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위.

이틀전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길게 수다를 떨었다. 길다고 해봤자 한시간 남짓일 뿐이다. 무뚝뚝한 아들내미가 어머니와 한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자친구가 있을 때에는 언제나 여자친구가 가장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고, 집에 오면 가끔 가다 재롱을 피우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에 그쳤을 따름이었다. 아마도 유학을 준비하면서부터였을 것 같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군대가기 전 어머니와 매일 아침 동네 근처를 산책하며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시초였던 것 같고. 유학을 온 후로는 일년에 딱 한달 한국을 ‘방문’하는 시기에 되도록이면 잠을 줄이고 일찍 일어나 외출하기 전 어머니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대단히 폐쇄적인 인간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만나고 싶던 지인들을 한달이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최소한 한번씩은 만나려고 하니 하루에 몇탕을 뛰어도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럴수록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에 애가 탔다. 아마도 그때부터 어머니와 신나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내가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거의 완벽한 대화 상대를 ‘발견’ 한 것이 너무 늦지 않았을까 후회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대화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했다. 최근들어 어머니는 전화 통화에서 나의 논문이 어떻게 진척되어 가는지 무척 궁금해 하신다. 이분들의 최대 관심사는 나의 건강이나 이곳에서의 생활 따위가 아니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하실 뿐이다. 이건 한평생을 학자로 살아온 분과 그분과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아온 분이 아주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궁금증일 것이다. 음식은 해먹으면 그만이고, 청소나 빨래는 때가 되면 하면 된다. 친구들과 놀거나 술을 먹는 것도 하고 싶으면 하라지. 그런건 그분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밥을 먹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도 늘 관련 연구 주제를 발견해 그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시는 분들 앞에서 나는 감히 거짓말을 꾸며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우물쭈물 말을 이어가면 귀신같이 내가 이 길의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파악하신 뒤 그 시점에서,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책을 들여다 보고 글을  써야 하는지 차근 차근 말씀해 주신다. 경제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건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예전 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느 한 분야에서 일정 수준에 오르면 완전히 다른 분야를 들여다 보는 시각 자체도 따라서 함께 발전한다고 한다. 즉 동양사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으면 천체 물리학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고 해도 대충 그 분야의 ‘큰 그림’ 정도는 한번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 학문 분야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 보는 것은 굉장히 기술적인, 주변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대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아시고 이토록 정확하게 콕콕 아픈 곳을 짚어 주시는 것일까.

부모님이란 존재는 참 이상하다. 어릴 때보다 오히려 함께 늙어가는 처지가 되니 더 크게 느껴진다. 내가 걸어갔던 길을 이미 다 경험하셨고, 내가 현재형으로 겪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당신 나름대로의 해답을 이미 몇십년전 내리신 분들이다. 공부와 친구들에 둘러싸여 가족과 심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던 10대 시절에는 아예 부모님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고, 술과 연애에 푹 빠져 흥청망청 놀기 바빴던 20대 초반의 부모님은 나약해 보이는 다른 하나의 인간일 뿐이었다. 군대에 가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사랑’ 을 소중히 간직하기 시작했고,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멘토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 멍청한 머리로 공부를 조금 더 해보겠답시고 억지로 나온 유학길에서 마침내 부모님이 얼마나 크신 ‘어른’ 인지를 깨닫게 된다. 한번에 확, 와닿는 것이 아니라 전화를 통해, 혹은 일년에 한번 얼굴을 직접 뵐 때마다 조금씩 확신에 확신을 더하게 된다. ‘이 정도면 제법 똑똑한/잘난/괜찮은/잘한 편 아닌가’ 라는 자만심을 입밖으로 드러내기도 전에 이미 짐작하시고 단 한두마디로 여지없이 깔아 뭉개버리는 가장 엄한 스승이자 내가 가야할 길을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더더욱 따뜻하고 힘이 되는 격려와 위로를 해주시는 가장 열렬한 응원단장이기도 하다.

