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

지난 주 목요일에 정식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경제학 박사 과정 프로그램에서 석사 학위는 박사 학위를 위한 중간 과정을 잘 끝마쳤다는 일종의 격려의 의미로 부여하는 성격이 강하다. 즉 실질적인 의미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학 석사 학위 소지자를 위한 시장이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기록으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반드시 남겨 두어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몇가지 있다.

첫째, 미국 대학교의 경제학 박사 과정 프로그램은 통상 5년으로 설정되어 있고, 처음 2년차까지의 과정이 순조롭게 끝났을 경우 석사 학위를 준다. 나는 석사를 받기 까지 3년 반이 걸렸다. 1년 반이나 늦어졌다는 것은 그동안 무언가 순탄치 않은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1년차때 수강했던 필수 과목중 하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고, 그로 인해 몇몇 과정들이 지연되었다. 학과측에서는 재수강을 허락했지만 다음해 나는 또다시 낮은 점수를 받고 말았다. 2년이 지난 후 세번째 수강에 이르러서야 겨우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그 과목으로 인해 지체되었던 과정들을 뒤늦게서야 끝낼 수 있었다. 그동안 펀딩은 줄어 들었고, 각 단계에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정들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뒤로 미뤄야 했다. 이러한 물질적인 어려움도 어려움이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던 것은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는 – 실망을 넘어선 – 절망감과 자라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스스로에게 많은 책임을 지우며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한 첫번째 갈림길에서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밤마다 잠을 설쳐야 했다. 학교에서 쫓겨난 후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늦은 나이에 취업을 해야 할테고, 그 이후 평생토록 내 인생 첫번째 도전에서 실패했다는 열패감에 시달려야만 할 것이라는 어두운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다. 가고 싶었던 길이 있고, 그 길을 단지 개인 능력의 부족함때문에 포기하는 상황을 극복하는 것에 익숙치 않았다. 우선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생각한 나의 모습은 저 위에서 날고 있는데 현실의 나는 그보다 훨씬 아래에서 추한 모습으로 기어다니고 있었다. 매년 여름에 한국에 돌아 갔지만 부모님께 웃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했다. 친구들을 만나도 맘편히 웃고 떠들지 못했다. 2009년 여름부터 2011년 여름까지의 2년동안 나는 항상 소화제를 챙겨야 했고, 수면 유도제를 먹은 뒤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단한 축복일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바라 보면 굉장히 위험한 도박같은 것일 수도 있다. 축복받은 재능에 성실함이 더해져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함을 추구하고 달성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여럿 목격해 왔다. 그들이 가지고 있고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한 적도 있었고, 그것들을 가질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눈 앞에서 놓쳐 버린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상상속의 완벽한 나를 만들기 시작했다. 타인들에게는 상상속의 내가 마치 진짜 나인양 꾸며서 말을 해댔고, 그렇게 거짓말이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악순환속에서 가끔 상상속의 내가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믿어 버리기까지 했다. 다행히 수능 이후 나의 멍청함을 뼈저리게 깨달았고 그 거짓말과 상상의 달콤함이 현실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거품들을 걷어 내기 위해 조금씩이나마 노력해 왔고,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그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지켜 나가기 시작했다.

유학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한 도전이었다. 몇십년간 살아온 서울이라는 공간에서는 몇가지 유도리만으로 적당히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적당한 “스펙” 을 이용해 적당히 괜찮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고, 그렇게 적당히 남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적당히 연애도 하면서.. 젠장) 유학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젊은 나이에 남의 주머니에 돈 벌어 바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얄팍한 자존감일수도 있었겠지만, 아마 그보다는 내가 그동안 쌓아올린 그릇된 인생에서 조금 더 많이 벗어 나서 약간은 더 깨끗하게 지워진 도화지 위에 다시 무언가를 그려 보고 싶다는 근본적인 욕망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정말 그랬다. 미국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고, 나는 대학원이 뭔지도 몰랐으며, 영어 실력은 외국인과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손으로 꼽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경제학은 학부 시절 나름 공부한답시고 노력해 봤지만 평균보다 조금 잘하는 정도였지 결코 유학을 자신있게 준비할 정도로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런 수준의 내가 만약 유학에서 살아 남는다면, 그건 내 인생에서 꽤 의미있는 성취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보기 좋게 나가 떨어졌고, 역시 나는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에 쥐구멍이라고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유학을 흔쾌히 허락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었다. 그 과목에서 두번째 떨어졌을때 성적을 확인한 곳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샌프란시스코 공항 안이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30분전쯤 휴대폰을 통해 성적을 확인했는데, 그로부터 인천 공항에 도착하기 까지의 열두시간 남짓한 시간은 지금도 내 기억속에 지옥같은 괴로움으로 생생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인천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늙은 얼굴을 처음 봤을 때의 고통은 차마 버틸 수 없는 수준이었다. (원래 1년에 한번씩 부모님을 뵈면 팍삭 늙어 보인다. 물론 며칠 지나면 다시 원래 수준의 인상으로 회복되긴 한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기억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무던히 (시린 가슴을 쓸어 내리며) 책상 앞에 앉아 공부했던 것이 전부다. 정말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그 시간들로부터 얻은 가치들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족한 면이 더 많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몸으로 체화하는 연습을 했다. 아주 비싼 비용을 들인 과정이었지만 인생에서 한번쯤은 반드시 배워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태함과 게으름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찾아 오는 도전이다. 나는 이를 극복하는 힘이 부족했다. 항상 스스로에게 관대했으며 ‘이 정도면 충분해’ 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아주 작은 방심들이 쌓이고 쌓여 커다란 틈새를 만들어 낸다. 그것을 메꾸기 위해서는 다시 아주 작은 노력들을 끌어 모아야 한다. 많은 시간과 고통이 필요하다. 애초에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편이 훨씬 현명한 것이다.

