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혼자 살아야 할까.

 

 

최근 며칠동안 굉장히 아팠다. 사실 지금도 아프다. 일요일에는 고열과 소화불량이 동시에 왔다. 고열로 인한 몸살과 콧물, 기침 등에는 익숙해져 있어서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화 불량과 동시에 찾아오니 생각 외로 힘들었다. 구토도 했고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지금은 고열은 없어졌는데 그 이후로 이상하게 소화를 잘 못 시키고 있다. 윗배에서 뭔가 얹힌 느낌..  지난 토요일 저녁 코르크 마개를 딴 뒤 1년 넘게 방치해 둔 와인을 한모금 마신 것이 아무래도 화근이 아니었나 싶다. 문제는 어제부터 극심한 편두통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의학쪽으로는 완전히 무지해서 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의 미신에 가까운 추측에 의하면 뱃속에 있던 병균(?? 뭔지는 모른다..) 이 머리로 기어 올라간 것 같다. 뇌속에서 병균 몇마리가 막 기어다니는 느낌..

아무튼, 그래서 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3초마다 한번씩 정으로 머리를 쪼개는 듯한 고통을 참아 가며 끙끙거렸더랬다. 편두통이 무서운 게 무언가에 집중하기 힘들게 만든다. 오늘은 논문을 하나 마무리지어야 했는데 이런 상태로는 깨알같은 글씨를 읽기 너무 힘들 것 같아 그냥 그만 두어 버렸다. 미국 경제사 과목을 위한 소논문인데 데드라인은 다음 주 금요일. 다음 주 수요일에는 기말 고사를 하나 치루어야 해서 최소한 사나흘은 공부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내일을 포함해 사흘 정도밖에는 논문을 수정할 시간이 없다. 아오.. 나 이런 스트레스 (시간에 쫓겨 스스로를 쪼아야 하는 압박감) 되게 좋아하긴 하는데 (스릴도 있고 생산성도 엄청 높아지고 뭔가 그래도 밥벌이는 하는 구나 하는 자기 가치 확인도 되고..) 그래도 몸이 안좋은 상태에서 데드라인이 탁탁 다가오는 느낌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더이상 막 걱정이 되거나 울고 싶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난 이런 위기, 아니 이보다 더 큰 위기를 수십번은 당해 보았고 그 때마다 실패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 남았다. 실패하지 않았다는 건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퍼펙트하게 처리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살아 남을 정도의 어떤 수준을 통과했다는 거다. 물론 실패한 적도 몇번 있다. 인생에 있어서 몇번 없는 그 실패는 평생 몸에 새겨져 기억에 오랫동안 남게 된다.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실패하던 순간의 느낌을 되살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을 막으려고 애쓰게 된다. 일종의 면역 주사인 셈이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도 어떻게든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쉬면서 해피투게더도 보았고 웹툰도 보았다. 뉴걸도 봤다. 러닝맨도 봤다. 송지효 이쁘더라.

일요일 저녁 혼자 침대에서 몸살과 구토로 끙끙거리면서 생각한 것이 하나 있다.

과연 내가 언제까지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상당히 심오한 주제에 대해서 침대 이불속에서 몇시간을 생각했다. 요즘 거울을 보면 주름살이 보인다. 운동을 며칠만 안해도 몸이 허해지는 것을 느낀다. 운동을 할 때에도 젊은 친구들에게 못 따라 가는 것이 하나 둘씩 생겨남을 발견한다. 몸이 한번 다치면 회복이 느리다. 담배도 안피우고 커피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참 힘들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인상을 쓰거나 어머 어머 쯔쯔쯔 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거 진짜 나이 들고 생긴 증상이다. 왜 이러지!) 주변 지인들 아기 사진을 보면 단순히 이뻐서 꺅 거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저게 내 새끼였으면!” 혹은 “내 새끼는 어떻게 생겼을까”) 밥을 혼자 먹거나 길을 혼자 걷거나 영화를 혼자 보는 것은 괜찮은데 식료품점을 혼자 가면 이상하게 괜히 지는 것 같다. 식료품점에서 음식을 사는 것이 흥이 나지 않는다. (“이걸 아무리 맛있게 요리해도 결국 내 입에 처넣을 거잖아”)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것은 괜찮지만, (그리고 선호하지만) 가끔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걸 들어줄 상대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다. (아버지가 가장 부럽게 보일 때는 하루 종일 아버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 주고 계시는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할 때였다) 무엇보다 마음을 줄 상대가 없다는 것이 뭔가 에너지 낭비처럼 느껴진다.

