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로 나갈 준비 – 1

월요일 아침이다. 방금 comprehensive oral exam 과 proposal defense 를 위한 모든 서류 작업을 마쳤다. 서류 작업을 마쳤다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또 잠을 줄여 가며 논문을 다듬고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 파일도 만들어야 한다. 최소한 다음주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커미티 멤버 교수님들께 완성된 패키지를 드려야 한다. 지금부터 2주동안이 정말 바쁘고 정신없는 시기가 될 것이다.

프로포절 디펜스는 잡마켓에 나가기 전 지도 교수님들께 점검을 받는 자리다. 이 친구가 과연 커미티 멤버들과 학교의 이름을 걸고 잡마켓에 나가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을 것인가를 평가받는 자리이고, 때문에 네명이나 되는 교수니들께 집중적인 코멘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디펜스에 실패하는 경우는 없다고들 하지만, 내가 최초의 실패자로 기록될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름에 컨퍼런스 두 군데에서 초청을 받았다. 하나는 밀라노에서 열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과 함께 하는 일주일짜리 서머스쿨이고 여기에서 내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다른 하나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넣은 건데 덜컥 되어 버린, 한국에서 7월 중순께 열리는 컨퍼런스다. 이 (별 영양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컨퍼런스에 가기 위해 1500불 남짓한 비행기표를 사야 하나 하는 문제로 오늘 아침에 지도 교수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11월에 우리 학교가 주최하는 거시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기회를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몇주 사이에 컨퍼런스 일정이 세개나 잡힌 것이다.

대학원생이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한다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의미가 있다. 현재 진행중인 박사 논문에 대한 코멘트를 듣고 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과 잡마켓에 나가기 전 불특정 다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 잡마켓 프레젠테이션은 내 전공 교수들뿐만 아니라 경제학과에 소속된 모든 교수들이 와서 듣기 때문에 거시 경제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까지 충분히 이해를 시켜야 한다. 지도 교수님과 논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대충 이야기해도 통하는 것이 있다. 척하면 척이랄까. 어짜피 다들 아는 이야기는 스킵하고 모두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약어들을 마음껏 사용할 수도 있고. 하지만 만약 미시나 계량을 전공하는 사람과 내 논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조금 더 일반적인 언어들을 사용해야 한다. (어제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 들어오면 부모님을 대상으로 논문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해달라는 말씀 -_- 경제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내 논문의 기본 내용을 이해시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만약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그건 화자의 대화 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한국에 가게 될 것 같다. 물론 학과와 대학원측에 여행 비용 지원을 받아 내야 하지만, 받지 못한다고 가정하면 차를 팔아야 하지만,  그래도 가게 될 것 같고, 가고 싶다. 잡마켓에 나가기 전 연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그 전까지 논문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좋은 유인을 제공해 주기도 하며, 무엇보다 한국에 있는 교수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네트워킹을 약간이라도 할 수 있는 여지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5년간의 대학원 시절이 끝나 간다. 지금까지는 판을 벌리면서 하나 하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나가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뿌린 씨앗들이 쌓아 올린 열매들을 하나 둘 거두어 들이는 시기다. 내가 좋은 거름을 주고 정성껏 돌보았다면 그만큼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달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추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하기 나름이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여름 방학을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가졌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5년간의 유예 기간을 얻자. 그 기간동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실컷 하고 그 다음에 대가를 치루자. 취직을 해서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타 쓰던지 학교에 계속 남아서 학생들을 가르치던지 그건 내가 알바 아니고, 취직대신 공부를 택한 비용은 충분히 지불할테니 제발 조금이라도 머리가 싱싱할 때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충 이런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유예 기간, 자유로운 5년간의 긴 방학의 끝이 보인다. 재밌게 잘 놀았다. 그 결과물은 세편의 논문으로 드러날 것이다. 내가 정말 보람차게 놀았다면 좋은 퀄리티의 논문이 나올 것이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그냥 시간과 돈을 낭비하며 놀았다면 그에 합당한 수준의 논문이 나올 것이고 역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시간은 공평하다.

