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무라카미 하루키가 “무라카미 라디오” 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패션지 <앙앙> 에 2009년 한해동안 기고한 에세이를 모은 수필집이다. 최신 수필집인줄 알고 덜컥 주문했다가, 사실은 출판된지 좀 된 책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다시 2012년 6월 초판이 인쇄된 그의 가장 최신 수필집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다. <잡문집> 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그의 글 모음집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읽어 보지는 않았다) 그 책이 아주 오래전부터 최근까지 발표되지 않았던 그의 글들을 통시적으로 묶어 놓은, 그야말로 ‘集’ 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면 이 책은 1년동안 매주 같은 지면에 발표한 에세이를 모아 놓았기 때문에 조금은 더 일관된 색채를 띠고 있는 하나의 완성된 책으로 읽혀도 무방할 것이다.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매주 일정한 분량의 글을 ‘생산’ 해 내는 방식은 그의 다른 수필집에서 드러났던 작가로서의 규칙적인 삶의 방식과도 맞닿아 있는 듯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물론 형태의 일관성이 52개의 수필이 모두 같은 수준의 감흥을 준다는 가정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어떤 에세이는 아주 재미있고 다른 에세이는 꽤 묵직한 무게감이 있지만, 그와 비례해 꽤 많은 수의 에세이들은 몹시 지루하거나 따분하다. 그는 소설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고 번역을 부업으로 생각하며 수필은 “맥주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그의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과 같은 치열하고 꼼꼼한 작업 과정을 수필에서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사치일 것이다. 오히려 그의 수필에서 느껴지는 울퉁불퉁하고 가벼운 색채가 일종의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의 소설보다 수필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수필은 긴장이 해제된 상태에서 맥주나 차 한잔을 앞에 놓고 가볍게 떠드는 수다와 같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이론이나 치열한 논쟁보다는 어제 골목을 걸어가다 마주친 고양이 한마리의 생김새에 대해 이야기할 확률이 높은 이야기 자리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벼운 주제들 안에서 심오한 진리를 발견해 내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하루키의 수필이 가지는 매력은 여기에 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찾아 내는 섬세한 관찰력과 결코 무겁지 않은, 가볍게 들어 넘길 수 있지만 왠지 기억하고 싶게 만드는 말들을 툭툭 던지는 통찰력. 누구나 하루키 정도의 나이를 먹을 수는 있지만 그가 가진 것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이 블로그에서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처음인 것 같아서 내가 왜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지에 대해 짤막하게 기록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그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군대에서였다. 우연히 내무반에 있는 책장에서 <태옆감는 새> 1권을 발견했다. 당시 내가 있던 군대는 읽을 거리가 무척 부족했다. 끽해야 <좋은 생각> 이나 <국방 일보> 따위였으니까. (물론 이 두 매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 외로 따분하고 지루한 곳인 군대에서 하루키의 소설은 꽤 몰입도가 있었다. 당시까지 출간되었던 하루키의 모든 소설과 수필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께 부탁을 드려서 그의 다른 소설들인 <댄스 댄스 댄스> 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노르웨이의 숲> 등을 받아 읽었다. <해변의 카프카> 는 제대후 직접 사서 읽었다. 이후 틈틈이 찾아 읽었던 그의 초기 단편 모음집까지 합하면 그의 소설들을 꽤나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들을 결코 집중해서 파지 않는 나의 독서 성향에 비추어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의 소설들은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때문에 구조를 통해 읽어야 하는 부분이 꽤 되는 편이다. 문학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부분도 아마 그러한 구조적인 설계에 있어서의 정교함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재미가 있다. 읽는 내내 빠져들게 만드는 몰입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구조와 문체, 서사 사이에서 주제 의식이 긴밀하게 묶여 있다. 흠잡을 구석이 별로 없는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소설이 모든 이들에게 좋은 소설일 수는 없다. 아주 맛있고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하며 생태계를 해치지도 않는 음식이 있다고 해도 만약 그 음식이 소고기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채식주의자에겐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 그 음식 참 좋겠네’ 라고 추임새를 넣어줄 수는 있지만, 결코 그 음식을 직접 음미하면서 찬양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 하루키의 소설은 그런 의미다. 부차적인 이유를 하나 더 대자면 그를 둘러싼 담론들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1Q84> 신드롬같은 것도 그랬다. 정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의 세계관에 동조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 동조에 앞서 그의 세계관과 철학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그의 수필들은 약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그의 수필은 소설과는 다르게 어설프게 짜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 특정 독자층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가는대로 휘갈겨 썼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그 와중에 그의 개인적인 부분을 알게 되고, 그 와중에 배울 점을 찾게 된다.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며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삶을 규칙적으로 이끌어가는 점은 지난 4년동안 항상 나의 머릿속에 맴돌며 일종의 롤모델과 같은 역할을 했다. 물론 나는 그처럼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재즈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애정, 삶을 관조하는 태도등에서도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 하루키의 수필은 딱 거기까지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간,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한 작가가 자신의 삶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조근조근 이야기해줄 때 그것을 열심히 메모해 가며 들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 thoughts on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1. 저도 이 작가를 좋아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에서 과대평가되고 있다고도 생각하고.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었는데,일본인 특유의 superficial한 면이 많다고 느꼈어요. 구조가 인공적이고 이야기가 호기심을 끄는데가 있어 몰입하게 만들지만 읽는동안 즐거워서라기 보단 궁금해서 읽었던거고 그 얘기를 결국 다 듣고 났을땐 마음에 크게 남거나 새로운 문제제기다라고 느껴지진 않았어요.그리고 전체구조가 인상적이었지만세부적인 면에서는 헛점이 많고..또 작가가 영향받은 여러 사조들이 혼재해서 단정하지 않은것도 저는 좀 별로였어요.복잡하고 무거워보이는 이야기를 통해 그가 말하려는게 그만한 무게가 있는지 의구심이…. 문체가 진부하기도 하고.
    물론 저의 짧은 견해일뿐이고.. 제가 이 작가의 장점에 어둡거나,이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도 다 충분한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수필은 재밌을까? 궁금했는데 이 리뷰를 읽으니 제가 하루키에게 느꼈던 점이 다시 생각나네요

    • 무슨 말씀하시는지 이해한달까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읽었어요. 확실히 그런 부분들을 느낄 수 있죠. 일본 작가 특유의 색채는 저도 느꼈던 부분이고요. 수필은 소설보다 조금 더 단순하고 따뜻하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아무래도 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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