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미래

나는 가난하다. 대학교 졸업때까지는 평생 부모님댁에서 신세를 졌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과외를 시작했지만 항상 일거리가 있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끔 용돈을 타 쓰기도 했다. 당연히 집세는 내지 않았고,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은 당연히 내가 매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대학을 장학금으로 다녔기 때문에 학비에 대한 신세는 지지 않았다. 문제는 유학을 결정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대학 졸업과 거의 동시에 유학을 나왔는데 대학을 졸업할 당시 내 수중에는 정말 땡전 한푼이 없었다. 부모님과 일종의 계약을 체결했다. 패밀리론이라고 이름붙혔다. 공부에는 때가 있는 것이라며 돈걱정은 전혀 하지 말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하셨지만 자식된 입장에서, 그것도 다른 친구들이 모두 취직해 돈을 벌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다시 돈을 쓰는 사이클을 한바퀴 더 돌겠다는 결정을 내린 사람 입장에서 여간 죄송스러운 것이 아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지불해야 했던 여러가지 정착 비용과 학교에서 부분적인 장학금과 월급만을 받아서 혼자 힘으로 도저히 생활이 불가능할때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월급이 나오지 않는 여름 방학 4개월동안의 생활비는 오롯이 부모님의 몫이었다. 지금까지 대충 몇천만원은 깨졌을 것이다. 지금은 겨우 내 힘으로 먹고 살고 있지만, 내년에 6년차가 되어 펀딩이 완전히 끊기면 어떻게 살아갈지 암담하다.

유학은 돈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돈이 없다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나오기 힘든 것이 유학이다. 학교를 조금 낮춰서 전액 장학금을 주는 곳으로 가던가 유학을 포기하고 국내에서 공부를 하던가 해야 한다. 아니면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악착같이 모아 그 돈으로 유학을 나와야 한다. 물론 그렇게 모든 돈도 1,2년 내에 금방 바닥이 나겠지만. 미국의 학비는 악명높고, 생활비는 한국보다 결코 싸지 않다. 조금만 외식을 자주 하거나 마음에 드는 옷을 한두벌만 사도 통장의 잔고는 큰폭으로 줄어든다. 그렇다고 매일 라면만 먹을 수는 없으니 과일도 사고 신선한 채소도 사서 요리를 해먹으려고 하면 올가닉 제품들은 또 왜이리 비싼지, 이 역시 만만찮다. 친구들과 회포를 풀기 위해 마시는 한잔의 술도 통장의 잔고를 스마트폰으로 체크해 본 뒤에야 살 수 있고, 아침에 피곤을 쫓기 위해 마시는 핫초콜렛도 얼마인지 치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기름값이 아까워 차는 정말 필요할 때만 끌고 다녀야 하고 항상 구입해야 하는 책과 음반은 가끔 정말 필요할 때 돈이 없어 사지 못할 때도 많다.

비단 유학생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나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굳이 생색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내 뒤에는 항상 부모님이 있다. 내가 정말 어려운 순간이 되면 ‘치트키’ 를 쓰듯 부모님께 부탁을 드릴 수 있다. 때문에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절박한 가난함은 아니다. 정말 힘든건 심리적인 부분이다. 마음속의 가난함이다. 아플때 아프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고, 돈이 필요할때 돈을 부쳐달라고 말할 수도 없다. 죄송하기 때문이다.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부모님의 걱정을 덜수만 있다면 차라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할 정도다. 이곳에서 5년동안 살면서 수도 없이 많은 위기를 겪었다. 그 위기를 다 슬기롭게 이겨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우악스럽게, 때로는 거의 반쯤 포기해가면서 “버텨냈다” 라고 표현하는 쪽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가까스로 쓰러지지 않고 버텨온 5년의 시간이 내게 남긴건 상처받은 자존심과 여전히 텅빈 통장 잔고, 잔뜩 늙어버린 육체, 그리고 쓰다 만 논문 쪼가리 몇장이 전부다.

