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연애는 타이밍”이라는 닳고 닳은 수사에 대한 두가지 상이한 해석을 최근 두 친구로부터 들었다. 이 두 친구는 나의 학교 동창들이며 서로간에도 절친한 사이다. 친구 A 는 “타이밍” 의 개념을 조금 더 폭넓게 보자는 쪽이었다. 그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마음의 맞닿음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그 황금률의 모멘텀에서 이루어지는 연애의 시작점이 한 인간의 힘으로 제어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거대한 것이어서 감히 거역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둘 사이에 주어진 조건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마음을 접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그 마음에 확신이 있는 상태라고 할지라도 지금 당장 만나서 사랑을 나눌 수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친구 B 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결과는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타이밍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타이밍을 조절함으로써 원하는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애초에 출발조차 불가능한 관계가 아니라면 그 안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도는 허락된다는 이론이었다. 그는 그러한 믿음의 바탕 위에 실제로 여러가지 작업들을 행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흔히 말하는 “떡밥” 을 풀어 놓고 “어장”을 관리하는 “강태공의 마음” 으로 관계를 스스로 창조해 내고 그 관계에 최적화된 타이밍 역시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적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러명의 여자를 동시에 고려하고, 그 와중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 나올법한 여자에게 조금 더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 두 친구는 현재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다. A 의 연애스토리에 대해서는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거의 알려진바가 없다. 연애를 해보기는 한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B 는 최근 몇년동안 깊은 관계로 발전한 연애를 해보지 못하고 있다.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인지, 짧고 가벼운 연애만을 반복한 끝에 “어장” 만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A 는 국문과 사학을 전공했고, B 는 공대 출신에 경영을 복수 전공했다.

나는 A 와의 대화 도중 A 의 이러한 생각에 크게 반박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이 구속당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그녀의 집앞에 가서 전화를 걸어 불러낸뒤 함께 떡볶이를 사먹는, 그런 스토리를 쓸 수 없다. 한국으로 전화할때 전화비가 얼마나 나올지, 한국은 몇시인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현재는 항상 바쁘고 무거우며 과거는 점점 희미해져간다. 그래서 항상 조심스러워야 하고, 매일 매일 신중해야 한다. 감정은 뒷전이 되기 일쑤이고 지금 당장 피어나는 마음은 귀퉁이에 구겨 넣어 두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을 살아낼 수 있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5년쯤 살아 왔다. 마음은 많이 건조해져 버렸고 이성은 최고로 예민한 상태에 다다랐다. 어쩌면 나는 A가 말하는 타이밍도, B가 말하는 타이밍도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확실히 그러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Tom Hooper: Les Miserables