나는 지난 10년동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무살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다. 스물 다섯살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리석었다. 스물 일곱살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멍청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별로였다. 그래서 지금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되게 아깝고 아쉽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잘하지만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편인데 (타인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나 자신을 관찰하는 것은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 이 무렵의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있다. 분명이 전과 다를 것이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걸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까울 때가 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얼마나 더 현명해 졌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자신에게서 보고 싶은 그 “차이” 들중 하나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나는 지금까지 연애를 하면서 한번도 상대방, 혹은 상대방과 나를 포함한 관계 자체를  “나의 것” 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는 할 수 있지만 관계가 나를 집어 삼키는 것은 한번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관계는 항상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대상이었고 무언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내가 그 대상 자체가 되어본 적은 없다. 그 관계에서 채워지는 느낌을 받기 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나의 시선이 달라진다면, 연애를 하거나 다른 이를 사랑하는 일도 훨씬 수월해 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들도 여전히 고열과 몸살에 시달리던 침대 위에서 행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관계라는 것은, 연애보다는 가족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옳거니, 선을 봐야 겠구나!” 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상대방이나 연애가 아니라 그저 함께 삶을 영위해 나가는 동반자로서의 상대방과 그렇게 흘러가는 관계를 원하는 것 같다. 관계를 더이상 처리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 안으로 내가 들어가서 관계 자체를 내 삶으로 받아 들이는 그정도의 관계.  “오빠는 정말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같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보다 더 풀기 어렵다는 난제를 제시하는 그런 관계는 그러니까 확실히 아닌거다.

내가 아직 충분히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 같은 관계 설정이 어느 특정 시점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아직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그러한 관계를 ‘물질적으로’ 지탱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선결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돈이다. 삶이 구차해지지 않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나는 가난이 그리 싫지도 않고 지금 현재 나 하나에게 허락되는 돈이 극히 적다는 사실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지만, 만약 내가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돈이 없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멋지게 보이고 싶기 때문은 아니다. 단순히 돈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처럼 돈에 큰 집착을 보이지 않기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돈은 중요하고 소중한 거니까 그것에 대한 가치를 크게 잡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일년에 명품백 하나 정도는 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다. 명품백은 이쁘니까. 또 소중하니까. 과연 돈없이도 그런 관계가 가능할까? 나는 아직 겁이 많아서 그런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날 이불속에서 내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일단 2년 받고, 1년 더.. 

그러니까 대학원 졸업하기 전까지는 아파도 혼자 약 챙겨 먹으면서 이불속에서 훌쩍거려야 하고 죽먹으면 나을 것 같은데 죽 끓여줄 사람이 없어서 인터넷 켜고 네이버님께 죽 어떻게 끓여야 하나요 하고 여쭤봐야 한다. 설거지 죽도록 하기 싫은 날에는 설거지를 해야 하고 빨래나 청소 정말 하기 싫으면 빨래나 청소를 해야 한다. 막 되게 수다를 떨고 싶으면 책을 읽어야 하고 혼자 있고 싶으면 그냥 혼자 있으면 된다. 이 생활이 앞으로 2년이다.

1년은 내가 한국에 가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은 기간이고,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보내게 될 기간이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꼭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다. 1년이 되어도 좋고 6개월이 되어도 좋으니 결혼하기 전에 딱 한번만 같이 살고 싶다. 효도하고 싶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이 이미 효도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또한 나는 적응이 항상 느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필요하다.

아무튼..