오바마 연설 감상문

오바마가 학교에 온다는 소식은 며칠 전에 처음 들었다. 노스 캐롤라이나, 콜로라도, 아이오와 대학으로 이어지는 이틀짜리 짧은 투어가 계획되어 있고, 이 투어에서 오바마는 학자금 대출에 대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것으로 전해졌다. 7월 1일까지 미 의회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현재 학생들에게 대출되는 금액에 대한 이자가 두배로 오르게 되는데, 공화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 입장에서 의회 안에서만 다투기에는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고, 때문에 소위 말하는 스윙 스테잇이라고 불리우는 지역을 중심으로 젊은층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겸하며 이 학자금 대출 이슈에 대한 쟁점화를 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58년만의 대통령의 학교 방문으로 이 작은 도시는 한동안 떠들썩했다. 일요일에 선착순으로 발부되는 티켓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감 30분전에 들렸더니 운좋게 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친구들과 함께 두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줄을 서고 연설이 행해지는 농구 경기장안에 자리를 잡고 앉은 후에도 한시간 반 가량 더 기다린 후에야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미국인들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다. 현직 대통령의 연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거. 게다가 일리노이 상원의원 시절부터 그의 연설에 매혹되었던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주 값진 기회였다.

연설은 30분 남짓 진행됐다. 세시간이 넘는 기다림에 대한 보답치고는 약간 짧다고도 느꼈지만, 그는 그 짧은 연설 시간동안 아주 임팩트있게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했다. 록음악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 이를 유도한 것은 대통령이었지만 민주당 지지도가 전국 최고 수준에 육박하는 볼더와 콜로라도 대학 특유의 분위기도 크게 한 몫한 듯 보였다.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해 분위기를 띄운 오바마는 별다른 뜸을 들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학자금 대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단도직입. 이게 오바마의 연설을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돌려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름을 거론하며 직접적으로 찌르고 자신의 과오까지 아주 솔직하게 꺼내 놓고 야유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연설 도중 고개를 숙여 가지고 온 지문을 딱 한번 읽었는데, 그것도 학자금 대출 이자 인상에 찬성하는 공화당 하원 의원이 쓴 기고문을 인용하기 위해 신문 쪽지를 읽을 때 뿐이었다. 그에게 연설문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 이슈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와 입장,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까지 모두 머릿속에 들어 있는 듯 보였다. 일방적인 연설이 아닌 청중들과 대화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였다. 정치적 표현에 자유로운 미국인들답게 연설 도중 고함을 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오바마는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반응까지 모두 자신의 연설로 끌어 들였다. improvisation 에 능통한 재즈 연주자의 즉흥연주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설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학자금 대출과 관련해 자신의 일화를 꺼냈을 때였다. 미셸 오바마와 버락 오바마가 만나 결혼을 할 당시는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하고 있을 당시였다. 당시 두명 모두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었고,  결혼 후 서로의 자산을 합쳐 보니 정확하게 “0” 가 찍혔다고 한다. 그게 불과 몇년전이다. 그리고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하고 몇년 뒤 저는 미국의 대통령이 됐어요.” 라고 말할 때의 반응, 그리고 바로 이어서 “(장학금을 받지 않고) 대출을 받는 학생들은 게으르기 때문이다.” 라는 공화당 하원 의원의 발언을 인용하며 “그러니까 제가 게으르다는 말인가요?” 라고 받아치는 센스.  재밌었다.

무엇보다 그의 연설이 놀라웠던 점은, 자신의 정치적 논리를 철저하게 미국의 “철학” 과 연결시키며 미국인이라면 동의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1. 미국의 고등 교육 시스템은 최고 수준이다.
2. 고등 교육을 받는 것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손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3. 미국 고등 교육에 대한 비용은 높다.
3. 공화당때문에 그 비용이 더 높아지려고 한다.
4. 나는 학자금 대출때문에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그래서 대통령이 됐다.
5. 지금 우리 세대뿐 아니라 이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고등 교육의 정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이제 우리가 그래야 한다.
6. 정부는 (재정 적자때문에)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은행들로 하여금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돈을 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7. 이 문제는 공화당/민주당의 문제가 아닌, 미국의 문제이다.
8. 미국은 모든 이들이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곳이다.
9. 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1% 부자들에 대한 세율을 높이는 것이 그렇게 부당한 일인가? (세율 문제까지 거론)
10. 이를 위해 나는 절대 포기하기 않을 것이다. 미국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갓 블레스 유 어메리카.

