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ishead: NYC Live

당시 트립합을 좋아했던 사람들 모두 그러했겠지만 나 역시 포티스헤드의 음악이 좋으면서도 무서웠다. “Cowboys” 같은 곡에서 느껴지는 베스 기븐스의 목소리는 너무나 소름끼쳐서 한밤중에 도저히 혼자 들을 자신이 없어 시디 플레이어의 스킵 버튼을 누르곤 했다. 개인적으로 2집을 먼저 접했고 이후 1집을 들었다. 그리고 몇년전에 10년만에 3집이 나왔고. <Third> 가 나왔을 때 나는 ‘벌써 10년이 됐나..?’ 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물론 오랜 시간동안 그들의 새로운 작업물을 기다려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년동안 활동을 하지 않는 동안 그들을 크게 잊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만큼 그들의 음악은 꽤나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생명력의 본질은 오리지널리티에 있다. 포티스헤드의 음악은 그들밖에 하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들 외에는 모두 클리셰가 되어버리기 쉬운, 그래서 아무도 따라하지조차 못하는 성질이 음악이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들의 2집을 듣고 있을 때는 사춘기의 외로움과 사투하던 십대 중반이었다. 그리고 3집이 나왔을 때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또다른 차원의 외로움과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여드름이 너무 싫어 사진에 찍히는 것이 무서웠고 학교에 가면 누구에게 맞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시절 포티스헤드의 지독하게 고독한 음악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다. 당시 내 삶을 지탱해 주었던 몇 안되는 음악들중 하나였다. 음악을 단순히 소비생활의 일환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음악 그 자체만으로 큰 위로를 받고 그 안에서 삶의 새로운 동력을 얻을 때가 있다. 1997년과 98년 사이의 포티스헤드가 그랬다. 그리고 2008년, 그들의 새로운 앨범을 듣게 되었을 때 생각보다 거칠고 성긴 사운드에 놀랐고 여전히 그들 나름이 고독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에 반가웠다. 나는 인생의 철없고도 화려했던 한 시절을 끝내고 다시 한번 내 안으로 막 침잠해가려던 참이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게 공부를 하던 유학 생활 초기 포티스헤드의 새로운 음악은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처럼 삶에서 큰 의미를 갖지도 못하고 그렇게 많이 즐겨 찾지도 않았지만, 늙어가는 그들을 보며 나 역시 그렇게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음에 안도하게 되었달까.

이들은 정규 앨범 세장 외에도 뉴욕에서 가진 라이브 실황을 앨범으로 발표했는데 이게 또 기가 막히게 좋다. 1집과 2집의 주요 곡들을 스트링 세션으로 한껏 풍성해진 사운드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스트링과 함께 한다고 하면 보통 스케일이 커지거나 감동적이 되기 쉬운데 (심지어 메탈리카도 그랬다!) 포티스헤드는 놀랍게도 그 거대한 현악 편곡도 철저하게 어둡고 외로운 이미지를 형상화시키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현존하는 모든 대중음악들중 가장 독창적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영상화시킬 수 있는 이들의 라이브 앨범은 아주 어두운 밤거리에서 백열 전구등 하나 정도는 켜 놓은 허름한 바로 배경을 옮긴 듯한 느낌을 준다. 아주 조금은 더 따뜻해졌지만, 여전히 기븐스의 목소리는 처연하고 쓸쓸하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