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ke Mills: Drawings from the Film Beginners

Mike Mills: Drawings from the Film Beginners

영화 <비기너스> 는 감독 마이크 밀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속 주인공인 올리버처럼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죽기 직전 자신이 평생 게이로 살아 왔음을 고백했다. 이완 맥그리거는 메이킹 필름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 바로 감독의 분신이었기 때문에 그 어느 영화보다 감독과 더 많은 대화를 했노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영화 중간중간 밀스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중요한 기제로 쓰인다.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중요한 도구였던 올리버의 앨범 속지 작업 “History of Sadness” 를 비롯해 그가 전 여자친구들을 회상하며 그린 초상화등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영화에서 찰나의 순간동안 스쳐 지나갔던 그림들을 종이 위에서 천천히 음미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그가 남긴 획 하나 하나를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지독한 블랙 유머와 꽤나 냉소적인 시선들이 어우러져 있는 가운데 나약하고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History of Sadness” 연작에서도 드러나듯이 통시적인 관점을 통해 스토리를 진행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미국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부터 아주 오래된 과거 속에 등장하는 이름없는 사람까지, 역사적 상황에 처한 개인의 입장을 표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존재하는 인간 본연의 고독함을 드러내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 가톨릭 교회와 정치, 경제

미국 가톨릭 신자는 전체 인구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중 6~70% 정도가 “정기적” 으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미국에는 꽤 많은 추기경과 주교들이 있는데 이는 전체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많은 돈이 미국 가톨릭 교회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마 교황청 재정의 상당 부분은 미국 교회쪽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가톨릭 교회의 한해 예산은 GE 의 1년 매출액을 능가하고, 가톨릭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은 미국의 모든 학교와 병원중 10% 가 넘는다. 이들 기관에서 교회가 고용하는 사람들의 수는 월마트의 -파트 타임을 포함한- 모든 피고용인 숫자보다 많다. 즉 미국 가톨릭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큰 조직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미국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가톨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한계가 현실과 충돌할 때 발생한다. 최근 오바마 정부는 미국 가톨릭 교회와 한차례 충돌을 겪었다. 오바마는 모든 학교와 병원에 콘돔등의 피임 도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이 기관에 속한 사람들에게 피임에 대한 도움을 의무적으로 제공할 것을 강제했다. 문제는 위에 기술한 것처럼 전체의 10% 가 넘는 가톨릭계 학교와 병원에서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톨릭은 피임 자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리에 따라 잉태된 모든 생명은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피임도 일종의 낙태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충돌은 결국 가톨릭계 학교와 병원에 보험을 제공하는 보험 회사들이 간접적으로 피임에 대한 도움을 주는 것에 합의함으로써 일단락되었지만,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후 오바마는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역대 미국 대통령중 최초로 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 의장이자 전체 수장인 티모시 돌란 추기경이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마침 기도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돌란 추기경은 만약 민주당에서 비슷한 제의를 해온다면 당연히 응하겠다고 말했지만 민주당에서 그에게 그러한 부탁을 할지는 미지수다.

