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jamin Lytal: A Map of Tulsa

평범한 삶을 살던 한 소년이 자유분방한 – 그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며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너무 식상한 주제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면서 성숙해 간다. 이건 진리다. 그래서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는 어떤 여자를 만나 어떤 방식으로 한 소년이 남자로 변해가는지를 얼마나 디테일하고 현실감있게 그려내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환희와 아픔을 모두 경험하며 무언가를 “깨닫는” 남자의 성장 결과로 어떤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성장하지 않으면 마치 여자를 만나고 사랑했던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실은 꼭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A Map of Tulsa> 는 평범하게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소년, Jim 이 동부에 있는 대학에서 처음 1년을 보내고 막 부모님이 사시는 툴사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동부에 비해 시간이 참 느리게 가는 심심한 동네 툴사에서 그는 Adrienne 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지역 유지인 석유 기업 가문의 딸인 그녀는 그곳에 있는 펜트하우스에 살며 매일밤 파티를 연다. 그 누구와도 사귀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지만 그 누구와도 잘 수 있는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그녀는 짐에게 관심을 보이고, 결국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짐은 그녀를 “여자친구” 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녀가 그의 여자친구인지는 작품내에서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짐이라는 남자의 눈으로 에이드리엔을 바라보는 1인칭 시점이며, 때문에 독자들은 짐의 기억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채 짧은 여름방학동안 이 둘이 보내는 시간을 다루는 이 소설의 1부를 읽어내려가야 한다. 짐은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그녀를 동경한다. 이와 동시에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지리멸렬한 삶을 사는 자신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남자의 이 미성숙한 도전은 종종 치기어린 일탈로 이어진다. 총을 한번 쏴 본다던가, 여자에게 아무런 설명없이 삐진채 도망가버리는 행동 따위 말이다. 그는 에이드리엔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려고 애쓴다. 스무살 남짓의 철없는 남자들이 겪게 되는 전형적인 통과의례를 경험하는 셈이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툴사를 부정하고, 그 곳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로 살아가는 에이드리엔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려고 애쓴다.

이 소설의 2부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뒤, 뉴욕의 한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는 짐의 – 변하지 않는 – 지리멸렬한 삶으로 시작한다. 그는 월세를 내면 남는게 거의 없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가며 근근히 버티고 있는데, 고향 툴사를 떠나 굳이 자신을 잘 받아들여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대도시 뉴욕에서 고생하는 짐의 모습은 여전히 그가 자신을 발견하고 발전시키지 못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여전히 툴사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에이드리엔과는 흐지부지 헤어졌 – 다고 짐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 – 고, 굳이 에이드리엔을 추억하며 떠올리지 않는 것도 툴사라는 곳에 얽메이기 싫어하는 짐의 노력을 드러내주는 상징일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살아가던 그에게 덜컹 도착한 이메일 한통은 이 소설의 2부가 통속적인 한 남자의 성장담으로 끝나지 않게 되리라는 느낌을 전해준다. 에이드리엔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다. 이메일을 받고 통장을 탈탈 털어 툴사로 돌아온 짐은 의식을 찾지 못하는 그녀 주변에서 5년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녀와 자기 주변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그토록 거부했던 툴사를 서서히 다시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결국 에이드리엔은 죽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 짐이라는 사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 아마 사실 관계없는 일을 본인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것일게다 – 아무튼 역설적으로 짐에게 툴사를 상징했던 그녀는 죽어 버리고, 그 과정에서 짐은 툴사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장소, 그것도 살아가는 터전이 되는 장소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편이다. 그래서 한평생 살아온 서울을 마음속에서 결코 떠나 보내지 못하는 것이고, 군대가 있었던 강원도 화천군은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서울을 제외하면 가장 오랜 기간 살아온 볼더를 두번째 고향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어제 서울로 왔는데 벌써부터 볼더가 그립다..!) 서울이나 뉴욕처럼 익명성으로 대변되는 대도시들과는 달리 툴사나 볼더는 몇년만 살다 보면 어느 카페의 몇시 타임 알바와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될 정도로 좁은 공간이다.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 젊은 남성에게 이런 공간은 좁게 느껴지고, 자신을 속박하는 우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곳을 벗어나 넓은 곳에서 조금 허세를 부려보고 싶기도 할 것이다. 짐은 그렇게 뉴욕으로 떠나 그곳에서 비루한 삶을 살아간다. 그가 소설이 끝나고 난뒤 다시 툴사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전히 뉴욕의 한 작은 잡지사에서 렌트를 내면 남는 것이 없는, 통장의 잔고는 늘 몇백 달러가 고작인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현실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5년전 여름 한때를 함께 보낸 한 여자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의 내면을 적지 않게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녀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조작하며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고정시켜야 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작중 화자의 흔들리는 내면은 그 시절을 살아낸 모든 남성들의 어리고 여린 한때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 와중에서 성장을 반드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때 조금만 더 앞선에서 출발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혹은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된다. 그것이 굳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