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 더 테러 라이브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롭게 보았다. 장르의 다양화 측면에서 현재 한국 영화계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고 그 존재 가치 또한 무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가 허접하다, 말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 등등의 비판을 받는 것 같은데 어짜피 영화는 현실을 조금 더 현실답게 재현하는 과정이 아니다. 현실을 환기시킬 정도의 장치만을 가지고 있으면 메시지 전달이라는 주된 기능이 크게 잠식되지 않는다. 방송국이나 테러, 국회 의사당등이 등장하기 때문에 조금 더 현실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있었나 보다. 내가 이 영화를 좋게 본 이유는 엉성한 논리적 연결 지점을 과감하게 무시해 버리는 굵직한 메시지 전달 과정에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메시지를 흔들림 없이 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소비하고 있다. 어쩌면 하정우가 연기하는 윤영화 조차 거대한 맥거핀처럼 느껴질 정도로 과감하게 버려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정우가 영화의 거의 대부분을 이끌어 가는 영화지만 정작 윤영화라는 캐릭터는 영화의 주제를 장식하기 위한 데코레이션처럼 쓰일 뿐이고, 윤영화의 캐릭터는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는 매개체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즉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대통령과 그가 요구받는 ‘사과’ 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역시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인 쓰러지는 건물이 국회의사당을 덮칠 수 없다는 지적 역시 감독이 향하고자 했던 단 하나의 목표이자 주제의식을 마무리짓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영화적 허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나 역시 영화가 굉장히 투박하고 허술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약점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감독의 시선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시선이 영화적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솔직하고 굵직한 맛이 느껴진다는 의미다. 감독의 시선 자체가 철저한 계급 의식에 기반하고 있고 결코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계급 전복의 판타지를 영화 안에서 대단히 영화적인 방식으로 완성했기 때문에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의 상업 영화 장르의 다양화 및 시나리오 작법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은 덤이다.

John Murry: The Graceless Age

1979 년생 미시시피 출신 아티스트 John Murry 의 솔로 데뷔 앨범. <The Graceless Age> 는 마약 중독으로 인해 피폐한 살았던 자신의 생애를 그대로 대변하는 단어다. 때문에 이 앨범은 마약 중독으로 자신이 어떻게 망가졌고 세상의 끝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기록한 수기이기도 하다. 폐인처럼 살았던 악몽같던 시간들이 다시 떠올리기 싫었을텐데 당시의 심정이라던가 고통의 정도를 담담하게 기록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그는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내놓은 데뷔 앨범은 Uncot 이나 Mojo 같은 매체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아직 그가 음악을 만들 당시에는 아마 이런 결과를 기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망가진 몸과 정신을 부여잡고 불투명한 미래를 내다보며 힘겹게 만들어간 한곡 한곡에서 느껴지는 것은 진실되고 뼈아픈 자기 고백과 반성이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그는 점점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순히 메시지의 진실성만이 이 음반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는 음악적으로도 꽤나 실험적이고 흥미로운 시도들을 많이 한다. 베이스 기타 두대를 한곡에 사용해서 베이스음을 극도로 끌어 올린다던가 일부터 튜닝이 되지 않은 피아노를 사용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가사를 제외하더라도 그만의 음악적 스타일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음악은 대단히 서정적이다.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정돈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Murry 의 경우에는 가스펠이 주는 서정성과 넓은 공간감을 챔버팝과 잘 연결시키면서 독창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되는 느낌이 강하다.

앨범 속지에서 “this cruel world” 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그는 아직 세상과 싸우고 있다. 완전히 낫지 않은 그는 누군가에게 기대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정도로 아직 약한 존재다. “너무 많아서 차마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사람들” 이 그의 옆에 있는한 그는 아마 다음 음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앨범의 헌정 대상인 “Lori” 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녀가 큰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Jason Isbell: Southeastern

미국에 살면서 소위 말하는 Bible belt, 즉 Southeastern 지역에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취직을 그곳에 하지 않는한 앞으로도 그곳에 갈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흑인들이 많이 살고, 여전히 백인과 흑인 사이에 “차이” 와 “차별” 이 은연중에 존재하며, 침례교의 세력이 무척 강한, 내가 알지 못하는 미국의 모습을 담고 있는 지역이다. 미국은 참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국가가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다중인격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의 몸뚱이에 머리가 여러개 달려 있는 샴쌍둥이와도 같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지역이 불안하지만 그럭저럭 균형을 이루어가며 함께 살아가는 그런 다양성을 가진 나라다. 보스턴에 가면 미국 주류사회의 주인공인 콧대높은 백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시애틀에 가면 일본어가 공식 언어로 흘러나오는 공항을 경험할 수 있다. 볼더에는 태어나서 아시아인을 한번도 보지 못한 백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반면 뉴욕의 지하철에는 순수한 백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다. 이 모든 지역들이 미국이라는 하나의 카데고리에 묶이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그중 흔히 South 라고 불리우는, 넓게는 오클라호마에서부터 조지아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지역은 나에게 일종의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내가 이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국에서 사귄 가장 친한 친구들이 이 지역 출신이기 때문이다. 한명은 텍사스, 다른 한명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이다. 두명 모두 순수 백인들이고, 한명은 텍사스의 작은 명문 사립대학을, 다른 한명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가장 큰 주립 대학을 나왔다. 두명 모두 흑인 친구는 없으며, 스패니쉬 친구도 없다고 한다. 그들이 흑인을 싫어하는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나고 자란 것처럼 보인다. 그 곳에 그들의 조상들이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형성된 그 지역만의 역사와 문화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 역사가 짧다지만 사실 단절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보다 지속성의 측면에서는 몇배나 더 길고 깊은 일관된 역사 공동체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은 앞서 말했듯이 단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스패니쉬가 많다는 텍사스에서 온 친구는 댈러스에서조차 인종 차별이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온 친구에게 왜 넌 흑인 친구가 없니, 하고 물어 봤더니 그냥 딱히 흑인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어떻게 살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친하게 지낸 흑인 친구들은 몇명 있었지만 결국 또래 집단이 갈라지게 되더라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함께 놀지는 않게 되더란다.

