관계를 끝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그녀가 서촌에서 시작할지 학교 수업에 다시 들어갈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녀에겐 다시 돌아 나올 수 있는 문과 그냥 지나쳐 나가버릴 수 있는 문, 두가지의 선택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Leos Carax: Holy Mo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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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한 가장 친절하고 정확하면서 매혹적이기까지 한 설명은 씨네 21에 허문영이 기고한 평론일 것이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3274

평론은 가끔 예술을 비로소 예술답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허문영의 글이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 같다. 평론 그 자체가 예술이 되려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의 글은 항상 자신의 자리와 시선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출발한다.

<퐁네프의 연인들> 이 한참 인기 있을 당시 나는 너무 어려서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앞으로도 그 영화를 시간을 내어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레오 까락스는 그 영화를 만든 뒤 <폴라 X> 를 만들었고, 그 이후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다가 이 영화를 내놓았다. 평론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미지에서 서사로 넘어 갔다가 실패를 맛본 뒤 <홀리 모터스>를 통해 다시 이미지로 돌아온 셈이다. 하지만 그가 다시 찾은 이미지는 과거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 보인다. 허문영의 말처럼 시에 더 가까울 수도 있고, 영화 속에서 전통적인 문법의 서사를 파괴하는 서사가 이미지와 함께 공존한다는 점에서 서사와 이미지의 대립 구조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한 인물에서 시작해 그 인물을 지워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처음 등장한 인물이 아홉개의 각기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라고 가정한 채 출발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오스카라는 인물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가 실재라고 믿었던 공간과 시간이 연기라고 추측되었던 그것들과의 경계를 점점 허물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연기는 실재적인 죽음과 충돌하게 되고, 혹은 죽음 자체를 연기의 영역으로 가져와 버리기도 한다. 무엇이 연기이고 무엇이 실재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순간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뒤바뀌는 결말이 등장하고 그렇게 모든 인물들이 완벽한 역전을 달성한 뒤 떠나간 자리에 재미있는 리무진들끼리의 대화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유머러스하게 덧붙여진 이 마지막 씬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들 사이의 관계 마저도 파괴해 버리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는 아닌 셈이다. 연극 분장실처럼 꾸며진 리무진 내부와 그 안에서 진행되는 대화 중에 등장하는 카메라에 대한 언급, 그리고 셀린이 쓰게 되는 가면과 연기를 하는 연기자가 하는 연기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등은 이 영화가 영화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심증을 갖게 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기존의 영화가 가지고 있던 서사 구조를 파괴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 영화 그 자체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굉장히 적은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이 영화의 주제는 프롤로그 부분에 압축되어 있는 듯 보인다. 레오 까락스 본인이 직접 등장하는 이 SF적인 영화의 시작은 감독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관객들은 죽어 있는 듯 잠잠하고, 밖에서는 우주선이 착륙하고 있으며, 침실과 영화관은 문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감독이 꿈꾸고 있는 악몽을 그대로 영상화해놓은 듯한 이 오프닝씬은 본편고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만, 본편으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관객들에게 꽤 친절한 안내문으로 기능하고 있다. 즉 이 영화는 감독이 지난 십몇년동안 가지고 있던 악몽을 치유하는 과정인 것이고, 관객은 감독이 자신의 페르소나였던 한 배우를 통해 영화로부터 당했던 괴로움에서 탈출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동반자인 셈이다. 영화의 아홉가지 에피소드에는 영화의 각종 장르와 연기 기법, 영화적 장치들과 전통적인 영화들에서 다루어 왔던 주제들이 버무려져 있다. 그 안에서 연기를 했던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연기 속에 함몰되어 버린채 하루를 마감한다. 연기의 바깥에서만 머물러 있다고 생각되어졌던 운전기사는 사실 연기자를 고용한 사람이었고, 그녀 역시 가면을 쓴 채 퇴근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은 모두 우리가 바라보는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며, 이 모든 이야기들 조차 하나의 영화라는 사실이다. 즉 우리는 연기자들을 찍는 카메라가 아닌, 네모난 직사각형의 화면에서 나오는 영상물 밖에 있는 거실과 전등과 발코니 따위를 인식할 때 비로소 이 영화를 영화로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즉 이 영화는 자막이 올라가고 스탑 버튼을 누른 뒤 화면을 끄고 냉장고로 가서 물을 한잔 따라 마시는 과정까지 영화의 일부로서 잠식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관객은 감독과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소통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올해 가장 위대한 영화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가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나 역시 막간극에 대한 언급을 반드시 해야 할 것 같다. 막간극은 한 대성당에서 드니 라방이 이끄는 연주단이 연주하는 노래 한토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진은 대단히 에너지가 넘치고 영화에는 어떠한 거짓도 없다. 라방을 따르는 연주자 (혹은 배우)들의 표정은 활기가 넘치고 음악은 심장을 때린다. 이 짧은 막간극이 가지는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정말 이 짧은 연주곡에 영화의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Nanni Moretti: Habemus Papam

