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신세계

우선 나는 <대부> 시리즈도 보지 않았고 <흑사회> 시리즈도 보지 않았으며 <무간도> 시리즈도 보지 않았다. <도니 브래스코> 나 <스카페이스> 같은 비슷한 설정의 마피아 영화들도 물론 보지 않았다. 그쪽 장르와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 같다. 폭력을 그냥 싫어해서 그런가. 아무튼 그래서 이 작품의 오리지널리티 이슈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만 갱스터 집단에 잡입한 언더커버 경찰이라는 설정과 그 경찰이 겪는 정체성의 문제는 이쪽 장르에서 흔히들 차용하는 장치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영화적인 쾌감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경찰 내부 조직은 지속적으로 주인공을 실망시키는 반면 자신이 오랜 기간 옆에 두고 속여 왔던 보스는 작전이 들통나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자신에게 믿음을 준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극중 이자성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은 십분 이해 가능하며, 때문에 그가 결말에서 내리는 판단 또한 실존하는 자아의 원천적인 생명력에 복종한다는 측면에서 가히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자신을 존재케 하는 두가지 다른 방식중 실재하지 않는 서류상의 자신을 지워버리고 “짜가” 라고 생각해 왔던 실존적 자아를 택함으로써 스스로의 생명을 유지해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영화가 현실을 교묘하게 뒤트는 비현실의 공간에서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는 프리즘과 같다면 이 영화는 모두가 인정하는 비현실적인 공간 안에 현실의 인간 개개인이 고민하는 실존적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즉 비루한 현실을 살아 가는 우리 개개인은 여러가지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회사에서는 넥타이와 정장에 묶여 상사의 말 한마디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며 톱니바퀴의 일부로 살아갈 뿐이며 이러한 정해진 역할에의 강요는 가정에서나 대인 관계에서나 겉모습만을 달리 할뿐 사실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고 우리 삶에 깊숙히 개입해 있다. 이 영화는 윤리학적 고민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때 과연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 수 있는 참다운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굳이 억지로 영화의 주제를 심각하게 끌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장르적 쾌감을 유려한 방식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명품 시계와 담배에 들어가 있는 메타포라던가 황정민이라는 명배우가 만들어내는 디테일에서 풍겨 나오는 잔재미들, 특히 엘리베이터씬에서 황정민이 보여주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클래식’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정재라는 배우를 재발견하게끔 하는 영화이자, 시나리오의 무난함과 비특이성을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극복하며 우직하게 내러티브를 끌고 나가는 솔직한 영화이기도 하다. 각종 클리셰와 오마주로 뒤덮여 있지만 (이걸 표절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앞에서 말했듯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은 이 영화와 함께 언급되는 다른 영화들을 보지 않은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영화만이 가지는 독특한 오리지널리티를 제공해주는 것도 배우들이며, 비한국적인 배경에 대한 실망감을 극복하게끔 해주는 것도 이 배우들이 내뱉는 구수한 한국어 대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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