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자아와 현실 자아

우선 인터넷 상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형상과 개개인이 모여 만들어 내는 집단적 집합체에 대척되는 개념으로 “현실”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워낙 삶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들어오다 보니 가끔 인터넷 상의 자아와 현실에서의 자아가 분리되는 현상을 종종 목도한다. 나는 인터넷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발현되는 나의 모습이 현실에서의 나의 모습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상대방이 나를 ‘읽기’를 바란다. 하지만 ‘표현’ 과정에서 종종 현실속의 나와 인터넷상의 나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기도 하며,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상이한 두 공간에 존재하는 나의 형상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해하려는 시도 또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코끼리의 다리를 만질 때와 코를 만질 때 각기 다르게 반응하는 것처럼.

다른 공간에서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는 나의 모습중 어느쪽이 조금 더 “진짜” 나의 모습과 가깝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블로그에 적는 글들이 술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할 때보다 더 솔직하고 왜곡없이 나의 모습을 표현할 때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는 이 두개의 자아가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발현될 수는 없을 지언정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완전한 나의 모습을 “표현” 해주는 수단으로서 기능하기를 소망한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게 일기를 적자, 유학을 준비하면서부터 시작된 심적인 갈등과 이러 저러한 상념들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자, 라는 생각으로 워드프레스에 새롭게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단상들을 기록하면서 ‘정보 제공’ 의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보 제공의 기능이 전혀 없는 일기의 경우 비대칭적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공감을 표하기도 했고 개인적인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들이 목격한 나의 모습은 실제 나의 삶중 아주 일부일 수 있고, 때로는 현실속의 내 삶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 나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멈추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생각을 쉬지 않는다. 블로그에 적히는 대부분의 글들은 나의 행동보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작성된 것들이다. 블로그를 통해 나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아마도 나의 표정이나 말투, 혹은 체격이나 걸음걸이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나의 성격에 대해서도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 대할 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얼굴의 생김새나 말투, 표정과 같은 1차원적인 형상들부터 아주 단순한 대화를 이어나갈 때 드러나는 일상에서의 성격같은 것들이다. 내가 블로그에 적는, 소위 말하는 ‘생각’ 들은 현실에서의 관계가 깊어졌을 때 비소로 대화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

인터넷과 현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다른 형식을 통해 발현되는 상이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자아가 공간에 침식되어 균열을 경험할 수도 있다. 아마 인터넷상에 떠도는 수많은 자아들은 이렇게 현실속의 자아와 분리된 것들일 것이다) 때문에 이 상이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만약 당신이 블로그에서 이루어지던 대화를 현실로 끄집어 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 형식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블로그에서 드러나는 나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그 모습을 현실에서 확인하기를 원한다면, 과연 이 두 자아가 동일한 것인지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의심이 합당한 것으로 드러났다면 역시 대화의 형식을 다시 고려해야 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블로그를 이성을 “꼬시는” 수단으로 활용한 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기본적으로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인간 관계는 성별이나 나이와 무관한 일반적인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큰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성의 감정은 현실이다. 이성간에 일반적으로 일컬어 지는 친밀한 관계 혹은 우정이라고 불리워지는 감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최소한 나는 그러한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아무런 사심없이 블로그에서 이성들과 교류하며 때로는 현실에서 2차적인 만남을 갖는 것이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아마도 나와 당신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한계점이 될 것이다. 나는 그저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대화의 기저에 감정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감정은 관계 이후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른 공간. 다른 혹은 동일한 자아. 다른 대화 방식. 관계. 그 모든 것들을 지나온 다음에야 비로소 감정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소한 나의 삶은 그랬다. 이건 10년도 넘게 만난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부분이다. 최소한 나는 여자와 자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마음에 맞는 사람 만나서 즐겁고 좋은 대화를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다. (물론 이것도 다른 관심사들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지만) 그래서 가끔 따분한 대화 상대를 만나면 엄청난 시간 낭비를 했다는 자괴감에 몸서리친다. 재미있는 상대를 만나면 시간가는 것이 아깝고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를 찾기 시작한다. 딱 거기까지다. 내가 현실속에 속한 당신에게 관계와 감정에 대해 묻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방금 처음 만난, 혹은 한두번 정도 만난 적이 있는 서먹 서먹한 관계일 뿐이다. 마치 영화 ; 의 주인공 네오가 가상 현실에서 깨어나면 기계 사냥꾼 한마리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잘 것 없는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해서 관계가 시작된다면 그 이후에 우리 사이에 등장하는 대화들은 – 다른 공간에서 나누었던 다른 자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기억에 힘입어 – 아마도 조금 더 윤택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닐 수도 있고. 그러다 감정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 감정이 우정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고. 그건 발생하지 않은 예측일 뿐이니까.