나는 절대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은 그릇에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확실히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늘’ 이나 ‘그림자’ 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내가 자식을 낳고 길러 그놈이 서른 즈음이 되었을 때 지금 나의 부모님이 내게 주시는 수준의 조언과 격려, 충고와 꾸짖음을 과연 내가 그 친구에게 줄 수 있을까. 솔직히 너무 자신없다. 나는 그때도 나 하나 먹고 살기 바빠 허둥지둥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의 아버지도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항상 그리워하시고 그분의 발뒤꿈치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씀을 넋두리처럼 하신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한의사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공통적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내 기억에 바둑밖에 없었다. (아 고스톱도..) 결국 무엇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의 크기는, 그릇은, 그런 표면적인 것으로 드러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어른이라는 존재는 그런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라는 존재는 그런 것 같다. 자신이 과연 그 수준에 도달해 있을까 비교할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함과 강함, 깊음과 유연함이 있다. 그 크기는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지만 함께 있다 보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 아직 갈길이 멀다. 그래서 토요일 밤이 늦도록 학교에 남아 되지도 않는 머리를 부여잡고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부모님께 잘 보이고 싶다.

Sharon Van Etten: Tramp

 

뉴저지 출신의 포크 뮤지션 Sharon Van Etten 의 세번째 풀렝쓰 앨범이자, Jagjaguwar 와 계약을 맺고 낸 첫번째 앨범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뉴저지와 브루클린이지만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미드웨스트 부근에서 해 왔다. 시카고에 있는 로컬 레이블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이 세번째 앨범을 낸 Jagjaguwar 도 인디애나의 블루밍튼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회사다. 반 에텐은 이 앨범을 작업하는 14개월동안 홈리스로 지낸 경험이 앨범의 주된 정서를 만들어 냈다고 밝히고 있다. 때문에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박하고 따뜻하다. 왜 굳이 그녀의 출신 지역과 활동 지역, 그리고 레이블이 있는 곳을 궁금해 했냐 하면, 미국의 포크/인디 뮤지션들에게 지역성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지난 3년동안 알게 되었기 때무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많은 공연들과 인터뷰에서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을 ‘미국인’ 으로 지칭하지 않고 ‘어느 주’ 출신이라고 밝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자신들이 나고 자란, 혹은 밴드 멤버들을 만나 함께 어울린 특정 카운티나 타운에 대한 애착이 생각보다 강하고, 그 ‘고향’ 을 떠나 투어를 돌면서 투어 버스나 도시의 허름한 호텔에서 만들어 내는 노래들에 고향에 대한 애정과 낯선 곳에서 느낀 신비한 감정등을 고스란히 녹아 있게 됨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반 에텐의 음악은 미드웨스트/시카고 지역의 정서와 뉴욕/뉴저지의 정서가 묘하게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둘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그건 마치 시카고 출신 친구와 뉴욕 출신 친구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야 하는 난처함과 비슷한 것이다. 대구 사람을 하나의 기준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대구의 ‘정서’ 가 무엇인지는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서울 사람과 대구 사람이 노래를 만든다면 그들의 출신 배경이 어떻게 음악속에서 녹아 나올지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은 각 지역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훨씬 더 큰 나라이고, 때문에 이 정서적인 간극도 훨씬 도드라질 수 밖에 없다. 외부자의 시선과 당사자의 정체성 양쪽에서 모두 말이다.

이 앨범에 있는 모든 노래들은 반 에텐이 작사, 작곡했다.  이 앨범의 프로듀서는 Aaron Dessner 고, 그의 집 창고에서 녹음되었다고 부클릿에 나타나 있다. 애런 데스너는 The National 의 기타리스트다. 더 내셔널의 모든 가사는 보컬리스트인 Matt Berninger 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음악의 거의 대부분은 데스너에 의해 만들어진다. 더 내셔널 음악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데스너는 반 에텐과 함께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며 음악을 만들었고, 그의 집 창고에 간단한 녹음 시설을 갖추어 놓고 녹음을 마쳤다. “We are fine” 에는 The Beirut 의 Zach Condon 이 배킹 보컬로 참여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더 내셔널의 멤버인 Bryan Devendorf 가 드럼을 담당했다. 브루클린 베이스의 더 내셔널과 뉴멕시코 태생의 잭 콘돈등이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 앨범이 풍성해지는 순간은 묘하게도 반 에텐이 그녀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악기들을 치우고 목소리 주변의 공간들을 빈 곳으로 방치해 둘 때이다. 통기타 하나에 의지해 나지막히 내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이 있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다양한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Obama, Catholic, Contraception

http://www.nytimes.com/2012/02/15/us/obama-shift-on-contraception-splits-catholics.html

