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

009

인간 관계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철칙은 항상 진심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진심을 다하지 않을 관계는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다보니 주변에는 가족과, 아주 친한 친구 몇명과,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이중 문제를 일으키는건 사랑이 끝난,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아야 했지만 여리고 무딘 나의 마음과 진심을 다한 사람을 어찌 쉽게 끊을 수 있을까 하는 어리석은 미련, 그리고 내 인생을 큰 폭으로 바꾸어 준 것에 대한 고마움등이 섞여서 하지 말아야 할 연락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이 필요치 않은 관계는 새롭게 시작하는 사랑에 해를 입히기 일쑤였다. 더이상 과거의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도, 그렇다고 친구도 아닌 이 어색한 관계는 그 다음 애인에게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를 강제하는 역할을 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만큼 나에게 확신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만 할 것 같다. 어이없는 방향에서 끝난 연속된 사랑의 실패는 나로 하여금 불안과 의심이라는 질병을 계속 가지고 살게끔 만들었다. 나는 언제든지 나의 사람이 떠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늘 그것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의 이러한 불안한 상태와 어중간한 태도는 전 애인과의 이해할 수 없는 관계와 맞물려 묘한 오해의 여지를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이 이유없는 불안은 관계를 악화시키는 효소로 작용했고. 그렇게 또다른 사랑도 끝이 났다.

그러다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전 여자친구중 한명은 몇개월에 한번씩 비정기적으로 연락이 왔다. 가장 최근 만났던 여자친구는 같은 건물에서 하루종일 함께 생활해야 했기에, 나의 친구들이 그녀의 친구들이었기에 얼굴을 마주 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물론 나의 비겁한 변명이다. 애초에 확실하게 끊을 마음이 있었다면, 전 여자친구의 문자에 대꾸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그녀와의 만남을 최소화시키려고 애썼을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걱정이 되는 마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안부를 전해듣고 싶은 마음까지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정도로 나는 무르고 약해 빠진 상태였다.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할 정도로 외로웠고, 그 누군가가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닌, 나를 잘 알고 있던, 한때 손과 손을 맞잡았던 그런 사람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게 확신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완벽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부족하고 약해서 부서지기 쉬운 인간이 어떻게 확신이라는 위험하고도 경이로운 상태에 다다를 수 있는지 온몸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함께 괴로워 하고 함께 화를 내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웃으며 그것을 나에게 전해 주었다. 그냥 단순히 배운다는 과정이 아닌, 어떻게 하면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최선의 미래, 더 나은 미래 또한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단순히 생각을 더 하게 만든 것 뿐만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인격 자체를 한단계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말해야 하겠다. 내가 감히 성숙이라는 단어를 나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를 통해 나의 내면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고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면 고마움과 존경심을 함께 느낄만 하다고 믿는다.

확신은 위험하다.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그 확신이 생의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시켜준다면 굳이 피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그 확신을 주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믿음 이상의 굳건한 감정으로 내 안에 자리잡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한 확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은 쓸데없는 감정의 소비를 최소화시키는 일이다. 나는 이제 더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를 만나면서부터 그렇게 되기 시작했고, 최근 그 마음이 거의 완전한 상태에 다다랐다. 더이상 전 여자친구들이 내 삶, 혹은 내 마음속에서 존재해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더이상 외롭지도 않고, 나는 그녀로 인해 충만해질 수 있으니까. 여자친구에 대한 확신은 나에게 부끄러운 과거를 환기시켜 주었으며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해 주었다.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이런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는 일이 무척 부끄럽다.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러운 기억이기 때문이고 부끄러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것은 이 블로그가 가진 본질적인 의미와 기능때문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내 자신에게 발가벗겨진 솔직함을 가지기 위해 이 블로그를 만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그 거짓말들이 쌓여 거대한 거품을 만들어 낸다. 그 거품들이 실재하는 나를 감추게 되고 그렇게 나는 내 자신에게서 멀어져 함몰되어 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려워서 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주 부끄러운,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까지 드러내는 한이 있더라도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 나는 딱 세가지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다. 가족의 안녕, 논문의 완성, 그리고 여자친구. 그외의 것들때문에 나의 삶이 침해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책임을 다할 것이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벌을 달게 받을 것이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노력을 다해서 그것을 완수할 것이다.

