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버스트, 실질, 명목 가치.

조금 나이브하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전세계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명목 가치와 실질 가치가 일치하지 않는 가격 왜곡 현상이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맑스는 여전히 옳다. 이러한 왜곡 현상의 기저에는 가장 밑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저평가된 노동가치가 있다.

http://bit.ly/12ex9fO

예가체프 커피 한잔이 미국이나 한국의 카페 테이블에 도착하는 동안 이 커피를 실질적으로 재배하고 수확해서 다음 유통업자에게 건네는 1차 생산자는 굶어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놓여있다.

http://bit.ly/18nuamF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제 일자리도 좋은 일자리” 라며 사회적 편견을 거두어내기 위해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니클로나 자라같은 브랜드들의 옷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것, 현대 IT 기술이 집약된 아이패드나 아이폰을 단 몇백불에 구입할 수 있는 것은 혁신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원자재 생산비 절감때문이 아니다. 원단이나 원자재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임금히 형편없이 낮기 때문이다. 생산 원가를 낮추는 일등공신은 턱없이 낮은 노동 가치 지불에 있다. <Poor Economics> 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잘 밝혀내고 있는 것처럼 제3세계 국가에서 하루 $10 를 벌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이들의 노동가치는 정말 이토록 낮은 것일까? 이들에게 하루 세끼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쥐어주지도 못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그들의 임원들에게는 몇백만달러의 보너스를 쥐어주는 것을 보면 이들의 재정상태가 썩 나빠보이는 것 같지도 않다.

대기업들은 다수의 소비자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너희들과 아무 상관없는 중국이나 방글라데시의 노동자가 굶어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너희들이 먹고 써야 하는 이 상품에 대한 가격을 두배 더 지불해야 해, 라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이기심을 극단적으로 이용해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그냥 눈 딱 감고 자신의 안녕을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달에 이, 삼만원씩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꽤 쿨해 보이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고서는 자신의 할일을 다 했다는 식의 표정을 짓곤 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쿨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교보문고에 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따위의 쓸데없는 책을 읽고는 비분강개해 하는 척을 하겠지. 책 제목이 살짝 보이게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은 덤.)

경제 활동의 원칙이 무시당하는 상황이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태양 에너지에서부터 시작되듯, 현대 사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상품들은 인간의 노동력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모든 가격 결정의 첫번째 원칙은 한 상품이 판매 완료되는 시점까지 모든 과정에 개입한 모든 노동력에 대한 올바른 가치를 측정하는 데에 있다. 이것이 왜곡되기 시작하면 명목 가치와 실질 가치가 달라지게 되고 부의 올바른 재분배가 실현되지 못하게 된다. 권력 관계 (요즘은 갑질이라고들 표현하던데..) 가 이 가격 결정 과정에서 작용한다. 갑중 갑인 다국적 기업은 치열한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원가를 어떻게든 낮추어야 한다. 손해를 보고 팔 수는 없는데 (아마존같은 경우 컨텐츠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킨들을 원가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하기도 했다)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 혁신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대부분의 최종 판매 시장은 과점 이상의 경쟁성이 있으므로 한 기업이 시장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결국 힘없는 공장 노동자들만 쥐어짜게 되는 것이다. 이들 가난한 노동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대표할 수 있는 힘있는 단체도 없고 언론의 파워도 없으며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관뒀을때 쉽게 그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도 딱히 없다.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인 그런 상황의 노동자들을 요리조리 구워 삶으며 임금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다국적 기업들의 흔한 갑질이다. (이건 한국 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은 더 적은 수입을 가져가게 되고, 다국적 기업은 결국 그토록 원하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더 많은 수입을 가져가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을 구매하는 다수의 소비자들도 치열한 가격 경쟁이 혜택을 보는 수혜자가 된다. 즉 다수의 소비자들만 그들이 소비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무시해 버리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소비자들도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이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들의 가슴에 비수를 던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이폰을 구입하는 대다수의 소비자들, 예가체프 커피를 먹는 다수의 소비자들 역시 한낱 임금 노동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받는 임금 역시 그들이 제공하는 노동 가치에 비해 현격하게 낮게 평가되고 있다. 결국 자신들도 누군가에게 피를 빨아 먹히는 것을 모른채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 먹음으로써 생산해낸 상품을 맛있게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과 일부 수퍼갑들에게 돌아가는 부의 불공평한 재분배의 최종 희생양이 자신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결국 박근혜가 이야기하는 시간제 일자리의 장점은 유연한 노동시장이 기업들에게 주는 리스크 감소에 근거하고 있다. 쉽게 말해 임금 계약이 초단기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뉴 케인지안쪽에서 말하는 임금의 경직성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고, 조금 더 완전한 노동 시장에 가까워지다 보면 기업쪽에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쉬워진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짜르기 쉬운” 노동 시장 구조가 기업들에게는 조금 더 구미가 당기는 쪽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 시간당 임금이 턱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다. 한시간에 오천원씩 벌어서는 서울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음식이나 기름값, 의류 따위의 생활 물가는 몇년 사이 엄청나게 치솟았는데 그에 반해 시간당 최저 임금은 더딘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의 주장대로 시간제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이냐, 하면 그건 전적으로 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나이브한 의견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최저 임금을 현재의 두배 이상으로 책정해야 뭔가 나댈수 있는 껀덕지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부동산도 그렇고 물가가 상승하는 모양새도 그렇고 한국의 경제 상황은 버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그 땅과 집이 가지는 가치보다 부동산 유리 벽면에 붙은 가격표는 턱없이 높은 액수를 제시하고 있다. 간장 게장 세마리에 6만원을 넘는 장바구니 물가는 사실상 한국 은행이나 정부가 물가 조절에 완전히 실패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실질적인 부동산 거래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주식 시장은 개미들의 무덤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경제 구조속에서 암덩어리처럼 점점 제 살집을 키워 나가고 있는데 만약 한국의 경제 건전성이 외부 충격을 더이상 견뎌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그때에는 일본처럼 20년짜리 장기 불황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이른바 버스트다. 청년 실업은 50% 를 넘나들게 될 것이고 대기업들은 연쇄 부도속에서 외국의 기업들에게 팔려 나갈 것이다. 환율은 치솟을 것이고 하루 두끼만 먹자는 캠페인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당장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은행 앞에 장사진을 칠 것이고 은행들은 소위 요구되는 인출 금액을 마련하지 못하는 뱅크런 상황에 놓여 붕괴될 것이다. 극우파들은 활개를 칠 것이고, 외국인 노동자들은 매일 폭력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범죄율은 치솟고 자살율은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올때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세계 경제는 이미 노동 가치를 지난 수십년동안 무시해 오며 끊임없이 가격을 교란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도 그중 하나이 톱니바퀴로 들어간지 오래이고, 때문에 지금 현재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최선을 다해 외부 충격에 버티어낼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 밖에는 없다.