물론 좋게 포장할 수도 있다. 나는 이곳에서 겸손을 배웠고, 참된 지식을 맛볼 수 있었으며, 청빈한 생활을 통해 가난한 마음이 주는 깨끗하고 맑은 정신 상태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멋있고 쿨해 보이겠지. 근데 사실은 제발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어서 빨리 탈출했으면 마음뿐이다. 지식이라는 건 대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이어서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당장 밖으로 뛰쳐 나가 노가다를 해서 돈을 손에 넣는 것보다 뭐가 더 가치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한국의 친구들은 부모님 여행도 보내드리고 여자친구에게 좋은 것도 선물해 주고 그런다던데, 나는 당장 오늘 아침 핫초콜렛 한잔 살 돈이 없어서 건조한 날씨에 바싹 마르는 목을 그대로 가지고 강의를 해야 했다. 나도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싶고, 여자친구에게 좋은 것 선물해 주고 싶다. 당장 내가 사고 싶은 핑크색 셔츠 한장의 문제가 아니라, 베풀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의 초라함이 싫을 뿐이다. 부끄러울 뿐이다. 그저 죄스러울 뿐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끝은 있다. 나도 잡마켓에 나갈 것이고, 그렇게 보잘것없는 논문을 가지고 여기 저기를 두드리고 다닐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어디에서든지 나에게 돈을 주고 일을 하라고 하는 곳이 있을 것이고, 나는 지금보다 몇배는 많은 월급을 받으며 드디어 저축이라는 것을 한번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학자로서의 명예, 심장이 벌떡 벌떡 뛰는 토론을 할 수 있는 학자들이 득시글 거리는 미국이라는 곳에서의 직장, 더 나은 삶의 질.. 이런 것들을 지금 생각할 여유따위가 점점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아무데라도 좋으니까, 아무 일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나에게 일거리를 던져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고 싶다. 베풀면서 살고 싶다. 현재의 비참함이 미래의 높이마저 깎아먹고 있는 셈이다. 당장 오늘 먹을 끼니도 없으면서 논어 맹자를 외우는 대책없는 선비의 고고한 마음가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한없이 잘게 부수어지는 자존심과 자신감. 손에 잡히지 않는 공부.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정해진 데드라인. 압박받는 마음. 더 초라해지는 현실. 끝이 가까워질 수록 조급만 마음도 더 빨라져만 간다.

아버지도 이런 과정을 버텨 내신 거겠지. 나를 앞서간 수많은 학자들도 다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이겨낸 것이겠지. 그런 위로를 애써 억지로 하면서 오늘도 있는 반찬 몇가지로 저녁을 지어 먹으러 간다. 빨래도 해야 하는데..

4 thoughts on “가난과 미래

  1. 너무나 공감이 가고 마음이 저릿저릿한 이야기네요.. 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고 그것이 여전히 진행형이어서 남 얘기가 아니네요. 공부를 하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시련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 궁핍감을 보상해줄만큼 공부에 대한 자기확신이 투철하면 좋겠지만, 하다 보면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서 좌절하게 되고, 겨우 이 정도 하려고 이렇게 낑낑거리고 살아야 되나 싶고… 학문 자체도 어렵지만 그 과정 중에 자신과의 싸움이 진정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마음 잘 다스리시기를.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공부 그 자체보다 더 힘든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상황과 계속해서 싸워 나가야 하는 점같아요. 끝은 있는지, 그 끝이 내가 생각한 그곳인지, 거기에 갈 능력은 되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 하네요. 화이팅입니다!

  2. 학생때는 정말 물질적으로 너무 빠듯하게 사는것 같아서 힘들지만 돌아보면 (..이라고 쓰고 보니 우습네요. 사회생활 햇..은 아니고 늙은 병아리주제에. 죄송) 그때가 정신적으로, 감성적으로 오히려 제일 풍요로운때가 아닌가 싶어요.

    직장이 있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나 불안함이 사라지는건 아니잖아요. 돈이 생기면 약간의 편안함은 살 수 있지만 그걸 위해 눈치봐야 하는것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뭐든지 이상보다는 현실에 가깝게 살아가야 하죠.

    학교에 있는 동안은 그래도 ‘남’이나 ‘남이 이루어둔 조직’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것도 사실 절대적인건 아니고 상대적이지만요) ‘일’할수 있는게 저는 제일 부러워요. 남을 위해서, 아니면 당장 다음 주급을 받기 위해서 배우는게 아니라 배움 자체를 위해서 배운다는게요.

    힘내세요! 좀 더 편해질 날이 올꺼고, “dr. kim”이라는 타이틀은 영원한겁니다 ^^

    • 맞아요. mo money mo problem ㅎㅎ 그래서 전 항상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고 사고 싶은 책이나 음악이 있을때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요, 가끔 그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때 한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혀서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답니다. 최소한의 현실, 그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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