아마도 이 일기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어떤 식으로 발생했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투닥거리는 삶을 사는 사람이지만, 마음속에서는 꽤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겠다.

감사

겸손해야 하고,
감사해야 한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무엇에 대해 겸손하고 무엇에 대해 감사하느냐다.

이렇게 부족한 내 자신을 인지하는 것에서 겸손이 시작되고 타인을 높이는 것으로 이것이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나 부족한 나에게 과분할 정도의 행복이 내려짐 자체에 항상 감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 나에게 주어진 사람들 하나 하나에게 감사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주어진 사람을 위하고 높이는 것이 감사를 표현하는 가장 옳은 방법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이러한 사람들이 내 곁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극진한 믿음이다.

나는 이 세가지 모두 부족했다.

이제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고, 이런 나에게 과분할 정도의 행복이 주어졌으며, 나는 이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이것을 믿지 못했으며 욕심을 부렸다. 그 결과는 기존에 주어진 것까지 박탈당하는 수모다. 치욕이다.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와 더 낮아진 자신을 인정해야만 하는 극한의 슬픔이다.

이제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고, 이런 나에게 아직도 과분할 정도의 행복은 여전히 주어져 있으며, 나는 이것에 대해 감사하고 이것 자체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할 것이다. 나의 사람을 믿음과 겸손과 섬김으로 지킬 것이다.

인사

인사를 준비중이다.

안녕, 하고.

이게 만나는 인사인지 헤어지는 인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인사를 하고 싶다.

요즘 시간이 참 천천히 간다.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정리되어 간다.
한 발자국 떨어지면 조금 더 넓은 세상이 보인다.
표준 렌즈 카메라를 사용해 사진을 찍을 경우 줌/아웃은 발로 하는 것이듯이,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거리에서 보는 일은 내가 직접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어제 A 는 내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 사상 최고로 고분고분하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이 묘하게 와닿았다.
또한 그는 “이해받고 싶다면 먼저 너의 좋은 모습부터 보여주라” 고 충고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15년째 나를 알고 지낸 그는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충고는, 자신을 낮추라는 것이었다.
대들지 말고,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따지지 말고, 그냥 자신을 조금 더 낮추면 쉽게 해결된다는 거다.

그럴 생각이다.
앞으로 그렇게 살 생각이다.
그렇게 쭉 살아 나갈 생각이다.

오해와 진심

한평생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을 들으며 살았다. 사회에서는 대충 이야기하고 넘어 갔지만 군대에서는 그게 가끔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감정이 표정으로 바로 바로 드러나다 보니 고참들에게 버릇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한평생 오해를 받으며 살아왔다. 너무 많은 오해들이 내 인생에 축적되어 있어서 선뜻 예를 하나 들지도 못하겠다. 그런 오해들이 일일이 대답하며 살았던 때도 있었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무심하게 넘기던 때도 있었다. 이러한 오해들로 인해 억울한 감정이 드는 것이 무척 싫었다. 자존심이 상했다기 보다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 상식으로 인정받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형질이다. 논리적으로 맞고 윤리적으로 옳은 것에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싶은 태도.

내가 30년 인생을 낭비하며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정 교육도 충실히 받았고, 나름의 상식을 지키며 법없이도 살 수 없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애초에 부모님께 물려받은 성격이 괴팍하기 이를데 없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과정이 나의 20대 이후를 장악했지만 말이다. 많은 이들이 나를 일반인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차가운 표정과 말투, 직선적인 표현들, 예의를 철저하게 지키지만 결코 가까이 다가갈수 없는 거리감같은 것들. 나와 사랑을 했던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감당해 내야 했다.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침묵, 상대방의 약점 하나까지 철저히 파고들어 끝장을 내고야 마는 어투, 아주 작은 것 하나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스스로 결론지어 버리는 독단성. 이런 것들이 헤어짐을 이끌어 냈던 것 같다.