한국에선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라는 제목으로 부산영화제에서 상영이 된 듯 하다. <아들의 방> 으로 깐느에서 황금종려상까지 받은 이탈리아의 작가 난니 모레티는 이 영화에서 이탈리아와 전 유럽,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상징하는 몇가지 키워드중 하나인 교황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시도를 감행한다. 모레티는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영역중 하나인 바티칸을 구성하는 주체인 추기경들의 모습을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다.

교황이 죽고, 새로운 교황이 선출된다. 새롭게 선출된 교황은 “신이 정한” 그 자리를 거부하고 급기야 바티칸을 탈출해 잠적해 버린다. 교황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바티칸으로 불려 온 정신분석학자는 선출 뒤 공표를 하지 못해 바티칸에 갇혀 버린 늙은 추기경들의 인간적인 욕망을 읽고 그들에게 운동을 권유한다. 탈출한 교황은 어린 시절 꿈꾸었으나 재능이 부족해 실현하지 못한 연극의 세계를 다시 엿보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누이가 연습했던 체호프의 작품을 읊는 정신병자를 만나고, 그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는 극단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한다. 그 와중에 어린 시절의 정신적인 결핍과 그것이 현재 자신의 나약함에 끼친 영향을 깨닫게 된다. 바티칸에 남아 있는 추기경들은 약이 없으면 잠들지 못하거나 퍼즐을 맞춰야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교황으로 선출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새로운 교황이 어서 그 역할을 떠맡길 바라는 초조함이 뒤섞여 있다.

영화는 엄청난 비극이다. 교황은 결국 바티칸으로 돌아오지만 전세계 사람들이 지켜 보는 교황 선포식에서 자신의 철학을 굽히지 않고 교황직을 포기해 버린다.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바티칸 성당과 성 베드로 광장의 광경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고정되어 있던 그 바티칸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모레띠는 대단히 명석하게도 바티칸이라는 공간, 그리고 서구 사회를 지배하는 가톨릭 사회의 핵심인 교황의 이미지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고착화되어왔고 그것이 어떻게 그 사회의 핵심 철학을 떠받들어 왔는지 간파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에서 그 집단적 기대를 산산히 무너뜨리며 작지 않은 균열을 만들어 낸다.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교황의 갈등을 드러내기 위한 기제로 정신분석학과 연극이라는 도구가 쓰인다는 점이다. 교황은 두번째로 만난 미혼모 정신분석학자에게 자신의 직업이 연극 배우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는 어린 시절 연극 배우를 꿈꾸었던 그가 엉겁결에 내뱉은 말이기도 하고, 온몸으로 거부하는 교황직을 “연기”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중의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진짜로 연극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간다. 반대로 교황이 사라진 바티칸에서는 교황의 방에서 교황의 그림자를 연기하며 다른 모든 추기경들을 속여야 하는 배우가 등장하고, 모레띠가 직접 연기하는 정신분석학자의 말을 따라 운동을 하는 추기경들의 모습이 꽤 오랫동안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운동을 하는 와중에 무척 즐거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티칸 대변인의 소집 요청에 일순간 운동을 접고 내부로 들어간다. 왜 중간에 그만 두냐는 정신분석학자의 푸념에 “더이상 그럴 시간이 없어요!” 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추기경들의 모습에서 그들 역시 일종의 연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교황은 대중을 위해 연기를 해야 하고, 추기경들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믿는 교황을 위해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바티칸이라는 세계와 가톨릭이라는 오래된 종교의 핵심에서 일하는 사제들은 어떻게 보면 매 순간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사적인 삶을 완전히 뒤로 감춘 채 매일 신자들을 만나 미사라는 정해진 형식 속에서 교회가 몇천년동안 지켜온 가치를 설파해야 한다. 사생활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대중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평생을 버텨야 한다. 신자가 수백명인 한 성당을 짊어지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십억명이 넘는 신자들이 존경해 마지 않고 그들을 앞장서서 이끌어야 하는 교황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없애 버려야지만 겨우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것일게다. 실제로 교황이 하는 일들은 상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교황의 자리에 단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의미는 엄청나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수행할 깜냥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 불경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는 곳이 바로 가톨릭 사회다. 모레띠는 가톨릭 교회의 심장이 있는 로마 한복판에서 감히 교황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를 감행하고, 이를 꽤 설득력있게 풀어낸다. 교황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을 뿐이고, 그는 결국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의 실존하는 인간이 십억명을 위해 연기하는 상징물보다 중요한 것이다. 최소한 그 당사자에게는 말이다. 그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순간 얼굴을 감싸 쥐며 절망에 빠지는 추기경들의 모습과 환호성을 일순간 멈추고 정적에 싸인 성 베드로 광장에 선 대중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문제가 그리 단순해 보이지만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교황은 갈등했고, 결국 그의 길을 갔다. 그렇다면 2천년 넘게 유지해온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레띠는 거기까지 논점을 확대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한 인간의 고통이 다른 인간의 고통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new office mates