주변의 친한 친구들은 때때로 내가 가톨릭, 그것도 아주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내가 가톨릭 신자처럼 행동하지 않거나 (..) 가톨릭이 일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이미지와 나의 이미지가 상충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이 가톨릭 문화의 영향권에서 단 한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었고,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 문화안에 종속된 채로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회적으로 가톨릭이 관계된 이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내가 가톨릭이 제시하는 모든 doctrine 들을 철저히 따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동성애는 법적으로 반드시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안락사 역시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주체적인 선택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신부들에 의한 아동 성추행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처벌되어야 할 뿐더러 구조적인 해결책을 반드시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슈들은 가톨릭, 즉 로마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나와 의견을 달리 하는 것들이다.

최근 오바마 정부는 새롭게 바뀐 의료 보험 규정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려고 했다가 미국 가톨릭 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관련 뉴욕 타임즈 기사는 위에 링크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고용인 측은 피고용인이 피임약을 구입할 경우 바뀐 건강보험을 통해 이에 대한 보조를 강제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가톨릭은 공식적으로 인위적인 피임 행위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니까 섹스할 때 콘돔을 쓰면 반가톨릭적 행위라는 얘기!) 미국 가톨릭 주교들이 모여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고, 공화당 대선 후보들과 티파티등이 여기에 합세하면서 정치 쟁점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오바마는 가톨릭계 학교나 병원에서는 피고용인이 피임약을 구입할 경우 보험회사로부터 직접 그에 대한 보조를 받게 함으로써 가톨릭 교리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피임약 구매에 따른 보조는 계속해서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나름 묘수라면 묘수인데, 아직도 가톨릭 근본주의자들은 이 법개정역시 간접적으로 피임을 부추기는(..) 행위라며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미국의 가톨릭 사회를 약 3년 반동안 경험해 본 결과, 생각보다 상당히 근본주의적인 구석이 많다. 즉 여기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traditionalist 들과 modernist 들의 구분이 꽤 명확한 편인데, 아주 정통적인 로마 교황청의 교리를 충실히 따르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유연하게 교리를 해석하여 현실에 적용하는 무리도 있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성당은 대학교에 속한 부설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근본주의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오늘도 방금 성당에 다녀 왔는데 바로 피임에 대한 debate 를 박사 한명 불러 놓고 한다고 광고하는 것을 보면 이번 오바마 정책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다음주 수요일이 재의 수요일인데 (부활절 전 약 40일동안 사순시기라고 하여 금식과 금육등 절제된 생활을 하는 기간을 시작하는 날) 그날이 되면 캠퍼스 곳곳에 이마에 십자가 모양의 잿가루를 묻힌 학생들이 돌아 다닌다. 한국이었으면 미사 끝나고 나오면서 쓱쓱하고 그냥 지워 버리는데 이 친구들은 그날 얼굴을 씻을 때까지 계속 하고 다닌다.

아무튼, 나는 대체 왜 피임을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가톨릭쪽에서는 생명의 소중함, 뭐 이런 것을 강조하다 보니 나온 주장일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어찌 인간의 뜻으로 막으려 하느냐.. 뭐 이런 이야기인 것 같다. 아니 생명이 발현되기 전에 미리 그 가능성을 좀 줄이겠다는 것이 어찌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냐. 무분별한 임신과 출산으로 오히려 더 많은 생명이 함부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시아 대륙에서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간 생명들은 “하느님이 천국으로 거두어 주실 것이다” 라고 선전할 수도 있겠지만 제 자식을 속절없이 떠나보낸 어미의 마음은 누가 달래줄 것이냔 말이다. 이제 과학의 발달로 인해 언제가 “임신” 이고 “잉태” 의 시점인지 거의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게 되었고, 때문에 적절한 피임 방법을 통해 무책임한 임신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것은 오히려 생명의 고귀함을 드높이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피임 찬성. 오바마 지지. (ㅋㅋ)

미국 시민의 25% 가 가톨릭 신자다. 적지 않은 비율이고, 때문에 오바마도 지난 대선 당시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을 러닝 메이트로 지목했던 것이다. 청교도 문화가 지배하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국민의 1/4 이 가톨릭 신자이고 또 스패니쉬계의 성장으로 그 중요성이 더 증대되고 있는 마당에 이를 무시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즉 가톨릭 교리가, 정치 세력화한 가톨릭 집단이 미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찰하는 것도 꽤 흥미있을 거라는 얘기.