나는 진심을 다하면 언젠가는 통할 것이라는, 즉 이해받을 것이라는 믿음같은 것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과 상관없이, 꾸준히 발현되는 진심은 언젠가는 반드시, 꼭, 상대방에게 이해받고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어린아이같은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이 내 삶의 꽤 큰 부분을 지탱해 왔다. 그런데 이제 그 기대를 포기하려고 한다. 이 믿음만 버린다면, 나의 삶은 훨씬 더 윤택해지고 평안해질 것 같다. 나의 인생에서 진심을 다한 상대는 몇 없었다. 가족, 어렸을 때 친구 두어명,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곳에 헛심을 쓴것 같기도 하다. 어짜피 헤어질 사람들이었는데 뭐가 그리 절실하게 느껴졌는지. 오해를 받는다고 느낄 때, 진심이 곡해되어 전달된다고 느낄 때 이젠 그것을 풀기 위해 큰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서른이 되었고, 나와 만나는 사람도 비슷한 연배 혹은 그 이상일테니, 서로 살아온 각자의 인생에 맞는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억지로 깨뜨려가면서 까지 상대방에게 이해를 강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세계에서는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더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틀린 사람인 것도 아니고, 나와 잘 맞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거기에 대해 내가 실망할 이유도 없고, 헤어져야 할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냥.. 그런 것 뿐이다. 그냥 그런 것. 그랬구나, 하고 넘기면 되는 일이다. 이제부터는 그럴 것이다.

또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흐르는 시간 속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을 꺼내 하나 둘씩 버리고 있다. 많이 버려야 할 것 같다. 가난해져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원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나아진 나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거울을 보니 내가 무척 못생겨 보였다. 사실일 것이다. 못생긴 행동을 하면 진짜로 못생겨 진다.

to where, from where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걸까.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항상 이 곡을 듣는다. 아니 들었다. 최근 몇주동안 이 노래를 듣지 않았다. 그래서 더 어지러웠나 싶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금부터는 완전히, 오롯이, 나와 나의 싸움이다. 내 마음의 가늘고 여린 떨림의 지속과, 날숨과 들숨의 미묘한 차이까지 감지해 내는 신경질적인 예민함이 무척 싫어지는 요즘이다. 조금 더 무던해 지고 단단해 진 마음 위에 순간 순간의 상황에 대한 명민한 판단과 진심을 다하지만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 우선시되지 않고 해결을 위한 가장 선한 과정을 먼저 생각하는 현명한 행동, 거기에 더해 너그러움과 속깊음까지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무척 힘든 일이다.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삶을 살았는지, 내가 얼마나 낮고 작고 가난한 사람인지 절실히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ny trip 041

Eels: With Strings, Live at Town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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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ls 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한 뮤지션이다. 딱히 나에게 해준 것은 없다. 나는 그의 전화번호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특별하다. 왜냐하면 내가 힘든 순간 내 옆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도 안되게 불운한 인생살이때문이 아니다. 그의 음악이 엄청 좋기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그의 앨범들을 전부 들어보지도 않았고, 그의 음악들중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소위 말하는 팬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앨범 한장때문에 그를 향한 큰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무한도전이 2008년에서 2011년까지 나에게 주었던 것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2007년은 나에게 무척 힘든 한해로 기억된다. 대학생활의 마지막 1년을 소화하고 있었고, 동시에 유학 준비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학점은 21, 22학점씩 꽉꽉 채워 들었고, 여름에는 GRE 학원을 다니며 일본에 가서 시험을 치뤘고, 토플은 학원다닐 틈도 없어서 혼자서 준비하며 대구의 영남대까지 가서 시험을 치뤄야 했다. 봉사활동을 꼭 하고 싶었기 때문에 학교 안과 밖에서 일주일에 두세번씩 시간을 내어 장애인들과 함께 했고, 해외 대학교 사이트들을 찾아 다니며 원서를 작성하고 교수님들께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 추천서를 부탁드려야 했다. 이 모든 과정들을 대학원 수업을 당겨 들으며 해내야 했다. 오전, 오후 시간에는 수업을 들으며 유학 준비를 하느라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공부는 매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내일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 너무 싫고 두려웠다. 힘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음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아 눈을 뜨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힘들어지는 건 육체와 정신뿐이었다.