이 영화는 Victor Hugo 가 1863년에 발표한 원작 소설이 아닌, 1985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물론 뮤지컬이 소설을 바탕으로 삼고 있으니 관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뮤지컬을 보지 못했지만, 영화는 뮤지컬의 스코어들을 충실히 재현해 내고 있는 듯 보이며, 이에 더해 영화를 위해 창작된 오리지널 스코어들도 함께 담고 있다. 약 두시간 반의 시간동안 영화는 원작 뮤지컬이 가진 스토리보드를 모두 소화해 내기 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데 대부분의 대사 역시 뮤지컬처럼 노래로 표현된다.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은 단순히 뮤지컬을 영화 화면으로 재현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영화만이 가진 특성을 잘 살려서 관객에게 뮤지컬과 같으면서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앤 해서웨이가 분한 Fantine 이 “I dreamed a dream” 을 부르는 신에서는 그 전까지 영화가 보여주었던 흐름과 거의 완전히 단절된 독립적인 하나의 신을 구성함과 동시에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빛과 어둠의 적절한 사용을 통해 Fantine 이 가진 극도의 좌절감과 그 와중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갈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관객이 한번 더 독립적인 한명의 배우에게 집중하게 되는 Eponine 의 “On my own” 에서도 마찬가지로 배우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며 배우의 연기력과 가창력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흔히 우리가 뮤지컬을 보게 될때 아주 비싸고 좋은 자리에 앉지 않는 한 이러한 효과를 얻기 힘들다. 배우의 큰 움직임만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영화가 뮤지컬 배우들보다는 영화 배우들에게 주요 배역을 맡긴 이유도 약간의 가창력을 포기하는 대신 배우들만이 카메라를 통해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Do you hear the people sing?” 같은 웅장한 곡에서는 화면을 먼 거리에서 광각으로 잡아 넓은 느낌을 전달한다. 영화는 뮤지컬이 가지고 있던 한계, 즉 무대 장치를 조금 더 웅장한 스케일로 재현해 내는데에 그치지 않고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문법을 사용해 원작 뮤지컬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대통령 선거에서 독재자의 딸이 인권 변호사 출신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험을 한 한국 사람들에게 실패로 돌아가는 1830년대 학생 중심의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삼는 이 영화가 조금은 더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다. 원작 소설과 뮤지컬의 배경이 되는 이 혁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프랑스 시민들은 10년 더 굶주림과 극심한 빈부 격차에 시달려야 했으며, 이들의 혁명에 대한 갈망은 1848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 결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정부군에 의해 진압당하기 시작한 혁명군이 숨을 곳을 찾아 길거리의 문을 두드리지만 시민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결국 혁명군들은 거의 대부분 참혹하게 길거리에서 운명을 달리한다. 미완의 혁명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열이나 무능때문이 아닌,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 두려웠던 시민들의 미온적인 반응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과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는지의 문제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모두가 인권 변호사 출신의 후보가 17년간 독재를 했던 대통령의 딸보다 이룬 업적이 더 많고, 인간성도 더 괜찮으며,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 적합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나은 후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더 효율적으로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의 선택의 근간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허망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잘못된 것에 대한 후회하지 않음이다. 반성하지 않고 현재의 이익만을 좇아 행동하는 양심의 부재이다. <Les Miserables> 의 주인공은 실패한 혁명에 참가하는 어리석은 군중들과 그들 속에 섞여 들어갔다가 홀로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 장발장이다. 그는 일생을 반성하고 후회하며 보냈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애써 벗어나거나 그 죄를 잊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그 죄에 대한 벌을 순순히 받아 들이는 쪽을 택했다. 그의 죽음은 그래서 숭고할 수 있었다. “Who am I?” 라고 울부짖던 그가 “Valjean’s Death” 에 이르러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짊어지고 살아온 그의 일생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고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속죄와 희생은 Marius 와 Cosette 가 조금 더 나은 곳에서 출발할 수 있는 약간의 행복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한 인간이 세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현재 한국에 부재한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는 장발장의 인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한국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이 영화에 반응하는 이유도 아마 이러한 관계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King’s Speech> 에서 Tom Hooper 가 보여준 인상적인 능력은 결코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감동을 끌어내는 the moment 를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Hooper 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며, 거대한 성공을 거둔 뮤지컬을 영화하하는 쉽지 않은 작업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들을 잘 만들어냈다. 초반에 Fantine 에게 쏠려 있던 중심이 영화 후반 다시 Valjean 에게 돌아가기까지 약간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빠른 편집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그 위기도 무사히 넘어가는 편이다. 배우들의 열연은 이 영화가 단순히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보는 경험은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하게 만들어 준다. 앤 해서웨이는 불세출의 연기를 보여준다. 어쩌면 해서웨이는 이런 식의 연기가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휴 잭맨도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헬레나 본햄 카터와 샤샤 바론 코헨의 감초 역할도 인상적이었으며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대배우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정말 이쁜 존재감을 뽐낸다.

Seth Macfarlane: Ted

Fox 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애니메이션 <Family Guy> 의 창작자인 Seth Macfarlane 이 만든 첫번째 장편 극영화다. Macfarlane 은 영화의 연출과 함께 주인공 Ted 의 목소리까지 담당했다.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재미의 거의 대부분이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곰인형이 자랑하는 걸죽한 입담임을 생각해 본다면 Macfarlne 은 사실상 이 영화의 알파요 오메가인 셈이다.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다. 곰인형 Ted 가 생명을 갖게 되고, 주인공 John 과 함께 성장한다. John 과 Ted 는 인간과 곰인형이라는 존재의 차이를 떠나서 소위 말하는 ‘불알친구’ 로서의 관계를 형성한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고 어릴때 함께 보던 만화영화의 주인공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가벼운 마약과 같은 일탈도 함께 즐기는, 아주 전형적인 이 남성 친구간의 관계에 균열을 불러 오는 것은 30대 중반으로 나이가 찬 John 이 4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 Lori 의 존재다. 즉 성인 남자가 오래된 동성 친구와 그 이후 만나게 되는 이성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스토리인데, 이 전형성은 John 의 ‘어린 감성’ 을 대변하는 Ted 가 역설적으로 구사하는 성인 유머 코드에 의해 뒤틀려지고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가 가진 거의 대부분의 미덕은 바로 역설의 유머에서 나온다. Lori 역의 밀라 쿠니스는 역시 매력적이지만 성인 남성이 바라보는 매력적인 여자로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 막판 Lori 가 Ted 의 생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별다른 개연성을 갖지 못하며 영화의 결말 또한 약간 싱겁게 끝나는 이유도 아마 이 Lori 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지 못한 Macfarlane 의 실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단순하고, 그만큼 재미있다.

