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민.

2000년. 수능을 망쳤다. 모의고사 점수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아마도 긴장을 너무 많이 했던 것 같다. 3교시를 채 마치지 못하고 뛰쳐 나가 구토를 해야 했다. IMF 였다. 미대 입시를 준비했던 누나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경제력이 없던 할머니댁을 동시에 몇년동안 뒷바라지해야 했던 부모님에게는 나를 재수시킬 만한 여력이 없었다. 마침 내가 가진 점수를 가지고 갈 수 있었던 가장 좋은 대학이 교직원 자녀에게 4년 장학금을 주는 대학이었다. 운이 좋았다. 재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2007년. 제대후 준비했던 한국은행이 TO 를 갑자기 절반으로 줄이면서 나같은 어중간한 준비생들은 갈 곳이 애매해졌다. 미련없이 유학을 준비했다. 한국은행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수학 과목들과 당겨 들었던 대학원 과목들이 내가 레쥬메에 적을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었다. 토익도 보지 않았고 경시대회 입상이나 인턴 경력은 전혀 없었다. 유학을 뒤늦게 준비하는 사람들이 다들 거쳐 간다는 한국의 석사 과정을 밟지 않고 학부를 졸업한 뒤 바로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교수님들의 권유도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다녀 오고 싶었다. 대학원부터는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 당시에는 미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국 지원한 열다섯개의 대학들중 가장 “랭킹” 이 낮은 곳에서만 장학금이 포함된 입학 허가가 나왔다. 조금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2012년. 그 랭킹이 가장 낮은 학교에서 나에게 준 5년의 시간이 거의 끝나간다. 지난 10여년간의 내 인생을 결정지었던 큰 두번의 결정 앞에서 주저했던 것보다 더 큰 머뭇거림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한다. 내 논문은 완성되지 않았고, 당장 보름 뒤 지도교수님들께 논문을 보여 드리며 추천서를 써주십사 부탁해야 한다. 지난주에 만났던 지도교수님은 나에게 조용히 6년차로 가서 1년 더 기다릴 것을 권유하셨다. 당신도 그러하셨다면서, 확실한 자신감이 없는 상태에서 잡마켓에 나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충고해 주셨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고 나이도 이제 서른이 되었으며 이 지난한 과정을 1년 더 반복해야 한다는 박탈감도 크다. 하지만 주머니에 돈이 떨어져서 생길 서글픈 감정이 더 클지, 좋은 논문을 쓰지 못해서 생길 서글픈 감정이 더 클지는 굳이 비교해 보지 않아도 자명해 보인다. 위의 두번에 걸친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서 나는 시간과 돈을 선택했다. 내 욕망은 잠시 뒤로 미루어 두었다. 그 결과 나는 항상 2% 부족한 사람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단 한편의 논문으로 지난 10년간의 서투름과 서두름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미국의 박사 시장은 의외로 단순하고 공정하다. 좋은 연구 성과. 단지 그것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지금 욕망하고 있다. ‘이 정도 쓰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물론 지금 당장 잡마켓에 나갈 수도 있다. 스스로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부모님께서 누누히 강조하셨던 것처럼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과정을 끝마치는 것도 물론 무척 중요하고 가치있다. 그런 수준의 논문을 들고 나가도 취직할 곳은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국의 한 국책, 혹은 대기업 산하 연구소에서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이쁘고 착한 여자를 만나 알콩달콩 연애를 할 수도 있겠지. 나이도 있으니 결혼도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고,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즐겁게 떨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만족으러운 논문 하나를 쓰고 싶다. 제대로 쓴 논문 하나를 들고 시장에서 정식으로 평가받고 싶다. 그렇게 노력해서라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때 가서 겸허히 결과를 받아 들이고 싶다. 이번만큼은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해서 성과를 내고 싶다. 그 논문 하나가 뭐 대수라고, 사실 전체 경제학사에서 보면 먼지에 지나지 않을 그 몇십페이지짜리 글이 뭐 그리 큰 의미를 지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 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하다. 지금 나는 지난 30년간의 인생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대충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지난 30년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 왔는지 그 몇십페이지짜리 종이 쪼가리에 조금이라도 더 정성스럽게 새겨 넣고 싶다.