그 당시 공부를 하던 곳은 서강대 K관 지하 열람실이었다. 소위 말하는 복학생 횽아들의 주 서식처였던 그곳에서 나도 다른 복학생들과 다름없이 허름한 옷에 늙스구레한 얼굴과 피곤에 쩔은 표정으로 칸막이가 쳐진 책상에 머리를 쳐박고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 수식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나는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토익을 보고 면접 준비를 해서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나에게 더 맞는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하며 유학 준비를 해야 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공기가 차가워지면 두려움이 더 커져갔다. 오늘 하루도 아무것도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는데 끝나가는 것 같아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 K관 열람실에서 듣던 음악이 바로 Eels 의 이 라이브 앨범이다. 이 앨범은 Eels 특유의 짧은 곡들이 어쿠스틱 라이브 버젼으로 실려 있다. 현악의 도움을 받아 음악의 앙상한 골격은 한껏 보잘것없는 화려함을 더했다. 그는 여전히 처연하게 욕을 내뱉고, 세상을 저주하며, 그 와중에 그래도 결국은 살아가야 함을 쓸쓸하게 읊조리고 있다. 2005년 6월 30일 뉴욕의 타운홀에서 녹음된 이 라이브 음반은 라이브 음반 그 자체만으로도 꽤 좋은 퀄리티를 가진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곡과 곡 사이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 때가 많고 소리는 가끔 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을 듣던 2007년 가을쯤의 나는 떨어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를 어루만져 주는 느낌. 나를 기어코 쓰러지지 않게 버티게 만드는 힘을 주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내 리스닝 실력으로 가사를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그 이후 유학을 떠나온 뒤로는 이 앨범을 거의 듣지 않았다.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왜그렇게 이 앨범만 들으면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Rhye: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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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의 첫곡, 첫 10초만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리는 음악이 있다. 아주 까다로운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음악이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니다. 1,2년에 한번 정도. 허우샤오시엔의 <빨간 풍선> 을 극장에서 볼때 오프닝 시퀀스에서 완전한 행복감을 맛보았던 그런 기분을 음악에서도 느끼는 순간이 이런 식으로 불쑥 찾아오곤 하는데, 올해에는 운이 좋게도 Rhye 의 음악에서 그러한 행복감을 느꼈다.  앨범의 첫곡, “Open” 의 처음 10초에서 나는 이 앨범이 나에게 엄청난 크기의 행복을 안겨다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직감은 거의 틀린 적이 없다. 다행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덴마크의 일렉트릭 뮤지션이자 프로듀서인 Robin Hannibal 은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코펜하겐에서 미국의 LA 로 날아간다. 마침 그곳에는 역시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캐나다 토론토에서 LA 로 날아온 싱어송라이터 Mike Milosh 가 있었다. 