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ng forward.

5월 14일부터 7월 11일까지의 한국 방문. 유학 생활 5년을 꽉 채운 지금, 매년 여름마다 반복되는 한국행은 늘 조금씩 다른 감정을 선사한다. 처음 2년 정도는 마치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신병 마냥 힘든 미국 생활과 그리움에 사무친 한국에 대한 향수병이 겹치며 정신없이 사람들을 만났다. 매일 두세건의 약속이 이어졌고, 거의 탈진 상태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해야지만 1년을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3년차와 4년차는 조금 달랐다. 한국에 있으면 미국이 그리웠고, 미국에 있으면 한국이 그리웠다. 한국 사람들과 서울의 거리들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볼더의 평화로운 공기가 마냥 반가웠다. 그렇다고 한국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이었고, 그 사실이 주는 원천적인 편안함은 내가 또 어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름은 또 완전히 다르다.

지난 여름, 그러니까 2012년 여름 지금의 여자친구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2012년의 마지막 즈음부터 한국에 오는 날까지 15시간의 시차와 7000마일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5개월동안 매일연락을 주고 받았다. 내가 잠에서 일어날 때 쯤엔 그녀가 잠들기 직전이었고, 내가 저녁을 해 먹을 때 즈음에 그녀가 일어났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에 네다섯시간 정도. 우리 둘 모두 출퇴근에 얽메인 일반적인 직장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나마 더 많은 자유도가 허락되었다. 2013년 5월 15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으며, 하루에 몇시간씩 마주 앉거나 함께 거리를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 택시 따위를 함께 타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바라 보았다. 두달간의 만남 뒤에는 또다시 1년여를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이 만나고, 더 치열하게 만났던 것 같다.

이제 다시 짐을 싸고 있다. 짐이 몇개 늘었다. 우선 그녀가 선물해 준 책들이 눈에 띈다. 그녀가 사용하는 카메라와 똑같은 모델인 펜탁스 수동 카메라도 옆에 있다. 지난 일요일 두번째로 만나 뵙고 함께 저녁을 먹은 뒤 보라매 공원을 함께 산책하던 중  여자친구의 부모님께서 (공부할때 허리 아프지 말라고) 사주신 의자 등받이도 지금 내 의자에 달려 있고, 곧 가방에 집어 넣을 것이다. 처음 만나 뵈었을때 주신 선물인 머그컵도 책상 위에 있다. 옷장에는 그녀가 골라준 예쁜 양말 네켤레가 있다. 그녀와 함께 고른 멋진 구두는 출국날 신고 갈 것이다. (편한 신발보다는 무거운 신발을 신어야 가방 무게를 줄일 수 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항상 베푼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으면서 살아 왔다. 앞으로도 여전히 그러한 삶을 산다면 그 삶을 부끄러워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 머물면서 얼른 자립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그렇게 많이 했다. 나를 위해 돈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다. 부동산 검색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도움을 받은 분들께 어떻게 해서든지 보은을 하고 싶은 마음이 부쩍 커져서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은 생각보다 훨씬 좋은 분들이셨다. 30여년동안 각자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오던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키워낸 가족을 알아가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미 우리가 만나서 가까워 지는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이해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를 그렇게 키워낸 가정에 대한 믿음은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온전히 단단해질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은 허투루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무언가 정신적으로 결핍된 사람은 가정사에서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여자친구를 그동안 온전히,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녀의 가족을 만났을 때 그 어떠한 당혹감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내가 바라온 여자친구의 모습 그대로가 부모님들이 해주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녹아 있었다. 좋은 분들을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점 역시 우리의 관계 안에 이미 다 녹아 들어가 있다. 연애는 가벼울 수도 있지만 결혼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부모님 없이 네바다에 도착한 못 배운 사내가 아니라면 말이다. (혹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두 사람 사이의 감정과 믿음의 정도이겠지만, 그만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양쪽 집안의 무리없는 화합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자유로워 지지 않는 쪽을 택했고, 결국 한국 사회에서 벗어나지 않을 (못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한국 문화를 최대한 충실히 따를 것이다. 최소한 결혼이라는 과정에 있어서만큼은 나와 여자친구를 키워주신 분들의 생각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또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우선 경제적인 문제가 있다. 다음 일년동안 나는 논문을 마무리지어야 하고 학위를 취득해야 하며 취직을 해야 한다. 삶의 터전이 옮겨질 것이다. 볼더를 떠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나의 다음 주거지가 미국이 될지 한국이 될지 완전히 새로운 어떤 나라가 될지 지금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박사 학위를 가지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혼이라는 법적, 문화적, 사회적 절차는 그 다음에 따라올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의 결혼 준비는 몇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가 소요되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점이며, 때문에 불가피하게도 나의 미래가 확정되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결혼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종교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여자친구는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해 왔다. 양가 어른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방식의 결혼식을 선호하실 것이고, 그 ‘입장’ 의 차이는 나와 여자친구에게까지 고스란히 물려져 내려왔다. 더 나아가 한쪽 집에서 상대 배우자에게 개종을 요구할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의 결혼 과정이 포함하는 몇개월간의 준비 과정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부분은 결혼식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가톨릭 문화 안에서의 혼배미사를 할 경우 양쪽이 모두 신자여야 하고, 비신자의 경우에는 6개월의 예비자 교육을 받은뒤 세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것이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심을 내적으로 계속 하고 있다. 나는 성당에서 극도의 편안함을 느낀다. 그 편안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본질적인 이유는 형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철학을 형성한 근간이 가톨릭 교리이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는 개신교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또 언젠가 많은 부분을 이해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 이상의 급격한 변화를 단기간에 이끌어 내는 것은 상당한 불편함을 초래할 것임도 자명하다. 여자친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형식적인 부분에 함몰되어 정작 결혼의 본질을 차지하는 중요한 가치를 망각하게 될 때에 발생한다. 정말 중요한 것이 결혼식이라는 형식인가, 혹은 신부쪽에서 가져와야 하는 예물과 지참금의 규모인가, 혹은 양가의 ‘수준’ 이 비슷해야 한다는 조건의 충족 여부인가. 그 어떠한 것도 해답이 될 수 없다. 두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의외로 가볍게 취급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어떻게든 잘 살겠지, 하는 무책임한 긍정주의가 현실적인 고민들을 밀어내는 모습도 용납할 수 없다. 결혼은 철저히 현실이며, 매 순간 두 사람의 감정과 그 감정을 둘러싼 현실적인 가능성들이 주고 받는 상호작용의 연속이다. 두 집안의 결합은 의외로 형식적인 부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것이 두 사람이 만들어갈 몇십년간의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비논리적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순진하고 나이브한가.

