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위.

이틀전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길게 수다를 떨었다. 길다고 해봤자 한시간 남짓일 뿐이다. 무뚝뚝한 아들내미가 어머니와 한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자친구가 있을 때에는 언제나 여자친구가 가장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고, 집에 오면 가끔 가다 재롱을 피우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에 그쳤을 따름이었다. 아마도 유학을 준비하면서부터였을 것 같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군대가기 전 어머니와 매일 아침 동네 근처를 산책하며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시초였던 것 같고. 유학을 온 후로는 일년에 딱 한달 한국을 ‘방문’하는 시기에 되도록이면 잠을 줄이고 일찍 일어나 외출하기 전 어머니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대단히 폐쇄적인 인간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만나고 싶던 지인들을 한달이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최소한 한번씩은 만나려고 하니 하루에 몇탕을 뛰어도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럴수록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에 애가 탔다. 아마도 그때부터 어머니와 신나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내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거의 완벽한 대화 상대를 ‘발견’ 한 것이 너무 늦지 않았을까 후회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대화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했다. 최근들어 어머니는 전화 통화에서 나의 논문이 어떻게 진척되어 가는지 무척 궁금해 하신다. 이분들의 최대 관심사는 나의 건강이나 이곳에서의 생활 따위가 아니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하실 뿐이다. 이건 한평생을 학자로 살아온 분과 그분과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아온 분이 아주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궁금증일 것이다. 음식은 해먹으면 그만이고, 청소나 빨래는 때가 되면 하면 된다. 친구들과 놀거나 술을 먹는 것도 하고 싶으면 하라지. 그런건 그분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밥을 먹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도 늘 관련 연구 주제를 발견해 그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시는 분들 앞에서 나는 감히 거짓말을 꾸며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우물쭈물 말을 이어가면 귀신같이 내가 이 길의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파악하신 뒤 그 시점에서,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책을 들여다 보고 글을  써야 하는지 차근 차근 말씀해 주신다. 경제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건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예전 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한 분야에서 일정 수준에 오르면 완전히 다른 분야를 들여다 보는 시각 자체도 따라서 함께 발전한다고 한다. 즉 동양사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으면 천체 물리학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고 해도 대충 그 분야의 ‘큰 그림’ 정도는 한번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학문 분야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 보는 것은 굉장히 기술적인, 주변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대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아시고 이토록 정확하게 콕콕 아픈 곳을 짚어 주시는 것일까.

부모님이란 존재는 참 이상하다. 어릴 때보다 오히려 함께 늙어가는 처지가 되니 더 크게 느껴진다. 내가 걸어갔던 길을 이미 다 경험하셨고, 내가 현재형으로 겪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당신 나름대로의 해답을 이미 몇십년전 내리신 분들이다. 공부와 친구들에 둘러싸여 가족과 심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던 10대 시절에는 아예 부모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고, 술과 연애에 푹 빠져 흥청망청 놀기 바빴던 20대 초반의 부모님은 나약해 보이는 다른 하나의 인간일 뿐이었다. 군대에 가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사랑’ 을 소중히 간직하기 시작했고,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멘토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 멍청한 머리로 공부를 조금 더 해보겠답시고 억지로 나온 유학길에서 마침내 부모님이 얼마나 크신 ‘어른’ 인지를 깨닫게 된다. 한번에 확, 와닿는 것이 아니라 전화를 통해, 혹은 일년에 한번 얼굴을 직접 뵐 때마다 조금씩 확신에 확신을 더하게 된다. ‘이 정도면 제법 똑똑한/잘난/괜찮은/잘한 편 아닌가’ 라는 자만심을 입밖으로 드러내기도 전에 이미 짐작하시고 단 한두마디로 여지없이 깔아 뭉개버리는 가장 엄한 스승이자 내가 가야할 길을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더더욱 따뜻하고 힘이 되는 격려와 위로를 해주시는 가장 열렬한 응원단장이기도 하다.

나는 절대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은 그릇에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확실히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늘’ 이나 ‘그림자’ 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내가 자식을 낳고 길러 그놈이 서른 즈음이 되었을 때 지금 나의 부모님이 내게 주시는 수준의 조언과 격려, 충고와 꾸짖음을 과연 내가 그 친구에게 줄 수 있을까. 솔직히 너무 자신없다. 나는 그때도 나 하나 먹고 살기 바빠 허둥지둥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의 아버지도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항상 그리워하시고 그분의 발뒤꿈치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씀을 넋두리처럼 하신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한의사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공통적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내 기억에 바둑밖에 없었다. (아 고스톱도..) 결국 무엇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의 크기는, 그릇은, 그런 표면적인 것으로 드러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어른이라는 존재는 그런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런 것 같다. 자신이 과연 그 수준에 도달해 있을까 비교할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함과 강함, 깊음과 유연함이 있다. 그 크기는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지만 함께 있다 보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 아직 갈길이 멀다. 그래서 토요일 밤이 늦도록 학교에 남아 되지도 않는 머리를 부여잡고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부모님께 잘 보이고 싶다.

10 thoughts on “손바닥 위.

  1. 음…전 유학 초반에 막 신경질 내고 죽을 것처럼 행동했더니 ;; 이제 더이상 안 물어보시더군요. “수업 잘 듣고 있니? 페이퍼 잘 쓰고 있니?”에서 “알아서 하겠지!”로 변신!
    어쨌든, ‘따라가’는 건 궁극적으로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요.

    • ㅎㅎ 전화 한통 하시는건 어떨런지? 부모님도 보실겸 저도 보실겸 덴버로 한번쯤 오실 때도 된것 같은데…

    • 여태껏 이것저것 많은 일들이 있어서 못갔는데 한 삼월 말쯤엔 가볼려구요. 조만간 뵈요. ^^

    • 오오 오시는군요! 제가 뉴욕으로 가서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송구스럽습니다 -_-;;

  2. ㅋ 전 여동생같은 엄마를 두어서 그런지
    전혀 공감이 되질 않는 포스팅이군여 ㅎㅎ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스럽다는 것
    나이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저요~~

    • 그쵸 물리적은 나이는 거의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주변에 어른스러운 어른들을 두어서 참 영광인 것 같고요.

    • 우리 어무니는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 놓으시고 빤히 내려다 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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