New Year’s resolution

read a paper a day (so i can be a mogul-like-verbose on my literature)

read a book per two weeks (so possibly 25 books at the end of 2013)

exercise for two times a week (keep my weight under 165 lb)

be a morning person (i know impossible. writing impossible things is what you do for new year’s resolution)

wash dishes every day, keep refrigerator and carpet clean (minimize home keeping duties)

be familiar with memo (i’m INTP)

call family at least a week (for the peace of my life)

be nicer person (as always)

submit a paper or two to a mid-high ranked journal (not JPE or QJE, but some good ones in my field)

complete three chapters of dissertation (this is to do list..)

make a girlfriend (why not?)

 

The Bests of the Year 2012

Song of the Year: Dave Palmer, Roger Niell, and Brian Reitzell, “Beginners Theme Suite”

Honorable Mention: Frank Ocean, “Thinking about You”; 이승렬, “솔직히”; Passion Pit, “Hideaway”

Album of the Year: 이랑, 욘욘슨

Honorable Mention: 9와 숫자들, 유예; Tame Impala, Lonerism; Lisa Hannigan, Passenger; Jack White, Blunderbuss

Performance of the Year: Bon Iver with Feist at Red Rocks, June 1st

Honorable Mention: Beach House at Boulder Theater, October 9th

Artist of the Year: Frank Ocean 

Honorable Mention: 무키무키만만수

Collection of the Year: 김애란, 비행운

Honorable Mention: Krys Lee: Drifting House

Novel of the Year: Zadie Smith, NW

Honorable MentionAndrew Porter, In Between Days

Nonfiction of the Year: Allan Meltzer, A History of the Federal Reserve

Honorable Mention: Reinhart and Rogoff, This Time is Different

Magazine or Newspaper of the Year: New York Review of Books

Honorable Mention: New York Times

Textbook of the Year: Lim and McNelis, Computational Macroeconomics for the Open Economy

Honorable Mention: Pissarides, Equilibrium Unemployment Theory

Academic Journal of the Year: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Honorable Mention: Journal of Money, Credit, and Banking

Film of the Year: Mike Mills, Beginners

Honorable Mention: Sarah Polley, Take This Waltz; Paul Thomas Anderson, The Master

People of the Year: 18th president of Korea Republic

Honorable Mention: Ufuk Devrim Demirel (my main advisor..)

Day of the Year: May 11th

Honorable Mention: July 4th

Event of the Year: Passing proposal defense, May 11th

Honorable Mention: 부산 여행, July 6th to 8th

Moment of the Year: When I talked to YJ about Her and I in a phone call

Honorable Mention: When I had a dinner with SM in South Korea

Sports Team of the Year: Colorado Buffaloes Basketball Program

Honorable Mention: Seattle Seahawks, NFL

Sports Player of the Year: Marcus Lattimore, Running Back of South Carolina Gamecocks 

Honorable Mention: 장미란

Worst Moment of Sports of the Year: Dislocated knee and damaged multiple ligaments of Marcus Lattimore

