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음악들

음반을 많이 구입하지는 않는 편이다. 우선 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받는 월급으로는 아파트 월세나 식비, 전화비등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비용을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문화생활을 위한 약간의 여유자금이 허락된다면 예전같으면 당연히 음반을 샀겠지만, 요즘은 책을 사게 된다. 책을 조금 더 간절하게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음악은 여전히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중 하나다. 이것은 가치의 경중이 아닌, 고픔의 강도에 따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난 한해 이 블로그에 음반 리뷰를 목적으로 작성한 글은 모두 64개다. 즉 최소한 64장의 음반은 들었다는 얘기다. 리뷰를 작성하지 않은 음반들은 몇장 되지 않는다. 나는 이 블로그를 철저히 일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음악을 듣고 그에 대한 느낌을 기록해 놓는 것은 일종의 일기에 해당한다. 영화나 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기록하는 일은 때때로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지를 기억함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지난 한해 내가 쓴 리뷰들을 주욱 다시 읽어 보았다. 여전히 비문이 넘치고 문장들은 아름답지 않지만, 최소한 내가 음악을 어떻게 들었는지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앞으로는 “올해의 음반” 과 같은 재미있는 놀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들었던 64장의 음반들은 하나같이 다 좋았다. 좋음의 무게에서 약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음반 구입을 안전하게 하는 편이다. 메타크리틱이나 올뮤직,  피치포크같은 곳에서 충분히 리뷰를 읽어본 후 구입한다. 취향에 맞춘 음반을 구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믿을 수 있는 평론가의 말에 기대어 구입하기도 한다. 요즘은 spotify 에서 앨범 전체를 미리 들어볼 수도 있다. 그래서 실패는 거의 없는 편이다. 이 역시 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니 한장 한장 정성스럽게 (?) 살펴보고 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언급하고 싶은 음반들을 정리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다시 한번 언급한다는 것이 꼭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들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들었던 느낌과 지금 현재의 느낌이 달라서일 수도 있고, 정말로 다시 한번 언급함으로써 그 음반에 대한 감정적인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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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들중 하나이고, 한국에 잠시 머물 때 콘서트까지 보고 올 정도로 좋아했다. 난생 처음 팬클럽에도 가입해 보고, 그녀가 나오는 기사들을 일일이 검색해 가며 읽기도 했다. 축복받은 재능이 선한 목적으로 쓰일 때 발현되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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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토끼가 전달하는 ‘감성’ 과 ‘무드’ 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이 특별함은 아마 모든 청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감정선은 아닐 것이다. 단지 나에게 특별할 뿐이다. 그녀는 서울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지만 자신을 ‘Seoulite’  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 정체성 위에 짤막한 사랑 노래들을 담담히 전달한다. 초조함을 숨기지 않고 답답함을 억지로 감추지도 않는다. 때로는 집착도 하지만, 결국에는 잘 안될 거라는 사실도 받아들일 줄 안다. 허황된 꿈을 꾸지도 않지만 절망속에 갇혀 스스로를 가둬 버리지도 않는다. 지난 한해 가장 많이 따라 불렀던 노래들로 가득한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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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 Iver 의 음악은 참 아름다웠다. 황홀함을 선사해 주기도 했고, 쌉사름한 불친절함을 기분나쁘지 않게 전달해 주기도 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듣다 보면 전에 경험하지 못한 감정 하나가 불쑥 찾아 온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기분이 좋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쁜 것은 확실히 아닌, 기묘한 감정이다.  이 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좋을지 잘 모르겠지만,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가슴이 마구 뛰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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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음악이라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한 때가 1995년 무렵이다. 1996년 가지고 있던 용돈을 탈탈 털어 핫뮤직이라는 음악 잡지를 처음으로 구입했고, 그 잡지의 표지 모델이 막 3집을 발표한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의 제임스 딘 브랫필드였다. 그리고 몇주뒤 역시 가지고 있던 돈을 탈탈 털어 그들의 3집 CD 를 샀는데, 이 CD 역시 내가 생전 처음으로 구입한 CD였다. (그 전까지는 테잎을 샀었다) 그러니까 이 그룹은 내 음악 인생의 처음 몇 챕터를 장식해 준 셈이다. 단지 이 이유만으로, 나는 이들이 발표하는 모든 앨범을 열렬히 사랑해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무척 놀랍게도, 이들이 발표하는 최신 앨범들이 하나같이 너무 좋은 거다.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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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h Lagoon 의 데뷔 앨범은 내게 Mercury Rev 의 정서를 환기시켜 주었다. 머큐리 레브의 <Deserter’s Song> 은 내 인생의 앨범중 하나이고, 때문에 유스 라군이 이 정서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 마음이 많이 움직였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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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오기 전 떠난 2008년의 유럽여행의 마지막 자락에서 이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런던에서의 그 경험은 이후 이들에 대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해 덴버에서 이들의 공연을 다시 한번 더 볼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감사할 뿐이다. 이들은 여전히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내달렸고,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손을 흔드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멤버들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 앨범은 그들 커리어에서 최고의 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서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스란히 이 앨범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정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거부할 수 없을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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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현존하는 음악인들중 내가 가장 사랑하고 지지하는 밴드임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6 thoughts on “2011년의 음악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읽으면서 지난 한해도 많이 배웠습니다.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릴게요.

  1. 블로그를 저와 비슷한 용도로 쓰시네요.
    저도 기록의 수준인데..
    처음엔 영화 리뷰도 상당히 고민해서 썼었고, 좀더 길게 썼었는데
    이젠, 제목과 몇줄의 써머리 정도? 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 꼭 길게 써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제가 수다스러워서 막 끄적거리는 거고.. 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 저는 가끔 자켓표지만 보고 음반을 사기도 하는데 (그 레이블의 안목이 자켓표지에도 드러난다는 믿음 때문에) 그런 면에서 포스팅에 삽입하신 Fleet Foxes와 Youth Langoon의 자켓표지는 정말 기대할 만한 느낌!

    • 그쵸. 앨범 자켓이 너무 이뻐서 사는 것들도 꽤 되겠죠. 언급하신 두 앨범 다 구입하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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