미국인이 아닌 입장에서 이런 대통령을 가진 미국 친구들이 잠깐 부러워지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한국인도 이런 대통령을 가져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오바마 vs. 롬니. 노무현 vs. 이명박과 구도가 너무 비슷하다.

그냥 일기.

요즘은 잘 안 운다. 미국에 온 첫해, 그러니까 2008년 가을부터 2009년 봄까지 이어지던 그 시기에는 주일에 미사를 보러 가서 가끔 울었다. 아름다운 선율의 성가를 듣고 있자니 혼자 타향살이하는 스스로가 애처로워 보여서 울컥하고 뭉클했나보다. 그때는 마치 군대에 다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정 즈음에 도서관이 문을 닫는다는 방송을 들으며 짐을 챙겨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 내려올 때에는 입에서 단내가 났다. 씻지 못하고 침대에 철푸덕 쓰러져 잠들 정도로 피곤한 나날을 보냈는데, 정말 슬픈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내가 제대로 배운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저 시험을 통과하기에만 급급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오늘밤 미사 시간에 정말 오랜만에 울었다. 캔들라잇 매스여서 더 분위기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감정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나 보다. 보통 미사 시간에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어머니 아버지부터 아주 작은 인연이라도 맺고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 이름이라도 한번씩 되내인다. (나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는 당신의 이름도 기억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나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 제발 좀 어떻게든 이 과정을 극복하던가, 이겨내던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게라도 해달라고.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르겠고, 어떻게 될런지도 모르는 이런 어두운 상황 속에서 나약한 한 인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제 H 씨에게도 문자로 간단하게 한 이야기이다.  남이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과정도 정작 당사자가 되어 맞닥뜨리게 되면 위치 파악부터 제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여기까지 도달한 것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정들의 연속이었는데,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지점에서 한발자국을 앞으로 내딛는 것이 너무 너무 힘들다.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거나 더 부지런해지지 못함을 스스로 탓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약을 먹지 않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매일 매일이 스스로를 어깨에 짊어진 채 전진해야 하는 사투였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는다는 느낌도 거의 없는 무기력함의 연속이 계속됐다. 그냥 석사받은 걸로 만족하고 취직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여기서 망하면 대체 어떤 꼴이 될까 라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컴퓨터 앞에 앉을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가는 것이 무섭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조언하는 것은 참 쉽다. 이리이리 저리저리 해봐, 잘 될거야. 아니면 말고. 잘 되길 바랄게. 아니면 뭐 어쩔 수 없고. 어짜피 내 인생 아니니까.

내가 스스로 힘을 더 내는 수 밖에 없어. 마지막까지 쥐어 짜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때 가서 정말 포기하자.

장보기

입맛이 변한 건지, 환경에 적응해 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예전보다 덴버에 있는 한국인 마트를 점점 적은 횟수로 가게 된다는 것과 볼더 시내에 있는 로컬 유기농 상점을 자주 가게 된다는 점이다.

