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 Porter: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Andrew Porter,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New York, NY: Vintage Books, 2008.

“Andrew Porter’s fiction is thoughtful, lucid, and highly controlled… He has the kind of voice one can accept as universal – honest and grave, with transparency as its adornment.”

– Marilynne Robinson

내가 좋아하는 여성 작가 매릴린 로빈슨의 추천사가 적혀 있는 표지. 먹먹한 파란 하늘 아래 외롭게 솟아나 – 아니 그냥 ‘걸쳐’ – 있는, 미국 교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들의 지붕이 있는 그 표지에 반해서 샀다. 사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어느 블로그 지인분이 쓴 포스트를 통해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찾아본 미국판 표지의 그 먹먹한 느낌에서, 아, 이건 읽어야 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고, 다음날 내가 좋아하는 로컬 서점에 가서 냉큼 골랐다. 마침 딱 한권 남아 있어서 더 소중하게 집어 들 수 있었다.

총 열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의 화자는 모두 ‘나’ 이다. ‘내’가 경험한, 현재의 ‘내’가 기억하는, ‘나’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필라델피아, 혹은 휴스턴, 아니 그도 아니면 코네티컷의 어느 도시의 교외 지역에 위치한,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집들 속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지역성이 강하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그 어디쯤에 있을 법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니까 시의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각 단편의 이야기들은 화자가 자신의 기억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기술되고 있지만,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 혹은 이야기가 말하여 지는 시대가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살았던 그 어디쯤, 내가 살았던 그 어느 시절쯤에 벌어졌던, 나의 주변에 있었던 그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나’의 관찰자적인 시선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투영하는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나’ 는 그 두 이야기속에 직접 섞여 들어가기도 하고, 철저히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하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무언가 조용히 드러난다. 소리 없이 드러나는 그 무엇은 내가 살면서 수없이 느꼈지만 또 무심코 지나쳐 버린 달콤하면서도 씁슬한 감정의 파편들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기억에서 지워지지도 않는, 부딪혀 이겨낼 수 없어서 늘 피해 왔지만 결코 나의 삶에서 떨어져 나갈 수 없는, 아니 나를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든, 그런 감정의 기억들이 있다.

맨홀에 빠진 친구의 죽음을 회상하는 젊은 ‘내’가 있다. 그는 자신이 친구를 죽음에 빠트렸는지, 혹은 단지 우발적인 사고에 의한 죽음인지에 대한 기억을 고의적으로 뭉그려트린다. 그렇게 해서라도 친구의 죽음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것이었을 게다. 늙은 교수와의 사적인 대화를 회상하는 한 여인이 있다. 젊고 잘나가는 남자친구가 있었던 그녀는 죽음을 앞둔 이혼한 노교수의 낡은 아파트에 초대받아 대화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확신하면서도 노교수의 사랑에 갈구하던 젊고 어린 그녀는 결국 완전히 상반되는 두가지 사랑을 모두 가질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병든 아버지의 부재속에 동성애에 눈뜬 어머니를 둔 13세 소년의 이야기도 있다. 그는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당시 어머니가 느꼈던 깊은 외로움과 그 고독을 유일하게 이해해주고 위로해준 이웃 아주머니와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모두가 외롭고, 모두가 힘들고 슬프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옆에는 가족이 있다. 좋든 싫든 함께 살아야 하는 가족말이다. 그리고 그 가족 주위에는 이웃이 있다. 좋든 싫든 지근 거리에서 관계를 주고 받아야 하는 이웃들 말이다. 이들과의 관계는 우리의 외로움을 위로해 줄 수도 있고, 증폭시킬 수도 있다.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 것이 인생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삶은 흘러간다. 주욱 주욱 잘도 흘러간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고, 기억이 만들어 진다. 현재에 다다른 우리는 그 기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기억은 뒤틀리고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지만,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 되기도 한다. 흘러가버린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격정적이 될 이유가 없다. 그냥 그랬다고, 내가 그때 그랬다고, 그때는 참 그랬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만이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앤드루 포터에게서 레이먼드 카버를 보았다. 역시 카버를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발간되어 있는 이 책을 한국에 사는 한 사람에게 추천했다. 추천할 당시에는 열편중 두세개의 단편만을 막 읽었을 뿐이었다. 왠지 그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착각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처럼,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나만이 이 책을 통해 나를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6 thoughts on “Andrew Porter: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1. 레이먼드 카버를 생각나게 하는게 번역 탓일까 하고
    물어보려 했는데, 역시나 그런거구나.
    레이먼드 카버를 한권도 안 읽은거야?

    • 번역되어 나온 책들은 거의 다 읽었지. 근데 얼마전에 서점에 가서 두리번거리는데 카버 전집이 나와 있더라고. 보고 확… 하려다가 참았는데 역시 그때 확 질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카버는 왠지 원문으로 읽으면 느낌이 또 많이 다를 것 같기도 하고.

  2. 역시 원서로 읽으셨군요. 원서 표지는 정말 외로운 느낌이네요. :)
    작가소개에 1인칭 시점을 쓰는 작가들을 좋아한다는 글귀가 있었던 거 같아요. 카버도 좋아한다고.
    전 이 작가분 작가소개도 마음에 들었어요. 단번에 작가가 된 게 아니라, 작가가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되었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첫 작품집이 좋은 가봐요.

    • 네. 표지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어쩐지.. 이 작가분의 소설들은 1인칭의 시점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화자의 감정이 흔들리는 모습들을 느끼면서 이해해야 한달까.. 암튼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다음 소설이 나오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3. 오,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라…. 어떻게 하면 누가 읽든 그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 수가 있는 거죠…? 읽어봐야겠어요.

    • 제가 그랬기 때문에 남들까지 다 그럴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유아적인 상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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