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진심

한평생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을 들으며 살았다. 사회에서는 대충 이야기하고 넘어 갔지만 군대에서는 그게 가끔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감정이 표정으로 바로 바로 드러나다 보니 고참들에게 버릇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한평생 오해를 받으며 살아왔다. 너무 많은 오해들이 내 인생에 축적되어 있어서 선뜻 예를 하나 들지도 못하겠다. 그런 오해들이 일일이 대답하며 살았던 때도 있었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심하게 넘기던 때도 있었다. 이러한 오해들로 인해 억울한 감정이 드는 것이 무척 싫었다. 자존심이 상했다기 보다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 상식으로 인정받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형질이다. 논리적으로 맞고 윤리적으로 옳은 것에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싶은 태도.

내가 30년 인생을 낭비하며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정 교육도 충실히 받았고, 나름의 상식을 지키며 법없이도 살 수 없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애초에 부모님께 물려받은 성격이 괴팍하기 이를데 없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과정이 나의 20대 이후를 장악했지만 말이다. 많은 이들이 나를 일반인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차가운 표정과 말투, 직선적인 표현들, 예의를 철저하게 지키지만 결코 가까이 다가갈수 없는 거리감같은 것들. 나와 사랑을 했던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감당해 내야 했다.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침묵, 상대방의 약점 하나까지 철저히 파고들어 끝장을 내고야 마는 어투, 아주 작은 것 하나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스스로 결론지어 버리는 독단성. 이런 것들이 헤어짐을 이끌어 냈던 것 같다.

나는 진심을 다하면 언젠가는 통할 것이라는, 즉 이해받을 것이라는 믿음같은 것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과 상관없이, 꾸준히 발현되는 진심은 언젠가는 반드시, 꼭, 상대방에게 이해받고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어린아이같은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이 내 삶의 꽤 큰 부분을 지탱해 왔다. 그런데 이제 그 기대를 포기하려고 한다. 이 믿음만 버린다면, 나의 삶은 훨씬 더 윤택해지고 평안해질 것 같다. 나의 인생에서 진심을 다한 상대는 몇 없었다. 가족, 어렸을 때 친구 두어명,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곳에 헛심을 쓴것 같기도 하다. 어짜피 헤어질 사람들이었는데 뭐가 그리 절실하게 느껴졌는지. 오해를 받는다고 느낄 때, 진심이 곡해되어 전달된다고 느낄 때 이젠 그것을 풀기 위해 큰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서른이 되었고, 나와 만나는 사람도 비슷한 연배 혹은 그 이상일테니, 서로 살아온 각자의 인생에 맞는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억지로 깨뜨려가면서 까지 상대방에게 이해를 강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세계에서는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더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틀린 사람인 것도 아니고, 나와 잘 맞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거기에 대해 내가 실망할 이유도 없고, 헤어져야 할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냥.. 그런 것 뿐이다. 그냥 그런 것. 그랬구나, 하고 넘기면 되는 일이다. 이제부터는 그럴 것이다.

또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흐르는 시간 속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을 꺼내 하나 둘씩 버리고 있다. 많이 버려야 할 것 같다. 가난해져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원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나아진 나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거울을 보니 내가 무척 못생겨 보였다. 사실일 것이다. 못생긴 행동을 하면 진짜로 못생겨 진다.

5 thoughts on “오해와 진심

    • yeah i was already recommended Cain’s book, and got it. not read a full text though. i like her argument and agree with it. will read full of them soon. thanks so much!

  1. 일 년만에 이 글을 다시 읽어요. 겹치는 어떤 부분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종혁님 나름의 답이 가진 성찰과 인내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하여요. 마지막 문단의 ‘원래의 나’ 에 대한 맥락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는 요새 하나의 기점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을 지나고 있어요. 그러면서 종혁님이 둘째 문단에 쓰신 그러한 태도를, 자의식을 처음 지니게 된 시점부터 나름대로 지향해왔었는데 최근엔 약간은 여러 측면에서 버겁게 느껴져요. 어쩌면 문제는 지향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고 조율해 가는 (광의의) 매너일지도 모르겠지만 ..