한국에서 정식으로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다. 대학원조차 경험해 보지 못하고 학부만 마친 채 허겁지겁 유학을 나왔는데, 그러다 보니 사회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일종의 아쉬움이나 후회로 드러날 때가 종종 있다. 경험해본 조직 생활이라곤 군대 시절 겪었던 행정반이 유일할텐데, 사회에 있는 친구들은 그정도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군대에서의 행정병 경험이 진짜 사회 생활과 병치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대학원에 입학한 뒤에도 계속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만 해왔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회사, 혹은 조직에 대한 개념이 굉장히 흐릿할 수 밖에 없다. 친구 혹은 여자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듣는 것들은 많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이야기이기에 가슴 속 깊이 느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런 내가 지난 8월부터 학과 메인 오피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대학원 5년차가 끝나면 공식적인 펀딩을 더이상 받을 수 없는데 6년차 대학원생이 유일하게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이 바로 메인 오피스의 web assistant 자리였고, 운좋게 내가 선발이 되어서 Kim 이라는 중년의 여성과 함께 일하고 있다. 하는 일은 단순하다. 킴은 주로 학과 홈페이지의 그래픽이나 어려운 코딩 작업을 위주로 하고 나는 웹페이지를 관리하는 단순한 일들을 주로 맡는다. 학기초에 실라부스를 업로드하는 일이라던가 교수님들의 논문 업데이트, 잡마켓에 나가는 대학원생들을 위한 페이지 관리같은, css 나 html 을 몰라도 대충 드림위버를 비비다 보면 해결되는 일들이 나에게 떨어진다. 티칭 포지션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관리하는 매니저는 학장 교수님이 아니라 학장님을 보필하는 왕비서 할머니가 되고, 함께 일하는 킴이 나와 주로 대화를 하면서 일을 주거나 관리한다. 메인 오피스에는 따로 자신의 방을 가지고 있는 왕비서 할머니와 킴을 제외하고 학과 꼬마 비서 할머니인 조이와 바로 옆 오피스에서 학과 스케쥴 관리를 전담하는 릴리등이 있다. 여기에 경제학과 학부생들의 학사 문제를 전담해서 상담해 주는 전문 어드바이저 두분까지 총 여섯명 정도가 경제학과에 소속된, 교수가 아닌 피고용인인 셈이다.

지난 5년동안 내 나이 또래의 대학원생들과 함께 오피스를 나누어 쓰던 내가 대부분이 여성인 메인 오피스에 적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놔도, 비딱하게 앉아서 벽에 매달아 놓은 미니 농구 골대에 공을 집어 넣으면서 수다를 떨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던 오피스에서 친구들과 스포츠 이야기, 음악 이야기, 영화 이야기, 혹은 시시껄렁한 남자들의 수다를 떨던 내가 할머니들 틈새에서 딸의 남자친구 이야기라던가 손자들의 사진 자랑같은 대화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외국인, 그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미국에서 산 순수 미국인들이니 내가 느끼는 문화적인 차이는 심리적으로 훨씬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말 없이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볼 때가 많아졌고, 급기야 왕비서 할머니가 나보고 너무 조용하다며 타박하기까지 했다. 그렇다, 가만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침묵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사원이 아닌 곳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아주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함께 나누며 키득거리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하루 일과처럼 보였다. 언뜻 엿듣다 보면 그들은 주말에 함께 만나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하고, 퇴근 후에도 전화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등 각별한 사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왕비서 할머니야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쳐도, 조이 할머니와 킴, 릴리는 모두 나보다 늦게 이 학과에 합류한 사람들이다. 짧으면 2년, 길어도 3년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친해 보였다.