요즘 하는 고민은 이런 것들이다. 배고프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조금 더 하자. 20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용기를 내고 있는 중이다.

 

CV

Curriculum Vitae, 혹은 Vita 라고 하는 이력서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잡마켓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의 CV 를 많이 읽게 되는데, 그 사람이 한명의 학자로서 살아온 길이 단 몇장에 간략하게 정리되어 적혀 있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바닥” 에 있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이 사람의 ‘굴곡’ 이 발생했고 또 어떤 부분에서 이 사람의 인생이 빛을 발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박사 과정을 7년만에 졸업한 사람은 마지막 2년동안 논문이 나오지 않아 꽤나 고생했겠구나, 싶고 조교수로 6년쯤 머물다가 다른 학교로 옮겨 다시 조교수직에 있다고 적혀 있다는 것은 이 사람이 테뉴어 심사에서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커리어에서 최초로 퍼블리쉬된 논문이 박사 학위를 받은 시점과 큰 차이가 없다면 그 사람의 박사 논문중 한 챕터가 발표되었을 확률이 높다. 박사과정때부터 소위 말해 아주 잘 나간 셈이다.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CV 상에는 거의 완벽한 경력을 자랑하는 사람도 그 종이에 적혀 있지 않은 어두움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극복해 가며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어려움에 좌절해 넘어지고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살아 남기도 한다. 내 CV 는 작년 겨울때쯤 한번 업데이트한 뒤로 아직 그대로 있다. 아마도 앞으로 다가올 몇주안에 완전히 새로운 모양으로 바뀔 것이다. 그 하얀 종이 위에 나는 무엇을 적을 수 있을까. 고작 서너개의 논문과 한두개의 컨퍼런스 참석, 그리고 4년 정도의 TA 경력과 1년 남짓한 인스트럭터 경력이 전부다.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 예정이라는 것, 한국어와 영어를 할 줄 알고 여러가지 잡다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안다는 것도 적어야 겠지. 은퇴가 가까워온 노교수도 몇개월에 한번은 CV 를 업데이트한다. 그분들의 CV 는 발표된 논문 목록만으로도 두세장이 훌쩍 넘어간다. 나도 30년쯤 뒤에 그정도로 충만한 인생을 살아 왔다고 담담히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지.

Grizzly Bear: Shields

애니멀 컬렉티브, 예예예스, 더티 프로젝터스등과 함께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하는 인디/네오 포크씬의 선두주자로 훌쩍 떠오른 그리즐리 비어의 2012년 신보다. 이 앨범은 극단적으로 실험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며 아방가르드한 음악을 가장 힙하게 전달하는 로컬씬이 바로 브루클린이다! 라는 주장을 펼치는 듯 했던 전작 <Veckatimest> 그보다는 훨씬 더 조용하고 포크의 원론적인 접근 방식에 충실했던 2006년작 <Yellow House>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2009년에 발매되었던 전작이 그해 최고의 앨범들중 하나였고 2006년작 역시 그해 발매된 앨범들중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했던 앨범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2012년 신보 역시 그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글쎄. 씬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대단히 혁명적인 사운드가 담겨져 있지는 않다. 그들이 가장 잘하는 부분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도 같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조금 더 원숙하고 노련해졌다는 점이다. 2009년 앨범처럼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 극단적으로 자신들을 몰아 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가락을 뽑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고하게 흘러 넘친다. 송라이팅에 있어서는 – 내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 알수는 없지만 – 조금 더 다양한 작법을 시도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이 점이 앨범의 diversity 를 효과적으로 증대시켜 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간혹 ‘작가’ 의 위치에 도달한 이들이 지나친 여유로움으로 인해 훅을 상실하고 죽죽 늘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목도하게 되는데 그리즐리 비어의 신작같은 경우 그러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한국

