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즈 루어만: 위대한 개츠비

gatsby-poster

영화를 보기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렸다. 그곳에서 이리 저리 둘러보던 중 요즘 한국인들이 즐겨 읽는 책이 무엇일까 궁금해져서 베스트셀러 코너로 갔다. 놀랍게도 문학쪽은 각종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위대한 개츠비> 로 도배되어 있었다. ‘아마도 확실히’ 영화의 영향이겠지 싶었다. 개봉하는 영화의 화제성에 의해 읽을 책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기호보다 그러한 ‘일부’ 독자들에 의해 휘청휘청 움직이는 얄팍한 출판 시장의 두께에 더 마음이 시렸다.

바즈 루어만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않았다. <로미오 + 줄리엣> 이나 <물랑 루즈> 정도? 남들이 보는 만큼만 봤다. 영상이 극도로 화려하고 과장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를 충실히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감독, 그리고 대중 음악을 창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 (사실 라디오헤드의 음악도 <로미오 + 줄리엣> 을 통해 알려진 바가 크지 않나). 이 <위대한 개츠비> 에서도 루어만의 이러한 특징, 혹은 장기들은 여전히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영상은 무척 화려하고, 시대적 고증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자신이 생각했던 이미지를 극단적이고 자극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듯 하다. 개츠비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파티 장면이 사실상 이 영화의 하일라잇을 장식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쓰이는 감각적인 음악이나 디테일등은 충분히 흥미를 불러 일으킬만 하다.

줄거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시각 효과를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사실 이 영화에서 서사 구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화려한 영상만으로 가득찬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을 뻔 했다. 원작 소설이 가지는 힘을 최대한 이용하며 영화적 구성에 필요한 부분만을 영리하게 추출해 내어 아주 심플한 한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반전도 없고 극적인 전개도 없다. 원작 소설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사는 원작의 서사 구조를 어떻게 비틀까가 아닌, 원작에서 글로 표현된 부분들을 루어만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형상화 시킬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듯 하고, 루어만은 관객들의 기대를 그만의 방식으로 충실하게 충족시키는 듯 보인다. 개츠비와 톰의 저택은 화려하고, 그들이 여는 파티 장면은 빈틈이 없으며, 그가 ‘창조’ 한 1920년대 뉴욕의 풍경은 무척 흥미롭다. 시각적으로만 말이다. 다른 루어만의 작품들처럼 그 안에서 어떤 시대적 함의를 찾아내려고 하면 헛수고일테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들, 화면에서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수많은 디테일들, 그리고 끊임없이 변주되어 나오는 현대 대중 음악들을 확인하는 재미만으로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만한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디카프리오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다. 그는 자신이 쌓아올린 필모그래피를 이용해 개츠비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공감을 충분히 이끌어낸다. 그러니까 꽃미남 아이돌 스타로 시작해 오랜 시간 차근차근 부와 명성을 획득한 그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개츠비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오랜 커리어를 거치며 아로 새긴 주름살과 후덕한 살 그 자체로 증명하고 있는 듯 하다. 여전히 나는 디카프리오의 연기톤에 열광하지는 않는다. 그는 연기를 무척 잘 하는 배우지만, 연기를 무척 잘 할뿐 극중 인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지는 않는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나 로버트 드 니로와 같은 매소드 배우들의 급은 절대 아니며 제니퍼 로렌스나 앤 해서웨이같은 신진급 스타들과 비교해서도 밀리는 감이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카프리오는 단순히 아이돌 스타덤에 갇혀 버릴뻔한 그의 커리어를 순전히 노력과 열정만으로 극복해낸 희귀한 케이스다. 마틴 스코세지와 같은 작가들과 어울리며 작품을 읽는 눈을 확보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등과 협연하며 연기가 무엇인지 배워나간 그는 어느새 이 시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중견 남자 배우들중 하나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마치 이상순등과 어울리는 이효리같달까. 난 이효리가 5년, 10년뒤 엄청 뛰어난 음악적 성과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엄정화가 일렉트로닉 음악의 여왕이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작품을 고르는 역량이나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연기의 질이 항상 관객의 일정 기대 수준 이상을 채워줄 수 있을 정도로 물이 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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