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 Hooper: Les Miserables

이 영화는 Victor Hugo 가 1863년에 발표한 원작 소설이 아닌, 1985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물론 뮤지컬이 소설을 바탕으로 삼고 있으니 관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뮤지컬을 보지 못했지만, 영화는 뮤지컬의 스코어들을 충실히 재현해 내고 있는 듯 보이며, 이에 더해 영화를 위해 창작된 오리지널 스코어들도 함께 담고 있다. 약 두시간 반의 시간동안 영화는 원작 뮤지컬이 가진 스토리보드를 모두 소화해 내기 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데 대부분의 대사 역시 뮤지컬처럼 노래로 표현된다.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은 단순히 뮤지컬을 영화 화면으로 재현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영화만이 가진 특성을 잘 살려서 관객에게 뮤지컬과 같으면서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앤 해서웨이가 분한 Fantine 이 “I dreamed a dream” 을 부르는 신에서는 그 전까지 영화가 보여주었던 흐름과 거의 완전히 단절된 독립적인 하나의 신을 구성함과 동시에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빛과 어둠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Fantine 이 가진 극도의 좌절감과 그 와중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갈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관객이 한번 더 독립적인 한명의 배우에게 집중하게 되는 Eponine 의 “On my own” 에서도 마찬가지로 배우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며 배우의 연기력과 가창력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흔히 우리가 뮤지컬을 보게 될때 아주 비싸고 좋은 자리에 앉지 않는 한 이러한 효과를 얻기 힘들다. 배우의 큰 움직임만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영화가 뮤지컬 배우들보다는 영화 배우들에게 주요 배역을 맡긴 이유도 약간의 가창력을 포기하는 대신 배우들만이 카메라를 통해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Do you hear the people sing?” 같은 웅장한 곡에서는 화면을 먼 거리에서 광각으로 잡아 넓은 느낌을 전달한다. 영화는 뮤지컬이 가지고 있던 한계, 즉 무대 장치를 조금 더 웅장한 스케일로 재현해 내는데에 그치지 않고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문법을 사용해 원작 뮤지컬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대통령 선거에서 독재자의 딸이 인권 변호사 출신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험을 한 한국 사람들에게 실패로 돌아가는 1830년대 학생 중심의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삼는 이 영화가 조금은 더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다. 원작 소설과 뮤지컬의 배경이 되는 이 혁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프랑스 시민들은 10년 더 굶주림과 극심한 빈부 격차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들의 혁명에 대한 갈망은 1848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 결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정부군에 의해 진압당하기 시작한 혁명군이 숨을 곳을 찾아 길거리의 문을 두드리지만 시민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결국 혁명군들은 거의 대부분 참혹하게 길거리에서 운명을 달리한다. 미완의 혁명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열이나 무능때문이 아닌,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 두려웠던 시민들의 미온적인 반응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과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는지의 문제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모두가 인권 변호사 출신의 후보가 17년간 독재를 했던 대통령의 딸보다 이룬 업적이 더 많고, 인간성도 더 괜찮으며,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 적합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나은 후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더 효율적으로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의 선택의 근간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허망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잘못된 것에 대한 후회하지 않음이다. 반성하지 않고 현재의 이익만을 좇아 행동하는 양심의 부재이다. <Les Miserables> 의 주인공은 실패한 혁명에 참가하는 어리석은 군중들과 그들 속에 섞여 들어갔다가 홀로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 장발장이다. 그는 일생을 반성하고 후회하며 보냈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애써 벗어나거나 그 죄를 잊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그 죄에 대한 벌을 순순히 받아 들이는 쪽을 택했다. 그의 죽음은 그래서 숭고할 수 있었다. “Who am I?” 라고 울부짖던 그가 “Valjean’s Death” 에 이르러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짊어지고 살아온 그의 일생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고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속죄와 희생은 Marius 와 Cosette 가 조금 더 나은 곳에서 출발할 수 있는 약간의 행복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한 인간이 세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현재 한국에 부재한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는 장발장의 인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한국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이 영화에 반응하는 이유도 아마 이러한 관계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King’s Speech> 에서 Tom Hooper 가 보여준 인상적인 능력은 결코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감동을 끌어내는 the moment 를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Hooper 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며, 거대한 성공을 거둔 뮤지컬을 영화하하는 쉽지 않은 작업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들을 잘 만들어냈다. 초반에 Fantine 에게 쏠려 있던 중심이 영화 후반 다시 Valjean 에게 돌아가기까지 약간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빠른 편집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그 위기도 무사히 넘어가는 편이다. 배우들의 열연은 이 영화가 단순히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보는 경험은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하게 만들어 준다. 앤 해서웨이는 불세출의 연기를 보여준다. 어쩌면 해서웨이는 이런 식의 연기가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휴 잭맨도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헬레나 본햄 카터와 샤샤 바론 코헨의 감초 역할도 인상적이었으며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대배우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정말 이쁜 존재감을 뽐낸다.

4 thoughts on “Tom Hooper: Les Miserables

  1. 미국 계실 때 뮤지컬 꼭 보시길 추천드려요… 영화보다 몇 배는 더 울었거든요.. 아직도 몇몇 장면은 눈에 선명하게 그려져요. 영화는 종혁님 글처럼 영화만의 장점이 있어서 영화대로 좋았어요.. 아 또 보고 싶네요 ㅋㅋ

    • 네 저도 그래서 어제 영화보고 돌아오자마자 찾아 봤는데 현재 뉴욕에선 안하고 런던에서만 하고 있네요. 확 런던 날라갈까 고민하기까지 ㅋ 저도 또 보러 가려구요!

  2. 레미제라블 후기를 둘러보다 여기 오게 되었는데 후기 잘 읽었습니다..
    다만 야당의 문재인 후보를 지지않했다고 프랑스 혁명에 빗대면서 마치 무지한 사람들이 뭣도 모르고 자신의 욕망을 쫓아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고 비아냥 거리시는것 같아 아쉽네요. 님이 진보를 지지 하셨듯이 사람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린법입니다. 님의 블로그에 주관적으로 쓰시는것은 어쩔수 없으나 우연히 여기에 들릴 사람이 있듯 자신의 생각과 틀리다고 과반수의 국민이 무지하다는 투의 뉘앙스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네요.. 이제 갓 30줄에 들어선 저로써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하면 제가 생각하는 인권변호사는 정치 경험도 별로 없으면서 안철수 이정희후보를 끌어들여 여자후보 하나 상대하겠다고 3명이 힘을 합해 공격하는 대북정책이 모호한 비겁한 후보인가요? 이런식으로 말하시면 님도 싫으시죠? 서로 비아냥 되서 좋은거 하나도 없습니다.. 님의 블로그에서 무례했던 점을 사과드립니다.

    • ㅎㅎ 아니예요.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전 과반수의 국민이 ‘무지’ 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시면 전 한국의 선택에 대해 그 어떠한 가치 판단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빗대지도” 않았고, 문재인 후보를 찬양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만을 기술했을 뿐이고, 그 사실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한 것이지요. 전 박근혜 당선자를 인신공격한 적이 없으니 이지얼님께서 드신 반례는 적절하지 않겠네요.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수 있으실 것 같아요. 그리고 의견이 다름을 드러내는 것이 감정의 상함으로 연결되는 것은 미성숙한 행동의 일부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깎아 내리는 행위를 보고 발끈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아야 겠죠. 그리고 그러한 감정의 상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서로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동의할 수 없네요. 치열하게 토론하고 다투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어른들이 하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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