공화당 티파티 단체들은 줄기차게 pro-life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여전히 낙태 문제가 선거에서 중요한 이슈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가 경제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과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롬니, 라이언 모두 비지니스와 조세쪽에 특화된 인물이라는 사실조차 무색할 정도로 공화당내 극보수 세력은 끊임없이 가족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 파이낸셜 타임즈의 오피니언란에 나온 것처럼 롬니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가 속한 정당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그는 꽤 괜찮은 대통령 후보이지만, 그가 속한 정당의 극단적인 세력의 압박에 계속해서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폴 라이언의 부통령 후보 임명은 아주 단적인 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내 가톨릭 신자들의 투표 성향은 정확히 50 대 50으로 갈리고 있다는 것이고, 지역별/성별/나이별로 쪼개 봐도 아주 일반적인 미국인들으 투표 성향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즉 가톨릭 교회의 교리라던가 미국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사실상 가톨릭 신자 개개인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 2008년 대선에서 미국 가톨릭 신자들은 – 다른 전체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 오바마를 지지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보다는 약간 더 공화당쪽으로 기울고 있다. 다른 모든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교황청은 낙태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결코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교리를 반드시 받아 들여야 하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리버럴한” 가톨릭 신자들이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스패니쉬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 계층에 속한다. 감세같은 공화당의 정책에는 동조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에 조금 더 친화적인 민주당을 지지할 확률이 높다. 애리조나에서 공화당이 통과시킨 이민자들에 대한 불심검문에 대한 스패니쉬 이민자들의 반대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부분의 스패니쉬 이민자들은 맥시코에서 넘어 온다. 맥시코는 인구의 95% 가 가톨릭 신자일 정도로 국교 자체가 가톨릭이다. 즉 로마 교황청과 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이들은 점점 그들의 신자들로부터 고립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단기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동성애나 낙태가 정치 선거에서 이슈가 되는 상황을 막는다던지 하는 식의 기술적인 대처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주 이코노미스트지에 나온 것처럼 미국 가톨릭 교회도 점점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 주일마다 미사에 참석해 헌금을 내는 신자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요즘과 같은 경기 침체에 학교나 병원에서 나오는 돈을 굴려서 적자를 해소하는 방법도 시원치 않다. 지난해 미국 가톨릭 교회 전체 예산이 130억불이었는데 이중 30억불이 신자들의 헌금에서 나왔다. 작지 않은 비율이다.

Jessie Ware: Devotion

영국의 신성 보컬리스트 제시 웨어의 데뷔 앨범을 드디어 들었다. 다들 Sade 를 언급하던데 솔직히 나는 웨어의 앨범을 들으면서 그 어떤 레퍼런스도 떠올리지 못했다. Sade 와는 색깔이 좀 다른 것 같다. 아마도 Post-Sade 를 원하는 미디어의 hype 이 좀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물론 알엔비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여성 보컬리스트로서 굉장히 넓은 사운드스케잎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Sade 를 언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Night Light” 같은 곡에서는 그럴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하지만 굳이 제시 웨어에 대한 레퍼런스를 만들어 내고 싶다면 훨씬 더 다양한 이름들을 거론해야만 할 것 같다. 우선 덥스텝 아티스트들을 끌고 들어와야 한다. 4AD 레이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No to Love” 같은 곡들이 대표적인 예다. 그녀의 데뷔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SBTRKT 또한 일렉트릭/덥스텝 프로듀서다. 그런데 “Swan Song” 이나 “Something Inside”, “110%” 에 이르면 덥스텝이 아니라 투스텝/브리티쉬 개러지 비트를 바탕으로 리듬을 자기 멋대로 가지고 노는 팝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Bat for Lashes 나 Lykke Li 같은 색채가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곡들에서는 아델이나 에이미하우스와 같이 목소리가 가진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묵직하게 밀어붙이는 맛까지 느껴진다.

레퍼런스를 못찾겠다고 해놓고 엄청난 아티스트들의 목록을 만들어버렸다. ㅋ 아무튼, 웨어의 데뷔 앨범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가 어느 한 레퍼런스에 묶이지 않고 자유자재로 음악을 가지고 논다는 데에 있다. 특정 형식 안에 갇혀서 기대했던 것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재능들이 있는 반면, 장르가 가진 특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한계를 간단하게 뛰어 넘어 버리는 센스를 가지고 있는 재능들도 있다. 웨어는 후자의 경우같다. 대단히 좋은 팝 앨범이다.

