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trip: 12/7 ~ 12/9

뉴욕이 가지고 있는 특징의 대부분은, 러프하게 90% 이상은 서울이나 도쿄, 런던이나 빠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버스는 승객이 자리에 앉기 전 출발하고, 보도블럭은 지저분하다. 지하철에서는 옆사람의 어깨가 닿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수퍼마켓의 직원은 결코 웃어주지 않는다. 간판 혹은 네온사인은 화려하지만 정돈되어 있지 않고 빌딩들은 한결같이 위를 향하고 있지만 들쭉날쭉하다. 세계의 대도시들은 국적이 희미하다. 대신 대도시들끼리 공유하는 특징들이 있다. 뉴욕이 가지고 있는 색깔의 90% 정도는 뉴욕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고, 도쿄에서도 느낄 수 있고, 런던에서도 느낄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끼리는 ‘미국인들’ 끼리보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고, 더 빠른 시간내에 가까워질 수 있다. 도시 문화는 그렇게 도시라는 특수한 환경을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발달해 왔다. 뉴욕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특성은 여기서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뉴욕을 뉴욕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다른 도시들이 갖지 못하는 나머지 10% 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 10% 의 색깔은 너무 엷고 희미해서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 신경써서 바라보지 않으면 그것이 있었는지 기억하기조차 쉽지 않다. “I LOVE NY” 라고 적힌 티셔츠때문에 뉴욕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위에 둥둥 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의 정체성을 정의내려주지는 않는다. 뉴욕을 뉴욕답게 만드는 것, 다른 도시들이 베낄 수 없는 그 무엇은 바로 뉴욕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이 말하고, 입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들. 뉴욕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다른 도시들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 하나 하나가 모여 완성되는 것이지, 새빛 둥둥섬이나 청계천같은 구조물이 서울을 서울답게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서울이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서울은 이래야만 한다, 라는 강박관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시대 착오적인 행정가들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번에도 짧은 기간동안 머물렀다. 금요일 밤에 도착해 일요일 저녁에 떠났다. 48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은 한정적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가장 ‘뉴욕다운 것’ 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박물관과 미술관들이었다. 어떤 도시에 가면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를 가장 먼저 찾아 봐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어떤 도시에 가던지 그 도시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먼저 둘러 보아야 그 도시가 품고자 하는, 품고 싶어하는, 품어 왔던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그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중 하나였다. New York Review of Books 나 New Yorker 등을 읽으며 뉴욕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직접 보고 말 것이라는 꿈을 키워온지 오래이기도 했다. 지난번에 아버지와 함께 들렀을 때에는 자연사 박물관을 지나치게 오래 돌았고 MET 도 급하게 도는 바람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친 것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MoMA 부터 구겐하임까지, Neue 갤러리부터 MET 까지 토요일 하루를 몽땅 투자해 차근 차근 돌아 보았다. 물론 체력의 한계는 있었다. 오후 다섯시쯤 MET 에 마지막으로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다리가 지끈지끈 쑤셔오기 시작한 후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George Bellows 의 특별 전시회를 드디어 직접 감상할 수 있었고, 이번 여행에서의 유일한 기념품인 포스터를 한장 사기도 했다.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미술관들을 돌아 보며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많이 경험했다. MoMA 에서 본 Quay 형제의 작품들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카프카의 <변신> 에서 영감을 받은 인형 공예품들과 초창기 비디오 작품들은 특히나 더 그랬다. Neue 갤러리는 사실 에곤 쉴레의 작품들을 보러 갔는데 막상 쉴레의 작품은 하나밖에 없었고 호들러 위주로 꾸며져 있었다. 호들러가 암에 걸려 죽어가는 그의 mistress 발렌타인을 그린 그림들, 그리고 그녀가 죽은 후 3년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 자신을 그린 자화상들이 인상적이었다. 구겐하임은 미술관을 통째로 피카소의 black and white 작품들로만 꾸며 놓았는데 그의 초창기 작품들부터 전설이 되어가기 까지의 과정을 구겐하임의 독특한 구조를 통해 걸어 올라가며 함께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도시가 품고자 하는 철학을 느끼기 위해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려야 한다는 의견에는 약 절반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수집하는 작품들은 소위 말하는 ‘귀족’ 들의 전유물이다. 물론 1900년대 이후 근/현대 미술이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모두를 위한 예술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지만,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부자들의 donation 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형편이다. 때문에 이들이 자본의 힘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은 가져볼만 하다. 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철학의 다른 부분, 즉 나와 당신같은 평범한 일반인들의 구질구질한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힘을 느끼고 싶다면 거리로 나가야 한다.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을 빼고, 꽤 편한 운동화로 갈아 신은 뒤 이 골목부터 저 골목까지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걷기 시작해야 한다. 그 골목들에는 다양한 삶의 조각들이 무수히 많이 흩뿌려져 있고, 미술관과는 다르게 우리는 한푼의 돈도 지불하지 않은채 그 도시의 철학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 내는 돈 정도가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혹은 지불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비용이다. 그곳에서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수다를 훔쳐 듣고, 길거리 빵집에서 풍겨져 나오는 냄새를 맡고, 보도블럭 환기구에서 나오는 더운 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한참을 걸어야 한다. 도시의 철학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거리를 매우고 있는 사람들중 대부분은 나와 같은 관광객들이었다. 지도를 한 손에, 카메라를 다른 한 손에 들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뉴욕이라는 도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뉴욕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중 하나일 것이다. 쉽게 들어올 수 있고, 들어온 뒤에도 자신을 거의 완벽하게 감출 수 있는 도시. 그만큼 나갈 때에도 아무런 미련이 없는 도시. 뉴욕이 가지고 있는 diversity 는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개방성이 만들어낸 축복들중 하나일 것이다.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상이한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지하철을 타서 가만히 그 칸에 탄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 하나 관찰하다 보면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하나씩 뽑아서 태운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물론 자신들의 모국어가 묻어 나오는 아주 다양한 악센트를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영어로 소통한다. 소통에 막힘이 없는 상태에서 문화적인 다양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곳. 미국을 상징하는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들이 있겠지만 나는 미국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장소가 바로 뉴욕의 지하철이라고 생각한다. 지저분하고 불친절한데 뭘 한다고 해도 쉽게 드러나지도 않지만, 그것을 한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이 거의 없는 그런 분위기. 미국은 젊은 나라이고, 젊음에 대한 숭배가 극에 달한 나라이다. 그 맹목적인 숭배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을 바라보고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이 나라로 모여든다. 뉴욕으로 모여든다. “꿈”. 꿈이 있다는 것. 그것은 미국이, 뉴욕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더이상 꿈을 꾸지 않는 것 같다. 그저 하루 하루 먹고 살기 바쁠 뿐. 이것을 비극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지.

2 thoughts on “New York trip: 12/7 ~ 12/9

  1. 종혁님, 죄송해요..사라져버린 (..보면 안돼는??) 포스팅을 봐버렸어요.
    그래도 (이유는 다르더라도) 인생이라는것에 삿대질 하고 싶은 사람끼리의 마음이 제일 잘 통할것 같아서 뭔가 끄적이고 가요. 이것도 곧 지나가리다 -______-

    • 하하 괜찮아요. 프라이빗으로 써야 하는데 깜빡했어요. 제 실수니까 보셔도 상관없고요. 뭐 관계가 다 그렇죠… 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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