같은 공간, 같은 장소에 같은 이유로 존재했던 이들은 나중에 음악적으로 다시 뭉치게 되고, 그 결과물이 Rhye 라는, 뜻을 알 수 없는 이름을 가진 프로젝트다. <Woman> 은 이 듀오가 발표한 첫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이들은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 뮤지션과 관련된 로케이션을 구구절절하게 적은 이유는 장소가 이들의 음악에 미치는 영향이 꽤 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알 것도 같은데 말로 표현을 하지는 못하겠다. 이들의 음악은 무척 에로틱하고, 섹시하며, 농밀하다. 여자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들의 음악은 여자 그 자체로 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Sade 를 연상시키는 Milosh 의 목소리는 흡사 여자의 그것으로 착각하기 쉬울 정도로 톤이 무척 높은데, Hannibal 이 만들어내는 안정적인 베이스라인과 합쳐져 위태위태하면서도 무척 핫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이들의 음악이 전하고자 하는 사운드스케입, 혹은 사운드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들의 데뷔 앨범에 사용된 이미지컷들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들은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자의 몸, 여자의 마음, 여자의 얼굴, 여자의 에너지, 여자의 공기, 여자의 손가락 끝의 떨림과 입술의 실쭉거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자의 등에 있는 근육의 작은 균열까지 담아낼 정도의 섬세함이 있는 음악이라면 조금은 표현을 제대로 하고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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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을 준비중이다. 봄방학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이 봄방학 기간동안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돈이 없었다. 가족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가족을 포함에 그 누구에도 손벌리는 것을 지극히 송구스럽게 생각하는 나인데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부탁했다. 그정도로 절실하게 떠나고 싶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가서 무엇을 할지, 어디를 다닐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준비중” 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아직 많이 부끄러운 상황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빗 카드 한장과 아이폰 하나만 있으면 어디에 가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낙천적으로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전 마무리짓겠다는 논문은 여전히 답보 상태이고 나는 끔찍한 슬럼프에서 아직 탈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여행으로 –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 나의 인생이 약간은 달라질 것임을 이상하리만큼의 강한 확신으로 규정지어 버리고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현실을 직시할 수도 있다. 담담하게 준비하고 있다. 무엇을 보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선사하는 최초의 이 사치스러운, 아주 특별한 형태의 휴식이 마음의 피로를 조금은 풀어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며칠전부터 계속 이 노래가 듣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 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먹고 싶었던 음식을 정작 손에 넣으면 허겁지겁 입에 집어 넣는 스타일이 아니라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야금 야금 손을 대는 스타일이어서 그런가보다. 가사가 계속 맴돌았다.

