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군대, 도박, 그리고 연애와 결혼 문제.

남자 연예인이 한번에 ‘훅’ 가는 케이스는 크게 도박과 군대, 마약, 그리고 돈과 관련된 문제로 나뉠 수 있다. 이중 탈세나 투기등 전형적인 금융 범죄를 제외한 군대 회피와 도박의 경우 그들이 공개적으로 ‘처벌’ 당하는 과정에서 실제 법이 가할 수 있는 범위가 공공연히 무시되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즉 비의 재입대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범을 상정하는 국회의원들이나 실제 연예인 출신 병사들을 관리하는 국방부등의 주체들은 대중들의 ‘분노’ 나 ‘여론’ 과 같은 대단히 형상화하기 힘든 어떤 근원적인 힘에 의해 타의적으로 움직일 때가 대부분이다. 국회의원이 머리가 나빠서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그의 등을 떠미는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집단적인 감정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신정환의 도박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가 까먹은 돈이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대중들을 기만하고 거짓말을 했고, 그 과정에서 도박이라는 “나쁜” 짓을 상습적으로 저질렀기 때문에 당연히 방송에 다시 나올 수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여자 연예인들의 경우 아이유의 ‘병문안 사진’ 논란을 떠올리면 본질적으로 거의 같은 선상에서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 즉 아이유가 어떤 반라 차림의 남자 연예인과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그녀와 상관없는 대중 모두가 각각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유와 같은 아이돌 여자 연예인을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심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이유에게 어떤 ‘배신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더이상 아이유의 삼촌팬으로서 기능하고 싶어하지 않는 어떤 심리가 남자 성인들의 마음속에 공통적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연예를 공개한, 혹은 결혼을 한 여자 연예인들이 작품속에서 더이상 미혼의 여성 캐릭터를 연기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브라운관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실제 그들의 모습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무척 강하며, 또한 그들의 꾸며진 모습을 실제 생활로 억지로 끌고 나옴으로써 자신들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착각하고 싶은 심리도 유독 강한 편이다.

왜 그럴까. 왜 한국의 대중들은 연예인들에게 ‘공인’이라는 허구의 개념을 뒤집어 씌어서 어떤 도덕적인 의무를 강제하려고 애쓰는 것일까. 첫째로 ‘교육’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들 수 있다. 이들에게 미성년자는 보호해야 하는 존재들이며 어른들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들이다. 이런 미약한 존재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대중 매체를 잠식하고 있는 연예인들의 행동거지가 미성숙한 미성년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예인들에게 ‘모범’ 을 보여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둘째, 그냥 괘씸해서 더 혼내려는 심리다. 어짜피 연예인과 일반인들과의 삶은 철저히 격리되어 있다. 평생 같은 동네에서 산다고 해도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넬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물리적인 특권을 어떤 식으로든 빼앗아서 자신들이 디디고 서 있는 구질구질한 현실로 끌어 내리고 싶은 심리가 기저에 흐르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한국 헌법에 정의되어 있지 않은 징벌적 벌금이나 선고를 일반 대중들이 대신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셋째, 여성 연예인에 특화되어 이야기하자면, 여자 연예인들은 대중들에게 판타지를 팔아 먹고 살아야만 하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결혼을 해서 ‘아줌마’가 되면 여성이 가진 성적 매력은 당연히 상실한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아줌마 캐릭터를 연기하는 중년의 여성 연기자들이 희생하는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만약 중년의 여성 캐릭터가 섹시하다면, 그 캐릭터는 반드시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우거나 가정을 파탄내는 존재로 그려질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실제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면 한국의 여성들이 가지는 사회적 지위는 아직도 너무나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열심히 자신을 꾸며서 ‘잘 팔리는’ 것을 꿈꿀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진취적이며 젊고 이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면 ‘기가 세다’ 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잘 팔리지 않는 것이다.

성현아라는 연예인이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처벌을 받았고, 그 이후 소위 말하는 ‘벗는’ 영화에 연속으로 출연하며 대단히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그녀에게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녀가 택할 수 있었던 현실적인 행동은 어떤 특정 인물 앞에서만 벗거나, 아니면 대중들 앞에서 벗는 것 뿐이었을 것이다. ‘여배우’ 라는 허울 좋은 신기루 앞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철저하게 소비되고 사라져 갔다.