차를 끌고 5분안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홀푸즈를 일주일에 한번씩 간다. 가서 사는 것은 정해져 있다. 내 삶의 필수품인 우유와 오렌지 쥬스. 한국에 있을 때에도 어머니께서 항상 냉장고에 구비해 놓아야 하는 두가지였는데, 내가 미국에 온 뒤 식비가 많이 줄었다고 농담을 하시는 주된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유는 한번 끊어 봤는데 잘 안됐다. 두유는 몸에 잘 안맞았는지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유일하게 먹는 유제품이기도 하다. 물론 빵과 케잌도 먹는다. 그 안에 계란과 우유가 들어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고. 이건 조금씩 고쳐갈 계획이다.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기필코 되고 말거라는 의지같은 것은 없지만, 어중간한 상태에서 만족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지금과 같은 소비 패턴을 계속 유지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샐러드를 먹는 비중이 확 늘었다. 로컬 파머들이 공급하는 싱싱한 샐러드를 먹고 싶은 양만큼, 좋아하는 비율로 섞어서 살 수 있다. (예를 들러 베이비 스피나치와 스프링 믹스를 반반씩 섞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여기에 드레싱으로는 얼마전 김교수님댁에 가서 추천받은 아시안 새서미를 산다. 아직 풀맛만으로는 샐러드를 매일 먹을 수 없기에 드레싱의 힘을 빌려 샐러드를 주식으로 만드는 식이다. 샐러드에 곁들이는 것들로는 올리브와 연어, 블루베리등이 있다. 특히 블루베리는 홀푸즈에서 파는 맛없는 올가닉 콘플레이크나 홀윗 시리얼에 섞어서 먹으면 든든한 아침 식사가 된다. 블루베리 외에도 포도나 딸기, 사과등을 사지만 한국에서 파는 것만큼 맛이 있지는 않다. 특히 딸기는 더럽게 맛없다. 한국에 비교 우위를 가지는 과일은 체리와 캔털롭정도인 것 같다. 정말 싸고 맛있다. 가끔 별미가 먹고 싶을 때에는 조리가 된 상태의 장어를 산다. 간단하게 전자렌지에 돌려 밥에 얹으면 장어덮밥이 된다. 조개를 사서 미역국을 끓이기도 한다. 칵테일 새우를 사서 술안주로 삼기도 하고. 하지만 새우는 자주 먹으면 콜레스테롤 높아진다고.. 맛있는 커피도 많이 판다. 커피를 자주 마시지 못하지만 로컬 브루잉 회사들이 공급하는 신선한 커피들을 먹고 싶은 만큼 덜어서 살 수 있다. 큰맘먹고 20불짜리 그라인더를 구입해서 매일 내릴 양만 따로 갈아서 먹으니 신선도가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빵도 매주 사고, 빵에 발라 먹은 오렌지 매멀레이드나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도 산다. 부족해질 수 있는 단백질은 두부와 견과류로 대체한다. 식물성 단백질은 확실히 체내에 불필요한 지방이 쌓이는 효과를 확 줄여주는 것 같다. 몸매도 이뻐지는 것 같고. (..) 내가 좋아하는 케잌 조각도 사고, 파스타도 가끔 사면 어느새 장바구니가 꽉 찬다. 낑낑거리며 계산대로 가면 보통 6,70불 정도가 나온다. 홀푸즈는 신선하고 품질 좋은 먹거리들을 공급해 주는 대신 가격이 비싸다. 세이프웨이등 정크 푸드를 취급하는 다른 로컬 스토어들과 비교하면 거의 두배는 비쌀거다. 가난한 대학원생이 홀푸즈에 매주 가는 것이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지만, 이 생활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몸은 소중하고, 내가 음식을 구입하는 소비패턴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세상에 공헌하는 바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바빠서 직접 채소를 재배해 먹지는 못한다. 나중엔 꼭 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고추나 상추등을 직접 재배할 수 있을 정도의 텃밭이나 앞마당을 갖고 싶다. 스팸도 먹지 않고 라면도 먹지 않으니 더더욱 정크 푸드를 사기 위해 다른 마트에 갈 이유를 찾기 힘들어진다.