여담으로 피임과 관련된 알싸한 과거 추억이 있는데 19금이라 패스.

Adele: wins the Grammy 2012

Adele 이 올해 그래미를 휩쓸었다. 개인적으로는 네개의 주요 부문을 Bon Iver 와 Adele 이 두개씩 나눠 가졌으면 참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래미가 Adele 을 훨씬 더 많이 좋아했나 보다. 최근 경향이 좀 그런 것도 같다. 노라 존스를 신데렐라로 만든 뒤 와인하우스와 아델에게 연이어 꿈같은 하룻밤을 선사했다. 솔직히 맛탱이가 갈만큼 갔다고 냉소적으로 바라봐도 할말 없는 그래미이지만, 최소한 아직까지는 현존하는 영미 대중음악 시상식중 전 장르에 걸쳐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시상식이니만큼, 또 그만큼의 대중적인 파급효과가 큰 시상식임을 부인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아델의 수상이 기분이 좋은 것을 굳이 감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Adele 은 그저 음악 감상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내 인생에 적극저으로 개입하고 도움을 준 뮤지션중 하나이다. 물론 그녀와 나는 서로 전화번호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 사이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음악이 내 삶에 깊숙히 관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델의 1집이 처음 나왔을 당시 우연찮게 그녀의 음악을 접하게 됐고, 마침 그당시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앨범에 있던 몇몇 곡들이 마음을 크게 울렸더랬다.

그리고 2집에서는 이 곡이 제일 좋다.

사실 2집은 1집보다 훨씬 더 단조로운 편이다. 악기 구성을 복잡하게 가져 가고 코러스등을 더 풍성하게 만들긴 했지만 장르나 멜로디라인은 대중들이 “따라부르기 훨씬 더 쉬운”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개인적인 만족도는 1집만 하지 못했지만, 2집이 1집보다 훨씬 더 뜨거운 반응을 얻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미국에 상륙한 이후 미디어들이 지나치게 띄어주는 감이 없지 않아 있고, 현재 그녀의 상태가 과연 이러한 언론의 프레셔를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냐는 걱정이 최근 그녀의 안좋은 몸상태와 겹쳐져 더 큰 근심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사실이다. 차분하게 음악적으로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지긋한 성장세를 가만히 앉아서 참아 주지 못할 그녀 주변을 생각하면 그런 느낌이 더더욱 심해진다. 이래저래 앞날을 마냥 축복하기에는 불안한 구석이 많은 어린 뮤지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축복받은 뮤지션은 자신의 얼굴을 앨범 자켓으로 쓰고 자신의 나이를 앨범 타이틀로 붙일 정도의 정체성과 자신감이 있다. 아주 트레디셔널한 장르를 상당히 세련되게 소화시킴과 동시에 신파에 가까운 정서를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설득하고 동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모든 놀라운 현상은 물론 그녀의 목소리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고, 그녀는 아마도 자신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을 때까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아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다. 개인적인 고마움도 함께.

 

 