Dirty Projectors: Swing to Magellan

Dirty-Projectors-Swing-Lo-Magellan

Dirty Projectors 가 메이저에서 발표한 세번째 앨범. 전에 발표한 두장의 앨범 모두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세번째 앨범에서 망하던가 터지던가” 하는 기대를 누구나 했을 것이다. 결과 자체는 나쁘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들 커리어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뽑아낸 듯한 느낌이고, 킬링 트랙 몇곡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은 무엇보다 이들을 공연 수익을 증대시켜주는 일등공신이 되지 않을까 하는 농담반 진담반의 덕담도 건내고 싶을 정도다. 훨씬 멜로디컬해졌다. 타협을 했다기 보다는 ‘감을 잡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애타게 찾아왔던 훅을 드디어 발견한 느낌이랄까.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라인에 이들 특유의 리드미컬한 곡 구성이 이들에게 차별성을 부여한다. 한 곡 내에서도 변화무쌍하게 탈바꿈하는 리듬 파트와 알엔비, 가스펠, 포크등을 무차별적으로 섭취하는 잡식성의 스펙트럼까지 더해지다 보니 이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색깔을 지켜나가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듣기 쉬운 음악은 아니다. 괜찮은 곡과 그렇지 않은 곡 사이에 편차가 크다는 것은 여전히 이들이 극복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뉴욕 언더그라운드에서 입소문으로만 퍼져 있던 Dave Longstreth 의 천재성은 여전히 그가 가장 잘하는 것들을 생산해 낼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오버그라운드의 수요를 자극할 정도로 매끈하게 가공되어 나오느냐일 것이다. 그 점에서 다시 한번 이 앨범은 그들 커리어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뽑아냈다고 말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무라카미 하루키가 “무라카미 라디오” 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패션지 <앙앙> 에 2009년 한해동안 기고한 에세이를 모은 수필집이다. 최신 수필집인줄 알고 덜컥 주문했다가, 사실은 출판된지 좀 된 책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다시 2012년 6월 초판이 인쇄된 그의 가장 최신 수필집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다. <잡문집> 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그의 글 모음집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읽어 보지는 않았다) 그 책이 아주 오래전부터 최근까지 발표되지 않았던 그의 글들을 통시적으로 묶어 놓은, 그야말로 ‘集’ 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면 이 책은 1년동안 매주 같은 지면에 발표한 에세이를 모아 놓았기 때문에 조금은 더 일관된 색채를 띠고 있는 하나의 완성된 책으로 읽혀도 무방할 것이다.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매주 일정한 분량의 글을 ‘생산’ 해 내는 방식은 그의 다른 수필집에서 드러났던 작가로서의 규칙적인 삶의 방식과도 맞닿아 있는 듯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물론 형태의 일관성이 52개의 수필이 모두 같은 수준의 감흥을 준다는 가정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어떤 에세이는 아주 재미있고 다른 에세이는 꽤 묵직한 무게감이 있지만, 그와 비례해 꽤 많은 수의 에세이들은 몹시 지루하거나 따분하다. 그는 소설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고 번역을 부업으로 생각하며 수필은 “맥주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그의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과 같은 치열하고 꼼꼼한 작업 과정을 수필에서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사치일 것이다. 오히려 그의 수필에서 느껴지는 울퉁불퉁하고 가벼운 색채가 일종의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의 소설보다 수필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수필은 긴장이 해제된 상태에서 맥주나 차 한잔을 앞에 놓고 가볍게 떠드는 수다와 같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이론이나 치열한 논쟁보다는 어제 골목을 걸어가다 마주친 고양이 한마리의 생김새에 대해 이야기할 확률이 높은 이야기 자리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벼운 주제들 안에서 심오한 진리를 발견해 내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하루키의 수필이 가지는 매력은 여기에 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찾아 내는 섬세한 관찰력과 결코 무겁지 않은, 가볍게 들어 넘길 수 있지만 왠지 기억하고 싶게 만드는 말들을 툭툭 던지는 통찰력. 