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hijit V. Banerjee and Esther Duflo, Poor Economics: A Radical Rethinking of the Way to Fight Global Poverty

Financial Times 에서 ‘올해의 책’ 으로 선정했다는 기사를 읽고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에 더해 이 책에 대한 추천사중 <괴짜 경제학> 으로 유명한 Steven Levitt 이 쓴 “경제학이 (이 세상에)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 이라는 문구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세상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고민해 보았음직한 문제이고, 그중 거의 대부분이 평생토록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모든 학문은 세상에 무언가를 공헌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사회과학, 그 중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과 직결되는 경제 현상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경제학이 현대에 가지는 존재 가치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이 학문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이후 내가 거의 매일같이 생각하는 주제이다. 그에 대한 해답은 아닐지언정 어떤 힌트는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같은 것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전 세계의 거의 대부분은 빈곤에 시달린다. 세계 인구의 13%가 하루에 1달러가 채 되지 않는 돈으로 연명한다.  이 책은 부제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어떻게 하면 전세계적으로 만연해 있는 빈곤을 가장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는 책이다. ‘준비한다’ 라는 단어를 억지로 가져다 쓴 것은, 이 책이 그 자체로서 어떤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가장 올바른 해답을 찾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기능한다. 즉 ‘왜 빈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와 ‘그렇다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두가지 큰 질문이 있다면, 이 책은 전자에 거의 모든 노력을 소진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그러하듯이, 이 책은 쉽게 해답을 내지 못하고, 그럴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다만 특정 문제를 야기시키는 원인에 대한 효과적인 분석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그 다음 단계에 행해져야 할 대안의 마련을 조금 더 용이하게 만든다. 그 대안은 각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될 수도 있고, 시민 의식구조의 개혁이 될 수도 있으며, 선진국에 의한 원조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책의 저자 두사람의 몫은 아닌 셈이다.

빈곤 퇴치에 대한 상이한 시각 두개가 존재한다. 하나는 Jeffrey Sachs 라는 컬럼비아대 교수에 의해 대표되는 공급 중심의 시각이다. Sachs 는 선진국에 의한 원조에 의해 빈곤에서 탈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즉 아주 기본적인 위생 문제를 해결하고 한사람이 하루에 먹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이를 토대로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그 다음 레벨 – 빈곤 이후의 자생적인 경제 모델의 발전 – 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UN 에서 활동하는 안젤리나 졸리도 이쪽이다. 다른 하나는 William Easterly 라는 뉴욕대 교수에 의해 주창되는 수요 중심의 시각이다. 그는 무분별한 원조 프로그램은 오히려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인 시장 구조를 왜곡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원조 프로그램이 빈곤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는 원조 이전에 시장 구조를 보다 확실하게 정립하자고 주장한다. 삭스와 이스털리는 같은 맨하튼에 적을 두고 있고, 이 주제로 매년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이 책의 저자인 Banerjee 와 Duflo 는 이들과 한발 떨어진 매사추세츠 보스턴 근처의 MIT 에 재직하는 교수들이다. 그리고 이들 저자는  <Poor Economics> 에서 공급이 먼저냐 수요가 먼저냐로 다투기 이전에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하게 “그때 그때 달라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 이들의 핵심 결론이기도 하다. 수요 중심의 해결책이 먹히지 않을 때도 있고, 공급 중심의 해결책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러한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갔는지 일일이 나누어 살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놀라울 정도의 방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각각의 이슈들에 대한 검증을 한다. 아이보리 코스트, 인도와 중국, 브라질과 방글라데시등 빈곤층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을 직접 발로 돌아 다니며 실제 빈곤층에 속한 계층을 일일이 인터뷰했다. 각각의 정책들이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시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 이후 이들의 삶은 경제학적으로 재해석하고, 경제학적인 “도구” 들을 이용해 원인을 분석한다. 한가지 놀라운 점은 이들이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빈곤 현상을 분석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은 아주 간단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원론 수준의 경제학적 지식만을 이용해 세부적인 현상들에서 하나의 일관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그 과정에는 논리적인 비약도 없고 억측이나 과장도 없다. 철저히 인터뷰와 통계 수치만을 이용해 도출해낸 결과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반박하기 힘들다. 이들이 그 이후 제시하는 해결책, 혹은 대안이라고 불릴만한 아이디어들은 원인 분석에 비해 훨씬 추상적이며 얄팍하지만 그 것이 이 책의 큰 흠집이 되지는 않는다.

