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on Isbell: Southeastern

미국에 살면서 소위 말하는 Bible belt, 즉 Southeastern 지역에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취직을 그곳에 하지 않는한 앞으로도 그곳에 갈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흑인들이 많이 살고, 여전히 백인과 흑인 사이에 “차이” 와 “차별” 이 은연중에 존재하며, 침례교의 세력이 무척 강한, 내가 알지 못하는 미국의 모습을 담고 있는 지역이다. 미국은 참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국가가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다중인격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의 몸뚱이에 머리가 여러개 달려 있는 샴쌍둥이와도 같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지역이 불안하지만 그럭저럭 균형을 이루어가며 함께 살아가는 그런 다양성을 가진 나라다. 보스턴에 가면 미국 주류사회의 주인공인 콧대높은 백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시애틀에 가면 일본어가 공식 언어로 흘러나오는 공항을 경험할 수 있다. 볼더에는 태어나서 아시아인을 한번도 보지 못한 백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반면 뉴욕의 지하철에는 순수한 백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다. 이 모든 지역들이 미국이라는 하나의 카데고리에 묶이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그중 흔히 South 라고 불리우는, 넓게는 오클라호마에서부터 조지아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지역은 나에게 일종의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내가 이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국에서 사귄 가장 친한 친구들이 이 지역 출신이기 때문이다. 한명은 텍사스, 다른 한명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이다. 두명 모두 순수 백인들이고, 한명은 텍사스의 작은 명문 사립대학을, 다른 한명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가장 큰 주립 대학을 나왔다. 두명 모두 흑인 친구는 없으며, 스패니쉬 친구도 없다고 한다. 그들이 흑인을 싫어하는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나고 자란 것처럼 보인다. 그 곳에 그들의 조상들이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형성된 그 지역만의 역사와 문화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 역사가 짧다지만 사실 단절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보다 지속성의 측면에서는 몇배나 더 길고 깊은 일관된 역사 공동체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은 앞서 말했듯이 단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스패니쉬가 많다는 텍사스에서 온 친구는 댈러스에서조차 인종 차별이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온 친구에게 왜 넌 흑인 친구가 없니, 하고 물어 봤더니 그냥 딱히 흑인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어떻게 살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친하게 지낸 흑인 친구들은 몇명 있었지만 결국 또래 집단이 갈라지게 되더라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함께 놀지는 않게 되더란다.

South, 그 중에서도 텍사스와 오클라호마등을 제외한 Southeast 지역은 조금 더 특징적인 그들만의 정체성이 있는 듯 하다. 물론 나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살아 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방문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궁금하긴 하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Southern University 의 마칭 밴드 퍼포먼스를 찾아 보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가지런히 정렬한 상태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줄을 맞춰 걷는 것이 일반적인 대학들의 마칭 밴드라면 학교의 설립 목적 자체가 흑인을 위한 대학으로서 기능하고자 했던 Southern University 나 Florida A&M University 의 마칭밴드들은 아프리카에서 막 건너온 듯한 동물적인 춤사위로 처음부터 끝까지를 채워 버린다. 이건 유럽에서 건너 온 마칭 밴드의 전통이 아닌 것이다. 흑인 노예 문화의 흔적이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는 그곳에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열여섯에 결혼을 해서 스물 다섯쯤에는 자식이 다섯쯤 되는 미혼모가 빠른 속도로 쇠락해 가는 그 지역에서 살아 가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독실한 침례교 신자들, 보수적인 정치 성향, 미래가 없는 경제. 그런 거시적인 모습들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그 지역의 모습이 궁금하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사는 백인들의 모습도 궁금해진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Drive by Trucker 의 멤버 Jason Isbell 은 그의 솔로 앨범 <Southeastern> 에서 알라바마의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백인이 자신의 고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 심심하고 보잘 것 없어서 성인이 되면 여행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 동네에서 그는 수업 시간에 본 소녀가 아버지에게 “그 짓”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성장했다. 테네시의 Bristol 이라는 작은 도시의 Super 8 (값싼 브랜드 모텔) 에서 하룻밤 묶은 경험을 노래한 “Super 8” 에서 그는 차라리 “그 도시의 감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더 좋았을” 정도로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Isbell 은 자신의 고향이 그렇게 어두침침한 곳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한다. 그의 노래에 따르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같은 발전한 대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할 정겨운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 바로 South다. “허름한 집의 한켠에 있던 샤워부스에서 그녀가 흥얼 거리던 노래” 에 가사를 입혀 만든 “Songs that She Sang in the Shower” 나 “바쁘게 살기 위해서만 노력하지 말고 1년쯤 그냥 푹 쉬다 보면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고 조용히 충고하는 “Relatively Easy” 에서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여유로움이 한껏 느껴진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했든 허구에 의해 만들어낸 픽션이든 그가 이 음반에서 읊조리고 있는 이야기들은 무척 정겹다. 정겨울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얼개가 잘 짜여져 있어서 귀를 계속 기울이게 만든다. 각각의 곡에서 이야기 하나를 완결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반 전체가 하나의 동일한 테마 안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50분이 채 되지 않는 음반을 다 듣고 나면 잘 쓰인 단편집 하나를 읽은 기분이다. 그리고 그 단편집은 Junot Diaz 의 그것들처럼 하나의 주인공이 동일한 장소에서 겪는 성장담의 모습을 띠고 있을 것이다.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아마 올해 나온 음악들 중 가장 서정적이고 가장 격정적이며 가장 완벽한 훅을 가지고 있는 록음악 넘버들로 채워져 있다. 슬라이드 기타가 고즈넉한 시골의 한적한 공기가 전해주는 분위기를 담고 있다면 남부 지역 출신 록밴드들만이 가지고 있을 법한 단단하고 힘찬 루츠록 사운드는 그의 지역적인 정체성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블루스와 포크, 컨트리와 록음악이 적절하게 조화된 사운드는 귀에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계속 이 음반만 반복해서 듣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같은 토종 한국인에게 미국 남부 지역은 늘 멀게만 느껴지기 쉬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상상하고, 좋아하는 미국의 모습은 뉴욕 맨하튼의 소호 거리 어디쯤이던가 샌프란시스코의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언덕에 기우둥하게 자리잡은 the Haight 어디쯤이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픽업 트럭에 대충 걸터 앉아 컨트리 음악을 흥얼거리는 콧수염 아저씨의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상상하는 미국 흑인의 모습도 적당히 힙하게 요요 거리는 뉴욕의 흑인들이지 정말 진짜 흑인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남부의 흑인들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작년 네브라스카를 여행하면서 느낀게 있다. 어쩌면 아시아인인 나를 보고 경계의 눈초리를 치우지 못하는 레드넥들이 득시글거렸던 그곳이 진짜 미국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Southeastern> 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듣다보면 그곳에는 왠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진짜 미국의 모습이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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