jet lag

새벽 네시에 일어 났다. 눈을 감으면 다시 잘 수 있었지만, 꿈이 너무 좋지 못해 다시 잠들기가 싫었다. 휴대폰을 가지고 꼼지락거리다가 그냥 요리를 하기로 했다. 어제 홀푸드에서 발견하고 혼자 좋아하며 사두었던 콩나물을 데친 뒤 어머니께 전수받은 양념간으로 무침을 만들었다. 어제 저녁 한소쿰 끓여 두었던 미역국을 다시 데폈다. 미역국이나 김치찌개는 두번째로 끓여 내었을 때 짭잘한 맛이 강해져 조금 더 좋은 밥반찬이 되는 것 같다. 일식 사찬은 아직 무리겠지만, 나물류 반찬 하나와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국 한 그릇 정도면 심하게 이른 아침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아침을 다 먹고 설거리를 끝내니 하늘이 어슴프레 밝아 온다. 헤드폰을 끼고 밖으로 나가 시냇물을 따라 30분 정도 걷고 와야 겠다. 몸은 일찌감치 떠나 왔지만 마음은 한국에 반쯤 남아 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갈 때 시차 적응은 하루 이틀이면 끝난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길면 보름 정도를 시차 문제로 고생한다. 그만큼 한국에 두고 온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서일까. 어쩌면 jet lag 은 떠나온 곳에 머물러 있는 마음을 온전히 추스를 때까지 걸리는 시간동안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기.

한국에서 겪었던 21일동안의 일들을 한참 열심히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기록들을 그냥 혼자서만 간직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 이 뒤늦은 일기는 한국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나를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조심스럽다. 대신 그 사람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고 싶다. 나에게 말하는, 기억을 위한 일기이기도 하지만, 그 일기속 주인공은 내가 만난 사람들이니 어찌 보면 편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2012년 7월 4일부터 6일까지.

자정에 LA 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가는 ‘루틴’ 을 준비하는 절차도 많이 달랐다.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날 수 있었고 매년 지옥과 같은 새벽 시간동안의 전쟁을 치루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누린 반면, 공항으로 데려다 줄 친구가 아무도 없는 바람에 혼자 무거운 캐리어 두개를 끌고 공항까지 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나름 꾀를 쓴다고 짐들을 차에 실어 오피스에 옮겨 놓은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차를 주차해 놓고 걸어서 오피스로 다시 올라갔다.

LA 국제 공항 청사는 리뉴얼해서인지 무척 화려해 보였다. 한쪽 벽을 꽉 채운 거대한 광고판에는 한국어 문구가 적혀 있었고 다섯 걸음마다 한번씩 한국어를 사용하는 동양인들을 지나칠 수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시각은 7월 6일 새벽.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소나기가 새벽에 내리고 있어서 비행기는 30여분동안 한국 상공에서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내가 무거운 짐 두개를 끌고 한참을 걸어야 했던 때에는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았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신촌에 내렸고, 아파트로 올라가는 마을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는 어머니가 안방이 아닌 소파에서 선잠을 주무시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상을 받아 먹고 잠시 수다를 떨다가 어머니와 함께 동네 성당에 가서 아침 미사를 보고 신촌으로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 점심과 저녁 찬거리를 장만했다. 현대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에서 어머니와 함께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뒤 어머니가 이용하시는 단골 은행에 가서 내 미국 계좌로 송금하는 과정을 지켜 보았다.

저녁에는 누나가 퇴근하고 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대구머리탕이었다. 즐겁게 수다를 떨다가 누나는 집으로 돌아 갔고, 나는 피곤한 나머지 일찍 잠들었다.

한국 2012

7월 4일 오후. 오피스에 짐을 옮겨 놓은 후. 볼더.

7월 6일 새벽.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길.

7월 6일 아침. 서울 집에 도착해서.

7월 7일 낮. 부산.

7월 8일. 부산.

7월 8일. 부산.

7월 8일. 부산 사직 구장.

7월 9일. 부산 자갈치 시장.

7월 13일. 서울 신세계 백화점.

7월 15일. 서울 신촌 집.

 

7월 16일. 서울 신촌 집에서 내가 쓰던 방.

7월 17일. 통영.

7월 18일. 서울 종암동.

7월 20일. 서울 청계천 근처.

7월 21일. 청계사 계곡.

7월 22일. 대구 천주교 성직자 묘지.

7월 23일. 서울 도봉역.

7월 25일. 서울 신도림 디큐브.

7월 25일. 서울 시청.

7월 25일. 서울 종로.

7월 26일 낮. 서울 집.

7월 26일 밤. 덴버 공항.