대학교때 서강 헤럴드라는 영자 신문사를 아주 잠깐 했었는데 당시 수습기자 세미나에서 ‘마약을 사회가 금지하는 것이 합당한가?’를 두고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나는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마약을 하는 사람은 생산능력을 상실한 구성원이므로 사회 총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약을 금지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물론 모두에게 거부당했다. 세미나를 주도한 선배는 속으로 이미 마약을 금지하는 법안이 옳지 못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의 선택을 왜 사회가 강요하냐는 것이다. 그녀는 마약이 전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해칠 수 있는 자유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2학년다운 생각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마약을 한 연예인에 대한 처벌이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 자체도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공인’이기 때문이란다. 공인이 마약을 하면 왜 더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아마도 ‘사회 지도층’ 이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를 계도해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대중 매체에 쉽게 노출되는 연예인들이 그들이 생각하기에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면 헛기침 두어번 정도 하며 그러면 안되지, 하며 훈계를 해야 한다는 믿음 정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은 가공된 이미지를 통해 판타지를 만들고 그 판타지를 팔아 장사를 하는 장사꾼들이다. 대중들이 충분히 현명하다면, 마치 프로레슬링 게임처럼, 연예인의 이미지 생산 과정과 그것을 소비하는 자신들 사이에 어떤 ‘기믹’ 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일종의 게임인 셈이다. 그 달콤한 게임의 댓가로 시간을 소비하고 약간의 돈을 소비할 뿐이다. 만약 연예인들이 어떤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합당한 법적인 절차를 밟는지 확인해볼 정도면 된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면 그 연예인이 다시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자신이 소비할지 여부만을 판단하면 된다. 철저히 개인적인 과정인 셈이다. 다 함께 모여 누구는 재입대 해라, 누구는 방송에 다시는 나오면 안된다, 누구의 생명은 끝났다, 라고 떠드는 행위가 참 소모적으로 느껴진다. 심지어 그러한 개인적인 판단 과정 역시 상당히 유치해보인다는 문제가 있다. 아이유, 비, 신정환, 성현아 등등의 연예인들이 감내해야 하는 형벌의 기준이 대단히 감정적이고 또한 생각보다 훨씬 더 저급한 기준에서 나온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냥 단순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높은 계급에 대한 질투이던지, 사실 자신에게 속해 있지도 않은 것을 빼앗긴 듯한 착각에서 비롯된 유아적인 분노라던지, 악의적인 리플 한두개로 그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그릇된 영웅 심리라던지, 그냥 단지 타인을 괴롭히면서 느끼는 변태적인 쾌락이라던지, 뭐 이런 감정들에 기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대중 매체에 너무 깊숙히 빠져 들어가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심각한 수준의 정신병을 앓고 있거나.

연예인들에 대한 시각을 조금 더 명확히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기업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도덕적인 책무도 없다. 그건 사실 우리 누구에게나 없는 의무다. 도덕이라는 것은, 개인의 인격적인 됨됨이에 따라 스스로 지우는 짐이지 타인에 의해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그릇을 남이 판단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수동적인 자세도 없을 것이다. 법적인 의무는 법으로 규정된 카테고리 안에서만 논의되어야 한다. 법을 어긴 이들을 실제적으로 구속하고 처벌하는 것은 대다수 국민의 분노와 같은 형상화할 수 없는 에너지가 아니라 국가기관과 같은 실제적인 주체들이다. 만약 연예인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고 생각하면 그 과정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 관계 당국을 비판해야 한다. 시스템은 그런 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국위를 선양했다고 해서 월드컵에서 선전한 축구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것도 웃기고, (도대체 ‘국위’ 가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는 사람을 아직 단 한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존재 하지 않는 민족이나 국격, 공인 등의 개념을 떠벌리면서 그들에게 자신들은 잘 하지도 않는 엄격한 삶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우습다. 자기 한 몸부터 먼저 잘 챙기고 볼 일이다. 연예인은 옛날로 치면 광대다. 저잣거리 한쪽편에 판을 깔고 높은 분들을 조롱하거나 우리네 삶의 해학적인 부분을 과장해서 보여줌으로써 약간의 돈을 받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판타지다. 그 판타지 안에서 잠시 살다가 나오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그들을 현실로 끌고 나온다고 해서 우리의 비루한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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