South, 그 중에서도 텍사스와 오클라호마등을 제외한 Southeast 지역은 조금 더 특징적인 그들만의 정체성이 있는 듯 하다. 물론 나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살아 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방문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궁금하긴 하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Southern University 의 마칭 밴드 퍼포먼스를 찾아 보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가지런히 정렬한 상태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줄을 맞춰 걷는 것이 일반적인 대학들의 마칭 밴드라면 학교의 설립 목적 자체가 흑인을 위한 대학으로서 기능하고자 했던 Southern University 나 Florida A&M University 의 마칭밴드들은 아프리카에서 막 건너온 듯한 동물적인 춤사위로 처음부터 끝까지를 채워 버린다. 이건 유럽에서 건너 온 마칭 밴드의 전통이 아닌 것이다. 흑인 노예 문화의 흔적이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는 그곳에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열여섯에 결혼을 해서 스물 다섯쯤에는 자식이 다섯쯤 되는 미혼모가 빠른 속도로 쇠락해 가는 그 지역에서 살아 가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독실한 침례교 신자들, 보수적인 정치 성향, 미래가 없는 경제. 그런 거시적인 모습들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그 지역의 모습이 궁금하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사는 백인들의 모습도 궁금해진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Drive by Trucker 의 멤버 Jason Isbell 은 그의 솔로 앨범 <Southeastern> 에서 알라바마의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백인이 자신의 고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 심심하고 보잘 것 없어서 성인이 되면 여행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그 동네에서 그는 수업 시간에 본 소녀가 아버지에게 “그 짓”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성장했다. 테네시의 Bristol 이라는 작은 도시의 Super 8 (값싼 브랜드 모텔) 에서 하룻밤 묶은 경험을 노래한 “Super 8” 에서 그는 차라리 “그 도시의 감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더 좋았을” 정도로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Isbell 은 자신의 고향이 그렇게 어두침침한 곳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한다. 그의 노래에 따르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같은 발전한 대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할 정겨운 감정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 바로 South다. “허름한 집의 한켠에 있던 샤워부스에서 그녀가 흥얼 거리던 노래” 에 가사를 입혀 만든 “Songs that She Sang in the Shower” 나 “바쁘게 살기 위해서만 노력하지 말고 1년쯤 그냥 푹 쉬다 보면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고 조용히 충고하는 “Relatively Easy” 에서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여유로움이 한껏 느껴진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했든 허구에 의해 만들어낸 픽션이든 그가 이 음반에서 읊조리고 있는 이야기들은 무척 정겹다. 정겨울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얼개가 잘 짜여져 있어서 귀를 계속 기울이게 만든다. 각각의 곡에서 이야기 하나를 완결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반 전체가 하나의 동일한 테마 안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50분이 채 되지 않는 음반을 다 듣고 나면 잘 쓰인 단편집 하나를 읽은 기분이다. 그리고 그 단편집은 Junot Diaz 의 그것들처럼 하나의 주인공이 동일한 장소에서 겪는 성장담의 모습을 띠고 있을 것이다.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아마 올해 나온 음악들 중 가장 서정적이고 가장 격정적이며 가장 완벽한 훅을 가지고 있는 록음악 넘버들로 채워져 있다. 슬라이드 기타가 고즈넉한 시골의 한적한 공기가 전해주는 분위기를 담고 있다면 남부 지역 출신 록밴드들만이 가지고 있을 법한 단단하고 힘찬 루츠록 사운드는 그의 지역적인 정체성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블루스와 포크, 컨트리와 록음악이 적절하게 조화된 사운드는 귀에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계속 이 음반만 반복해서 듣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같은 토종 한국인에게 미국 남부 지역은 늘 멀게만 느껴지기 쉬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상상하고, 좋아하는 미국의 모습은 뉴욕 맨하튼의 소호 거리 어디쯤이던가 샌프란시스코의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언덕에 기우둥하게 자리잡은 the Haight 어디쯤이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픽업 트럭에 대충 걸터 앉아 컨트리 음악을 흥얼거리는 콧수염 아저씨의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상상하는 미국 흑인의 모습도 적당히 힙하게 요요 거리는 뉴욕의 흑인들이지 정말 진짜 흑인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남부의 흑인들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작년 네브라스카를 여행하면서 느낀게 있다. 어쩌면 아시아인인 나를 보고 경계의 눈초리를 치우지 못하는 레드넥들이 득시글거렸던 그곳이 진짜 미국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Southeastern> 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듣다보면 그곳에는 왠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진짜 미국의 모습이 있을 것만 같다.