내가 한국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방향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386 세대를 마지막으로 투표권을 획득하기 시작한 거의 모든 세대에서 절망적인 수준의 철학의 부재를 발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이유는 이 나라가 가진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동시에 함께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단 한번도 세계의 중심에서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는 파괴력을 보인 적은 없지만 문화와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왔다.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비추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Wild Nothing: Nocturne

프런트맨 Jack Tatum 이 이끄는 슈게이징/뉴웨이브팝 밴드 Wild Nothing 의 데뷔 앨범 <Gemini> 는 그해 최고의 앨범중 하나였다. 흔해빠진 찬사이지만 이들은 그 앨범에서 80년대의 감성을 2010년대에 어울리게끔 훌륭하게 되살려냈고, 아주 팬시하고 섹시하게 잘 빠진 음악들을 뽑아 냈다. 이어진 EP 는 성대한 파티가 끝난 뒤 나온 일종의 후일담격인 뒤풀이였다. 새 앨범인 <Nocturne> 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드럼 머쉰이 아니라 라이브 드럼을 사용해 제작했다는 것. 조금 더 “밴드다운”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두번째 변화는 조금 더 사운드가 두터워 졌다는 것. 물론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벌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사운드 믹싱이 훨씬 깔끔해졌고 이와 동시에 기타와 키보드, 보컬의 구분이 조금 더 깨끗하고 영롱하게 이루어진다. 데뷔 앨범이 침대 위에서 반쯤 잠든 상태로 들으면 딱 좋은 몽롱하고 murky 한 느낌이 강했다면 두번째 앨범은 이른 아침 맑은 햇빛을 맞으며 들어도 나쁘지 않을 정도의 청량한 느낌을 전해 준다. 그렇다고 이들 음악의 색깔이 확 변했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눈물나도록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포근하다.

Twin Shadow: Confess

Twin Shadow Confess Album Art

Twin Shadow 의 데뷔 앨범 <Forget> 은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 앨범이 나올 당시 워낙 좋은 슈게이징, 혹은 80년대-레트로 스타일의 음악들이 많이 나왔고 트윈 쉐도우의 음악을 일종의 “끝물” 처럼 메타크리틱에 등떠밀려 구입한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번 듣다가 “어 그래 좋네” 하고 어딘가에 넣어둔, 그런 앨범이었다. 다른 말로 바꾸면  귀를 확 잡아 끌어 당길만한 확실한 특징이 없다고도 생각했다. 아주 매끈하게 잘 만든 레트로 스타일의 업비트 슈게이징 정도로만 생각했다.

두번째 앨범은 데뷔 앨범에 비해 훨씬 더 명확하고 또 적극적이다. 아이폰 3GS 에서 4 로 넘어 왔을 때 레티나가 주던 선명함의 차이 정도? 왜 그런가 하고 살펴 봤더니 밴드의 알파요 오메가인 George Lewis Jr. 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큰 사고를 당해서 죽다가 살아났단다. 이 앨범은 그의 이러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제작되었다. 브루클린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가 로스 엔젤레스에서 음악을 만든 것도 이 차이를 구분하는 좋은 단서가 될 것 같다. 어쨌든 그는 훨씬 더 강하게 자신의 보컬을 뽐내고 있고, 비트는 훨씬 댄서블해졌다. 맹맹한 기타 소리 대신 80년대를 강하게 환기시키는 신서사이저 음이 그의 보컬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다. 그만의 확실한 정체성을 찾았다는 점에서 이 소포모어 앨범은 일종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가 세번째 앨범에서 “올해의 앨범” 목록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MONO: For My Parents