누구나 하루키 정도의 나이를 먹을 수는 있지만 그가 가진 것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이 블로그에서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처음인 것 같아서 내가 왜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지에 대해 짤막하게 기록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그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군대에서였다. 우연히 내무반에 있는 책장에서 <태옆감는 새> 1권을 발견했다. 당시 내가 있던 군대는 읽을 거리가 무척 부족했다. 끽해야 <좋은 생각> 이나 <국방 일보> 따위였으니까. (물론 이 두 매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 외로 따분하고 지루한 곳인 군대에서 하루키의 소설은 꽤 몰입도가 있었다. 당시까지 출간되었던 하루키의 모든 소설과 수필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께 부탁을 드려서 그의 다른 소설들인 <댄스 댄스 댄스> 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노르웨이의 숲> 등을 받아 읽었다. <해변의 카프카> 는 제대후 직접 사서 읽었다. 이후 틈틈이 찾아 읽었던 그의 초기 단편 모음집까지 합하면 그의 소설들을 꽤나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들을 결코 집중해서 파지 않는 나의 독서 성향에 비추어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의 소설들은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때문에 구조를 통해 읽어야 하는 부분이 꽤 되는 편이다. 문학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부분도 아마 그러한 구조적인 설계에 있어서의 정교함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재미가 있다. 읽는 내내 빠져들게 만드는 몰입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구조와 문체, 서사 사이에서 주제 의식이 긴밀하게 묶여 있다. 흠잡을 구석이 별로 없는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소설이 모든 이들에게 좋은 소설일 수는 없다. 아주 맛있고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하며 생태계를 해치지도 않는 음식이 있다고 해도 만약 그 음식이 소고기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채식주의자에겐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 그 음식 참 좋겠네’ 라고 추임새를 넣어줄 수는 있지만, 결코 그 음식을 직접 음미하면서 찬양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 하루키의 소설은 그런 의미다. 부차적인 이유를 하나 더 대자면 그를 둘러싼 담론들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1Q84> 신드롬같은 것도 그랬다. 정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의 세계관에 동조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 동조에 앞서 그의 세계관과 철학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그의 수필들은 약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그의 수필은 소설과는 다르게 어설프게 짜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 특정 독자층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가는대로 휘갈겨 썼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그 와중에 그의 개인적인 부분을 알게 되고, 그 와중에 배울 점을 찾게 된다.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며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삶을 규칙적으로 이끌어가는 점은 지난 4년동안 항상 나의 머릿속에 맴돌며 일종의 롤모델과 같은 역할을 했다. 물론 나는 그처럼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재즈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애정, 삶을 관조하는 태도등에서도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 하루키의 수필은 딱 거기까지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간,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한 작가가 자신의 삶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조근조근 이야기해줄 때 그것을 열심히 메모해 가며 들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Mimyo: Floating Ones

