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hryn Bigelow: The Hurt Locker

고등학교 미술시간이었다.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 과제였다. 선생님은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독창적인 표현을 원하셨다. 사진을 찍듯 얼굴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 안에 어떤 의미를 담아내라는 주문이었다. 그 과제에서 일등을 한 친구는 해변가를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목 아래 부분을 점점 희미하게 처리,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자신을 표현했다. 그리고 해변가에 그 구름과 같은 얼굴을 가리키는 어린 아이 둘을 작게 그려 넣었다. 그 약간의 희미한 지움으로 인해 친구의 얼굴은 거대하게 확대되었고, 우리는 하늘 위에서 넘실거리는 그 친구의 커다란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아주 작은 표현의 차이만으로도 실로 거대한 의미가 탄생하기도 한다. <허트 로커> 가 명작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두 시퀀스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폭탄 제거반의 하루 하루를 그려내고 있다. 날짜가 찍히고, 그 날짜는 목숨을 건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조금씩 줄어든다. 이들의 가장 큰 목표는 미국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이를 갖는 것이 두렵고, 다른 누군가는 헤어진 사람과 계속 멀어지는 것이 두렵다. 그들은 세계 어딘가에서 다른 누구도 소화해 내지 못할 강도의 임무를 수행하지만 미국의 집으로 돌아가면 지붕 위에 쌓인 낙엽을 정리할 정도의 위인밖에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밖으로 나온다. 그곳에서 그들은 죽음과 삶 사이의 경계선 사이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비정상적으로 폭탄 제거에 집착하는 주인공은 자국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미국이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다. 그는 그곳에서 비로소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뒤통수를 때리는 충격보다는, 전쟁영화에서 쉽게 갖기 힘든 가슴의 먹먹해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타임테이블은 리셋되고,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서 의미를 억지로 만들어 내기 위해 다시 한번 생과 사를 담보로 한 임무 수행에 나선다. 왜 그래야 하는지, 언제 이 무의미한 반복이 끝이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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