한국인 마트는 예전에는 한달에 한두번은 갔는데, 요즘에는 그냥 안가도 무방할 정도가 되었다. 굳이 덴버까지 차를 끌고 가야 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김치때문일 것이다. 쌀도 홀푸즈에서 파는 칼로스쌀이나 다른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파는 일본 초밥용 쌀을 사면 된다. (그리고 이런게 더 맛있다) 고기를 먹지 않게 된 후로 삼겹살을 사기 위해 덴버로 가야할 필요도 없어졌다. 초코파이나 홈런볼같은 군것질 류는 군것질을 거의 하지 않는 나의 식습관과 정 군것질을 하고 싶으면 아몬드 서너알 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기 때문에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얼마전까지는 어머니께서 보내주시는 종갓집 김치에 의존해 왔다. 덴버의 한국인 마트에서 파는 김치의 질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달전 간 한국인 마트에서 드디어 수출용 종갓집 김치를 발견한 거다. 이건 일종의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김치다운 김치를 현지에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김치 외에도 김이라던가 미역, 깨소금, 무와 배추를 사기 위해서라도 한국인 마트를 가긴 가야 한다. 이에 더해 가는 김에 근처 한국인 식당에서 집에서 자주 해먹지 못하는 음식들을 맛볼 수도 있고.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점점 줄어들어 간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며칠전 한양 마트라는, 한국 상품들을 온라인으로 취급하는 상점의 존재를 알아 버렸다. 이제 정말 더더욱 덴버에 한국 음식들을 사기 위해 갈 일이 없어질 것 같다. 큰맘먹고 조리되어 있지 않은 낙지를 구입해 봤다. 내가 직접 낙지 볶음에 들어갈 양념을 할 수 있을까. 큰 도전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요즘 세끼는 거의 집에서 해결한다. 학교에 있을 때에는 점심은 학교 근처 식당에서 사서 먹는다. 주로 가는 곳은 일본 벤또집과 타이 푸드집. 보통 8불에서 9불 정도한다. 아침에 학교에 올라가서 다섯시에 평일 미사를 보고 여섯시에 집에 오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 패턴인데, 고픈 배를 부여잡고 저녁 요리를 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아침에 미리 밥을 앉혀 놓고 가던가 해야 그나마 재빠르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샐러드+견과류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것도 같다. 아침은 과일 + 시리얼, 주말 점심은 오늘 만든 카레처럼 새로운 시도를 해보거나 오이 무침이나 가지 무침등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국과 밥, 김치등을 꼭 먹으려고 노력한다. 음식으로라도 한국과 멀어지고 싶지 않은 거다.

하루에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는 때가 점점 더 많아진다. 물론 매일 웹툰을 보고 포털 뉴스를 보며 문자도 주고 받으면서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생각도 당연히 한국말로 한다. 하지만 입밖으로 한국말을 내뱉는 빈도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내가 진짜 어디로 가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한국가는 비행기값은 너무 비싸고, (오바마 아저씨 정말 진짜 어떻게 안되나요..) 책상 위에 쌓여져 있는 논문 뭉치들은 너무 무겁고, 컴퓨터 모니터에는 그다지 생산적인 단어들이 만들어 지지 않는다. 머리는 무겁고, 마음은 허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평생 누군가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해 지기도 한다. 그러면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갈 수 있을까.

가톨릭 신자로서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갖게 되는 근원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인간은 부를 추구하고 부를 축적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혹은 그것이 신의 뜻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부를 축적하는 것을 욕망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욕망이 잘못되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성당이나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듣게 되는 성경에 적힌 구절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성경에 적혀 있는 것들을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면 우리 모두는 가난해야 한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천주교나 개신교에서 부자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아니, 교회가 태초에 생길 때부터 그들은 부자들을 미워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불경할지도 모르겠지만, 성직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스템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은 부를 축적하는 사회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즉 이 현대 사회의 굴레를 벗어난 성직자들은 부에서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그들이 설교의 대상으로 삼는 대다수의 인간들은 ‘최소한의 생존 수준에서 벗어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충분히 여유로운 상태’ 를 추구하며, 이에 더해 이 평범한 인간들이 ‘부를 축적할 기회가 주어질 경우’ 이를 거부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개인의 ‘탈렌트’ 에 충실하여 부를 추구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가 미덕이자 ‘천국으로 가는 방법’ 쯤으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이 지배하는 서구 사회에서 발달한 금융 시장은 ‘돈놓고 돈먹기도 주님의 뜻으로 행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발달해 있는 금융 시장의 대부분의 상품들 – 환시장, 선물시장 등등 – 은 ‘위험을 감수한 자에게 그가 노동을 제공하지 않아도 더 많은 부를 부여하는 형식’ 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도박꾼이 합법적으로 돈을 잘 벌게 만드는 구조인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신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한 마르크스는 노동의 신성함과 노동력에 의한 생산물의 가치를 숭상했는데 이게 오히려 고전적인 가톨릭 교리와 더 맞닿아 있다. 우리는 고리세금업자를 천하게 여기는 유태인의 마을을 아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고기를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베드로의 극적인 인생 역전 드라마도 잘 알고 있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밥먹을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피땀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은 생계를 이어나가기도 힘들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자본으로 덩치를 불려 나가는 ‘자본가 계급’ 은 책상에 앉아 지시를 내리는 것만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이를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극소수의 자본가 계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 계층은 뭔가 자신들의 처지가 불공평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는 일인 일표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사회적 목소리로 재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문제는 정치 구조는 어찌 어찌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자본 주의의 기본적인 불평등함은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민주주의가 생겨나기 전부터 자본 주의는 발달해 있었고, 그 때부터 시작된 ‘시스템’ 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시스템의 발전이 없이도 충분히 작동하게끔 구성되어 있고 또 견고히 그 시스템을 스스로 보호하게끔 성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흔히 음모론하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입에 담기 즐겨 하는 로스차일즈 가문이 프랑스쪽과 영국쪽 지분을 합쳐 하나의 거대한 회사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과연 이 사람들이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부를 가지고 있을까? 설사 그렇다고 가정해도, 그게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자본 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불공평함과 우리 개개인이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큰 관계가 있을까?

