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 religious family that we gonna make.

개신교 신자와 천주교 신자의 결혼을 통한 결합은 사실 미국에서보다는 한국에서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 진다. 미국에 와서 두 커플을 만났다. 모두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에도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며 보다 나은 해결책 – 혹은 합의점 – 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K 교수님과 L 교수님 내외분은 미국의 대학원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K 교수님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고 L 교수님은 천주교 가정에서 자라난 천주교 신자다. 결혼은 천주교식으로 했다. 신부인 L 교수님측에서 강하게 요구를 했고, K 교수님이 성당에 가서 형식적인 서원을 하는 것으로 세례 없이 혼인 성사를 할 수 있었다. 결혼 후에도 K 교수님은 교회에 나가고 L 교수님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큰 후 개인 시간을 내어 성당에 나간다. L 교수님은 K 교수님을 따라 교회에 가지만 K 교수님은 L 교수님과 함께 성당에 가지는 않는다. 이 두분은 개신교와 천주교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굳이 종교를 바꿀 이유도 개종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나를 위한 현실적으로 조언으로 미국에서는 이 두 종교간의 거리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가까우며 때문에 따로 세례를 받지 않아도 타 종교에서의 신자로 인정을 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그러니까 천주교를 예로 들면 개신교 신자가 성당에 나오려고 한다면 따로 세례를 받을 필요 없이 견진 성사를 받는 것으로 완전한 천주교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K 교수님에 따르면 한국에 개신교가 전해질 당시의 교풍은 천주교를 배격하고 천주교를 부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었고, 그것이 발전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일종의 강한 문화로 남아 있기 때문에 천주교와의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그러한 반 천주교적인 분위기를 극복하고 현재는 천주교와 거의 차이가 없는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분들은 어디까지나 나와 같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두 가족의 결합으로 받아들여 지는 결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부모님이 혼인 성사와 여자친구의 개종을 결혼의 조건으로 걸고 있는 것은 이 부부에게도 상당히 큰 어려움으로 느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의 노력이 상당히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며칠전 스캇의 송별회에서 만난 P 와 E 는 2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한 미국인 부부였다. P 는 신부가 되기 위해 예수회 학교에 들어 갔고 그곳에서 E 를 만나 신부가 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했다. E 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P 의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을 신부로 만들려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 대단히 강경한 가톨릭이었고, 때문에 E 와의 결혼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P 역시 E 와의 결혼으로 인해 평생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자신의 종교관을 처음부터 다시 짚어 보게 되었고, 그의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Eucharist, 즉 성찬의 전례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부부의 합의점은 Lutherian Church 에 함께 나가는 것이다. 이들은 부부가 각기 다른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했고, 이는 나중에 탄생할 2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P 에 따르면 루터교회는 그나마 개신교회중 천주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고 때문에 이 부부가 함께 일요일마다 갈 수 있는 일종의 중간지대와 같은 곳이었다. 물론 P는 일요일마다 성당에도 나간다. 성가대 활동도 열심히 한다. 나를 보자마자 “이제 네가 돌아 왔으니 함께 성당에 갈 수 있겠군!” 이라고 반가워 할 정도로 독실하다. E 는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보면 “depressed” 되는 느낌이 들어서 싫다고 했다. P는 그런 E에게 성당에 같이 갈 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E 가 최대한 편안해 하는 개신교의 범위 내에서 그녀와 함께 종교활동을 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2세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니까 당연히 루터교를 믿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은 P의 어머니와 E도 아주 사이좋게 잘 지낸다고 한다.

이 두 부부는 모두 슬기롭게 종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극복한 경우다. 나에게도 이들과 같은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걸음마 단계에서 개신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내가 과연 P 와 같은 통큰 양보를 하거나 K 교수님과 같은 타종교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난 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 왔다. 여자친구를 위해 종교를 바꿀 수 있는지. 그럴때마다 대답은 한결같다. 나 역시 P 처럼 성찬의 전례가 가지는 의미를 더이상 즐기지 못하게 되는 삶이 두렵고 싫다. 나는 이 부분때문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차이”를 가진다고 생각하며, 이 차이로 인해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대한 해석은 사실 부차적인 문제다. 현실적인 목적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성경에 대한 해석 아닌가. 이것은 도구적인 것이고, 현대에서 종교를 산업화시키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할 뿐이다. 천주교와 개신교가 모두 동일하게 믿고 있는 신의 “의미” 를 해석하는 형식에서의 차이가 바로 전례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그것에 대한 인정의 유무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공부해온 바에 따르면 그렇다. 물론 갈길이 아직 너무 멀기 때문에 지금 결론을 내릴 수는 없고. 아무튼, 내가 바뀔 수 없는데 상대방에게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여자친구도 나만큼 독실하게 자신의 종교를 믿어 왔고, 나만큼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해온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거대한 관계 안에서 개인의 신념이 함몰당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한국에서의 결혼이 상대방의 가족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면, 그리고 종교가 양가 집안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라면, 그것이 반드시 개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 그것도 여자쪽의 일방적인.. –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자신이 믿는 종교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지가 아니라 상대방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종교로부터 시작된 양 가정의 철학과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것” 이다. 그것이 반드시 개종을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를 설득할 것인가! 골치 아픈 문제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과거에 연애를 하면서 천주교 신자를 딱 한번 만나본 적이 있다.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사실 연애 관계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약간의 안도감이 보너스처럼 주어졌을 뿐이다. ‘혹시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집안의 반대는 크게 없겠군.’ 하는 정도의 허황된 안도감. 천주교 신자와의 연애의 끝은 지금까지 한 연애들중 가장 좋지 않았다. 가장 많이 싸웠고, 가장 심하게 상처를 받았다. 종교와 연애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셈이다. 나는 천주교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천주교 신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착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히틀러의 어머니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그 연애가 끝난 후 더이상 ‘천주교 신자와 사귀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연애는 조건을 따져 가며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연애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지금의 여자친구에게서 전에 없던 마음의 평안함을 느낀다. 물론 여자친구도 완벽하지 않고 나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감정이 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단 한번도 끝을 생각하지 않았다. 단 한번도 ‘아 이래서 헤어져야 겠구나’ 라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지속 가능한 관계라고 믿었고, 또 이 관계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걱정했던 부분들은 거짓말처럼 말끔히 해결됐다. 심지어 불가능에 가깝다는 ‘여자친구 아버지에게 구박 안받기’ 미션까지 달성했다. 이 관계 안에서는 절망보다는 희망을 본다. 종교 문제에 대한 답이 지금은 없는 상황이지만 곧 찾게 되리라는 희망도 그래서 갖게 되는 것이다. 내가 종종 친구들에게 말하고 바로 따가운 놀림을 받는 일종의 루틴이 있다. “챌린징한 상황을 즐긴다”는 말이다. 어려운 레벨의 문제일 수록 답을 맞추었을 때의 희열은 더 크다. 어려운 난이도의 게임을 클리어했을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지금 나에게 닥친 이 상황은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오지만 어쨌든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나와 여자친구가 찾게 될 답이 무엇일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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