더 인상깊게 느낀 것은, 그들 모두 40세를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자” 로서의 정체성을 깊게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말 자체가 우습게 들여야 정상이지만, 한국의 경우 30대 중반만 넘어가도 여성은 여성성을 상실한채 “아줌마” 라는 제 3의 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최근에는 멋을 부리는 중년 여성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는데, 이것은 멋을 부리고 안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60세가 넘은 조이 할머니는 여전히 소녀처럼 웃고 삐지고 심심해 한다. 내가 처음에 그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실수했던 부분이 이것이다. 나는 그들을 한명의 여성으로 대해야 했다. 내 엄마뻘인 그들을 아줌마로 대하면 안되었던 것이다. 나이는 관계에서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과 나는 항상 동등한 위치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써내려가야 했다. 우리가 흔히 아줌마들에 대해 오해하는 것, 예컨대 그들에겐 더이상 20대 여성들이 가지고 있던 감성이 없을 것이라는 그런 편견들이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무언가를 알고 싶어 했으며 깔깔거리며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물론 그들에게는 소중한 가족이 있고 누구보다 아끼는 자식들이 있으며 사랑하는 남편이 있지만, 그들 자신의 독립적인 삶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겐 그들 각자의 인생이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었다.

여자친구에게 이런 나의 새로운 오피스 메이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중,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꺼냈다. 여자친구는 한심하다는 듯이 “당연하지. 집보다 거기가 훨씬 더 재미있는데 왜 일찍 들어가려고 하겠어” 라고 대답해 주었다. 생각해보니 그들에겐 직장이 무척 재미있고 활기넘치는 곳이었다. 재미없고 따분한 날에는 어디에서라도 유머러스한 것을 찾아 내려고 애썼고, 바쁜 날에는 바쁜 날 대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활기차게 보냈다.

나는 파트타임이어서 일주일에 20시간만 일한다. 금요일에 나의 시간을 갖기 위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일한다. 길면 하루에 여섯시간, 짧으면 네시간 정도. 그중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다. 나머지는 논문을 수정하거나 기타 잡다한 내 일들을 한다.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느새 그 오피스로 가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하는. 그들과 나누는 대화라고는 아직 어설픈 안부를 전하거나 썰렁한 유머를 한두마디 섞는 것 뿐이지만, 조금씩 나는 그들에게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남들보다 하루 더 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오피스에 가서 그들을 만나면 가식적인 웃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반가워서 웃게 된다. 진심으로 안부를 묻게 된다. 9월에는 킴의 남편이 아파서 킴이 며칠 결근을 했고, 최근에는 조이의 남편이 수술을 받게 되어서 며칠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이후 그들이 다시 출근했을때 진심으로 그들에게 안부를 묻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아직 많이 쑥스러워서 길게 대화하지는 못하지만, 천성이 introverted 로 태어난 내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에 따르면 나는 굉장히 그들을 좋아하고 있는 셈이다. 아주 천천히, 가끔 너무 느려서 상대방이 답답해 하고 오해도 하긴 하지만, 나는 그들과 분명히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60대 미국인 여성들과 그들중 한명의 딸의 남자친구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함께 흉을 보며 수다를 떠는 장면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나도 이렇게 될줄은 몰랐다.