한국, 서울 감상 중간 점검

1. 여름밤의 부산과 주말의 이태원을 경험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가 어떤지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원래 유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최근 한국 놀이 문화의 흐름이 썩 마음에 드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등을 돌리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 있던 가장 순둥이같았던 친구들까지 유흥 문화에 휩쓸려 다니는 것을 보면서 역시 한국에는 당분간 들어오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2. 한국은, 특히 서울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기에는 결코 괜찮은 장소가 아니다.

3. 서울은 거품으로 뒤덮여 있다. 거의 모든 것들이 버블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거품을 부풀려 가며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불평등은 심화될 것이고 젊은이들은 점점 더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보는 비대칭적으로 분배되고 있으며 이는 새롭고 뒤틀린 권력의 구조화를 공고히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당하게 될 것이며 혼돈의 반복 속에서 삶을 원망하며 노후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슬픈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4.  사진기는 가져왔는데 사진을 컴퓨터로 옮겨 담을 수 있는 케이블은 가지고 오지 않았다. -_- 마음에 드는 사진이 몇장 있다.

5.  하루 세끼 어머니가 차려주신 상을 받아 먹으며 소파에 누워 몇백개가 넘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는 것은 미국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다. 원없이 즐기고 있다. 무한도전을 커다란 텔레비젼 화면으로 보는 것이나 메이저리그 경기를 한국어 해설로 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마지막 스타 크래프트 1 대회도 눈물과 함께 지켜보았다 ㅠ

6. 미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져 간다. 이제 이 곳에는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7. 그래서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여자도 왠만하면 그쪽에서 찾고 싶다. 왠만하면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는 외국인이나 한국에 딱히 큰 미련이 없는 한국인으로. 부모님께서 많이 편찮아 지시기 전까지는 되도록 미국에 남아 한국과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8.  한국으로 돌아 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주 조용히,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관계들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그게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9.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1년을 버텼는데 막상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고 나니 기대만큼의 감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건 일회성의 만남이 가지는 한계때문이지 그 사람들 자체가 내 삶에서 가지는 가치의 높고 낮음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들과 1년 내내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우리의 관계는 아마 꽤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러하지 못할 뿐이다. 앞으로도 그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고.

10. 지금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논문과 책, 그리고 되게 이쁜데 되게 착하고 되게 똑똑한데 또 엄청 나를 좋아하는 여자 정도인 듯. (농담입니다)

Mike Mills: Beginners

서울 한복판에 아파트가 하나 있다. 나의 부모님이 6년전쯤 구입하신 아파트다. 당시 우리 가족은 홍은동에 있는 주택을 처분하고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는 아버지는 하동에 한옥을 한채 지으셨다. 아버지는 수업이 있는 날에만 차를 직접 몰고 서울로 올라오셔서 며칠을 묵으시고 다시 하동으로 내려가시곤 했다. 방학 때는 항상 하동에서 땅을 만지며 머무르셨다. 나는 이 아파트에서 가족과 함께 2년여를 살다가 미국으로 갔다. 이 아파트에서 유학을 준비했고 학부를 졸업했다. 부모님 모두 하동에 내려가실 때면 가끔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려 왔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볶음밥을 만들어 주기도 했고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집안의 거의 모든 벽은 책장으로 가득차 있고 부엌은 늘 어지럽다. 발코니쪽 창문 앞에는 어머니가 키우시는 난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은 늘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말썽이다.

“여기는 거실이고, 저쪽으로 가면 침실입니다. 계단을 조심하세요.”

미국으로 간 뒤에는 집에 대한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밤 열두시까지 기필코 집에 들어가야 하는 통금은 사라졌지만 대신 나를 위해 기다려주는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들어간 나의 집은 내가 나올 때의 그 모습 그대로일 뿐이었고, 전과 달라진 것은 아주 조금 더 쌓인 먼지들 정도. 혼자 사는 집의 적막한 느낌은 역시 그곳에서 사귄 여자친구가 부분적으로 없애 주었다. 함께 들어가고 함께 나왔지만, 내가 없는 동안 나의 집을 밝혀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피곤한 마음에 불을 켜 놓고 잠이 들면 아침까지 불이 켜져 있었고, 전기 스토브 전원을 확실히 껐는지, 현관 문을 확실히 잠그었는지 두세번씩 확인하는 버릇도 유학을 오고 나서부터 생겼다. 혼자 사는 삶은 가볍지만 조용하다. 가끔은 한없이 가벼워 무게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가끔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기운을 감당해 내지 못해 침대 머리맡에서 몸을 웅크리고 일어날 수 없을 지경이 되기도 한다.