항상, 모든 것에 대해, 어떤 순간에라도 겸손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나는 부족하다. 부족하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 하고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보다 더 나은 점을 최소한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스승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 내가 잘난 것이 없기 때문에 자존심을 내세울 일도 없고, 남들 위에 군림할 일은 더더욱 없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서도 배울 점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며, 막 대학원 과정에 들어온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훌륭한 것들을 체득할 수 있다. 그들에게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는 항상 겸손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낮은 자세를 취할수록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덩달아 줄어든다는 사실도 덤으로 깨달았다.

때문에,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저 내가 이 곳에서 숨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준 사람들도 이에 못지 않게 소중하다. 그들에게 잘 해야 한다. 부모님부터 친구들까지.

지난 여름을 종점으로 그동안 뒤쳐졌던 모든 과정들을 성공적으로 끝마쳤고 이번 학기 남아 있던 선택 과목들도 모두 수강함으로써 석사 학위 요건을 충족시켰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제 다음 학기에 논문의 첫번째 챕터에 대한 프로포절만 성공적으로 마치면 동기들이 가고 있던 길을 모두 따라 잡고 같은 위치에서 함께 남은 걸음을 재촉할 수 있다. 지금 내게 남겨져 있는 과제는 박사 논문 세편이 전부다. 다행히 지난 2년동안 논문에 있어서만큼은 기존 과정과 동일한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해 놓은 작업들이 꽤 의미있는 것으로 남아 있다. 논문에 있어서만큼은 별로 뒤쳐지지 않은 것이다. 미국 대학의 경제학 박사 과정이 통상적으로 지정한 5년의 과정에서 이제 3년 반이 지났고 1년 반이 남았다. 앞으로 남은 1년 반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논문 세편을 마무리지어야 하고 잡마켓에 나가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아마도 이 모든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2013년 5월에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년 정도 늦어질 수도 있다. 우리 학교는 보통 6년이 걸린다. 논문을 쉽게 통과시켜 주지 않는 전통때문이기도 하고, 요즘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취업 시장이 꽉 막혀 있는 탓이기도 하다. 나보다 1년 위의 선배들은 모두 6년차 과정을 가기로 결정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어쩌면 논문을 쓰고 잡마켓에서 스스로를 어필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보다 더 어려운 것들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앞으로는 조금 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기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지난 3년 반동안 내가 무엇을 배워 왔고 어떤 것들을 얻어 왔는지 아직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고 열흘쯤 신나게 놀았다. 소설도 읽었고 잠도 늘어지게 잤다. 그리고 이제 내일, 새로이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다시 학교에 간다. 이번 겨울방학동안 논문에서 진전을 좀 보여야 다음 학기가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직 이런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책상 앞에 앉아 글자를 읽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일 따름이다. 이걸 게으름이나 나태함과 바꾸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그러한 잘못을 저질러 왔다. 그 그릇된 인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물질적인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3년 반동안의 또다른 시행 착오를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2 thoughts on “3년 반.

  1. 토닥토닥.
    아카데미아의 길은 정말 멀고 험난하네요 -_-
    고생을 안하고 살면 좋겠지만 그렇게 해서 배우는 것, 얻는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살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갈길은 멀지만 파이팅!

    • 감사합니다. 전 이런 저런 어려움이 저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아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예요. 동생분때문에 요즘 속 많으 썩으셨겠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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