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

입맛이 변한 건지, 환경에 적응해 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예전보다 덴버에 있는 한국인 마트를 점점 적은 횟수로 가게 된다는 것과 볼더 시내에 있는 로컬 유기농 상점을 자주 가게 된다는 점이다.

차를 끌고 5분안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홀푸즈를 일주일에 한번씩 간다. 가서 사는 것은 정해져 있다. 내 삶의 필수품인 우유와 오렌지 쥬스. 한국에 있을 때에도 어머니께서 항상 냉장고에 구비해 놓아야 하는 두가지였는데, 내가 미국에 온 뒤 식비가 많이 줄었다고 농담을 하시는 주된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유는 한번 끊어 봤는데 잘 안됐다. 두유는 몸에 잘 안맞았는지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유일하게 먹는 유제품이기도 하다. 물론 빵과 케잌도 먹는다. 그 안에 계란과 우유가 들어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고. 이건 조금씩 고쳐갈 계획이다.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기필코 되고 말거라는 의지같은 것은 없지만, 어중간한 상태에서 만족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지금과 같은 소비 패턴을 계속 유지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샐러드를 먹는 비중이 확 늘었다. 로컬 파머들이 공급하는 싱싱한 샐러드를 먹고 싶은 양만큼, 좋아하는 비율로 섞어서 살 수 있다. (예를 들러 베이비 스피나치와 스프링 믹스를 반반씩 섞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여기에 드레싱으로는 얼마전 김교수님댁에 가서 추천받은 아시안 새서미를 산다. 아직 풀맛만으로는 샐러드를 매일 먹을 수 없기에 드레싱의 힘을 빌려 샐러드를 주식으로 만드는 식이다. 샐러드에 곁들이는 것들로는 올리브와 연어, 블루베리등이 있다. 특히 블루베리는 홀푸즈에서 파는 맛없는 올가닉 콘플레이크나 홀윗 시리얼에 섞어서 먹으면 든든한 아침 식사가 된다. 블루베리 외에도 포도나 딸기, 사과등을 사지만 한국에서 파는 것만큼 맛이 있지는 않다. 특히 딸기는 더럽게 맛없다. 한국에 비교 우위를 가지는 과일은 체리와 캔털롭정도인 것 같다. 정말 싸고 맛있다. 가끔 별미가 먹고 싶을 때에는 조리가 된 상태의 장어를 산다. 간단하게 전자렌지에 돌려 밥에 얹으면 장어덮밥이 된다. 조개를 사서 미역국을 끓이기도 한다. 칵테일 새우를 사서 술안주로 삼기도 하고. 하지만 새우는 자주 먹으면 콜레스테롤 높아진다고.. 맛있는 커피도 많이 판다. 커피를 자주 마시지 못하지만 로컬 브루잉 회사들이 공급하는 신선한 커피들을 먹고 싶은 만큼 덜어서 살 수 있다. 큰맘먹고 20불짜리 그라인더를 구입해서 매일 내릴 양만 따로 갈아서 먹으니 신선도가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빵도 매주 사고, 빵에 발라 먹은 오렌지 매멀레이드나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도 산다. 부족해질 수 있는 단백질은 두부와 견과류로 대체한다. 식물성 단백질은 확실히 체내에 불필요한 지방이 쌓이는 효과를 확 줄여주는 것 같다. 몸매도 이뻐지는 것 같고. (..) 내가 좋아하는 케잌 조각도 사고, 파스타도 가끔 사면 어느새 장바구니가 꽉 찬다. 낑낑거리며 계산대로 가면 보통 6,70불 정도가 나온다. 홀푸즈는 신선하고 품질 좋은 먹거리들을 공급해 주는 대신 가격이 비싸다. 세이프웨이등 정크 푸드를 취급하는 다른 로컬 스토어들과 비교하면 거의 두배는 비쌀거다. 가난한 대학원생이 홀푸즈에 매주 가는 것이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지만, 이 생활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몸은 소중하고, 내가 음식을 구입하는 소비패턴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세상에 공헌하는 바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바빠서 직접 채소를 재배해 먹지는 못한다. 나중엔 꼭 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고추나 상추등을 직접 재배할 수 있을 정도의 텃밭이나 앞마당을 갖고 싶다. 스팸도 먹지 않고 라면도 먹지 않으니 더더욱 정크 푸드를 사기 위해 다른 마트에 갈 이유를 찾기 힘들어진다.