취미로 블로그에 앨범 리뷰를 쓰다 보면 외국 음악에 조금 더 관대하고 한국 음악에 조금 더 비판적이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 정도일 것 같다. 첫째, 외국 음악은 메타크리틱이나 가디언, 뉴욕타임즈, 심지어 피치포크까지 뒤져가며 “검증된” 앨범만을 구입한다. 이에 반해 한국 음악은 그런 식으로 게으른 나를 위해 검증해 줄 미디어가 없다. 알음알음 “좋더라” 하는 음반들을 구입해야 한다. 타국에 있다 보니 앨범을 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절차도 번거롭기 때문에 많은 음악을 들을 수도 없다. 한국 음악에 대한 귀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한국 음악에 더 큰 애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애정이 있으니까 화도 내고 잔소리도 하고 투정도 부리는 것 아닐까. 비겁한 변명이다.

여기 드디어 한국인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 칭찬할 수 밖에 없는 음반 한장이 있다.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뮤지션 Mimyo 는 내가 트위터에서 말을 걸면 상냥하게 대답해 주는 유일한 셀러브리티다. 키득거리면서 볼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사이트 krrr.kr 를 관리하기도 하고 가끔 웨이브에 글을 쓰기도 한다. 이 앨범에 대한 자세한 리뷰나 뒷 이야기들은 인터넷상의 다른 미디어들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이 앨범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감상용 댄스음악” 에 대한 회귀본능같은 일깨워 주었다. 리듬감이 거의 완전히 거세된 댄스음악에 대한 욕구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때문에 앰비언트적인 효과까지 주는 이 앨범을 헤드폰을 끼고 들을 때 느껴지는 유일함(uniqueness) 같은 것을 느꼈다. 다른 뮤지션들이 흉내낼 수 없고 제공해 줄 수 없는 긴장감을 즐겼던 것 같다. 이 앨범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가지는 또다른 미덕은 음악으로부터 파생되는 연상 작용의 무한한 팽창성이다. 아주 좋은 음악이라도 그 음악이 주는 특정 이미지만을 수동적으로 소비해야만 할 때가 있다. 생각보다 별로인 음악이라도 그 음악을 들으며 다른 그림들을 그려나갈 수 있고, 그러한 사고과정의 확장을 경험하며 내적인 (개인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이 앨범은 후자에 가깝다. (“별로” 라는 뜻이 아닙니다..) 음악을 들으며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겨준다는 점에서 사고 과정의 확장을 통해 다른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리서치 아이디어를 얻는다던가,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한다던가 하는 식의 개인적인 경험으로의 확대같은 것들.

이런 음악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뮤지션의 존재만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하면 당사자에게 너무 슬픈 일일 것 같다. 그보다는 최근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이라는 말이 더 반가울 것 같기도 하다.

Japandroids: Celebration Rock

 


벤쿠버 출신의 2인조 밴드의 소포모어 앨범을 들었을 때 떠오른 비교 대상은 No Age 였다. 이들의 두번째 앨범 <Celebration Rock> 은 No Age 가 <Nouns> 에서 <Everything in Between> 으로 훌쩍 점프했던 것과 같은 정도의 인상을 준다. 단순히 드럼과 기타로만 이루어진 2인조 밴드라는 유사성때문만은 아니다. 꽤 괜찮은 개러지 밴드에서 록음악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적인 큰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데뷔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해 최고의 앨범은 결코 아니었다. 많은 이들을 깜짝 놀래켰고, 워크맨의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초대받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이들의 음악을 워크맨의 공연장에서 처음 접했는데 매우 신선하고 가끔은 신나기도 했지만 이들의 노래가 세상의 음악씬을 바꿀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은 두번쨰 앨범에서 아마도 올해 가장 신나는 록음악 앨범을 내놓았다. No Age 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워크맨이 1집에서 3집으로 넘어가는 기간동안 이루어냈던 것처럼, 짧은 기간내에 엄청난 성장을 한 것이다. 거의 모든 곡들이 아주 본능적인 비트로 가득차 있다. 노이즈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줄 안다. 그 안에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훅이 있다. “Celebration Rock” 이라는 앨범 타이틀은 이들의 두번째 앨범에 대한 가장 완벽한 설명이다.

가을방학: 실내악 외출 EP

가을방학이 클래식을 전공한 뮤지션 김재훈과의 콜라보레이션 EP 를 내놨다. 기존의 네곡이 새롭게 편곡되어 (“동거” 는 가사가 새롭게 쓰였다) 들어 갔고 두곡의 새로운 곡과 김재훈의 연주곡 하나가 함께 들어가 있다. 가을방학이 가지고 있는 미덕이야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쫀득쫀득하게 귀에 착착 감기는 가사와 계피가 가지는 달콤한 가사 전달력, 그리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팝으로서의 완성도. 여기에 김재훈이 스트링 편곡으로 가세해 클래식적인 느낌을 살려 준다. 듣는 내내 부담이 전혀 없으면서도 기존에 가을방학이 가지고 있던 매력을 거의 상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곡이 세개밖에 없다는 위험성을 상당 부분 피해가는 듯 보인다. 정바비는 항상 그렇지만 매우 영리하다. 너무 기민하게 움직여서 인간적인 매력이 전혀 느끼져지 않긴 하지만, 음악을 듣는다는 원초적인 목적 의식에 기반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송라이터를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가벼우면서도 풍요로운 앨범이다. 사족이지만 남들이 다 좋다는 “여배우” 가 좋은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Neon Bunny: Happy Ending EP

