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연애는 타이밍”이라는 닳고 닳은 수사에 대한 두가지 상이한 해석을 최근 두 친구로부터 들었다. 이 두 친구는 나의 학교 동창들이며 서로간에도 절친한 사이다. 친구 A 는 “타이밍” 의 개념을 조금 더 폭넓게 보자는 쪽이었다. 그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마음의 맞닿음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그 황금률의 모멘텀에서 이루어지는 연애의 시작점이 한 인간의 힘으로 제어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거대한 것이어서 감히 거역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둘 사이에 주어진 조건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마음을 접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그 마음에 확신이 있는 상태라고 할지라도 지금 당장 만나서 사랑을 나눌 수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친구 B 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결과는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타이밍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타이밍을 조절함으로써 원하는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애초에 출발조차 불가능한 관계가 아니라면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도는 허락된다는 이론이었다. 그는 그러한 믿음의 바탕 위에 실제로 여러가지 작업들을 행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흔히 말하는 “떡밥” 을 풀어 놓고 “어장”을 관리하는 “강태공의 마음” 으로 관계를 스스로 창조해 내고 그 관계에 최적화된 타이밍 역시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적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러명의 여자를 동시에 고려하고, 그 와중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 나올법한 여자에게 조금 더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 두 친구는 현재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다. A 의 연애스토리에 대해서는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거의 알려진바가 없다. 연애를 해보기는 한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B 는 최근 몇년동안 깊은 관계로 발전한 연애를 해보지 못하고 있다.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인지, 짧고 가벼운 연애만을 반복한 끝에 “어장” 만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A 는 국문과 사학을 전공했고, B 는 공대 출신에 경영을 복수 전공했다.

나는 A 와의 대화 도중 A 의 이러한 생각에 크게 반박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이 구속당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그녀의 집앞에 가서 전화를 걸어 불러낸뒤 함께 떡볶이를 사먹는, 그런 스토리를 쓸 수 없다. 한국으로 전화할때 전화비가 얼마나 나올지, 한국은 몇시인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현재는 항상 바쁘고 무거우며 과거는 점점 희미해져간다. 그래서 항상 조심스러워야 하고, 매일 매일 신중해야 한다. 감정은 뒷전이 되기 일쑤이고 지금 당장 피어나는 마음은 귀퉁이에 구겨 넣어 두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을 살아낼 수 있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5년쯤 살아 왔다. 마음은 많이 건조해져 버렸고 이성은 최고로 예민한 상태에 다다랐다. 어쩌면 나는 A가 말하는 타이밍도, B가 말하는 타이밍도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확실히 그러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3 thoughts on ““타이밍”

  1. 공대 출신에 경영을 복수 전공한 사람들이 주위에 좀 많은 편인데 하나같이 B와 연애관이 너무 똑같아서 심각한 글에 미친듯이 웃고가요. 아아아 이거 뭐 경영학 공부를 통해 나쁜남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공대남자들을 위해 누가 특강을 하고 다니는건가. 죄송합니다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한두문장으로 정의할수 없는거지만 떠나 보내야 한다면 처음부터 떠나 보낼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 하시는 일이 일인지라.. ㅋ 파이낸스 + 엔지니어링 + 어카운트.. 뭔가 전공이 사람을 만드는 것도 같고요 ㅎㅎ 저도 대학원에 오니 대부분 문과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엔지니어링 + 경영적 마인드로 관계를 디자인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일찌감치 포기하고 놓아 버리는 편이예요. 그런데 나이가 차다 보니 ‘이게 마지막일까’ 라는 기대감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욕심을 부려 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네요.

    • ㅋㅋ 하는 일도 그렇지만 사실 저도 순도 100%는 아니지만 공대여자 아니겠어요. 학교에 있을땐 뭔가 어리숙하면서도 우직한 그런게 바로 인간적인 매력이 있던 친구들이 돈벌면서 연애관까지 바뀌는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참 그래요. 그래도 옛날 친구를 대하는건 예전과 비슷하니까 그거라도 고맙게 여겨야하나.

      이게 마지막이라니요. 종혁님 아직 젊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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