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괘씸하고 억울했다. security check 과 입국심사를 하는 몇백평 정도의 공간의 이쪽과 저쪽 사이에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오작교와 같은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게이트 앞에 도착해서야 비행기가 한시간 반 가량 지연 출발한다는 정보를 접했고, 여자친구는 아직 공항 안에 앉아 있는 상태였지만,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비행기를 많이 타 본 사람은 결코 아니지만 최근 몇년간 그 좋아하던 공항에 가는 것도 시들해질 정도로, 혁대를 푸르고 신발을 벗는 과정이 더이상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비행기에 물린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일반적으로 연착이라 함은 약간의 짜증과 함께 내 인생을 조금 더 불행하게 만들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연착같은 경우에는 앞으로 최대 10개월동안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가난한 연인에게 한시간 가량 기대하지 않았던 시간을 추가적으로 허락해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꽤나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공항과 비행기에 대한 나의 감소하는 애정을 다시 반등시켜 줄 수도 있었던 획기적인 카드였다. 하지만 공항의 신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우리는 불과 몇백미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다시 볼 수 없음에 안타까워 하며 각자의 공간에서 문자를 주고 받았다.

비행기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깨끗했다. 일반적으로 보잉777의 이코노미석은 3-3-3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시아나의 기내석은 2-4-2 구조였다. 앞뒤 간격도 망할 놈의 유나이티드 747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넓었고, 창가쪽 좌석을 얻은 내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옆사람에게 양해를 구할 필요도 없어서 (자고 있다면 살짝 뛰어 넘어 버리거나 무릎과 앞좌석 사이로 슬림한 나의 몸과 서른한살 치고는 아직 쓸만한 운동신경을 이용해 통과해 버리면 되니까) 꽤나 마음에 들었다. 스크린은 컸지만 볼만한 영화는 없었다. 결국 <레 미레자블> 을 한번 더 보고 찔찔 짰다. 기내식은 그저 그랬지만 기내식 선택에 있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그럭저럭 먹어 넘겼다. 비행 시간은 체감상 무척 짧았다. 책을 백페이지 정도 읽고 영화 한편 보고 다운받아온 무한도전을 절반쯤 보고 졸려서 잠깐 잠들었다 일어나니 두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열시간은 언뜻 보면 무척 길게 느껴지지만, 이리 저리 쪼개다 보면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할 시간은 되지 않는다.

시애틀 공항에 내리자 마자 서둘렀다. 한국으로 떠나기전 보스턴 테러 사건의 여파로 F-1 비자 소지자에 대한 심사가 엄격해 졌다는 경고 아닌 경고를 받은 터에 비행기까지 늦게 출발했고 layover 시간은 짧게 느껴졌다. 하지만 비행기를 내려서 연결편 비행기 게이트 앞에 티켓을 들고 도착하는 데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시애틀 공항의 국제선-국내선 연결 시스템이 샌프란시스코나 LA 같은 다른 공항들에 비해 우수했던 덕도 보았고 입국 심사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난 점, (왜 나는 매년 들어올 때마다 심사관들이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는가.. 끽해야 “뭐 공부해?”, “볼더 진짜 이상한 동네야?” 정도..) 게이트 바로 앞에 체크인을 할 수 있게 해둔 알라스카 항공의 배려 등등이 결합된 결과였다. 게이트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쿨 라임 리프레셔를 시키고 공짜 와이파이를 잡아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여자친구 어머님이 싸주신 약밥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덴버에 도착하자 천둥번개가 심하게 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진짜 시작인 셈이다. 덴버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항상 버겁다. 이제 더이상 공항으로 누군가가 마중나오지도 않는다. 부탁해도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친한 친구들은 이제 더이상 볼더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20kg 이 넘는 짐이 두개를 끌면서 3kg 이 넘는 노트북과 책 두어권이 들어간 백팩을 짊어지고 비가 쏟아지는 길을 20분동안 걸어갔다. 비가 와서인지 볼더는 생각보다 습했고, 집은 멀게 느껴졌다. 한달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은 곳곳에 먼지가 쌓여 있었고 공기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나의 냄새는 완전히 지워진 상태였고, 냉장고에는 방금 전에 집에 오자마자 넣은 조금 남은 약밥 하나만이 덩그러니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집은 집이었다. 나는 이곳에 ‘돌아 왔다’ 라는 느낌이 더이상 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히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원래 볼더에 있는 이 작은 아파트가 나의 집이고 한국에 있는 부모님의 집은 내가 편한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지난 두달의 시간은 이러한 나의 생각을 다시 희미하게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의 집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의 집이 없는 셈이다. 불완전하게 살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생.

아직도 언제가 낮이고 언제가 밤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나를 둘러싼 현실의 낮과 밤은 내 몸이 기억하는 낮과 밤과 열다섯시간의 차이로 존재한다. 나는 이곳 시간으로 한 낮에 잠들어 밤 늦게 일어난다. 그것이 내 몸에는 조금 더 편한 시간일 것이고, 나는 그렇게 두달동안 살아온 내 몸을 억지로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다. 물론 바꾸어질 것이다. 몸이란 것은 참 신기해서 햇빛을 좋아한다. 해가 뜨는 시간에 일어나고 싶어하고 해가 지는 시간부터 피로함을 느낀다. 나는 곧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그녀가 잠들고 그녀가 일어나는 시간에는 나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그런 삶을 몇개월동안, 약 1년동안 더 살고 나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차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약간의 인내를 추가적으로 요구한다. 그나마 볼더는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편이다. 학교와 큰 몰을 휘휘 한바퀴 도는 마을버스가 30분에 한대씩 다닌다. 시간만 잘 맞추면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역시 아쉬운 것은 차가 가진 운반 능력이다. 다시 다음 일년을 세팅해야 하는 시점에서 무거운 짐을 옮길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하다는 사실에 혀를 끌끌 찰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기 위해 걸어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음악도 듣고 생각도 하고. 하지만 예를 들어 홀 푸드에 있는 스파클링 워터 한박스를 사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고 약속 장소와 시간을 잡아야 하며 연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인사를 해야 한다. 그럴 바에야 그냥 스파클링 워터를 포기하고 만다. 그렇게 삶은 조금 덜 고귀해진다. 자동차가 가지는 가치는 예를 들면 그런 것들이다.