그래서 진짜 생기긴 생기는 걸까? 이번주 일요일에 대학 여자 동기 한명이 결혼을 하고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남자 동기 한명이 결혼을 한다. 대학생때 함께 어울리던 동기 일곱명이 있는데 올해가 가면 그중 세명이 유부남 유부녀가 된다. 그리고 어제 동기들중 가장 가까운 다른 한명으로부터 결혼이 임박했다는  아주 기분나쁜  메일을 받았다. 군대 동기 녀석 한명도 1월에 결혼한다고 소식을 전해 왔고, 다른 군대 동기 한명도 결혼을 준비중이다. 페이스북은 10년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고등학교 동창들까지 소개시켜 주는데, 최근에 친구가 된 한 여자 동기는  임신 7개월이란다. 올해에만 친한 고등학교 동창 두명이 결혼을 했다. 나에게까지 전해지지 못한 결혼 소식은 아마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조급해 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어머니께 “어머니 요즘도 성당 수녀님들이 중매해주시나요?”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궁금하기는 하다.
쓸데없는 주제로 타이핑 연습을 좀 했더니 글 쓰는 동안에는 두통이 좀 가시는 것 같다.

11 thoughts on “얼마나 더 혼자 살아야 할까.

  1. 세균성 장염 같아요. 원래 위장과 뇌쪽 신경이 연결되어 있어서 위장이 아프면 두통이 올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워낙 위염 장염을 달고 살아서 그쪽은 좀 아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한번 장염에 걸리면 잘 났지도 않고 앞으로도 자주 걸릴텐데 어쩌나… 전 그래서 한국에서 장염약을 한두달치 처방받아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이삼일 정도 꾸준히 약을 먹습니다. 먹는 거 조심하고요. 그렇게 견디고 있어요.

    • 헉.. 생각보다 심각한 병이었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군요.. 지금까지 한번도 먹는 것에 있어 두려움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_- 큰일이네요 쩝.

  2. 작년에 a형 간염으로 한달 정도 고생했었는데… 이것도 증상이 열감기처럼 시작해서 나중에 구토, 식욕부진, 무기력, 등으로 번져서, 저는 회사도 제대로 못다니고 계속 링겔만 맞으러 다녔었어요. 감기인 줄 알았다가, 열감기 후유증으로 인한 위 기능 장애인줄 알고 일주일을 죽어라 고생했죠. 회사도 제대로 못가고. 암튼, 저도 그 때 독립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야심찬 시기였는데 덜컥 아파버리는 바람에, 니가 부모곁을 떠나서 그런거다….라는 소리를 엄청 들었어야 했어요. 나름 잘 살려고 하고 있는데 뭔가 억울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몸관리 못한 죄인 그저 네네 부모님 품이 최고입니다요. 하면서 병가내고 다시 부모님 집으로 기어들어가 한달간 요양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

    암튼, 저는 그 때 맘만 먹으면 엄마가 와줄 수 있는 거리였는데도 괜히 떨어져 있어서 서럽고, 속상하고, 저도 혼자 검색해서 죽끓이는 법 찾아보고, 아픈데도 나 먹을 건 내가 챙기지 않으면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서글펐는데 거긴 너무 멀어서 더 그렇겠어요. 모쪼록 얼른 나으시길.

    참, 저도 나이드니까, TV 보면서 리액션이 늘어요. 막 스스로가 부끄럽고 그래요, 하하 -_-

    • 그때 고생하셨던 것 기록하신 글 본 기억이 나요. 혼자 살기로 결정하시면서 집 구하러 다니셨을때 겪으셨던 일, 이후 살림살이 장만하느라 힘드셨던 일들도요. 간염이면 대체 얼마나 아픈 걸까요. 고생하셨어요! 부모님 품이 최고인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다만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혹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하는 시점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드네요.

      제가 또 요리를 되게 못해서 음식쪽으로 고생이 더 심한 편입니다 ㅋ -_-

  3. 아프시다믄서 이렇게 긴 포스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빨리 나으시고
    이렇게 사는 것은 ‘꼴’이 아니고
    하나의 삶의 방식입니당~~

    • 저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독신의 삶을 선택하신 분들을 여럿 두고 있어서 그분들이 늙으신 후 얼마나 외롭고 힘들어 하시는지 잘 봐 왔거든요. 그래서 더 늙기 전에 가족이라는 울타리속으로 꼭 들어가고 싶어요.