일본 출신 포스트록 밴드 MONO 의 새앨범이 나왔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한건 2005년,  혹은 2006년 무렵이었다. 당시 만난 음악을 나보다 수백배는 더 많이 듣던 아가씨에게 추천을 받았다. 아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포스트록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들의 음악은 웅장하다. 대서사시다. 한편의 영화에 쓰이는 영화음악을 듣는 느낌을 준다. 현악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현대 영화 음악의 문법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도 있다. 클래식적인 작곡법에 기반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밴드 형태를 벗어나지 않는 모과이나 두대의 기타와 하나의 베이스만으로 거의 모든 표현을 해내는 익스플로젼스 인 더 스카이에 비해 훨씬 더 극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것도 아마 이러한 현악기 – 와 그에 따른 시각적인 효과의 극대화 – 의 적극적인 활용때문일 것이다. 이를 ‘반칙’ 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포스트록의 목적중 하나가 연주를 통한 표현 능력의 극대화라고 가정한다면 모노의 음악은 이를 충실히 재현하는 데에 그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고, 이러한 시도가 틀렸다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어찌 되었건 계속해서 생각나는 음악들이 가득 담겨져 있고, 마음을 울리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나쁘지 않은 음반이다.

(27일에 덴버에 온다. 보러 간다.)

The XX: Coexist

각자 음악을 듣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고 또 그만큼 다양한 음악에 대한 취향이 존재할 것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헤드폰을 끼고 들으면 좋은 음악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예전의 매시브 어택이나 트리키가 그랬고, 그보다도 더 전에는 디페쉬 모드와 조이 디비전을 좋아했다. 스피커로 큼지막하게 들으면서 에너지를 분출해 내는 음악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르는 보컬의 작은 숨소리나 기타줄을 옮길때 나는 삐그덕거리는 소리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음악들이다. The XX 의 데뷔 앨범이 마냥 좋았던 이유도 어쩌면 그러한 개인적인 취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소포모어 앨범에 대한 평가는 데뷔 앨범때처럼 호평 일색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영국과 미국쪽 평단에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현상이 자못 흥미롭다. 두번째 앨범이 못미더운 이유로 미디어는 ‘심심하다’ 라는 이유를 댄다. 비트가 재미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들의 비트는 무척 단조롭고 심심하다. 하지만 그래서 음악이 재미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들을 특정 장르 안에서 분석하려는 좁은 시선에서 비롯된다.

The XX 는 감히 말하건데 하나의 장르를 개척하고 창조해낸 이들이다. 이들의 음악은 그 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다. 이들을 설명하는 레퍼런스를 억지로 끄집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의 한 블로그가 거론한 것처럼 (좀 뜬금없긴 하지만..) 인터폴도 나쁘지 않은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이 인터폴의 하위 장르인가? 그건 아니다. The XX 는 “말하지 않는 것”, “소리내지 않는 것” 으로부터 음악을 창조해 냈다. 비어 있는 곳을 집중하게 만들었고, 비어 있는 공간을 가치있게 만들었다. 애니멀 컬렉티브처럼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끄집어 내고 꽉꽉 채워넣는 음악을 최고로 치는 사람이라면 무척 심심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The XX 의 이러한 시도가 예전에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이들처럼 성공적이고 “섹시하게” 하나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낸 아티스트는 과거 그 어떤 시대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소포모어 앨범은 데뷔 앨범보다 한발자국 더 깊게 들어간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일렉트로닉 밴드라는 정체성조차 거부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스튜디오 앨범 내에서만 이해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소리를 잘게 쪼개서 분석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나의 색깔로, 느낌으로 받아 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데뷔 앨범이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알리는 선전포고였지만 음악이라는 예술의 하위 장르안에서 이루어진 성취라면 소포모어 앨범은 그보다 훨씬 더 직관적이고 총체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창조해 내는 빈 공간은 영롱하게 울려 퍼지는 기타음이나 묘하게 어울리는 남녀 보컬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또다른 세계를 창조해 낸다. 싱글 “Angels” 의 뮤직 비디오를 보면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인다. 이 비디오에서 연주에 참여하는 멤버는 딱 한명이다. 두명은 그 퍼포먼스를 그냥 지켜본다. 그런데 이 음악은 셋이 만드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치는 한명과, 침대에 누워 있거나 의자에 앉아 그녀를 지켜보는 두명의 다른 멤버. 두명의 멤버가 하는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그녀를 침묵속에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 The XX 의 정체성을 완성시켜 주는 것이다. 궤변이 아니라 진짜 그렇다. 현대 팝음악계에서 이정도의 수준에서 “노는” 아티스트가 몇이나 있을까. 가끔은 음악 평론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The XX 에 대한 담론을 보면서 그러한 감정을 다시 한번 느낀다.

