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하나.

서른을 넘고 부터 사는 것이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어리다’ 라는 유예기간에서 완전히 해방됨으로써 모든 것이 내 책임 소관하에 있게 되었고, 이것이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준 것 같다. 단순히 나이가 이정도 되었기 때문에 이정도 위치와 이정도 능력이 짠, 하고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그 시간을 그나마 온전하게 잘 살아낸 덕분에 어느 순간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때에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사람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일도, 혹은 다른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나니 느긋해지는 듯한 마음속 쿠션이 생겨 더이상 조급하게 스스로를 쪼아버리지 않는다. 이제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하면 그것은 ‘어리기’ 때문이 아니라 ‘어리석거나’ ‘미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이상 나이가 신분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나이 자체를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섰다. 그것이 오히려 더 홀가분하고 더 흥미진진하다. 못하는 것은 가볍게 포기해 버리면 그만이고,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겸손함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을 가르치면 그만인 삶이다. 서른이 되면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고 공자님이 그러셨는데 나는 아직 경제적으로는 제 한몸 겨우 가눌 정도로 가까스로 일어났지만 한 인생을 즐겁고 흥미롭게 살아갈 용기와 지혜 정도는 가지게 된 듯 하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용기와 지혜를 갈구했다. 그것만 있으면 세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두개는 결코 쉽게 오지 않더라. 아주 천천히 쌓이는 강 하류의 모래같았지만 한번 쌓인 그것들은 쉽게 날아가지도 않았다. 차라리 그 편이 더 좋다.

30년이 넘는 시간이 내 안에 쌓인 만큼 이제는 나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것도 참 많아졌다. 나이 먹고 연애하기 힘들다는 말은 아마 그런 뜻일 것이다. 이미 자신 안에는 많은 것이 쌓여 있고 그 무게를 감당해 내기 위해서는 쉽게 움직이거나 버리지 못한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니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렇게 서로에게 맞춰 나가는 것을 쉽게 포기하는 나이가 서른 즈음이 되는 것 같다. 귀찮은거다. 그래서 애초에 잘 맞는 상대가 아니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 아니면 적당히 잴거 재고 포기할 거 포기하면서 사측을 상대하는 현대차 노조처럼 얻을 것만 얻어서 결혼이라는 형식을 택하던가.

내 안에 쌓인 시간의 무게가 상당하다. 이제 나에 대해 설명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여러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구성지게 뽑아내려면 몇개월의 연애로는 택도 없다. 재미있었던 일도 재미없게 포장해버리는 사람은 아니어서 별 시덥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몇십분 수다를 떠는 일도 왕왕 생겨버린다. 그렇게 나에 대해 하나씩 내려 놓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 짓 두번 다시는 못하겠다. 언제 처음부터 다시 나에 대해 소개하고 설명하고 그러나. 국민학교 6학년때 사대천왕에 뽑힌 일부터 중학교때 여드름이 어떻게 나기 시작했는지, 대학교때 왜 학교 알바트로스 탑에 빠져야만 했는지 등등을 다시 어떻게 설명하지? 불가능할 것 같다. 불가능할 정도로 내가 귀찮아 할 것 같다. 이제 나는 왠만큼 가볍게 사람을 만날 수 없는 나이대에 들어선 것 같다. 100번 소개팅하고 50번 선을 본다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다. 난 같은 방식으로 나를 두번만 소개해도 벌써 질려버린다.

몇년 전부터 대충 짐작하기는 했지만 그때에는 최소한의 판타지라도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내가 꿈꿔왔던 수많은 판타지보다 지금 겪고 있는 단 하나의 현실이 훨씬 달콤하고 꿈만 같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아이러니다. 지금 나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는 대화 상대는 아직 더 많은 에피소드들을 들어야 할 것이다. 아마 앞으로 몇년, 몇십년 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며 그때마다 웃음으로 화답해주어야 할 지도 모른다. (이건 아버지, 할아버지, 큰아버지 모두 가지고 계셨던 유전적 형질같다) 그래도 내가 좋다고 하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루 종일 가장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하루에 단 몇십분 신나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은 참 행운이고, 그 행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나의 무게를 조금씩, 그러나 꾸준하게 덜어주고 있음은 참 감사한 일이다.

서른은 그리 기분 나쁜 나이가 아니다. 서른 하나는 오히려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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