언어와 기억. 기대와 믿음.

책이나 영화를 다시 보지 않는 편이다. 다시 읽거나 보는 책이나 영화가 있다면 그것은 그 작품을 정말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시간을 때우기에 적합한 용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화장실에 쌓아놓고 보던 때부터 시작된 버릇이다. 본 시리즈를 아이팟에 넣어두고 심심할때마다 본다던가, 잠이 오지 안을때 아이폰에 무한도전을 틀어 놓고 쳐다 보지도 않은채 소리만 들으며 잠을 청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반복을 소비하는 것이다.

책을 특히 다시 읽지 않는 편인데, 이유는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변질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생각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다시 읽는 행위는 그 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해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시 읽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아마도 조급함때문일 것이다. 읽지 못한 책을 어서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어야 그나마 죽기전에 아쉬움이 덜할 것 같다는 본능적이고도 어린아이와도 같은 조급함말이다.

책은 언어로 만들어진 대화의 기록이다. 언어로 사고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겐 가장 편한 의사전달의 도구이자 매체이고, 세상을 그리고 전시하는 가장 좋은 플랫폼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려한 특정 표현 문구에 강한 인상을 받기 보다는 – 이것은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흥과도 같다 – 책이 전체적으로 품고 있는 직조의 미학이라던가 얼개나 골격같은 것들에서 더 큰 감동을 받는 편이다.  어떻게 세상을 표현하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세상을 설계하고 조직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책은 또한 기억의 도구이다. 모든 책은 기억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미래에 대한 기대조차 그 기대를 품었을 때의 기억을 담보로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언어로 쓰여진 책이 담아내고 있는 기억이라는 대상은 나의 삶을 꿰뚫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과 항상 맞닿아 있다. 나는 글과 말이라는 언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때문에 기억조차 영상이나 소리나 냄새가 아닌 글과 말로써 남아 있게 되기 쉽상이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언어만큼 왜곡이 쉽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표현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의 기억을 조작해 왔으며, 그 조작의 어리석음은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화의 끝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그리고 기억으로 점철되는 우리의 대화는, 과연 미래에 대한 기대와 얼마나 조응할 수 있을지도 자못 궁금해진다. 나는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데, 내가 대화하고 있는 사람과 왜곡된 기억을 앞에 두고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언어를 통해서만 해결을 보아야 하는 상황을 최근 자주 접했다. 그 상황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문제였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을 가리는 문제도 아니고, 기억을 퍼즐조각처럼 올바르게 다시 짜맞추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고,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새로운 것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을 다시 되돌렸을 때 새로운 것이 보이게 될 수도 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 이야기하듯, 우리는 과거의 기억이 올바르지 않게 조립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현재의 삶을 반추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치유 혹은 반성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로, 현재는 현재로, 미래는 미래대로 독립적인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책을 다시 읽기 싫어하는 나의 성격이, 과거로부터 단절되지 못하는 삶을 사는 나의 부족함을 애써 무시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유럽 여행에서 그리고 최근 경험한 뉴욕과 보스턴 여행에서 좋은 예술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예술 작품들이 나에게 준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책이 아닌, 영화와 같은 익숙한 영상매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더 크고 깊은 생각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눈 앞에서 제시받았기 때문이다.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그런 박제화된 예술 작품이 아니라, 눈 앞에서 붓터치 자국 하나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진짜 그림과 진짜 조각, 진짜 영상물들을 보면서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전달되는 방식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한 제약으로 인해 오로지 언어밖에 쓸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래서 그 불완전한 도구로 인해 대화에서 장애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 장애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도구들을 사용함으로써 해결되었을 경우를 상상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언어를 통한 대화 자체게 구속이 되어 버리면 그것이 전부인양 생각하게 되고, 그 안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발견해야만 할 것 같은 좁은 시야 안에 한번 더 갇혀 버리게 된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혹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들은 언어 의외의 것들로 존재하고 그것들에 의해 표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에서 출발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이다. 그 믿음을 공고히 하려는 노력. 자신의 서툼과 상대방이 노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에서 역설적으로 믿음은 다시 출발한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배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나에게 결핍된 부분을 채우려는 강요를 우리 모두에게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각자 살아온 시간이 있기에, 또한 그 시간을 존중해야 하기에, 나는 대화의 상대가 드러내는 모든 표현들이 가치있다고 믿으며, 다른 한편으로그 표현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을 것임을 또한 다짐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언어의 이면에 존재하고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Ben Lewin: The Sessions

사지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남자가 있다. 그의 근육은 그를 지탱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집에 있는 iron lung 에서 빠져나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은 (보통 “호흡” 이라는 보다 의학적인 용어를 사용해 이 남자의 각박한 인생을 표현함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으나 “숨을 쉰다” 라는 행위가 이 영화에서 갖는 의미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보다 비이성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세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씻는 것부터 먹는 것, 입는 것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행위를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 한다. 단 하나 그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입에 막대기를 문채 한자 한자 타자기에 천천히 써내려가는 집필 활동. 그는 시인이다.