한재림: 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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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등을 쓰고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네번째 영화. 조선 왕조 최초로 반정을 일으켜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이 안평대군과 김종서등 반대 세력을 숙청한 계유정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팩션 무비다. 관상이라는 능력을 통해 인물의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는 주인공을 통해 수양대군의 반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계유정란의 뒷얘기를 그리고 있는데, 사실 아무런 배경도 능력도 없는 선비 하나가 관상 하나만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의 한 가운데로 들어간다는 설정 자체가 무리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고, 더 나아가 관상을 본다는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 설정하여 팩션이 가지는 장르적인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는 것 또한 영화가 가진 약점 중 하나이다. 조정석이 연기한 김팽헌만이 시대극이 걸맞는 해학을 간간이 보여주고 있을뿐, 등장인물들 또한 단편적으로 일차원적인 수준에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수양대군의 경우 상당한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인조나 선조같은 경우 반정을 일으켜 몰아낸 왕들을 사후 ‘군’으로 강등한 것에 비해 단종은 후에 복권이 되고 무속 신앙에서는 신으로까지 떠받들어 진 것을 보면 수양대군의 반정와 왕위찬탈이 왕권 강화와 신권 약화라는 순기능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반정 이후 사육신과 생육신등 유교 윤리에 입각해 세조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세력 또한 양면적인 평가를 내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수양대군을 난폭한 악역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 크게 무리가 있어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아무튼, 수양대군을 악역으로 그리기로 작정했다면 조금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려도 좋았을 터인데 그저 살육을 좋아하고 왕권만을 탐하는 포악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 역시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인 것 같다. <신세계>에서 절정을 보여준 이정재가 적절한 캐스팅이었는지도 의문이 든다. 그는 얇은 선을 가진 얼굴 속에서 흔들리는 내면을 가진 역할을 연기할 때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배우다. 김혜수가 연기한 기생 연홍이나 백윤식이 연기한 김종서 역시 마찬가지다. 연홍은 김혜수가 배우로서 가진 매력조차 살리지 못하는 느낌이고 김종서는 수양대군이라는 절대 권력에 대항하는 포스를 보여줘야 했을텐데 그러한 아우라를 풍기지 못한다.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 김내경 역시 분전은 하고 있지만 송강호로만 보일 뿐 조선시대의 격랑기를 몸으로 겪어낸 한 초로의 선비로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읽는 재미는 배우들의 연기나 영화의 서사구조에서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현 시대의 상황과 조응할 때 비로소 발생한다. 시대극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 속에 숨어 현재의 시대 상황을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시도는 <광해>  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아마도 대선 직후 <레 미제라블> 이 한국 관객들에게 선사한 “힐링 효과” 에 주목했는지도 모른다. 허탈함에 시달리는 관객들에게 이상적인 왕의 모습을 제시한 <광해> 나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관상>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설정 역시 현 시대를 반영해서 현실을 환기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가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법은 <광해> 의 광대처럼 해학과 풍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뜻일까. 현 시대의 광대를 자처하는 영화가 풍자의 역할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가진 재미나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분명히 생각해 볼 지점이 있는 셈이다. 

Arcade Fire: Reflektor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앨범은 이들 커리어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음반이 아닐 수도 있다. 이들의 전설적인 데뷔 앨범은 충격적이었고 이어지는 2집은 이들의 세계관이 극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3집에서는 앨범 제목이 상징하듯 교외, 이웃들의 미시적인 모습에서 날카로운 삶의 단면을 추적해온 이들의 철학이 집대성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4집은 좀 생뚱맞다. 전작들과의 연결 고리가 상당히 미약해진 느낌이고, 음악적으로도 무릎을 탁 내리칠 정도로 귀에 쏙 들어오는 사운드는 아닌 것 같다. 야심차게 더블 앨범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뒤로 갈수록 약간씩 힘에 부치는 느낌까지 든다. 전작들에서 이들이 보여준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드러내는 양면적이고 다층적인 구조가 많이 단편화되었다는 인상도 받는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두고 “지금까지 나온 앨범들중 가장 별로” 라고 이야기하고 있을텐데,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다” 이다. 이들은 여전히 “일반적인” 다른 뮤지션들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서 놀고 있다. 라디오헤드나 뷰욕이 끊임없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을 가장 먼저 깨부수고 다음 레벨로 올라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아케이드 파이어는 지금까지 항상 조금 더 자신들 안으로 침잠해가는 쪽을 택했다. 깊이를 깊게 하고 넓이를 넓게 하면서 외연을 확대하기 보다는 조금 더 짙게, 조금 더 두껍게, 조금 더 풍성하게 음악을 채색해 나가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은 전혀 무거워지지 않았고, 여전히 새로웠으며,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4집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굉장하다. 전작들에 비해 처진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높은 레벨에서 만들어지는 음악들이다. 귀하게 들어야 한다.

이 앨범에 영향을 준 키워드는 크게 세가지라고 한다. 아이티 전통 음악인 라라, 1959년 만들어진 브라질 영화 <Black Orpheus>, 그리고 기독교 실존주의자였던 키에르케고르의 에세이 <Present Age>. 윈 버틀러와 레진 체샤뉴는 아이티를 방문하는 기간동안 이 전통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고, 아마도 앨범을 여는 노래 “Reflektor” 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리듬은 이 음악에서 받은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아이티의 악기들도 적극적을 받아 들여 새 앨범에서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Black Orpheus> 는 버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중 하나라는데, 이 음악의 신이 연주했다고 하는 악기의 이름이 리라인 것은 기분좋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버틀러는 이 새앨범의 테마가 “죽음과 고독 (혹은 고립)” 이라고 밝히고 있다. 오르페우스가 죽음까지 무릅써가며 구하고자 하는 사랑과 결국 비극적인 이별을 하고 혼자 돌아 나와야만 하는 플롯이 어떻게 <Present Age> 와 이어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철학 에세이에 나오는 한 구절이 힌트가 될 듯 하다.

