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2

– 난 요즘 한국의 아이돌 문화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음악적인 부분은 호불호가 갈리니까 차치한다고 쳐도, 청소년들의 ‘우상’ 인 젊은 여성들이 거의 랩댄스 수준의 의상과 안무를 공중파에서 마음껏, 그것도 경쟁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의 대중 문화가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어떤 ‘저급한’ 지점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이건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대중들이 연예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그리고 그들이 시장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상징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한류’ 랍시고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는 그 언니들이 한국에 벌어다 주는 수입의 근원이 포르노그래피를 소비하는 패턴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그건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요즘은 평론가들조차 이에 대한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아니, 한국에 평론이 아직 살아 있기는 하던가.

–  아무튼 2012년이 밝았고, 이 물리적이고 인위적인 현상과는 상관없이 나는 나만의 긴 휴가를 슬슬 마무리할 단계에 이르렀다. 12월 중반 학기를 마무리하는 논문을 제출하면서부터 시작된 이 휴가는 몇권의 책과 몇명의 사람들, 그리고 몇개의 음식들 덕분에 외롭지 않게 채워졌다. 내일은 집에 눌러 앉아 있으면 칼리지풋볼 보울 게임들을 보면서 시간을 얼렁뚱땅 보낼 것 같아 일찌감치 밖으로 나가보려고 한다. 학교 출근과 논문 작성. 내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다시 한번 되새기며 다짐하는 변하지 않는 목표가 하나 있다.  거짓말하지 않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을 짖누르고 있던 거품들을 반드시 제거하리라 마음먹은 뒤부터 일년 365일 머리를 떠나지 않는 단 하나의 생각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하루를 버티는 것이었다. 올해도 예외없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떳떳해할 만큼 괜찮은 하루 하루를 살아 내는 것이 목표다. 올해는 여기에 한가지 목표를 더하기로 했다. 아침 시간 잘 활용하기. 강제되지 않은 삶을 살때면 나는 항상 남들보다 약간 늦게 하루를 시작했고 약간 늦게 하루를 끝냈다. 몸 곳곳에 베어있는 게으름탓이다. 그 게으름을 멀리 하기 위해 아침시간에 움직이는 것을 스스로 강제해 보기로 했다.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  예쁜 여자친구 만나기나 좋은 논문 쓰기같은 허황되고 진실되지 못한 목표는 가지고 있지 않다.

–  작년 한해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고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며 오프라인에서 채워지지 않는  고픔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 늘 감사할 따름이다. 이 바닥에서 그래도 몇년 살아 봤다고 경험이랄 것 까지는 없는 알량한 정보들이 조금씩 쌓여가는데, 그 중 하나는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에게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떠나는 것도 쉽고, 자신을 숨기거나 드러내는 것도 쉽다. 어짜피 다들 거짓말을 하니까, 라는 불문율같은 변명이 숨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점점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어 가고 있다. 더이상 내 삶의 영역을 확대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만약 확대한다고 해도 그 대상이 블로그나 트위터같은 불특정 다수에서 걷어 올려진 사람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공부를 마칠 때쯤 다시 한번 삶의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블로그는 그 때까지 심심풀이로 재미삼아 하는 장난감이 아니다. 나름 진지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하고 축적해 나가고 있는 나의 소중한 재산중 하나다. 한국어를 까먹지 않기 위해 문장연습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건망증이 심한 내 자신을 위해 그날 들었던 음악과 보았던 영화, 그리고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일기장이기도 하다. 어쨌든,

–  떡국을 처음으로 만들어 보았다. 나름 만족하고 있다. 멸치로 육수를 우려 내었는데 대파와 양파를 같이 넣었다. 무를 넣는다는 것을 깜빡해서… 내일 다시 한번 만들어볼 생각이다. 떡국은 고명이 생명인데 고명까지 만들 여력은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럴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우리 어머니는 대체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계셨길래 그렇게 맛있는 떡국을 뚝딱 만들어 주셨던 것일까. 어제 밤 마침 한국 집에 누나 내외가 와서 저녁을 함께 먹고 있다길래 전화를 간단히 했더랬다. 오랜만에 자형과 누나 목소리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뭐 먹고 있느냐고 물어 봤더니 소고기 구워 먹고 있단다. 아 맛있겠다! 난 떡국에 소고기 육수도 못 우려내고 소고기 고명을 얹지도 못하는데! 라고 속으로만 대꾸했다.

– 그냥 내일은 조개를 사서 조개 미역국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 한국 음식에 대한 강한 집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떡국을 끓이면서 한국 음식 특유의 ‘국물 냄새’  를 맡는 순간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언젠가는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사람 마음은 참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고 싶지 않을 때 가만히 멈춰 주는 것도 아닌 것 같다.

