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소송

<소송> 은 카프카 특유의 논리 정연한 문체와 부조리한 상황이 충돌을 일으키며 발생하는 묘한 긴장감으로 가득차있다. 잘나가는 젊은 은행가 K 는 영문도 모른채 체포되고 법적 절차를 밟게 된다. K 의 목적은 오로지 이 억울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그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을 어떤 절차를 통해 무죄로 입증해야 하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라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때문에 그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러 가서 그의 정부를 탐하고 화가를 매수해 정보를 빼내려 한다. 그의 행동들은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이며, 그가 내뱉는 말들은 늘 불안에 사로잡힌 듯 느껴진다. 소설은 카프카의 실제 법조인으로서의 경험을 십분 살려 그가 바라보는 법이라는 형이상학적 체계가 한 인간의 실존을 어떻게 갉아 먹을 수 있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실존하는 자아를 법이라는 권위와 대비시켜 실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하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점점 벌레로 변해가다가 결국 하찮은 종말을 맞이하고야 마는 <변신> 의 주인공처럼 K 역시 주변 상황들과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데, 소설 말미에는 과연 K 가 실존하는 것인지, 아니면 K 를 하나의 범죄자, 혹은 벌레로 만들어 가는 법이라는 테두리가 그의 실존을 결정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법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들중 하나가 법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로 감형이 되고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청소년들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일찍 풀려난다. 나는 처벌이 능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 법이라는 권위가 지나치게 온정주의로 흐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그런 한편에서는 생존을 위해 빌딩 옥상으로 올라간 노동자, 혹은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을 아예 거두어 버리는 매서운 형벌로서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 법이다. 이 법이란 것이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온정주의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을 것이나, 그 기준 자체가 어떤 권위자 혹은 특정 집단의 기준으로 인해 자의적으로 결정되어진다면 법은 다른 어떤 집단에게는 삶을 위협하는 하나의 무기로서 받아들여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K가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독자는 끝까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미완성 소설의 말미, 대성당에서 K와 신부가 나누는 대화속에 등장하는 우화에서 카프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법을 지키는 문지기는 말한다. 이 문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이제 이 문을 닫아야 겠다고. 법이 가지는 자의성과 그 혼란 속에서 완전히 다른 객체로 이해될 수 있는 실존적 자아의 허약함. 카프카가 법을 공부하고 실제 법을 집행하며 깨달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병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열린책들, 김재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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