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요즘은 잘 안 운다. 미국에 온 첫해, 그러니까 2008년 가을부터 2009년 봄까지 이어지던 그 시기에는 주일에 미사를 보러 가서 가끔 울었다. 아름다운 선율의 성가를 듣고 있자니 혼자 타향살이하는 스스로가 애처로워 보여서 울컥하고 뭉클했나보다. 그때는 마치 군대에 다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정 즈음에 도서관이 문을 닫는다는 방송을 들으며 짐을 챙겨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 내려올 때에는 입에서 단내가 났다. 씻지 못하고 침대에 철푸덕 쓰러져 잠들 정도로 피곤한 나날을 보냈는데, 정말 슬픈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내가 제대로 배운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저 시험을 통과하기에만 급급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오늘밤 미사 시간에 정말 오랜만에 울었다. 캔들라잇 매스여서 더 분위기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감정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나 보다. 보통 미사 시간에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어머니 아버지부터 아주 작은 인연이라도 맺고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 이름이라도 한번씩 되내인다. (나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는 당신의 이름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나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 제발 좀 어떻게든 이 과정을 극복하던가, 이겨내던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게라도 해달라고.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고, 어떻게 될런지도 모르는 이런 어두운 상황 속에서 나약한 한 인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제 H 씨에게도 문자로 간단하게 한 이야기이다.  남이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과정도 정작 당사자가 되어 맞닥뜨리게 되면 위치 파악부터 제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여기까지 도달한 것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정들의 연속이었는데,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지점에서 한발자국을 앞으로 내딛는 것이 너무 너무 힘들다.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거나 더 부지런해지지 못함을 스스로 탓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약을 먹지 않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매일 매일이 스스로를 어깨에 짊어진 채 전진해야 하는 사투였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는다는 느낌도 거의 없는 무기력함의 연속이 계속됐다. 그냥 석사받은 걸로 만족하고 취직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여기서 망하면 대체 어떤 꼴이 될까 라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컴퓨터 앞에 앉을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가는 것이 무섭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조언하는 것은 참 쉽다. 이리이리 저리저리 해봐, 잘 될거야. 아니면 말고. 잘 되길 바랄게. 아니면 뭐 어쩔 수 없고. 어짜피 내 인생 아니니까.

내가 스스로 힘을 더 내는 수 밖에 없어. 마지막까지 쥐어 짜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때 가서 정말 포기하자.

6 thoughts on “그냥 일기.

  1.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한 인터뷰에서 ‘난관을 겪을 때 상처에 열려 있는 편인지’ 묻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어요.

    ” 첫 책 머리말에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은 내가 문학을 사랑한다는 것’이라 썼어요. ‘이건 정말 제 진심이에요’,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가 않아요. 저는 ‘여러분,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없어요. ‘여러분 뜻대로 안 될 겁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저는 비관적이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분명히 상처를 받을 거고, 그때 그 난관을 아주 이기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할 거예요. 그리고 결국 돌파하겠죠. 인간이니까. 나중에 아프게 그때를 돌아보게 될 것인데 그때, 뭔가를 배울 거예요. 그 순간에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한 단계 올라가는 거죠.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졸렬한 사람이구나 깨달으면서 점점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생기는 거죠. 그때가 되면 아름답고 정의로운 문장은 쓸 수 없고 내가 겪었던 것들을 돌아볼 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장이 나올 테지요. 그런 경험 거치면서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쌓여서 글쟁이가 되겠고요. 저도 아직 멀었어요. 4,50대가 되면 더 많이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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