    그러나 한편으로 윤리와 논리를 따지게 되는 생각은 결국 하나의 일관성을 요구하는 것이이서, 연애에 있어서는 상대에게 결단이나 판단을 (나름 여유로운 마음을 먹으려 하더라도) 계속해서 묻게 하는 듯하기도 하구요.

    대화를 하는 자리라면 어찌어찌 풀어갈 수도 있을텐데, 아직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이기도 하고, 또 좀 더 개인적인 얘기를 풀어가야만 진행될 형국이라서 난처한 느낌이 들어요. 모쪼록 마음의 벡터에 관해 어떤 방식으로든 조정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 요즘의 생각인데, 종혁님은 지난 일년간 잘 풀어가셨는지 또 어떤 것들을 느끼게 되셨는지 궁금하여요.

    • 덕분에 저도 1년만에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새로운 연애를 막 시작하던 무렵이었고 그때문에 많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서 더이상 변하지 않는 저의 어떤 부분에 대한 인정을 하게 된 것 같구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정말로 그렇게 ‘되는’ 것은 다른 문제더라구요. 제가 지향했던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갔느냐, 하고 자문한다면 그리 많이 가지 못했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는 한살 더 나이를 먹었음에도 여전히 고집이 세고 독단적인 사람일 뿐이고, “그냥 그런 것” 으로 시간을 흘려 보내기에는 지나치게 초조해 하고 안달나 있는 것 같아 보여요. 아직 정신 수양이 덜 된거죠. 만약 제가 여전히 혼자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질문을 하는 상태였다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 같지만, 그것이 더 좋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아, 음.. 그렇군요.

      저는 종혁님의 이 글을 (변하지 않는) 자신의 어떤 부분에 대한, 변함 없는 상대(들)의 태도들에 대한 인정으로 읽었어요. 여기에서 앞서의 논리와 윤리를 중시하는 태도는 어느 정도 상수로서 전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고요. 만약 이것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면, 아마도 다른 방식의 고민이 이루어졌을 테니깐요.

      그렇다고 했을 때 생각하는 것과 되는 것이 다른 문제였다는 종혁님의 말은, 아프고도 다행이라고 여겨져요.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면 여전히 더 엄격한 방식으로 고민했을 것이지만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 이미 그 사이의 기간에서 쉽지 않음을 느꼈을 것이기 떄문에) 좋은 분을 만난 것이 아프고도 다행이고,

      한편으로 저의 경우 그것이 쉽지 않으리라고 여기며 애당초 자신의 (이전까지의) ‘상수’ 자체에 대해 회의하면서 이 글을 읽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게는 반대로 다행이면서도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여기까지 오니 알콜 생각이 나는군용)

      물론 자신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과 나와 다른 타인들의 각각을 인정하는 지향은 병행 가능한 것일 듯하여요. 하지만 그렇다면 종혁님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맞는 상대를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 혹은 어떤 상대를 곁에 두느냐보다는 원래의 종혁씨를 (먼저) 찾는 것이 행복에 보다 근접하는 것이라고 여기셨는지 – 아니면 ‘먼저’ 찾는다는 것은 좋은 상대를 두기 위한 방법론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셨는지,

      또 어떻게 그런 분을 알아 보았고, 점차로 가까워지고 또 그에 따라 맞춰가게 되었고, 종혁님의 원래 성향이 변하지 않았다면 상대편 분이 같은 지향을 지니고 있거나 적어도 (인정을 넘어서) 이해해줄 정도로는 잘 맞았던 것인지 / 또다른 어떤 것이 필요했는지,

      등등, 하는 의문과 궁금들이 남게 되네요. 하지만 이것들을 다 여쭐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고, 쉬이 답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닐 듯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마도 이에 관하여 찬찬히 생각하는 것이 그 자체로 조심스러운 일일 수 있다고 여겨져서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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