Cloud Nothings: Attack on Memory

Cloud Nothings 의 데뷔 앨범 <Turning On> 은 꽤 괜찮은 인디/슈게이징 앨범이었다. 퍼즈 노이즈가 잔뜩 걸린 쟁글거리는 기타 위로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좋은 멜로디와 훅이 살아 있는 후렴구가 잔뜩 널린 앨범이었다. 가볍고, 따뜻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클리블랜드 출신 Dylan Baldi 가 이끄는 원맨 밴드의 두번째 앨범은 처음 시작부터 무척 당황스럽다. 이 앨범에서 연상되는 밴드들은 더이상 Wavves 나 Jesus and Mary Chain 이 아닌, Nirvana, Fugazi, 혹은 다이노서 주니어같은 90년대 개러지 록밴드들이고, 밝음이나 봄향기같은 분위기는 싹 가신채 훨씬 더 무거워지고 공격적이 된 쇳덩어리 느낌이 먼저 와 닿는다. 첫곡 “No Future/No past” 는 노골적으로 너바나의 후기 작업(이를테면 <Utero> 의 곡들)을 카피한 듯한 인상까지 받을 정도이고, “No Sentiment” 는 스메슁 펌킨스의 초기 작품들이 연상되며, “Separation” 에서는 92년쯤 들었던 것 같은 다이노서 주니어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여전히 홈레코딩 방식을 즐기는 이 미국인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내가 알 도리도 없고 시간을 쪼개어 알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1집과 2집 사이에 존재하는 변화의 폭이 상당히 크다는 점에서 퍽 흥미롭긴 하다. 요즘처럼 안전하게 음악을 만드는 풍조에서 이처럼 큰 간극을 가진, 다른 말로 하면 꽤 큰 리스크를 감수하는 젊은 뮤지션이 또 있었던가? 앨범 제목처럼 자신의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90년대를 향한 기억을 꺼내어 다시 되살려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전작이 너무 맥아리가 없이 느껴졌던 것일까. 어쨌든 굉장히 파워풀하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작품이 하나 나오긴 했다. 달랑 여덟곡이 수록된 러닝타임은 못마땅하지만, 한곡 한곡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렇게 터무니없이 짧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Django Django: Django Django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아트 스쿨 재학중 만나 2008년 런던에서 결정된 4인조 밴드  Django Django (쟝고 쟝고? 양고 양고?) 의 데뷔 앨범. 3년동안 홈레코딩 방식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흔히 홈레코딩이라고 하면 로파이한 감성의 포크 음악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들의 음악은 그러한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한다. 어쿠스틱한 기운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묘한 박자감과 사이키델릭한 연주를 전면에 내세운다. 보컬라인은 비치 보이스가 연상되기도 하고 음악 전개 방식은 애니멀 컬렉티브가 생각나기도 한다. 여러 평단에서 벌써부터 올해의 앨범 후보가 아닌가,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다양한 효과음부터 재미있는 리듬, 톡톡 튀는 멜로디까지 흠잡을 구석이 없긴 한다.

그런데 나는 별로! 우선 나는 이렇게 꽉찬 사운드를 들으면 쉽게 피곤해 진다. 모두가 명반이라 칭하는 애니멀 컬렉티브의 최근 작업 결과물들과 와일드 비스트같은 음악들은 “그래 정말 좋은건 알겠는데.. 이상하게 손이 안간다? 앨범을 한바퀴 들으면 끄고 싶어지네” 라는 생각들이 든다. 이 앨범도 약간 그쪽 부류인 것 같다. 되게 좋은건 너무 잘 알겠는데, 손이 잘 가지는 않는다. 내가 취향을 거의 타지 않는데 이런 취향은 좀 타는 것 같다. 귀가 피로해 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듯. 머리도 좀 아파오는 것 같고..

Sepalcure: Sepalcure

뉴욕에서 2010년 결성된 덥스텝 듀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Praveen Sharma 와 Travis Stewart 라고 알려진 두 명의 멤버는 Hotflush 레이블에서 2010년 <Love Pressure> 라는 EP 를 내면서 업계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올해 갓 나온 이 데뷔 앨범으로 덥스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내가 아는 마지막 덥스텝 뮤지션은 Burial 인데 -_- 그만큼 이 바닥에 대해서 무지하고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하지만 당시 Burial 의 앨범은 정말 좋게 들었고, 그 해 최고의 앨범이라는 여러 사람들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곤 했다. 이 앨범도 정말 좋게 듣고 있다. 덥스텝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 하면 역시 도시적인 시크함과 감상용/플로어용 모두 용이하다는 융통성에 있을텐데 이 앨범은 그에 더해 Burial 의 <Untrue> 이 가지고 있던 사운드스케입을 한단계 더 확장시키는 느낌이다. <Untrue> 는 건드리면 깨질 것같은 극도의 예민함과 엄청 차가운 드라이아이스를 만지는 듯한 서늘한 느낌이 공존하는, 그 앨범 이후 다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공간감이 돋보이는 앨범이었다. <Sepalcure> 는 뭐랄까, 앨범만이 가지는 특유의 색깔은 약간 엷어졌지만 그 폭과 깊이는 약간씩 더 넓어지고 깊어진 듯한 느낌? 아무튼 좋다.

