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McCarthy: The Visitor

the-visitor토마스 맥카시 감독은 현실에 대한 관찰력과 통찰력이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다. 여기에 더해 영화를 현실의 어려움을 잊기 위한 몰핀으로 결코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그 안에서 되살려 내어 삶의 지표로 사용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농밀하고 대담하게 스토리를 직조해 내는 능력이 뛰어난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일상의 소시민이 만들어내는 작은 균열은 현실에서 결코 원상복구되지 않으며 그에 대한 ‘보속’은 끊임없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담하게 그려낸 [Win Win] 을 만들기 전 맥카시 감독은 조금 더 드라이하고 어두운 이야기로 세상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택했다. 이야기는 조금 더 투박하고 메시지는 조금 더 강경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재능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The Visitor]는 피아니스트인 아내와 사별하고 난 뒤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한 경제학과 교수에 대한 이야기다. 코네티컷에 거주하는 그는 아내를 기억하기 위해 피아노를 배우지만 재능이 영 없어 보이고, 20년째 같은 과목을 가르치며 쓰지도 않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뉴욕에서 열리는 컨퍼런스를 가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컨퍼런스에 발표하는 논문도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 그냥 공동 저자로 이름만 올려 놓았기 때문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동료 교수 (아마도 학장..)에 등떠밀려 억지로 뉴욕의 아파트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던 젊은 부부를 만난다. 시리아에서 온 테렉과 세네갈 출신의 자이납은 불법 거주자일뿐만 아니라 불법이민자이기도 한 가진 것 없는 부부다. 갈 곳이 없는 그들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늙은 교수 월터는 테렉에게 젬베를 배우기 시작한다. 자이납과는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테렉과 격의없는 친구가 되어 가는 이 모든 과정이 영화의 초반 30분에 보여지는데 여기서 나는 무언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화면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테렉이 연주하는 음악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아 보인다. 월터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테렉이 구속되고 추방될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 주어지는 것으로 사실상 영화의 네러티브는 모두 주어진 셈이다. 영화의 나머지 절반은 테렉의 어머니가 뉴욕으로 온 뒤 월터와 함께 나누는 시간들, 그리고 그 안에서 보여지는 미묘하고 섬세한 공기의 떨림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관객은 테렉이 결국 추방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월터는 이미 영화 초반에 더이상 차갑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야기는 이미 끝을 정해 놓았지만, 결말로 향하는 과정까지 피상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월터와 테렉의 어머니인 무나가 나누는 감정을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내릴 이유도 없고, 이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보내는 밤에 큰 의미를 부여할 것도 없으며, 월터가 분노를 쏟아내는 장면에 대한 상투성을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월터라는 사람이 젬베를 들쳐메고 뉴욕의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영화가 선사할 수 있는 작은 기적, 혹은 마법이 성취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늘 바쁘게 무언가를 하는 척을 하면서 살았다고 무나에게 고백했고, 그 진실된 고백을 무나가 성실히 들어줌으로써 월터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월터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 성공한 중년의 백인 남성이지만 피아노를 팔고 젬베를 잡는 모습에서 상징되는 바와 같이, 혹은 뉴욕의 지저분한 지하철역 안으로 걸어 ‘내려가는’ 모습에서 보여지듯이 스스로 낮은 곳에 위치하기로 마음먹는다. 영화라서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는 테렉을 지켜주지 못했고 무나마져 떠나 보내야만 했다. 무나의 말대로 소시민인 월터가 미국의 법을 상대로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테렉과 무나의 영혼만큼은 지켜주고 싶었고, 그렇게 하는 쪽을 택했다. 이것은 대단히 큰 용기이며,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인 것이다.

제목인 [The Visitor]가 상징하는 것은 뉴욕을 방문한 월터일 수도 있고, 테렉의 말처럼 “미시건에 있어야만 했던” 무나일 수도 있고, 월터의 뉴욕 아파트를 무단 점거(?)해야만 했던 테렉과 자이납일 수도 있으며,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거친 추방 제도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라는 사회에 불안한 마음과 함께 숨죽여 살아야 하는 모든 불법 이민자들일 수도 있다. 매달 빠듯한 월급으로 저축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같은 외국인 대학원생의 신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면 월터처럼 (그리고 실제로 코네티컷에 있는 한 대학에 조교수로 취직한 나의 동기 스캇처럼) 성공한 교수의 삶을 살 수도 있고, 테렉처럼 만기가 되어 그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비자가 찍힌 여권을 들고 어디선가 하루 하루의 생계를 잇기 위해 살아갈 수도 있다. 월터에게도 감정이 많이 이입되었지만 테렉과 무나에게도 감정이 많이 이입된 이유다. 내가 현재의 여자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영화 초반 월터의 건조한 삶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집도 잘 꾸며 놓았지만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한두명이 너무 고팠던 시절을 실제로 보내기도 했다. 뉴욕으로 컨퍼런스하러 가서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길거리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다음 컨퍼런스 스케쥴을 놓쳤던 적도 있다. 비단 이 영화에 가슴을 적셨던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영화 어딘가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았을 것이다. 무나가 떠나는 공항에 공허히 걸려 있던 커다란 미국 성조기에 먹먹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도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영화의 구조는 투박하고 메시지는 노골적이지만, 영화의 한 순간 한 순간이 지나치게 아름다워 숨이 턱 막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Yi Yi]나 [The Beginners] 에서 느꼈던 공백 속에서의 충만함을 이 영화에서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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