Honorable Mention: Torn ACL of Derrick Rose

Sports Game of the Year: Colorado upsets UNLV in Big Dance

Honorable Mention: Seahawks upset Patriots

Friend(s) of the Year: S. Hiller and C. McMahan

Honorable Mention: None

The Best of the Best of the Year: Family

Honorable Mention: Ladies

New York trip: 12/7 ~ 12/9

뉴욕이 가지고 있는 특징의 대부분은, 러프하게 90% 이상은 서울이나 도쿄, 런던이나 빠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버스는 승객이 자리에 앉기 전 출발하고, 보도블럭은 지저분하다. 지하철에서는 옆사람의 어깨가 닿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수퍼마켓의 직원은 결코 웃어주지 않는다. 간판 혹은 네온사인은 화려하지만 정돈되어 있지 않고 빌딩들은 한결같이 위를 향하고 있지만 들쭉날쭉하다. 세계의 대도시들은 국적이 희미하다. 대신 대도시들끼리 공유하는 특징들이 있다. 뉴욕이 가지고 있는 색깔의 90% 정도는 뉴욕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고, 도쿄에서도 느낄 수 있고, 런던에서도 느낄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끼리는 ‘미국인들’ 끼리보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고, 더 빠른 시간내에 가까워질 수 있다. 도시 문화는 그렇게 도시라는 특수한 환경을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발달해 왔다. 뉴욕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특성은 여기서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뉴욕을 뉴욕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다른 도시들이 갖지 못하는 나머지 10% 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 10% 의 색깔은 너무 엷고 희미해서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 신경써서 바라보지 않으면 그것이 있었는지 기억하기조차 쉽지 않다. “I LOVE NY” 라고 적힌 티셔츠때문에 뉴욕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위에 둥둥 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의 정체성을 정의내려주지는 않는다. 뉴욕을 뉴욕답게 만드는 것, 다른 도시들이 베낄 수 없는 그 무엇은 바로 뉴욕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이 말하고, 입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들. 뉴욕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다른 도시들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 하나 하나가 모여 완성되는 것이지, 새빛 둥둥섬이나 청계천같은 구조물이 서울을 서울답게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서울이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서울은 이래야만 한다, 라는 강박관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시대 착오적인 행정가들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번에도 짧은 기간동안 머물렀다. 금요일 밤에 도착해 일요일 저녁에 떠났다. 48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은 한정적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가장 ‘뉴욕다운 것’ 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박물관과 미술관들이었다. 어떤 도시에 가면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를 가장 먼저 찾아 봐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어떤 도시에 가던지 그 도시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먼저 둘러 보아야 그 도시가 품고자 하는, 품고 싶어하는, 품어 왔던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그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중 하나였다. New York Review of Books 나 New Yorker 등을 읽으며 뉴욕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직접 보고 말 것이라는 꿈을 키워온지 오래이기도 했다. 지난번에 아버지와 함께 들렀을 때에는 자연사 박물관을 지나치게 오래 돌았고 MET 도 급하게 도는 바람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친 것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MoMA 부터 구겐하임까지, Neue 갤러리부터 MET 까지 토요일 하루를 몽땅 투자해 차근 차근 돌아 보았다. 물론 체력의 한계는 있었다. 오후 다섯시쯤 MET 에 마지막으로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다리가 지끈지끈 쑤셔오기 시작한 후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George Bellows 의 특별 전시회를 드디어 직접 감상할 수 있었고, 이번 여행에서의 유일한 기념품인 포스터를 한장 사기도 했다.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미술관들을 돌아 보며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많이 경험했다. MoMA 에서 본 Quay 형제의 작품들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카프카의 <변신> 에서 영감을 받은 인형 공예품들과 초창기 비디오 작품들은 특히나 더 그랬다. Neue 갤러리는 사실 에곤 쉴레의 작품들을 보러 갔는데 막상 쉴레의 작품은 하나밖에 없었고 호들러 위주로 꾸며져 있었다. 호들러가 암에 걸려 죽어가는 그의 mistress 발렌타인을 그린 그림들, 그리고 그녀가 죽은 후 3년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 자신을 그린 자화상들이 인상적이었다. 구겐하임은 미술관을 통째로 피카소의 black and white 작품들로만 꾸며 놓았는데 그의 초창기 작품들부터 전설이 되어가기 까지의 과정을 구겐하임의 독특한 구조를 통해 걸어 올라가며 함께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도시가 품고자 하는 철학을 느끼기 위해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려야 한다는 의견에는 약 절반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수집하는 작품들은 소위 말하는 ‘귀족’ 들의 전유물이다. 물론 1900년대 이후 근/현대 미술이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모두를 위한 예술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지만,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부자들의 donation 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형편이다. 때문에 이들이 자본의 힘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은 가져볼만 하다. 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철학의 다른 부분, 즉 나와 당신같은 평범한 일반인들의 구질구질한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힘을 느끼고 싶다면 거리로 나가야 한다.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을 빼고, 꽤 편한 운동화로 갈아 신은 뒤 이 골목부터 저 골목까지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걷기 시작해야 한다. 그 골목들에는 다양한 삶의 조각들이 무수히 많이 흩뿌려져 있고, 미술관과는 다르게 우리는 한푼의 돈도 지불하지 않은채 그 도시의 철학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가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 내는 돈 정도가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혹은 지불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비용이다. 그곳에서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수다를 훔쳐 듣고, 길거리 빵집에서 풍겨져 나오는 냄새를 맡고, 보도블럭 환기구에서 나오는 더운 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한참을 걸어야 한다. 도시의 철학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거리를 매우고 있는 사람들중 대부분은 나와 같은 관광객들이었다. 지도를 한 손에, 카메라를 다른 한 손에 들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뉴욕이라는 도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뉴욕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중 하나일 것이다. 쉽게 들어올 수 있고, 들어온 뒤에도 자신을 거의 완벽하게 감출 수 있는 도시. 그만큼 나갈 때에도 아무런 미련이 없는 도시. 뉴욕이 가지고 있는 diversity 는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개방성이 만들어낸 축복들중 하나일 것이다.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상이한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지하철을 타서 가만히 그 칸에 탄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 하나 관찰하다 보면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하나씩 뽑아서 태운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물론 자신들의 모국어가 묻어 나오는 아주 다양한 악센트를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영어로 소통한다. 소통에 막힘이 없는 상태에서 문화적인 다양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곳. 미국을 상징하는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들이 있겠지만 나는 미국의 역사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장소가 바로 뉴욕의 지하철이라고 생각한다. 지저분하고 불친절한데 뭘 한다고 해도 쉽게 드러나지도 않지만, 그것을 한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이 거의 없는 그런 분위기. 미국은 젊은 나라이고, 젊음에 대한 숭배가 극에 달한 나라이다. 그 맹목적인 숭배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을 바라보고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이 나라로 모여든다. 뉴욕으로 모여든다. “꿈”. 꿈이 있다는 것. 그것은 미국이, 뉴욕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더이상 꿈을 꾸지 않는 것 같다. 그저 하루 하루 먹고 살기 바쁠 뿐. 이것을 비극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지.