서울 홍대, 혹은 강남 어딘가의 “쿨” 하고 “잇” 하며 “핫” 한 어느 어둡고 세련된 클럽이나 바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은 음악이다. (그 왜 있잖아요.. 파란색 네온사인이 계단 사이에박혀 있고 인테리어는 완전 초현대식 미니멀리즘..턱수염 기르고 뿔테쓴 남자와 엄청 늘씬한 여자가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테이블.. +_+) 그렇다고 그런 바나 클럽들처럼 허세가 잔뜩 들어간 것은 아니고. 그냥 음악이 너무 섹시하게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까 섹시함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이 음악을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도.

Leonard Cohen: Old Ideas

2004년에 발매된 <Dear Heather> 이후 8년만에 발표된 리오나드 코헨의 새로운 스튜디오 앨범이다. 올해로 77세가 된 이 살아 있는 전설이 다시 앨범 제작을 하게 된 이유는 그리 감동적이지만은 않다. 자신의 자산을 맡아 관리하던 매니저가 그의 거의 모든 재산을 훔쳐 달아났고, 이어 2008년 세계적인 경제 한파가 닥치면서 남아 있던 재산마저 반토막이 났다. 음악계를 떠나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줄로만 알았던 이 늙은 거장의 이름은 레딩같은 거대 페스티벌의 리스트에서 발견되기 시작했고, 바르셀로나와 런던등에서 가진 그간의 라이브 작업들을 모아 앨범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2012년, 지난 8년간의 기억들을 모아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오래된 친구들, 그리고 뜻밖의 조력자들과 함께.

이 앨범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총 네명이다. Patrick Leonard, Anjani Thomas, Ed Sanders, and Dino Soldo. 패트릭 리오나드는 마돈나의 “Like a Prayer”, “Ray of Light” 등으로 유명한 프로듀서인데, 리오나드 코헨의 아들인 아담 코헨의 앨범을 프로듀싱하다가 연이 닿아 이 앨범까지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코헨의 낮게 깔리는 spoken words 과 대구를 이루는 아름다운 배킹 보컬 라인으로는 Dana Glover, Sharon Robinson, The Webb Sisters (Hattie and Charley Webb) and Jennifer Warnes 등이 참여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곡들에서 코헨은 노래를 부른다기 보다는 그저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뉴욕 타임즈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며, 그 이유로 최근 다시 피우게 된 담배를 지적했다. 그 낮아진 목소리와 함께, 그는 금전적인 이유로 컴백한 여느 뮤지션들과는 다른 깊이를 여전히 보여준다. 사운드는 명징하며, 멜로디는 아름답다. 외로운 듯 고독하고 비틀거리는 듯 하면서도 똑바로 길을 걸어가는 듯한 그의 목소리와 가사는 다양한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앞뒤로 감싸안으며 풍성하게 되살아난다. 악기들 역시 따뜻한 기운을 담뿍 담아 내며 앨범의 온기를 높인다. 앨범 속지를 꺼내 두고 읽어 내려가면서 들어야만 할 것 같은, 쉽게 지나치기 힘든 가사들은 덤이 아닌 코헨 음악의 핵심이다. 앨범을 다 듣고 나면 한편의 시집을 읽은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부끄럽게도 이 앨범은 내가 돈을 주고 처음으로 구입한 코헨의 앨범이다.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까지 코헨의 앨범을 구입하지 않은 것을 탓하게 된다.

앨범 자켓은 코헨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Capella Gregoriana: Lost In Meditation (Meditative Gregorian Chants)

이 음악은 수도사들이 직접 부른, 그레고리안 성가 모음집이다. 그레고리안 성가로 진행되는 미사에서 실제로 쓰이는 18곡의 성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을 구입한 이유는 단순했다. 매주 화요일과 일요일 밤 아홉시에 학교 성당에서 그레고리안 미사가 있는데, 거기 참석하면 참 좋은 성가들이 많이 나와서 너무 좋았다. 집에서도 들으면 조금이라도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구입했다.

음악들은 참 좋다. 악기의 도움 하나 없이 남자 수도사들의 목소리만으로 만들어 내는 경건함과 고요함, 차분함이 집안 곳곳에 스며들 때 고마움을 느낀다. 가만히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해도 참 좋을 것 같고, 그저 음악을 흘려보내며 책을 읽어도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