야광토끼의 새로운 음악. 달랑 네곡에 13분 남짓한 러닝타임이지만 반가운 것은 사실이다. 그녀가 데뷔앨범에서 보여준 놀라운 결과물은 앞으로의 커리어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비록 정규 앨범은 아니지만 후속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EP 를 이제서야 받아서 들었다.

새로운 EP 는 데뷔 앨범에 비해 무척 댄서블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데뷔 앨범보다 훨씬 더 지루하다. 그녀의 데뷔 앨범이 영롱하게 빛날 수 있었던 이유, 혹은 미덕은 그녀가 가진 특유의 가사 전달력과 가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이쁜 멜로디라인이었다. 춤추기 위해서 존재하는 노래들은 아니었고, 더군다나 섹시하게 화장을 진하게 한 솔로이스트가 흐느적거리며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드럼엔 베이스에 묻혀 버렸고 가사들은 진부하다. 춤을 추기에도 뭐하고 감상용으로는 귀만 아픈, 한마디로 자주 꺼내 듣고 싶지 않은 앨범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총명하고 재능이 있다. 이번 EP 에서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시간을 내어 그녀의 음악을 들어줄 용의가 아직 충분히 있다.

무키무키만만수: 2012

장구를 치는 무키와 기타를 치는 만수로 이루어진 여성 듀오 밴드의 첫번째 앨범. 소문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 앨범(CD) 을 받아서 듣기 전까지는 접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앨범의 자켓과 앨범 타이틀은 이 듀오의 음악적 정체성중 상당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오래되어 보이는 (outdated) 목욕탕에서 한때를 즐기고 있는 듯한 멤버들의 화장기없는 사진과 “2012” 가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현재성 (date). 이 듀오가 지향하는 지점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는 단서들이 될 것이다. 앨범은 아주 짧고 강렬한 12개의 곡들로 이루어져 있고, 김창완이 작사 작곡한 산울림의 “내가 고백을 하면 아마 놀랄 거야” 를 리메이크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곡을 직접 작사 작곡했다. 전혀 정돈되지 않은 듯한 이 신종 펑크 음악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음악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은 매우 명쾌하고 단순한 가운데 기존 음악씬이 가지고 있지 못한 새로운 색깔을 슬기롭고 성공적으로 소개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놀라운 에너지를 담고 있는 이 앨범은 의외로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고, 기존 팝/락의 작곡법을 충실히 따르는 듯 보인다. 만화 영화 주제가, 교회 (혹은 성당) 의 성가, 혹은 통속적인 댄스팝이나 트로트에서 상의없이 무작정 차용한 듯한 멜로디 라인은 기묘하게 어울리는 두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만의 색깔로 다시 태어나.. 야 할텐데 사실 그 결과물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들이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하고 싶었다면, 그것이 단순히 7,80년대 B급 문화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이라는 고리타분한 주제로 귀결되는 듯이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면, 최소한 이 밴드의 정체성이 청자로 하여금 말초신경에서 오는 자극에 놀라는 (unexpected) 반응을 관찰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면, 조금 더 신경썼어야 하는 부분들이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들이 연결하고자 하는 지점에서 놓친 부분들일 것이다. (transition) 많은 이들이 생각했을 것처럼 아무 생각없이 만들어진 앨범은 결코 아니지만, 이들이 내뿜는 에너지와 주변을 환기시키는 능동적인 역할 수행이 수년내에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드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것들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목욕탕에서 완전히 발가벗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지만 실은 그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완전히 까발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못할지도) 모른다. 이들의 음악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앨범 자켓을 가리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