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myo: Floating Ones

취미로 블로그에 앨범 리뷰를 쓰다 보면 외국 음악에 조금 더 관대하고 한국 음악에 조금 더 비판적이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 정도일 것 같다. 첫째, 외국 음악은 메타크리틱이나 가디언, 뉴욕타임즈, 심지어 피치포크까지 뒤져가며 “검증된” 앨범만을 구입한다. 이에 반해 한국 음악은 그런 식으로 게으른 나를 위해 검증해 줄 미디어가 없다. 알음알음 “좋더라” 하는 음반들을 구입해야 한다. 타국에 있다 보니 앨범을 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절차도 번거롭기 때문에 많은 음악을 들을 수도 없다. 한국 음악에 대한 귀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한국 음악에 더 큰 애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애정이 있으니까 화도 내고 잔소리도 하고 투정도 부리는 것 아닐까. 비겁한 변명이다.

여기 드디어 한국인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 칭찬할 수 밖에 없는 음반 한장이 있다.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뮤지션 Mimyo 는 내가 트위터에서 말을 걸면 상냥하게 대답해 주는 유일한 셀러브리티다. 키득거리면서 볼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사이트 krrr.kr 를 관리하기도 하고 가끔 웨이브에 글을 쓰기도 한다. 이 앨범에 대한 자세한 리뷰나 뒷 이야기들은 인터넷상의 다른 미디어들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이 앨범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감상용 댄스음악” 에 대한 회귀본능같은 일깨워 주었다. 리듬감이 거의 완전히 거세된 댄스음악에 대한 욕구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때문에 앰비언트적인 효과까지 주는 이 앨범을 헤드폰을 끼고 들을 때 느껴지는 유일함(uniqueness) 같은 것을 느꼈다. 다른 뮤지션들이 흉내낼 수 없고 제공해 줄 수 없는 긴장감을 즐겼던 것 같다. 이 앨범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가지는 또다른 미덕은 음악으로부터 파생되는 연상 작용의 무한한 팽창성이다. 아주 좋은 음악이라도 그 음악이 주는 특정 이미지만을 수동적으로 소비해야만 할 때가 있다. 생각보다 별로인 음악이라도 그 음악을 들으며 다른 그림들을 그려나갈 수 있고, 그러한 사고과정의 확장을 경험하며 내적인 (개인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이 앨범은 후자에 가깝다. (“별로” 라는 뜻이 아닙니다..) 음악을 들으며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준다는 점에서 사고 과정의 확장을 통해 다른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리서치 아이디어를 얻는다던가,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한다던가 하는 식의 개인적인 경험으로의 확대같은 것들.

이런 음악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뮤지션의 존재만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하면 당사자에게 너무 슬픈 일일 것 같다. 그보다는 최근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이라는 말이 더 반가울 것 같기도 하다.

2 thoughts on “Mimyo: Floating Ones

  1. 안녕하세요,..
    제가 아마 이 블로그를 처음 들어 온 계기가 된 포스팅인 것 같아요. mimyo floating ones. 처음 어디서 들었는지 왜 , 어떻게 검색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다시 발견하게 되었어요, 이 글을.
    저는 스스로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그 만큼의 지식도 노력도 없이 단지 어떤 감성에 의해 어떤 음악들을 좋아하게 되고, 기억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요?’라고 묻는다면 음악 듣고 푸는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 처음 음악에 대해 집착했달까 기억 나는 게 중학교 때 쯤 어느 여성 보컬의 깐쪼네 ;노노레타’, 정말 심취해서 듣고 있는데 언니가 방해를 해서 뭔가를 집어 던지고 굉장히 화를 냈던 기억을 하는 노노레타. 이후 쓰잘데기 없는 유행 가요들. 친구 은진이와 뒷동산에 올라가 번갈아 가며 유재하의 노래를 불렀었던 기억은 최근 몇년의 것들 보다 더 진하게 기억을 점유하고 있어요.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같은 거. 친구 은진이는 내게 음악적으로 참 중요한 존재인데 그 친구가 나랑 안 맞는 것도 많은데 유독 개가 노래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진실하게 느껴진단 말이예요. 이상한 마력이 있어요. 20여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 친구의 노래하는 모습이 선하고 저는 그 친구의 그 모습을 참 많이 좋아합니다.
    지난 해 몇 년간의 절교 끝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고 집을 찾아 온 친구 은진이가 조규찬의 무지개를 얘기하고는 자기 스마트폰으로 들려 주는데 난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와 조규찬의 ‘무지개’ 나 ‘소중한 너’ 가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조는 가끔 음악과 음악가, 그 음악을 전달해 주는 사람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음악 앞에서의 그들은 완벽한 인격이라는 생각과 연상을 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음악 씨디를 들고 찾아 와 준 종혁씨가 매너남, 배려남, 약속 지키는 남이 실 수 있겠지만, 저는 아마 음악과 잊지 못할 존재로 기억하게 될 겁니다. 그러길 바랍니다. 그게 제가 아직 꿈틀대고 있다는 표식일테니까요.

    • 으허 너무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한번 더 찾아 뵈어야지, 하고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쉽게 몸이 움직여지지 않네요. 직장인의 하루는 생각보다 훨씬 둔중하고 버거운 것 같습니다 ㅋ 조만간 찾아뵙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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