그는 가톨릭 집안의 넷째로 태어났으며, 자신때문에 누이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죄책감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그가 가진 최대의 고민은 역시 섹스. 사지를 전혀 움직일 수 없지만 때때로 도우미 앞에서 사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생리현상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이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그는 섹스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갖는 존엄성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버클리를 졸업할 정도의 사고 능력과 시를 써 내려갈 정도의 감성까지 가지고 있던 그가 생의 막바지에 혼신의 힘을 다해 매달렸던 것은 사랑과 섹스였다. 영화에서 그는 너무 쉽게 고백한다. 함께 옷을 쇼핑하러 간 도우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해서 그녀를 떠나게 만들었고, 병원의 의사에게 연정을 품었으며, 이제 그의 육체적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섹스 테라피스트 (“sex surrogate”) 에게 점차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인 “세션스” 는 이 남자와 여자가 갖는 여성번의 섹스 테라피의 세션 하나 하나를 의미한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이 만나서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인 연인 사이는 아니다. 여자는 가정이 있으며, 섹스를 통한 치료를 프로페션으로 가진 직업적인 테라피스트다. 남자에게는 여섯번의 세션이 허락되어 있으며, 각각의 세션을 거치는 동안 이 둘은 더 높은 단계의 섹스를 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과정을 통과함으로써 남자가 진짜 자신의 파트너를 만났을 때 섹스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을 이 치료의 목표로 삼고 있는 여자는 처음에 철저히 직업적으로 이 남자를 대한다. 아주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테라피스트인 그녀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대상” 이나 “고객” 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입장이 약간 다르다. 이 모든 과정이 프로페셔널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리고 여자가 자신의 녹음기에 대고 말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심리저인 현상” 이었음에도) 세션을 통과하면서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여자의 반응도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표현된다.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매몰차게 무시할 수도 없는, 장애인에 대한 연민을 넘어서서 한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확대되는, 하지만 현실을 깨부술 정도는 아닌, 그런 애매한 감정이 여자의 마음을 한차례 뒤흔들어 놓지만, 남자에게는 일생에 단 한번뿐인 경험을 여자는 차 안에서 울어 버림으로써 정리해 버린다.

남자는 죽는다. 일찍 죽는다. 아프니까.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이 그의 장례식장에 모여 그가 이 고민을 털어 놓았던 가톨릭 사제와 함께 장례 미사에서 그를 기억한다. 그는 자신이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떠났을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많은 애정을 받고 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녀들은 기꺼이 그의 장례식에 와 주었으며, 진심으로 그를 기리고 기억하며 떠나보낸다.

so what. it’s bullshit. what the hell is going on their life? simply nothing changed.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의 시선은 한결같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기꺼이 도와 줘야지. 그들도 존엄한 인간인데 누릴거 다 누리면서 살아야지. 섹스? 할수만 있다면 해야지. 누군가 도와줘서 하는 섹스라면? 창녀와 다른건 돈을 안받는다는 정도 아닐까? 그래도 뭐 이해는 할 수 있어. 그들도 인간이니까!

하지만 난 장애인이 아니야. 다행이다. 난 그들과 달라. 난 “정상적인” 섹스를 할 수 있어!

결국 진심으로 그들을 위하고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비장애인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게 인간의 나약함이고 한계다. 이 영화는 꽤 큰 용기를 내어 중요한 주제를 던져 놓는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풀 지혜가 감독에게 있어 보이진 않지만, 헬렌 헌트와 존 홐스의 눈부신 연기에 힘입어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엄청나게 심각한 주제를 놀랍도록 시시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그런 영화 카데고리에 포함되지 않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많은 아쉬운 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미덕을 갖는다. 그 생각이 너무 짧아서 영화를 보고 난 한시간 뒤쯤 “오늘 저녁에는 뭘 먹지?” 라는 질문보다 한없이 보잘것 없어질 지라도 말이다. 내가 과연 어디까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생의 마지막까지 가지고 가야할 질문중 하나다. 여기서 “그들” 은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을 지칭한다. 그렇게 확대될 수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확대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나는 마크 오브라이언과 쉐릴이라는 실존 인물들의 이름대신 남자와 여자라는 꽤 큰 범위의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다. 남자는 사랑을 갈구했고, 결국 실팼지만, 사랑이 뭔지 깨달았다. 남아 있는 여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큰 무리없이 살고 있다. 이게 장애인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결말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