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시마 테츠야: 고백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영화는 철저히 영화적인 세계 안에서 영화적인 언어를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영화속에서 현실을 해체하는 와중에도 영화와 현실이 서로 조응해야 한다는 믿음 역시 굳게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의 비논리적인 연계를 뮤지컬과 극단적인 고속 카메라 기법, 그리고 어이없을 정도로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효과등의 형식과 결부시켜 그 자체로 인생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 그의 철학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고백> 은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때문인지 전작들에서 감독이 보여준 내러티브상의 미숙함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원작 혹은 각본의 도움을 받는 스타일리스트가 성취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닌가 싶다. (비슷한 예로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가 있다. 그는 자신이 다시 각본을 쓴 <베를린> 으로 완벽한 후퇴를 경험한 바 있다. 때문에 테츠야 감독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원작에서 독립적인 단편으로 기능한 “성직자” 부분에 해당하는 “유코의 고백” 은 근래 본 최고의 오프닝 시퀀스로 기억될만 하다. 이 역시 거의 대부분 원작의 힘이지만, 테츠야 특유의 과장된 화면 구성과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대비 효과등으로 인한 상승효과가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상 영화의 주제는 이 오프닝씬에 거의 대부분 담겨 나온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이후 전개되는 과정 또한 확실하게 매듶지어 줌으로써 크게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영화가 소설에 비해 가지는 또다른 미덕이 아닐까 싶다. 즉 감독의 인터뷰대로 소설의 뒷부분이 “변명을 하는 느낌” 이라면 영화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현대적으로 변용해 자식-부모간의 일그러진 애정 관계와 이 관계가 타인에 의해 파괴되었을 때의 고통같은 것을 잘 버무린 느낌이다. 유코가 당한 아픔과 소년B, A가 감당해야 하는 아픔이 조응하면서 고통이 되물림되는 듯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감독은 이에 그치지 않고 유코와 소년들이 만들어나가는 이 생지옥과 완전한 대척점에 있는 유일한 인물, 즉 유코의 죽은 애인의 메시지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엔딩까지 가지고 오는 끈기도 보여준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지옥도를 더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대비효과를 내기 위한 도구로써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교과서적인 메시지가 엔딩에서 한번 더 뒤틀리며  유코가 창조해낸 지옥이 끝없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섬뜩함까지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전작들에서 이미 현대 사회의 병폐를 미시적인 차원에서 발견하고 이를 영화적인 언어로 비판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남을 꾸준히 증명해 왔다. 이번 영화에서도 원작의 메시지를 심하게 변주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감독이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즉 뒤틀린 모자 관계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교육계, 인터넷 시대의 허황된 영웅 주의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현대인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좌절과 그것의 파괴적인 해소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에이즈나 청소년 처벌법같은 도구들을 빌려와 훨씬 더 본질적인 부분들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영화의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물론 감독 특유의 불필요한 장면의 쓸데없는 삽입이라던가 지나치게 방만하게 이어져서 눈과 머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특수 촬영, 특수 효과들은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그 수위가 매우 양호한 편이며, 때문에 영화의 형식적인 부분에 의해 주제 의식이 함몰당하는 위험 또한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역시 원작의 힘에 기대고 있다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점점 더 성숙해져 가고 있으며, 일본 영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특수한 재미를 잔뜩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단순히 ‘영화적’ 인 재미만을 추구한다고 해도 그 목적을 충실히 달성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반드시 오래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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