  4. 종혁씨를 알게 되고 어느 정도의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안도하고 조금은 힘을 낼 수 있어요.
    똑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걸 알게 되어서.
    동족을 만난 기분이랄까.

    근래 가장 큰 고민이 ‘나는 (얼마나 더, 정말로) 혼자 살아야 할까’ 예요.
    체력 관리도 열심히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나이가 들어도
    초라하지 않고, 외롭지 않게 살아갈 자신감을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건 지금보다 멍청했던 27살 때의 얘기지
    지금은 종혁씨와 똑같은 고민을 해요.
    삶은 예측불가한 방향으로 흘러가잖아요.
    지금의 제가 여기에 있는것도 예측가능했다면 불가능할 상황.

    이 포스트에서 별표 5개를 치면서 동감하고 싶은 부분은
    ‘물질적’ 부분에 대한 것이예요.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서
    그 상대가 좋아할만한 조건을 갖춘다는것.
    어려운 일이예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돈’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기본이 된 후,
    다른 조건을 충족시켜 짝을 만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세상이죠.
    그리고 그것을 강력하게 거부한다고 해도 이미 몸과 마음은 돈에 익숙해져있잖아요.
    싱글로 살아가는 지금이야 어찌어찌 남들이 보기에 멋들어지게 살아갈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동반자가 생긴다는 막연한 상상에 대한 복합적인 두려움이,
    ‘생길꺼예요, 생겼어요’를 외치기 이전에 커다란 바윗덩이처럼 등에 얹혀져요.
    이 두려움의 고비는 (관계가 나를 집어삼킬만한) ‘사랑’이나 사람이 나타난다면
    넘어가기가 매우 수월해지겠죠.

    길게 쓰다보니 그날처럼 길게 대화하고 싶어졌어요.
    앞에 놓인 따뜻한 차가 차갑게 식어가도 모르게 길게.

    • 그날의 대화는 지금도 기억속에 강하게 남아 있어요. 나중에 두번째로 서울에서 만났을 때는 제가 떠나기 전에 마음이 급해서 좀 많이 죄송했고요.

      아무튼,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늦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서두르고 싶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 문제는 충분히 조절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가 될지는 몰라요.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나는 시점은 컨트롤 가능하다는 거죠.

      그건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 인생을 살아가는 능력의 문제이기도 해요. 삶의 무게에 허덕거리면서 사람을 만날 기회를 놓치면 그것으로 변명이 되는 그런 건 싫어요. 그걸 이겨내야죠. 삶에 지배당하지 말고 삶을 자기 안으로 끌어 들인다면, 그 사람 자체는 선택할 수 없을 지언정 최소한 누가 될지 모르는 그 사람이 나타났을 때 준비가 되어 있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도 저는 여기서 찾고 있어요.

  5. 괜찮으세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자다가 종혁 님 멘션을 보았어요. 고맙습니다. SNS를 줄여 보겠다고 쓰신 글을 못보고 종혁 님 찾다가 블로그는 계속 업데이트 되어서 좋아했죠.)

    그런데,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 ‘얼마나’ 현명해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거겠지요? 읽으며 생각해보니 저에게도 그런 욕구가 있는데,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도 확인이 되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 때에 대한 두려움도 공존하는 것 같아요. 전 정말 겁이 많은가봐요.

    이 음악은 뭔가요? 좋아요.

    • 신행씨 요즘 사랑니 문제로 고생하시는 거 보면 전 아픈 축에도 못 드는 것 같은데요 ㅋ 수술 잘 되길 바랄게요!

      네, 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확신이 있어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제가 가진 단점들을 지워나가는 것이 확실히 보이고, 이미 가지고 있는 장점, 혹은 새롭게 발견되는 장점들이 성장하는 모습도 보이거든요. 육체적인 능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들에서 그런 것들을 발견해요. 그래서 전 늙는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고 기분 좋은 것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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