“원래는 호텔에서만 지내 왔어요. 그런데 요즘은 빈 아파트라던가, 당신의 집같은 곳에서 자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

집은 누군가와 함께 사는 곳일 수도 있고, 혼자 사는 곳일 수도 있다. 함께 사는 이가 동물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으며, 피를 나눈 가족일 수도 있고 어제 밤 파티에서 만나 이름도 묻지 않은 이성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시간 함께 산 사람일 수도 있고 당장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알려 줘야 하는 상대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관계가 발생하고 발전한다. 그래서 혼자 사는 집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집이 좋다.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오려고 하는 노력도 혼자 있기 싫어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전 지금 당신의 아파트 앞에 있는데요.”

누군가로부터 <Beginners> 를 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논문에 치여 점점 급해지는 마음 탓인지 진득히 앉아 두시간을 할애할 정도의 여유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튠즈를 통해 렌트를 해 놓고 한달이 지나도록 영화를 보지 못해 자동 삭제되는 해프닝이 두번이나 있었다. 결국 편안한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때와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알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지금도 이 영화에서 흘러 나왔던 음악들과 이완 맥그리거의 낮고 조용한, 예민하지만 섬세한 미국식 악센트가 귓가에서 맴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밝거나 가볍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은 무척 밝고 가벼웠다. 최소한 이 영화를 보는 내 마음은 그랬다.

돈과 여자

한국에서 사는 내 나이 또래 미혼 남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과 여자인 것 같다.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그 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 보지 않는 듯 하다. 되도록 이쁜 여자와 많이 자면 잘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 여자들과 보내는 시간이 그들의 정신을 얼마나 고귀하게 만들어 주는가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자세는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은 듯 보인다. 물론 동성 친구들에게 돈과 여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으레 마초적이고 다분히 동물적인 본능이 자리잡기 마련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며 그들이 벌어 들이는 돈의 가치가 상당히 숭고하다고 역설하는 한편,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는 먹다 버릴 수 있는 음식인냥 하찮은 존재인 듯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사실 정 반대의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러운 돈 앞에서 조차 한없이 나약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벼룩보다 더 하찮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나는 다행히 소위 말하는 유흥 문화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나이에 그것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돈을 벌지 못하고 여자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는 대가로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들과 논문들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누가 보면 불행한 삶일 수 있지만, 내 개인의 삶 안에서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축복받은 삶이다. 남들보다 섹스를 덜 하고 조금 덜 좋은 옷을 입는 것이 내 삶에서 아주 큰 불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좋은 책들을 읽지 않는 그들의 삶 역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감각의 영역이다. 말초적으로 끌리는 것을 택할 뿐이다. 나는 책장에 읽은 책들을 하나 둘씩 쌓아가는 재미를 찾고 싶을 뿐이고, 어떤 남자는 더 많은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추구할 따름이다. 누군가는 사회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에서 행복을 느낄 것이고, 다른 이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 남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을 수도 있다.

한국에 온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많은 것을 배운 느낌이다. 1년이 넘는 기간동안 머릿속에서만 그려온 많은 것들을 짧은 시간동안 현실에서 맞닥뜨리면서 마음속에 생각들이 많아진다. 하염없이 쌓아온 기대들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사실로서 확인하고 넘어가기도 하며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고 정립하기도 한다. 그렇게 지내고 있다.

y

y는 내가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과거형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그에 대한 마음은 많이 굳어서 희미해진 상태이고, 기억한다라는 동사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 저편으로 흘려보낸 오래 전의 감정이 되어 버렸다. 아무튼, 한국에 와서 당혹스러운 것들중 하나는 최근 나의 어머니가 y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알게 되셨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누나가 말씀드렸나 보다. y와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친한 친구였고, 사귄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감정의 교류가 있었지만 나의 유학 생활등으로 인해 옳게 맺어질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문제는 y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를 무척 좋아한다. 첼로와 음식 그릇 등 공통된 취미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취향도 꽤 비슷한 편이라 나를 매개체로 선물을 주고 받으며 은근한 정을 과시하며 지내 왔다. 내가 y를 좋아했던 이유도 이들의 독특한 관계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아버지의 제자이기도 했던 이 친구 정도면 나의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y는 이제 나에게 과거의 사람이 되어 버렸고, 아마도 평생 몇마디의 대화 정도만을 나누며 점점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갈 것이다. 어머니는 그 점이 못내 마뜩치 않으신가보다. 요즘은 거의 하루 종일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하루에 꼭 한번씩은 y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신다. 오늘 점심에는 몇년전 y가 선물해 준 그릇을 언급하셨고, 아까 아침에는 y가 몇년전에 선물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어머니가 계속 잘 키우고 계신 화분을 가리키셨다. 우리 집 곳곳에는 y가 남긴 흔적이 있다. 어머니의 마음 속도 아마 그런가 보다. 혼자 있는 아들에 대한 애처로움과 마음에 드는 사람과 잘 이루어지지 못한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종종 지으신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 끝난 것은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