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들어가 군대를 가기 전까지 줄곧 한 동네에서 계속 살았다. 그 동네는 지금 꽤나 유명한 데이트코스가 되어 버렸는데, 내가 살던 골목도 꽤나 많은 시멘트 더미들이 과거의 기억을 이미 뒤엎어 버렸을 것이다. 그 골목은 인왕산으로 가는 어귀에 위치해 있다. 부암동 동사무소 바로 옆 골목을 따라 열세살 정도 되는 아이의 걸음으로 15분 정도, 가로등도 몇개 없고 인적도 드문 꽤나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최종적으로 대여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인왕산 중턱 부근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 내가 살던 집이 있다. 아직 있을 것이다. 우리는 IMF 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그 집을 팔 수밖에 없었고, 이후 일산 부근의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다가 홍은동으로 다시 이사를 왔다. 그 홍은동집을 한 유명한 영화감독이 좋은 값으로 사준 덕분에 현재 살고 있는 신촌 아파트를 살 수 있었고, 나도 유학을 나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골목은 무척 특이했다. 당시에는 물론 몰랐다. 꽤 돈이 많은 사람만이 지을 수 있었던 현대적인 건축물도 있었고, 넓은 부지에 전통 한옥이 자리잡고 있는 서원도 있었다. 친구중 한명은 무너져가는 쪽방에 살고 있었고, 다른 친구는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아버지를 두어서 넓은 집과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그 하나의 골목안에 있었고, 우리는 그저 친구였다. 우리 가족은 그 골목의 가장 끝자락에 있던 대여섯 가구들과 화목하게 잘 지냈다. 소득 수준도, 집안 환경도 모두 그럭저럭 비슷했다. 오늘은 우리집에서, 그 다음날은 어떤 형아의 집에서, 그리고 그 다음날은 다른 누나의 집에서 모여 함께 흙을 가지고 놀다가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하며 지냈다. 대문을 놔두고 서로의 담을 넘어 왕래했고,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그냥 담을 허물고 빌라처럼 다 함께 집을 지어 살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한겨울 눈이 꽝꽝 얼어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지 못하게 되자 위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소금을 뿌리며 길을 터준 기억도 나고, 옆집 형아를 따라 YMCA 를 다니다가 농구를 배운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함께 살았다. 우리 가족이 그곳을 떠나야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의 고향은 그래서 부암동이다. 그곳에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서울로 이사오기 전 살던 안산 부근의 화정리라는 시골 마을도 물론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폐렴에 걸리는 바람에 요양차 1,2년 정도 잠시 머물렀던 그 동네에서 나는 말그대로 도랑에서 가재잡고 산속을 뛰어 다니며 흙냄새를 온몸으로 맡는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 시절은 내게 너무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 지금은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나는 부암동에서 사는 15년동안 아이에서 소년이 되었고, 다시 소년에서 청년이 되었다. 지금도 잠자리에 누웠을 때 천장에 아로새겨져 있던 벽지의 무늬까지 생생히 기억나는 그 부암동의 집, 나른한 오후 빈 교실을 내리쬐던 아스라한 햇빛까지 온몸으로 떠올릴 수 있는 세검정 초등학교의 구석구석, 그 집과 학교 사이를 가로지르던 길, 그리고 청운 중학교, 효자동, 광화문…그 시간을 흘려 보내면서 듣던 음악들, 영화들. 그런 기억들이 성인이 되기 전 나를 형성했다. 불행히도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부터는 그 동네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매일 새벽 여섯시 반에 집을 떠나 열두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학교에 붙잡혀 있었아먄 했던 걸까 싶기도 한데, 아무튼 고등학교 3년동안 부암동에 대한 기억은 그저 잠을 잤던 곳이라는 것뿐이다. 당시 나는 고대앞에서, 성신여대앞에서, 돈암동에서 게임방을 가거나 당구장을 갔다. 이쁜 여자 아이들과 스티커 사진을 찍거나 노래방에 가기도 했다. 가끔은 술도 먹었고, 학교 근처 공원에서 담배를 친구들과 나누어 피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부암동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내가 살던 그 골목 근처에는 약수터가 하나 있었다. 약수터로 가는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보면 꽤 커다란 공터가 하나 나왔고, 그 공터에는 아이들이 올라가 장난을 칠 수 있을 정도로 큰 바위가 하나 있었다. 그 바위를 낑낑거리고 올라가면 조금은 더 좋은 전망이 펼쳐졌는데, 단지 3,4미터 더 위에 있을 뿐인 그 높이에서 아찔한 쾌감같은 것을 느꼈다. 지금도 그 바위가 있는지 모르겠다. 올 여름에 한국에 들어가면 아마 한번은 꼭 들려보고 싶다. 내 인생에서 다시 그 동네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이미 내 기억과는 많이 달라진 환경에 새롭게 적응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좋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니 그곳에 살지는 못하더라도 한번쯤 그 동네를 다시 밟아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유년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고, 나는 점점 희미해져가는 과거의 기억들을 어떻게든 부둥켜 잡고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오늘 책상앞에 앉았을때 갑자기 그 바위가 생각났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생각났다. 그 바위는 나의 기억보다 아마도 훨씬 더 초라하고 왜소하겠지만, 다시 그 바위 위에 올라갈 수 있다면, 그래서 기억보다 훨씬 좋지 않을 전망을 다시 경험할 수 있다면, 그 위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 바위 위에서 보이는 것들을, 다음 20년 뒤에도 똑같이 기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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