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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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온지 대충 일주일쯤 됐다. 가족들과 반갑게 해후했다. 배가 부른 누이와 그런 누이가 외롭지 않게 옆에서 잘 보살펴 주는 자형, 조금씩 노인이 되어 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났다. 한국 음식도 많이 먹었다. 여자 친구와 매일 만나고 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들을 겪고 있다.

예상할 수 없는 것은 오히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풍경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신경질적이 되어 가고 있고 공기는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대도시들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여전히 매우 착하고 순박하다. 순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몹시 화가 나 있는 듯 보인다. 양보는 완전히 사라졌고,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고도 사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에티켓의 문제라기 보다는, 도시 전체가 잔뜩 날이 곤두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들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잘 모르겠다.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래서 늘 생각이 많다. 며칠전 집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밤 열한시쯤 퇴근하는 아주머니 서너명이 “몇시간 뒤에 또 봐요” 하고 인사하는 소리를 엿듣게 되었다. 아마 야근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나 보다. 순간 마음이 쓰렸는데, 이내 그 무리중 한명이 “아카시아 꽃 향기가 너무 좋다” 며 활짝 웃었고, 그들은 잠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아카시아 꽃 향기를 맡으며 짧은 꽃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들이 왜 이토록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이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회복하면 좋은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참 착한 사람들이 착하게 살면 손해를 보며 고통을 받는 시대와 공간은 무언가가 잔뜩 이그러져 있음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필요 이상으로 지속되다 보면 많은 이들이 이 상황에 굴복하고 마치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희망을 상실하는 것이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상황이고, 서울은 점점 그러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는 스스로를 소개할때 ‘서울 사람’ 이라고 할 정도로 서울이라는 공간에 정체성을 투영해 오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서울이라는 곳이 점점 괴물처럼 변하가는 건지, 아니면 내가 서울의 빠른 변화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건 우리가 서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4 thoughts on “서울, 서울 사람들.

  1. 슬프네요…아카시아향기는 좋죠… 저도 멀어져가는 이 도시를 잡아야 할지 아니면 피해야 할지 늘 고민이에요. 피한다고 해서 피해질까요?

    • 피할수만 있다면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휙 달아나 버리면 좋겠죠. 그런데 이미 저에게 서울이란 곳은 그렇게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나를 낳아준 엄마 아빠처럼 저를 키워준 공간이 서울이니까요..

  2. 참 좋다. 참 내가 지겹게 자꾸 말하는 것 같은데, 종혁씨의 ‘어떤’ 글들은 다른 글들보다 ‘특히’ 더 좋은데, 이 글이 그 ‘특히’ 더 좋은 글에 속하네요. 내용과는 별개로 지겹게 자꾸 칭찬해서 미안해요.
    :)

    • 괜찮아요! 다락방님 칭찬은 항상 좋으니까요 ㅎㅎ 저도 역시 상투적이지만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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