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김규태: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 참 오랜만에 방송되는 요일을 챙겨가며 본 드라마다. 여자친구의 추천으로 <야왕> 도 봤는데 내 인생에서 두개의 드라마를 동시에 챙겨본 경우는 처음이지 않나 싶다. 그만큼 드라마와 많이 친한 편은 아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는 노희경이 송혜교와 다시 만나 만드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봐야 겠다 마음 먹고 있었고, 결국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 에서 송혜교가 분한 주준영은 굉장히 lively 한 캐릭터였고, 작가의 사랑이 듬뿍 들어가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찬란하게 빛났기 때문에 과연 이 둘이 다시 만나면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낼지 몹시 궁금했다. 사실 노희경의 작품은 화려한 만연체의 대사가 일반적인 한국 드라마의 트렌드를 거부하기 때문에 그 독특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완성도 높은 캐릭터때문에 빛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카메라로 찍어내는 감독과의 호흡에서 완성되는 부분이다. 반사전제작이라는 시스템은 후반 작업에 더 많은 공을 들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송혜교로 하여금 오영이라는 캐릭터에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처럼 보인다. 나는 노희경이 이 작품에서 그녀의 최대치를 뽑아 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꽤나 오글거리는 대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대사들이 사건의 흐름과 잘 어울리지 못해 툭툭 나가 떨어질 때가 많았다. <거짓말> 이나 <그들이 사는 세상>, 혹은 <굿바이 솔로> 나 <꽃보다 아름다워> 때처럼 꽉 짜인 서사 구조와 딱딱 맞어 떨어져 가는 맛깔나는 대사들은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막말로 ‘후까시’ 가 좀 들어갔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이 가지는 기본적인 구조를 크게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조연들의 비중을 충실히 살림으로써 최소한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드라마를 살린 건 오히려 김규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급스러운 화면 구성과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대단히 좋은 선택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이 거의 모든 감정은 송혜교에게 맞추어져 있고, 드라마의 99% 동안 그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못하고 환하게 웃지도 않았던 그녀가 마지막 카페씬에서 활짝 웃으며 조인성과 눈을 맞추는 그 장면 하나로 그동안 극에 쌓여 있었던 모든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있게 보이기 위해서 김규태는 송혜교의 표정을 극단적으로 가깝게 따라갔고, 그녀 주변의 모든 화면들을 깔끔하게 구성함으로써 마지막 벚꽃 배경이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꿈과도 같이 화려했던 그 벚꽃의 배경 속에서 환하게 웃는 송혜교는 드라마 내내 굳어서 웃지 않았던 이유를 단 몇초만에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자가 되어 있었다. 조인성은 여전히 귀여웠다. 흐느끼는 연기와 술마시는 연기, 실없이 눙을 치는 연기에 특화되어 있는 배우이긴 하지만 그 기럭지와 깊은 눈동자는 카메라를 위해 태어난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혜교의 상대 배역으로 부족함이 없었으며, 원작과 리메이크작이 가지는 비현실적인 배경때문에 어쩔수 없이 어색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설득력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 같다. 김범과 정은지라는 아이돌이 메인 조연을 맡았는데 이 부분은 상당히 불만이었다. 캐릭터 자체가 일차원적이었고 16화 내내 윽박지르며 소리만 질러대는 이 두 캐릭터때문에 대단히 피곤했다. 배종옥이 연기한 왕비서와 김태우가 연기한 무철이 그나마 이 드라마에 살을 붙이는 역할을 한 것 같은데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자체가 그다지 많이 강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노희경은 이 작품에서 예의 인간적이고 다층적인 캐릭터를 다수 만들어 내는데에 실패했으며, 예외적으로 성공한 오영의 경우 송혜교의 연기력에 빚을 많이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2 thoughts on “노희경, 김규태: 그 겨울, 바람이 분다.

  1. 아, 보면서 김범과 정은지에게 맹비난을 퍼부은 1인 ;; 끝까지 둘에게 적응 못했어요 -_-

    • 정말 이질적이지 않았나요? 아무리 돈이 되기 때문에 아이돌을 써야 한다고는 하지만 굳이 조인성과 송혜교가 나오는 작품에서까지 아이돌을 끼워 팔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심한 회의감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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