간단하게나마 이 책의 “결론이자 또다른 연구의 출발점” 이 될만한 내용을 적어 본다. 즉 “왜” 빈곤층은 계속해서 빈곤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대략적인 이유 다섯가지다.  첫째, 빈곤층의 대부분은 충분한 올바른 정보를 얻을 기회가 없다. 이들은 또한 옳지 않은 정보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위생 문제부터 섹스, 마약, 식습관등 기본적인 것들에서조차 이들은 제대로 교육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 둘째, 이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들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즉 더 많은 부양 가족과 더 적은 유산, 더 불안정한 일자리등의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셋째, 이들을 빈곤으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몇몇 시장들이 제대로 정의되거나 설립되어 있지 않다. 이는 정부의 부패부터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수렴되는 경제학적 행동들까지 다양한 이유들로부터 형성된다. 넷째, 빈곤층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적다. 원래부터 가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지와 이데올로기, 저항등의 이유때문이기도 하다. 다섯째, 이들은 다음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즉 혁신이나 도전등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모멘텀이 상대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시 처음 이 책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을 당시 가졌던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이 책이 경제학이 세상에 해줄 수 있는 그 어떤 가치를 제공해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내 개인적인 대답은 그렇다, 이다. 이 책은 경제학이라는 학문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즉 이 책의 저자들이 결론을 대신하는 마지막 장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이들은 현대 경제학이 자랑하고 내세우는 수학적인 엄밀성이나 현상들에 대한 일반화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그러한 경제학의 경향성을 배척하기까지 한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한가지, 지금 이시간에도 굶어 죽어 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는 데에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학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것 뿐이다. 즉 이 책은 한 학문 분야라는 “바닥” 에서 내공을 인정받기 위해 쓰는 추상적인 언어 유희가 아니다.  Duflo 가 대학원 시절 실제 인도에 가서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며 시작된 이 책은 그러한 실제적인 접근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코 성급하게 앞서가지 않는다.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치밀한 현상 고증과 통계적 수치를 제시하면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경제학적 함의를 차근 차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치밀한 논증 위에 그들이 원래 하고 싶었던 주장을 얹는다. 과격하지 않지만 분명한 어조로 전달한다. 행동해야 한다고. 그냥 행동하면 안되고, 아주 잘,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완성된다. 빈곤과 “싸우기” 위한 “극단적”인 “생각”. “싸운다” 혹은 “극단적” 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그리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전적으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인 엄밀함덕분이다. 그 안에 수학 공식은 존재하지 않고, 어려운 경제학적 개념도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쉽게 읽히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치열한 고민을 요구하고, 뒤이어 뜨거운 가슴도 요구한다. 경제학이, 아니 학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실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런 책을 쓰는 것이 아닐까.

찾아보니 아직 국내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하루 빨리 번역되어 소개되기를 바란다. 이제 한국은 세계 20위권의 “부자나라” 이고, 빈곤에서 가장 빨리 탈출한 모범 사례로 종종 소개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 나라가 가진 노하우를 더 발전해야 하는 나라들에게 전달하고 도움을 줄 때가 왔다.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이 책은 그런 고민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담. 젊은 경제학자가 받을 수 있는 영예로운 상들이 여럿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상 두가지는 매년 40세 이하 경제학자중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한명에게 수여하는 John Bates Clark Medal 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주 젊은 학자에게 수여하는 MacArthur “genius” Fellowship 일 것이다. 이책의 공저자인 프랑스인 Duflo 는 이 두개의 상을 모두 받았다. 한마디로 천재라는 얘기다. 천재가 머리를 좋은 방향으로 쓸 때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여담2. 유학오기 전 만났던 여자친구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내게 잠깐 보여준 적이 있다. 유심히 살펴 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여자친구를 가끔 떠올리 때마다 이상하게 그 책이 함께 떠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 친구는 무척 이뻤고, 이쁜 만큼 옷도 잘 입었고, 명품도 좋아하는 친구였다. 내게 항상 생각없이 산다고 구박을 들었고, 편하게 먹고 살기만 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랬던 친구가 왜 그 책을 20대 중반이던 그 당시 읽고 있었는지 이 책을 읽고나서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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