로스차일즈가 가문에 대한 기사가 나온 신문의 다른 면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가톨릭 주교의 기고문이 실렸다. Holy Week 를 맞이해 “부자가 되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 라고 주장하는 주교님이었다. 즉, 더이상 가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은 옳지 않으며, 단지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과 ‘탐욕스럽게 남의 자유를 침범하며 부를 욕망하는 것’ 사이의 구분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버낸키와 드라기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 대고 우리 모두가  각자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 이기적으로 노력한다면,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수중에 아주 약간의 돈이 더 많이 들어오면, 아마도 성당에 내는 헌금의 양도 늘어날 것이고, 어쩌면 그 헌금중 극소수는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 가는 한 어린이의 한끼 식사 정도를 도와줄 수는 있을 것이다. 아직도 전세계의 대다수는 돈이 없어서 끼니를 굶고 있다.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다는 현실이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 나를 포함한, 한국을 포함한, 극소수 선진국들과 개발 도상국들에 사는 사람들의 머릿속이다. 하루에 1달러가 없어서 굶어 죽는다. 1달러만 있으면 하루 세끼를 해결할 수 있을텐데 그게 없어서 굶어 죽는다. 사람 목숨은 다 똑같이 소중하다는 생각, 이거 정착된지 사실 백년도 안된거다. 불과 백년전까지 사람은 계급에 따라 목숨의 경중이 다르게 취급되었고 여성은 정치에 참여할 기회도 없었으며 전세계 70% 에서 노예 제도가 합법이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아프리카 어딘가, 방글라데시 어딘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중 어떤 사람은 원망하겠지. 왜 빌어먹을 예수는 이스라엘 근처에서 태어나서 백인들의 아이돌이 된거야? 애초에 아프리카에서 흑인으로 태어났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하고. 그리고 사흘 뒤 에이즈에 걸려 죽으면서 하느님! 저를 천국으로 인도하소서, 하고 기도할 거다. 이게 전세계 부의 대부분을 소유한 로스차일즈 가문등의 일부 초대형 부자들의 잘못인가, (그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고 아마도 나보다 훨씬 많은 빈민층의 목숨을 살려 놓았을 것이다. 병주고 약주고일 수도 있지만.) 아니면 오늘 하루도 씨발 되는 일 존나 없네, 앞으로 난 대체 뭘하며 먹고 살까,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뭔놈의 기부는 기부냐, 하고 중얼거리면서 8불짜리 싸구려 중국집에서 프라이드 라이스를 시켜 먹는 와중에 나름 페어 트레이드한답시고 소문난 카페에 가고 유기농 음식 먹는답시고 홀푸드만 골라 가는 나의 잘못인가. 아니면 애초에 설계를 잘못한 무능한 신이 벌여 놓은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