여자 친구, 여자, 꿈.

‘여자 친구’ 는 항상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흔히 ‘애인’ 이라고 부르는, 결혼하기 전 사랑에 빠져 데이트를 하는 상대방을 가리킬 수도 있고, 두루 사귀는 여러 친구들중 성별이 여자인 특정 그룹을 지칭하기도 한다. 미국에 와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도 같은 종류의 혼란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퍽 재미있는 일이다. 그래서 “Girlfriend” 와 “Friend of Girls” 로 구분하기도 하는 것 같다. Urban Dictionary 에 “friend girl” 을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A female you don’t want to screw. She could be unappealing, not interested, her bothers would rip you dick off. Or very rarely you value this person so much you would rather keep her as a friend , then risk loosing her as a lover.

그러니까, 친구인 여자들은 보통 나에게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거나 너무 소중해서 -사귀다가 헤어져서- 잃기 싫은, 옆에 계속 두고 싶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이 정의가 정확하다는 consensus 는 없지만 대충 맞는 말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단 한번도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사귄 적이 없고, 헤어졌을 당시에는 그 사람에 대한 성적인 욕구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애인의 가슴이 내 팔꿈치에 닿는 순간보다 그 친구의 마음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혹은 그 친구의 손을 처음 잡는 순간 훨씬 더 큰 떨림과 흥분을 느꼈지만, 어쨌든 성적인 부분과도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너무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에 결코 사랑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다. 물론 뜻대로 잘 되지 않아서 결국 친구 관계조차 지키지 못하긴 했다.

아무튼, 나의 경우에는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이 사람이 그냥 ‘사람’ 으로 다가오는지 ‘여자’ 라는 특성을 강하게 뿜으며 다가오는지 직감적으로 눈치채는 편이다. 이건 전적으로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나에게 달려 있는 부분이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여성성의 ‘정도’ 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매우 여성스럽고 예쁘게 생긴 사람이 반드시 ‘여자’ 로서 내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일종이 육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처음 보자마자 “아, 이 사람은 내 인생에서 꽤 오랜 기간동안 ‘여자’ 로서 살아가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과 반드시 사귀는 것은 아니다. 연애는 그외에 다른 많은 요인들이 작용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니까) 그 사람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 사람이 외적인 부분에서 내게 강하게 어필한 것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람에게서 성적인 매력을 크게 느낀 탓일까.

최근에 만난 여자는 양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고, 그 중에서 내가 ‘여자’ 로서 인식하기 시작한 여자는 그보다 훨씬 적다. 한명, 혹은 두명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어제 꿈에 그 사람이 나왔다. 잠들기 직전 휴대폰으로 그 사람 사진을 본 것이 결정적이었지 싶다. 꿈속에서 나는 그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그리고 그 사람도 좋은 대답을 돌려 주었다. 꿈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순조롭게 흘러 갔다. 나는 의자에 앉고 그 사람은 침대에 누워 대화를 몇마디 더 나누었다. 나는 그 사람의 유머 감각과 이해심, 그리고 굳은 심지가 좋았다. 꿈속에서 그녀는 용기있는 사람이었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 누구나 각자의 방법이 한두가지씩은 있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외로움이 지나치게 심해질 경우 한밤중에 국이나 찌개를 한소쿰 끓인 뒤 잠드는 짓을 종종 한다.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것은 아마도 내 평생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최소한 그 냄새만큼은 재료의 적당한 혼합만으로 제법 그럴싸하게 흉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났을때 방문 사이로 스며들어오던 것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얼른 일어나서 씻어 혁아” 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 다른 하나는 씻은 뒤에 먹게 될 국 혹은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소리와 냄새. 전자는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 내어 상상 속에서만 메아리칠 뿐이지만, 후자를 나의 좁은 집안에 되살려 내는 것만으로 마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과 같은 착각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기에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