한국인 마트는 예전에는 한달에 한두번은 갔는데, 요즘에는 그냥 안가도 무방할 정도가 되었다. 굳이 덴버까지 차를 끌고 가야 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김치때문일 것이다. 쌀도 홀푸즈에서 파는 칼로스쌀이나 다른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파는 일본 초밥용 쌀을 사면 된다. (그리고 이런게 더 맛있다) 고기를 먹지 않게 된 후로 삼겹살을 사기 위해 덴버로 가야할 필요도 없어졌다. 초코파이나 홈런볼같은 군것질 류는 군것질을 거의 하지 않는 나의 식습관과 정 군것질을 하고 싶으면 아몬드 서너알 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기 때문에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얼마전까지는 어머니께서 보내주시는 종갓집 김치에 의존해 왔다. 덴버의 한국인 마트에서 파는 김치의 질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달전 간 한국인 마트에서 드디어 수출용 종갓집 김치를 발견한 거다. 이건 일종의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김치다운 김치를 현지에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김치 외에도 김이라던가 미역, 깨소금, 무와 배추를 사기 위해서라도 한국인 마트를 가긴 가야 한다. 이에 더해 가는 김에 근처 한국인 식당에서 집에서 자주 해먹지 못하는 음식들을 맛볼 수도 있고.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점점 줄어들어 간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며칠전 한양 마트라는, 한국 상품들을 온라인으로 취급하는 상점의 존재를 알아 버렸다. 이제 정말 더더욱 덴버에 한국 음식들을 사기 위해 갈 일이 없어질 것 같다. 큰맘먹고 조리되어 있지 않은 낙지를 구입해 봤다. 내가 직접 낙지 볶음에 들어갈 양념을 할 수 있을까. 큰 도전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요즘 세끼는 거의 집에서 해결한다. 학교에 있을 때에는 점심은 학교 근처 식당에서 사서 먹는다. 주로 가는 곳은 일본 벤또집과 타이 푸드집. 보통 8불에서 9불 정도한다. 아침에 학교에 올라가서 다섯시에 평일 미사를 보고 여섯시에 집에 오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 패턴인데, 고픈 배를 부여잡고 저녁 요리를 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아침에 미리 밥을 앉혀 놓고 가던가 해야 그나마 재빠르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샐러드+견과류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것도 같다. 아침은 과일 + 시리얼, 주말 점심은 오늘 만든 카레처럼 새로운 시도를 해보거나 오이 무침이나 가지 무침등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국과 밥, 김치등을 꼭 먹으려고 노력한다. 음식으로라도 한국과 멀어지고 싶지 않은 거다.

하루에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는 때가 점점 더 많아진다. 물론 매일 웹툰을 보고 포털 뉴스를 보며 문자도 주고 받으면서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생각도 당연히 한국말로 한다. 하지만 입밖으로 한국말을 내뱉는 빈도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내가 진짜 어디로 가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한국가는 비행기값은 너무 비싸고, (오바마 아저씨 정말 진짜 어떻게 안되나요..) 책상 위에 쌓여져 있는 논문 뭉치들은 너무 무겁고, 컴퓨터 모니터에는 그다지 생산적인 단어들이 만들어 지지 않는다. 머리는 무겁고, 마음은 허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평생 누군가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해 지기도 한다. 그러면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

4 thoughts on “장보기

    • 네. 제 몸매 제대로 못보셨죠? 원래 이쁜데 진짜 이뻐졌어요. 우선 삼겹살 먹고 다음날 운동해야 하는 그런 번거로움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그에 따른 비용도 커요. 삼겹살을 못 먹는다는 고통 ㅠㅠ

  1. 몸매가 이뻐진다는 말에 저도 귀가 번쩍. ㅎㅎㅎ..

    계란이 들어간 빵이 맘에 걸리신다면 비건 베이킹도 있어요! 홀푸즈에 파는것도 있겠지만 집에서 머핀/컵케익 흉내정도 내는건 생각보다 간단 하더라구요. 두유도 브랜드마다 맛이 다르니 맞는게 있을꺼에요.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가는게 절실하다는 말이 공감이 가요. 저는 85% 싱글 예찬주의 -___- 였는데..이런게 나이먹는거겠죠?

    • 저도 비건용 빵 알아 봤는데 맛이 없어서.. (..) 그래도 꾸준하게 도전해 볼 생각이예요 ㅎ

      저도 얼마전까지 혼자 사는 게 참 편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점점 옆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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