The present age is one of understanding, of reflection, devoid of passion, an age which flies into enthusiasm for a moment only to decline back into indolence. … Action and passion is as absent in the present age as peril is absent from swimming in shallow waters.

—Kierkegaard, Søren, Two Ages: A Literary Review.

 

다만 즉 키에르케고르는 현재를 이해와 반성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열정이 없는 시대이며, 게으름과 나태함의 충만한 순간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얕은 물에서 위험을 느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에서는 아무런 열정적인 행위가 있을 수 없다고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버틀러는 키에르케고르의 이 에세이가 시대를 초월해 고독 혹은 고립에 대한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고, 오르페우스 신화를 바탕으로 앨범의 스토리라인을 구성하면서 밴드와 청자들이 살아가는 현재를 키에르케고르의 시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듯 보인다. 사실 이 밴드는 데뷔 앨범부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려 장례식 연작을 통해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당찬 신인밴드였던 것이다. 그들이 이젠 세계를 철학적인 영역으로까지 확대하려고 노력하는 듯 보인다. 물론, 조금 더 깊고 넓은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 레퍼런스를 언급했던 뮤지션들이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들 대부분이 피로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렸던 것도 기억하고 있는 바이지만, 아케이드 파이어는 특유의 생명력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던 듯 보인다. 그래서 그 무게감을 버겁게 느낀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는 거부반응도 이해가 되고, 이번 앨범이 단절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개인적으로도 이들이 다시 “교외 지역” 으로 돌아와서 가벼운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긴 한데, 이러한 시도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현 시대의 픽시스로서의 이미지를 굳혀가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Los Campesinos! : No Blues

딱히 “완전 꽂혀서” 라기 보다는, 어떤 우연찮은 계기에 의해 데뷔 시절부터 그 성장 과정을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는 뮤지션들이 있다. 물론 그 우연은 믿음직스러운 성장이라는 필연적인 이유를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정규작들을 다 들어본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라고 여겨도 무방한 우연의 연속이다. 하지만 역시, “믿음직스러운” 후속작을 내지 못했다면 그 뮤지션에 대한 관심도 곧 꺼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내 음악 라이브러리에서 사라져간 뮤지션들이 꽤 된다. 인터폴이 그랬고, 스트록스가 그랬고, 블록 파티가 그러했고, 요즘엔 Yuck 이 그렇다. 아무리 좋게 들은 음반이 있어도 그 다음 앨범이 졸작이면 더이상 큰 관심이 가지 않는다. 생각보다 입이 까다로운 편인 셈이다. 그런 내가 데뷔 앨범부터 빼놓지 않고 듣게 되는 뮤지션이 있으니 그게 바로 Los Campesinos! 다. “따..딱히 널 좋아해서 이러는 건 아냐!” 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느새 이들은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단단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밴드로 성장했다.

새 앨범 <No Blues> 는 시작부터 무척 당당하다. 데뷔 앨범에서 단순히 신나고 경쾌한 인디 록 넘버들만을 단편적으로 만들던 이들이 이제는 음악이 무엇인지, 훅이 무엇인지, 어떻게 음악을 만들고 어떻게 훅을 만들어내야 하는지 조금씩 깨우쳐 갔고, 신작에서 이들은 그러한 자신감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가사도 조금 더 직설적이게 툭툭 내뱉고 있지만 그 와중에 특유의 위트는 잃지 않고 있다. 듣는 재미가 가사쪽으로도 쏠쏠하다. 하나의 곡 안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편이다. 요즘 앨범들 답지 않게 앨범의 마지막까지 에너지 레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능력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같은 호흡, 같은 에너지로 끝까지 밀어 붙이는데 확확 몰아치는 매력이 괜히 찌질하게 질질 끄는 요새 인디 록들같지 않아서 참 매력적이다. 적당히 가벼워서 너무 긴장하지 않고 들어도 되는데 그렇다고 음악 자체가 경박하지는 않아서 듣는 내내 고개를 까딱거리게 되고 가슴이 후련해 지는 매력도 있는, 좋은 음반이다.