다행히 양가 부모님들의 생각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일년동안은 쉽지 않은 나날이 계속될 것이다. 나와 여자친구는 떨어져 지내야 하고, 나는 논문과 취업을 동시에 마무리지어야 하며, 우리는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현실화시켜야 한다. 이게 가능할까? 불가능하거나 실패한다면 늦춰질 것이다. 늦춰지다가 잘 안될 수도 있다. 모든 과정이 무리없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해결되어져야 할텐데 과연 다음 일년동안 한국에 없는 내가 이 모든 것들을 조절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물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관계를 통해서 내가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제 더이상 혼자만의 지적 욕구의 충족을 위해 가난한 삶을 기꺼이 받아 들이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 그 사실이 기쁘다. 무거운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구체적인 삶의 청사진을 내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나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에게 솔직하게 보여주어야 하며, 그 계획의 달성을 위해 조금 더 가열차게 정진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과정에 있다. 느낌이 나쁘지 않다. 결혼을 통해 엄청난 성장을 이룬 누나의 얼굴이 아른거리기도 한다. 좋은 짝을 만나는 것은 학문적 성취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한 모든 사람들이 다 거쳐가는 일반적인 과정이지만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구체성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는 독특한 이 통과의례를 부디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잘 살 자신은 있다. 그동안 참 많이도 꿈꿔 왔다.

4 thoughts on “moving forward.

  1. 묵묵히 응원해주고 싶네요, 종혁씨. 앞으로 종혁씨가 나아갈 모든 길과 그 방향에 대해서요.

    그리고 무사히 잘 비행해서 잘 도착하기를 바랄게요.
    :)

    • 네 다락방님 저 잘 도착했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고, 응원해 주셔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2. 오랜만에 옵니다 ^^ 글 잘 읽었어요… 읽다보니 제 결혼할때 생각이 나서… 사실 결혼할 당시 전 무교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좀 있었던) 였고 시부모님 무교 (개신교든 카톨릭이든 암튼 기독교를 너무 싫어하시는 매우 전통유교적이신 분들), 친정 부모님은 카톨릭이셨고, 제 남편은 매우매우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죠. ㅎㅎ 청첩장을 신랑이 찍었는데, 거기 삽입된 성경문구에 한바탕 소리가 나왔었고. 뭐. 머리가 좀 아팠던 기억이 나요. 저같은 경우는 우리 둘 외에 다른 ‘잡음’은 과감히 무시했어요. 남편 의견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일련의 과정을 거처 요즘은 같이 교회다니네요 ㅎㅎㅎ 결혼은 집안끼리의 만남이라는 생각도 일리는 있지만, 어른들의 의견에 치이다보면 너무 머리가 아파요… 암튼 축하드려요 ^^ 좋은짝 만나신거 ^^

    •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요즘엔 트윗에서 더 자주 뵙느라 ㅎㅎ 개인적인 이야기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두사람의 생각과 입장이군요. 제가 너무 부모님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힘을 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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