서른 하나.

서른을 넘고 부터 사는 것이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어리다’ 라는 유예기간에서 완전히 해방됨으로써 모든 것이 내 책임 소관하에 있게 되었고, 이것이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준 것 같다. 단순히 나이가 이정도 되었기 때문에 이정도 위치와 이정도 능력이 짠, 하고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그 시간을 그나마 온전하게 잘 살아낸 덕분에 어느 순간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때에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사람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일도, 혹은 다른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나니 느긋해지는 듯한 마음속 쿠션이 생겨 더이상 조급하게 스스로를 쪼아버리지 않는다. 이제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하면 그것은 ‘어리기’ 때문이 아니라 ‘어리석거나’ ‘미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이상 나이가 신분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나이 자체를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섰다. 그것이 오히려 더 홀가분하고 더 흥미진진하다. 못하는 것은 가볍게 포기해 버리면 그만이고,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겸손함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을 가르치면 그만인 삶이다. 서른이 되면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고 공자님이 그러셨는데 나는 아직 경제적으로는 제 한몸 겨우 가눌 정도로 가까스로 일어났지만 한 인생을 즐겁고 흥미롭게 살아갈 용기와 지혜 정도는 가지게 된 듯 하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용기와 지혜를 갈구했다. 그것만 있으면 세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두개는 결코 쉽게 오지 않더라. 아주 천천히 쌓이는 강 하류의 모래같았지만 한번 쌓인 그것들은 쉽게 날아가지도 않았다. 차라리 그 편이 더 좋다.

30년이 넘는 시간이 내 안에 쌓인 만큼 이제는 나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것도 참 많아졌다. 나이 먹고 연애하기 힘들다는 말은 아마 그런 뜻일 것이다. 이미 자신 안에는 많은 것이 쌓여 있고 그 무게를 감당해 내기 위해서는 쉽게 움직이거나 버리지 못한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니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렇게 서로에게 맞춰 나가는 것을 쉽게 포기하는 나이가 서른 즈음이 되는 것 같다. 귀찮은거다. 그래서 애초에 잘 맞는 상대가 아니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 아니면 적당히 잴거 재고 포기할 거 포기하면서 사측을 상대하는 현대차 노조처럼 얻을 것만 얻어서 결혼이라는 형식을 택하던가.

내 안에 쌓인 시간의 무게가 상당하다. 이제 나에 대해 설명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여러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구성지게 뽑아내려면 몇개월의 연애로는 택도 없다. 재미있었던 일도 재미없게 포장해버리는 사람은 아니어서 별 시덥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몇십분 수다를 떠는 일도 왕왕 생겨버린다. 그렇게 나에 대해 하나씩 내려 놓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 짓 두번 다시는 못하겠다. 언제 처음부터 다시 나에 대해 소개하고 설명하고 그러나. 국민학교 6학년때 사대천왕에 뽑힌 일부터 중학교때 여드름이 어떻게 나기 시작했는지, 대학교때 왜 학교 알바트로스 탑에 빠져야만 했는지 등등을 다시 어떻게 설명하지? 불가능할 것 같다. 불가능할 정도로 내가 귀찮아 할 것 같다. 이제 나는 왠만큼 가볍게 사람을 만날 수 없는 나이대에 들어선 것 같다. 100번 소개팅하고 50번 선을 본다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다. 난 같은 방식으로 나를 두번만 소개해도 벌써 질려버린다.

몇년 전부터 대충 짐작하기는 했지만 그때에는 최소한의 판타지라도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내가 꿈꿔왔던 수많은 판타지보다 지금 겪고 있는 단 하나의 현실이 훨씬 달콤하고 꿈만 같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아이러니다. 지금 나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는 대화 상대는 아직 더 많은 에피소드들을 들어야 할 것이다. 아마 앞으로 몇년, 몇십년 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며 그때마다 웃음으로 화답해주어야 할 지도 모른다. (이건 아버지, 할아버지, 큰아버지 모두 가지고 계셨던 유전적 형질같다) 그래도 내가 좋다고 하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루 종일 가장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하루에 단 몇십분 신나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은 참 행운이고, 그 행운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나의 무게를 조금씩, 그러나 꾸준하게 덜어주고 있음은 참 감사한 일이다.

서른은 그리 기분 나쁜 나이가 아니다. 서른 하나는 오히려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