– 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왠만하면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지만, 요즘 읽고 있는 책은 꼭 한번 언급하고 싶었다. 에릭 호퍼의 <The True Believer>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에릭 호퍼는 어렸을 때 시력을 잃었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시력을 회복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철학자다. 맹인으로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때문에 부두 노동자로 평생을 살았는데, 뒤늦게 눈이 다시 떠진 후 책에 대한 열망이 그를 덮쳐 혼자 많은 책들을 섭렵하게 된다. 낮에는 노동자로 일하며 밤에는 책에 파묻혀 공부하는 삶을 살면서 그만의 철학을 완성하게 되고 몇권의 저작을 남긴다. <The True Believer> 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의 첫번째 텔레비전 컨퍼런스에서 직접 언급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True Believer> 는 <맹신자들> 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번역되어 나와 있고 그의 자서전인 <에릭 호퍼, 길위의 철학자> 역시 한국에서 번역본으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언제 그의 자서전을 읽었는지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는다. 군대에 있었을 때 읽었던 것 같다. 분명히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고, 그의 책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는 1983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사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자유훈장을 수여 받았다.

7 thoughts on “memo2

  1. 저도 혼자 살다 보니, 외국 사는 종혁님 못지 않게 국물을 먹을 일이 거의 없어요 ㅜㅜ 보니까 종혁님은 꽤 부지런히 만들어드시는 듯한데, 저는 국물을 만들기엔 식성에 핸디캡이 너무 많거든요. 파/마늘/양파 냄새를 못맡아서. ㅜ_ㅜ 게다가 도시락을 싸다보니, 점심엔 따끈한 국물이 그리워요.

    그나저나 ‘거짓말을 하지 않기’ 정말 인상적인 목표에요. 정말로 알게 모르게 거짓말을 해야될 때가 많고, 때로는 ‘말하지 않음’ 역시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목표입니다. 늘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것 같은 삶의 자세는 저도 많이 배워야겠어요!

    • 저기.. 저 정말 요리하는 데에 게을러요! 제 생활을 잘 아는 사람이 이걸 본다면 크게 웃을 것 같은데요 ㅋ

      아니, 파/마늘/양파 냄새를 못맡으신다면… 거의 대부분의 한국 음식 요리가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이런 안타까운 일이.. 제가 다 눈앞이 캄캄해 지는데요. 혼자 살면 먹는 것이 부실해 지기 쉽더라구요. 잘 챙겨 드세요! 우리 건강해야 합니다.

      웬디님께서 이 블로그를 찾아 주시기 훠얼씬 전에 제가 여기에 지난 10년을 정리한 글이 하나 있어요. 거기에 왜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되었는지 자세히 나와 있죠 ㅋ

    • 닭… 맛있죠.. ㅠㅠ 제가 날라다니는 동물들과 별로 친하지 않아요. 한의학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2. 온라인에서 글을 읽을 때 습관적으로 드래그를 하면서 읽는 버릇이 있어서 행간에 있는 내용도 읽게 되었네요. ;;

    저도 블로그를 통해 안부를 묻고 개인사를 나누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런 관계들 점점 늘어나고, 깊어지는게 부담스러워져서 블로그를 리셋했어요. 그 중에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한번 직접 만나자고 제안한 이도 있었는데 내키지가 않더라구요. 전 온라인 상의 교류는 일종의 자극일 뿐이라 여겼기에 그것을 실체화하는데 관심도 없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환상으로 만들어진 관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어요.

    글로 정돈된 생각과 감정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에 대해 아주 잘 안다고 확신하게 되는 오만을 발견하니 온라인에서 맺은 관계들에 환멸이 들더라구요. 저도 그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도 저에 대해서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신은 분명 이런 사람일거라고 단정했어요. 너무도 어리석고 교만한 태도였죠.

    그런 환멸 때문에 지금은 온라인 상의 관계를 거의 정리했는데 요즘엔 종종 이런 생각도 들어요. 그것들을 자극이라고 폄하했지만, 사실 마음 속에선 그 이상의 의미를 바랐기에 그렇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는게 두려워했던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요. 피하지 말고 한번 만나보는 것이 제가 성숙해지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온라인 상의 관계들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신해야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 지우지 않고 흔적을 내버려 둔 것은 누군가 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싶습니다. 그것또한 읽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저도 말씀하신 것들의 거의 대부분에 동의해요. 블로그를 통해, 혹은 다른 온라인상의 어떤 방법들을 통해 교류를 하게 되면 그 채널을 통해 비추어지는 모습이 그 사람의 모든 것, 혹은 어떤 진짜 본질적인 모습을 반드시 대변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구요.

      하지만 비록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사람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까지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이기도 하거든요. 보여지는 만큼, 확대 해석할 필요없이 딱 그 부분까지만 이해하고 좋아하는 태도를 익히려고 노력중입니다.

    • 맞아요. 결국 ‘사람’은 이란 말은 ‘나는’이란 말과 같은 거니까요.

      말씀대로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간극을 좁히는 일은 참 어렵지만, 낙담하지 말고 끊임없이 살피고 노력하는 수 밖에 없는 일이죠. 그런 태도를 익히려 노력 중이란 말씀을 들으니 괜히 저까지도 힘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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