그래서 자전거를 살까 생각중이다. 이미 한대가 있긴 있다. 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치다 보니 핸들러는 괴상한 모양으로 꺾여져 버렸고 기어는 녹이 슬었다. 큰맘 먹고 정식으로 좋은 자전거를 하나 산 다음 뒤에 물건을 실을 수 있는 간단한 받침대를 장착한다면 그럭저럭 자동차 대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미국에 오자마자 같은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돌부리에 걸려 미끄러지면서 피칠갑을 하기 전까지는. 그 날로부터 며칠 뒤 부모님은 자동차를 살 수 있는 돈을 송금해 주셨다.

한국에서 고장난 휴대폰을 고치기 위해 꼬박 이틀을 소비했다. 문제는 역시 배터리와 그외 중요 기관의 연결 고리였다. 처음에 갔을 때는 그냥 그 연결 부위를 다시 한번 손질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몇시간 뒤 같은 증상이 발생했다. 애플 스토어로부터 아파트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20분 정도. 그 길을 세번쯤 왕복한 뒤에야 다른 휴대폰으로의 교환을 성취해 냈다. 덕분에 맥북 에어와 프로를 실컷 만져보긴 했다. 나는 논문을 컴퓨터로 많이 읽고 주로 활자 매체에 집중하기 때문에 조금 더 (아니 많이 더) 선명한 화면을 제공하는 레티나에 꽂힐 수 밖에 없었는데, 500불에 달하는 가격 차이와 약간의 무게 차이를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애플 매장의 생태계, 혹은 문화는 한국에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을 법한 그것이다. 얼마나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인지 가늠조차 잘 되지 않는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 여자친구와 여의도 IFC 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는 애플 매장의 구조를 그대로 따라한 삼성전자의 매장이 있었다. 직원과 고객이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하는 구조에서 커다란 테이블에서 서서 캐주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구조. 직원들은 삼성전자를 상징하는 하늘색 티셔츠와 하얀색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운동화를 신었다. 영혼이 없어 보였다. 대체 애플이 ‘왜’ 그런 구조를 도입했는지에 고민이 전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매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려 했고, 직원들은 커다란 몰에 둘러싸인채 우스꽝스러운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나는 점점 애플을 사랑하게 되어가고 있다. 이제 맥북까지 사면 나는 애플에서 출시한 거의 모든 제품을 다 구입한 사람이 된다. 스티브 잡스가 죽고 애플이 그 특유의 생명력을 상실해 가는 요즘에야 비로소 애플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디자인때문이 아니다. 애플을 무작정 따라하는 2인자들에 대한 반감때문이다. 구글과 애플. 나에게는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이 두 회사에 대한 신뢰가 있다.

학교에 가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한학기 단위로 끊어지는 예년 계약들에 비해 이번 계약은 9개월동안 안정적으로 돈이 나온다. 9개월로 분할되기 때문에 가을학기에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나오는 다른 이들에 비해 적은 듯 느껴졌지만 이거라도 받으면서 살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과 합쳐서 아껴 살면 어찌 어찌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문제는 최소한 서너번은 타야 하는 비행기와 인터뷰 가서 머물 호텔 체류비같은 예상 밖의 비용들. 부모님께 한번 더 손을 빌릴 수 밖에 없다. 이제 은퇴를 코 앞에 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송구스러운 마음만 한가득이다. 언제쯤 나도 돈을 벌고 부모님(들)께 용돈을 보내 드릴 수 있을까. 한국에 있을 때 여자친구와 이런 얘기를 은근히 많이, 반복적으로 계속 했다. 내 마음속에 큰 빚으로 남아 있나보다.

장을 보고, 은행 일을 처리하고, 아파트 렌트 문제도 알아 보고, 케이블 티비 업그레이드도 알아 보면서 지난 사흘을 보냈다. 일요일에는 새벽에 일어나 여자친구와 전화를 하고, 컴퓨터를 하면서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다가 옷을 차려 입고 성당에 다녀 왔다. 간단하게 장을 봤고, 라면을 끓여 먹었고, 다시 잠들어 지금 일어났다. 나는 여전히 밤을 낮처럼, 낮을 밤처럼 살고 있다. 이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이제 곧 낮을 낮처럼 바쁘게, 밤을 밤처럼 피곤하게 보낼 날이 반복될 것이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에는 나 혼자만을 생각했다. 연애를 한다면 연애 상대는 그저 타인일뿐, 타인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타인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쓸데 없는 낭비도 하지 않게 되고, 해결해야 할 도전 과제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 들인다.

누군가의 존재로 인해 내가 성장한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요 영광스러운 일이다. 나는 전과 다른 성장 동력을 받고 있다. 관계 내에서, 혹은 관계 밖에서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그것이 성장이라고 확신한다. 많이 배우고 있다.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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