Blood Orange: Cupid Deluxe

음악이나 미술 작품에 지역성이 묻어 나올 때 특별한 감흥을 느낀다. 그 지역성이 구체적이면 구체적일 수록 더 좋다. 그렇게 구체화된 지역성 안에서 정체성을 확립한 작품은 그만큼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일반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시적인 아름다움의 위력은 이러한 구체성 안에서 일반적은 담론을 이야기하는 능력에 기인하고 있다. 어떤 동네에 사는 한 꼬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청자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그러한 개인적인 경험의 공유와 확장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일반적인 이야기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지역성은 그러한 미시적인 구체화 과정을 도와주는 아주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런던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란 한 흑인 청년이 있다. 거친 환경에서 커오면서 너무 많이 맞아서 병원 응급실에서 정신을 차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자정을 넘어 새벽이 가까워 오는 시간 뉴욕과 브루클린 일대에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 청년도 그들중 하나였다. 그들은 거리에서 섹스를 팔거나 마약을 하거나 골판지를 덧대어 잠자리를 만든다. 그들중 현명한 일부는 지하철을 타고 종점과 종점 사이를 반복하며 조금 더 따뜻하고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들이 주로 탑승하는 A, C, E 라인을 합쳐서 “uncle ACE” 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노선을 애용하던 – 혹은 애용하던 친구들을 쭉 지켜봐 왔던 – 청년 Dev Hynes 가 Blood Orange 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두번째 앨범에 수록된 “uncle ACE” 가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 뿐만이 아니라 앨범 전체가 뉴욕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앨범 속지는 뉴욕의 거리를 적나라하게 담아 내고 있는데, 중국부터 유태인까지, 흑인부터 백인까지 전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문화가 한데 뒤섞여 독특한 그들만의 감수성을 만들어내는 뉴욕의 뒷골목을 무심한 듯 바라보는 뮤지션의 시선이 잘 드러나는 듯 하다. 트렌스젠더부터 거리의 부랑자같은 대표적인 소수자부터 업타운의 허름한 차이나타운에 사는 중국계 미국인 소년, 거리의 행위 예술가까지 모두 이 앨범의 주인공들이고, Hynes 의 친구들이다. Blood Orange 는 이들을 단지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뉴욕의 거리에서 느끼는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뉴욕의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는 어떠한 구체적인 지명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누구나 그가 Dirty Projectors 나 Grizzly Bear 와 같은 뉴욕-브루클린 인디씬의 적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주 세련된 인디 팝 넘버들의 감미로운 멜로디라인이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 앨범에서 그 이상을 넘보고 있다. 뉴욕의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보편적인 인생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 앨범은 제이 지를 위시한 “I LOVE NY!” 을 상업화한 음악들의 대척점에 서 있다. 제이 지는 대놓고 엠파이어 스테잇 빌딩 위로 헬기를 띄운채 뉴욕을 사랑한다고 외치고 브루클린 네츠의 모자를 쓰고 무대에 오르지만, 블러드 오렌지는 그저 새벽녘 일을 마친 서브웨이 알바 친구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수고했어, 이번 주말엔 신나게 놀자,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마치 제이 지의 음악이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절찬리에 상영중인 대형 뮤지컬이라면 블러드 오렌지의 음악은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조촐하게 올려지는 헤드윅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인디” 가 현대 음악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앨범인 이유다. 그림자처럼, 거울처럼, 혹은 메아리처럼 상업화된 음악 산업이 놓치기 쉬운 지점을 찾아서 각인시켜 주고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인디 씬이 해야할 일들중 하나이고, 블러드 오렌지는 그 “인디” 의 정체성에 “팝” 이 가지는 미덕을 완벽하게 결합시켰다. 너무 너무 아름다운 팝 넘버들이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울려 퍼지는데 감성은 완전 인디스럽다. 이보다 더 완벽하게 내 취향에 부합하는 앨범을 올해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Kelela: Cut 4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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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스텝이라는 장르가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클러버들만이 즐기는 일렉트릭 뮤직의 하위 장르에서 벗어나 Burial 등에 의해 폭넓은 대중음악 팬들도 접할 수 있는 감상용 음악으로 한단계 진화한 것이 2007,8년 무렵이다. 여기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메인스트림 뮤지션들에 의해 덥스텝의 리듬이나 특유의 음산하면서도 섹시한 사운드 스케이프가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칸예 웨스트나 드레이크의 전작들에서 이러한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음악적 효과로서 덥스텝의 리듬을 부분적으로 차용한 것이었을 뿐, 본격적으로 덥스텝이 메인스트림의 한 장르로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많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제 2013년을 끝자락에서 Kelela 라는 엘에이를 기반으로 하는 여성 아티스트가 비로소 보컬이 중심이 되는 덥스텝 ‘팝’ 앨범을 드록 나타났다. 그녀는 덥스텝 위에서 보컬이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덥스텝 특유의 리듬이나 분위기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팝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넘버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귀를 잡아 끄는 맬로디 라인과 적절한 훅, 그리고 앨범을 관통하는 일관된 색깔까지. 그녀의 목소리는 소위 말하는 ‘디바’ 가 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듣기에 거북한 수준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덥스텝이 팝의 하위 장르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중간자적인 톤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덥스텝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앨범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friends in america

