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연설 감상문

오바마가 학교에 온다는 소식은 며칠 전에 처음 들었다. 노스 캐롤라이나, 콜로라도, 아이오와 대학으로 이어지는 이틀짜리 짧은 투어가 계획되어 있고, 이 투어에서 오바마는 학자금 대출에 대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것으로 전해졌다. 7월 1일까지 미 의회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현재 학생들에게 대출되는 금액에 대한 이자가 두배로 오르게 되는데, 공화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 입장에서 의회 안에서만 다투기에는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고, 때문에 소위 말하는 스윙 스테잇이라고 불리우는 지역을 중심으로 젊은층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겸하며 이 학자금 대출 이슈에 대한 쟁점화를 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58년만의 대통령의 학교 방문으로 이 작은 도시는 한동안 떠들썩했다. 일요일에 선착순으로 발부되는 티켓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감 30분전에 들렸더니 운좋게 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친구들과 함께 두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줄을 서고 연설이 행해지는 농구 경기장안에 자리를 잡고 앉은 후에도 한시간 반 가량 더 기다린 후에야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미국인들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다. 현직 대통령의 연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거. 게다가 일리노이 상원의원 시절부터 그의 연설에 매혹되었던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주 값진 기회였다.

연설은 30분 남짓 진행됐다. 세시간이 넘는 기다림에 대한 보답치고는 약간 짧다고도 느꼈지만, 그는 그 짧은 연설 시간동안 아주 임팩트있게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했다. 록음악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 이를 유도한 것은 대통령이었지만 민주당 지지도가 전국 최고 수준에 육박하는 볼더와 콜로라도 대학 특유의 분위기도 크게 한 몫한 듯 보였다.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해 분위기를 띄운 오바마는 별다른 뜸을 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학자금 대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단도직입. 이게 오바마의 연설을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돌려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름을 거론하며 직접적으로 찌르고 자신의 과오까지 아주 솔직하게 꺼내 놓고 야유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연설 도중 고개를 숙여 가지고 온 지문을 딱 한번 읽었는데, 그것도 학자금 대출 이자 인상에 찬성하는 공화당 하원 의원이 쓴 기고문을 인용하기 위해 신문 쪽지를 읽을 때 뿐이었다. 그에게 연설문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 이슈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와 입장,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까지 모두 머릿속에 들어 있는 듯 보였다. 일방적인 연설이 아닌 청중들과 대화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정치적 표현에 자유로운 미국인들답게 연설 도중 고함을 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오바마는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반응까지 모두 자신의 연설로 끌어 들였다. improvisation 에 능통한 재즈 연주자의 즉흥연주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설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학자금 대출과 관련해 자신의 일화를 꺼냈을 때였다. 미셸 오바마와 버락 오바마가 만나 결혼을 할 당시는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하고 있을 당시였다. 당시 두명 모두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었고,  결혼 후 서로의 자산을 합쳐 보니 정확하게 “0” 가 찍혔다고 한다. 그게 불과 몇년전이다. 그리고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하고 몇년 뒤 저는 미국의 대통령이 됐어요.” 라고 말할 때의 반응, 그리고 바로 이어서 “(장학금을 받지 않고) 대출을 받는 학생들은 게으르기 때문이다.” 라는 공화당 하원 의원의 발언을 인용하며 “그러니까 제가 게으르다는 말인가요?” 라고 받아치는 센스.  재밌었다.

무엇보다 그의 연설이 놀라웠던 점은, 자신의 정치적 논리를 철저하게 미국의 “철학” 과 연결시키며 미국인이라면 동의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1. 미국의 고등 교육 시스템은 최고 수준이다.
2. 고등 교육을 받는 것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손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3. 미국 고등 교육에 대한 비용은 높다.
3. 공화당때문에 그 비용이 더 높아지려고 한다.
4. 나는 학자금 대출때문에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그래서 대통령이 됐다.
5. 지금 우리 세대뿐 아니라 이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고등 교육의 정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이제 우리가 그래야 한다.
6. 정부는 (재정 적자때문에)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은행들로 하여금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돈을 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7. 이 문제는 공화당/민주당의 문제가 아닌, 미국의 문제이다.
8. 미국은 모든 이들이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곳이다.
9. 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1% 부자들에 대한 세율을 높이는 것이 그렇게 부당한 일인가? (세율 문제까지 거론)
10. 이를 위해 나는 절대 포기하기 않을 것이다. 미국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갓 블레스 유 어메리카.

미국인이 아닌 입장에서 이런 대통령을 가진 미국 친구들이 잠깐 부러워지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한국인도 이런 대통령을 가져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오바마 vs. 롬니. 노무현 vs. 이명박과 구도가 너무 비슷하다.

4 thoughts on “오바마 연설 감상문

  1. 와 좋다.
    이런 연설을 해주는 대통령도 그 연설을 감동 하며 듣는 종혁씨도. 뭔가 내가 대단한 사람을 친구로 두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다. 멋진 대통령의 멋진 연설을 듣는 그런 멋진 순간이라니.

    일전에 신문에선가, 오바마 대통령을 언급한 칼럼을 읽었어요. 오바마가 젊은층의 지지를 폭발적으로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음악에도 아주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는 칼럼이었어요. 그러면서 그 칼럼은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음악을 좀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멋지네요.

    • 오바마 스피치는 콘서트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열렬한 호응과 그에 화답하는 애드립.. 뭔가 많이 부럽다는 느낌이 들었구요, 얼른 다시 이런 대통령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더라구요.

  2. 저도 일요일에 티켓 받아서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을 봤습니다.
    월요일에도 C4C 옆에까지 이어지는 긴 줄을 보니 새삼 대통령의
    연설이라는게 참 큰 이벤트란 생각이 들더군요.

    Speech를 듣고나니 역시 오바마의 Speech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오랜 기다림이 후회되지 않았습니다 ^^

    • 오 보셨군요! 저도 볼더에서 그렇게 긴 줄과 많은 사람들은 (풋볼 경기를 제외하면) 처음이었어요. 두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후회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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