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당신들의 기독교


책의 처음 두 장은 흥미롭다. 개신교가 어떻게 자본주의와 결탁해 부의 축적을 정당화시켰는지를 쉽게 풀어 쓴 첫번째 장과 한국에서 한 평범한 중년 여인이 어떻게 개신교에 빠져들게 되는지를 독파한 두번째 장은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가 갖는 사회학적 의미를 거시적, 미시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잘 짜여진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평소에 접하지 못하는 단어들이 열거되는 와중에 한국어에 대한 매력도 새삼스럽게 재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책의 중간부터 더이상의 컨텐츠를 채우지 못하고 매끄러운 형식과 지은이 본인이 애초에 견지하고 있던 철학만을 억지로 밀어 붙이면서부터 발생한다. 책을 말미를 장식하는 몇개의 장은 개신교에 대한 책인지 개신교를 이용해 지은이의 철학을 설파하려는 책인지 헷갈릴 정도다. 지은이가 견지하고 있는 입장은 확고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는 좋은 스승이다. 그가 가지고 있던 탈공동체적 문화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완전히 거세되어 있다. 확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올바른 탐구 자체를 훼손하게 된다. 예수를 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자’ 가 되는 것이지만, 현대 한국의 개신교 사회는 ‘종’ 으로서 굴종하는 것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만약 지은이가 한국 사회와 개신교에 대한 단편적인 모습들을 일괄되게 열거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통시적인 관점에서 깊게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 서적들이 갖는 공통적인 한계를 새삼스럽게 지적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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