지난 주말에는 2박 3일동안 뉴욕과 코네티컷에 다녀 왔다. 금요일 저녁에 떠나 일요일 밤에 돌아왔으니 퍽 짧은 3일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다 함께 만나자고 의기투합한지 몇달만에 뉴욕에서 반갑게 해후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을 기점으로 볼더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모두 이곳을 떠났다. 스캇과 크리스는 졸업을 해서 각각 코네티컷에 있는 학교와 마이애미에 있는 회사로 떠났고, 스티브는 유럽으로 긴 여행을 떠났으며, 캐런은 이들보다 1년 먼저 볼더를 떠나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가 매디컬 스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닐과 마샤 부부는 오클라호마에 있는 학교에 함께 취직했고 얼마전 아이를 낳았다.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오피스를 쓰고 술집에서 만나 함께 낄낄거리고 함께 농구를 하고.. 가끔은 함께 여행도 갔으며 거의 매일 만나 수다를 떨던 친구들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 버린 뒤 나는 한동안 상당히 큰 공허함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학기부터 학과 메인 오피스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주된 대화 상대들이 동년배 친구들에서 어머니뻘의 숙녀분들로 바뀐 탓도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다른 오피스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용히 일만 하다 퇴근하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왕매니저 할머니가 너무 말이 없다며 불평을 했을까. 오피스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데 나처럼 극도로 인트로버트한 성향의 사람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같은 오피스에 있는 할머니분들이 무척 친절하고 이해심이 넓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그들과의 대화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문자를 주고 받아 왔다. 서로가 그립기도 했고, 각자 새로운 환경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친근한 사람들과 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풋볼 판타지 리그를 하면서 스포츠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누군가의 페이보릿 팀이 패하기라도 한다면 낄낄거리며 놀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5년동안 우리가 나누어 왔던 감정의 폭은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그들과의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그러한 거리감이 그들과 나 사이의 감정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맨하튼의 한 펍에서 만나 반갑게 해후했고, 어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에서 한참동안 수다를 떨다가 밖으로 나와 코리아타운에서 배를 채웠다. 다들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아무도 없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야경을 구경하기도 했고, 코네티컷에 있는 스캇네 집으로 가는 기차를 잘못 타 행방불명이 될 뻔 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스캇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한 예수회 대학교를 둘러 보기도 했고 전형적인 미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을 돌아 다니며 산책을 하기도 했다. 음식을 함께 먹고, 스포츠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걱정거리들을 털어 놓고 들어주는 그러한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친구가 무엇인지, 우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48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함께 하면서 나는 그들이 나의 친구임을 느꼈다. 무언가 거창한 것을 함께 해야만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던 지난 5년이 단단한 감정의 끈을 만들어 주었다. 일요일 오후에는 뉴욕의 한 스포츠펍에서 풋볼을 함께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는 동안 우리를 떠나보내는 스캇의 얼굴에 진한 섭섭함이 담겨 있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만, 다시 만나기까지 다시 서로를 그리워 하며 지낼 것이다. 인종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완전히 다른, 국적마저 다른 나와 친구가 되어준 그들에게 참 고맙다. 우리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의 장벽을 뚫고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많은 노력이 있어야 했고, 서로가 기억하지 못하는 숨은 배려 또한 끊임없이 베풀어져야만 가능한 관계였다. 내가 미국에 와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났는지, 혹은 어떤 수준에서 유지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냥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말해도 그리 틀린건 아닐 것 같다.

우리의 다음 만남은 어디일까? 스캇과는 필라델피아 잡마켓 컨퍼런스가 끝나면 뉴욕에서 만날 것이다. 크리스가 사는 마이애미로 다같이 놀러갈 수도 있다. 내년 여름 덴버에서 열리는 서부 경제학회 컨퍼런스에서 만나 덴버에서 한잔 할 수도 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전보다 더 만나기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만든 끈이 쉽게 끊어질 것 같진 않아 보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