5 thoughts on “버블, 버스트, 실질, 명목 가치.

  1. 글 잘 읽었습니다. 내용 중에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만,
    외부 충격에 버티어낼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든다는 것이 내수시장을 강화시키는 걸
    의미하는 건가요?

    그리고 외부 충격을 더 잘 버틸 수 있는 경제구조와 복지 확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정적인 관계로 흐르는지, 아니면 부적 관계로 흐르는지 견해를 알고 싶어요.

    •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은 환율을 포기하는 대신 내수 시장 진작을 도모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이후 20여년간의 장기 경제 침체에 돌입하게 되는데요, 일본처럼 건강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조차 미국처럼 왕성한 소비욕구가 있는 나라가 아닌 이상 내수만으로는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제가 구체적으로 쓰지 않은 ‘외부 충격에 버티어낼 수 있는 경제 구조’ 라 함은 경제학만으로는 논의되지 못하는 부분, 즉 법과 제도의 정비를 포함한 전반적인 시스템의 재정비를 뜻합니다. 조세 제도를 조금 더 투명하게 개선하고 국제 금융 시장에서 오는 충격파는 최소화시키는 대신 외국으로부터의 투자가 끊기지 않게 하는 건전한 금융 시장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양극화 해소등이 있을 수 있겠네요. 전 양극화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생각보다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표면적인 수치상으로 드러나는 부의 극단적인 재분배 문제가 아니라 재분배 과정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저는 한국이 복지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복지는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어서 세금을 적게 내는 하위 소득 계층에게 무상으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복지는 사민주의등과는 사실 큰 관계가 없는, 선진국이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할 사회 보장 시스템입니다. 시장 질서 안에서 공정한 경쟁을 치루기 전에 모두 똑같은 출발선상에 서게 하기까지의 정부의 도움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범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 저녁 먹고 근처 공원에서 산책할 수 있는 권리 등등.. 빚이 생긴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주거나 집을 살때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행위는 복지가 아니라 시장 교란 행위라고 할 수 있죠. 때문에 현재 한국이 이해하고 있는 복지정책은 건강한 경제구조 확립과는 오히려 대치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번째 질문에서 제 질문을 조금 더 구체화시켜 다시 물어보고 싶어요. 잘 아시다시피 현재 우리나라는 보편적 복지의 담론이 이전에 비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보편적 복지 확충을 통한 사회 시스템 재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한편으로 현재 우리 경제구조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의 시행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라는 주장이 한편에 자리잡고 있죠. 그리스의 구제금융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제시됩니다. jongheuk 님께서는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가요?

    • 아이고 답변이 늦어서 죄송해요.

      보편적 복지라고 하는 것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는 뜻이겠죠? 재원만 확보가 된다면 복지의 규모를 확대하는 것은 하등 나쁠 것이 없어요. 문제는 복지 정책을 펼치기 위해 거두어 들이는 세금의 수준이 경제 활동을 저해하는 수준이 되면 안된다는 전제겠죠. 또한 세부적인 복지 정책이 너무 과해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 즉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동적인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진다는 원칙이 깨지게 된다면 경제 참여자들로 하여금 반시장, 반정부적인 태도를 갖게 할 위험이 있어요. 불신이 생기는 거죠. 때문에 복지 정책을 시행할 때 시장 경제 원리를 흐트러트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최근 박근혜 정부는 채무자들의 빚을 정부가 대신 탕감해주는 정책을 시행했죠. 이건 대단히 잘못된 정책입니다. 돈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빚을 제대로 갚지 않아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나쁜 정책이예요. 시장 경제 원리를 무시하는 멍청한 정책이구요. 이보다는 채무자들이 빚을 갚아나가는 비율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이 조금 돌아가지만 더 나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생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가동한다든지 대출 조건을 조금 더 까다롭게 바꾼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 성의있게 답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덕분에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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