어렸을 때 꿈

어렸을 때 꿈이 경제학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조금 카테고리를 크게 잡아도 학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때 자신의 꿈을 말 없이 행동만으로 표현해 친구들이 추측하게 하는 게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아무 생각없이 과학자 흉내를 냈다. 현미경을 보는 것이 과학자의 전부인줄로만 알던 시기였다. 중학교 이후 꿈이 조금 구체화되던 시기에는 음악 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서브같은 잡지에 글을 쓰는 성문영처럼 되고 싶었다. 국민학교때부터 글짓기를 좋아했고 중학교때 진우를 만나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된 꿈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아버지께서 직접 음반 회사에 다니던 당신 제자의 와이프를 집으로 초청 (..), 나를 앞에 앉혀 두고 왜 음악 평론가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설명하게 하신 뒤로 그 꿈을 접었다. 굶어 죽는 것이 두려웠다기 보다는 그토록 강하게 나의 꿈을 반대하시는 부모님과 싸우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이후로 몇년동안 꿈을 꾸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간 뒤 새롭게 가지게 된 꿈은 서강 헤럴드 수습기자 세미나에서 만난 한 선배의 짤막한 강의를 듣고 난 뒤 생겨났다. 그 선배는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하며 우리가 100미터쯤 되는 곳에서 출발-해야-한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그보다 1미터라도 앞에서 출발하게 도와주는 것이 현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이후로 나의 꿈은 인류라는 거대한 물줄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한방울의 작은 조각이 되어 역사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되었다. 이 꿈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 꿈의 범주 안에서 내가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꿈이 꼭 직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경제학을 업으로 삼는 학자를 구체적인 직업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도 몇년이 흐른 다음이었고, 솔직히 지금까지도 내가 학자로서의 자질이 있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다. 아마 이 의심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학자로서의 정체성이나 자신감보다는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각이 나에게는 훨씬 중요한 것 같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들에서 살아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쓸모가 없지는 않겠냐만은, 내가 그나마 잘 할수 있는 것들중 하나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묻혀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조금은 덜해지는 것 같다.

why we failed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친구와 내가 결국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서로의 말하기 방식에 서툴었을 뿐더러 불편해 하기까지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점점 더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해 질수록 그 친구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방식에 대한 답답함이 커져 갔던 것 같다. 그는 모든 것을 돌려 말하거나 왠만하면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소위 말하는 ‘경상도의 딸’ 이었다. 아마도 나의 대답을 강요하는 방식의 대화법에 그 친구 또한 극도의 압박감을 느꼈을 것 같다. 그 과정 속에서 서로 지쳐갔던 것 같다. 나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하는 쪽을 택했고, 그녀는 깊고 오래 생각한 다음 스스로의 결론을 마련한 뒤 정말 필요한 간결한 결론만을 내게 전달했다. 서로의 생각이 바뀔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던 것도 같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말하기 방법이 옳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에 내가 점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가 맞는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냥 포기하고 싶었던 것일수도 있다.

이제는 모두 다 끝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